Wall Street of the Third Empire RAW novel - Chapter (95)
– 카지다!!!(불이다!!!) 카지야!!!(불이야!!!)
화르륵-
도쿄 한복판에 불길이 치솟아올랐다.
일본결제은행 도쿄지부는 야심한 밤. 횃불을 든 하급 사무라이들의 방화에 의해 건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사무라이들이 칼을 뽑아들었다.
– 아소코니 히오 스케로!!!(저기에 불을 붙여라!!!)
– 미나고로시다!!!(다 죽여버려!!!)
텅 텅 촤악!
신고전주의 석조건물이었지만 등유가 부어졌고, 밤동안 활활 불타올랐다. 화끈한 열기가 뿜어져 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화르륵-
킁.
불어닥친 후끈한 열풍에 나는 코를 훔쳤다.
외투를 단단히 싸맸다.
“겨울 추운데 장작 좋네 따뜻해.”
삭스가 나를 미친놈처럼 쳐다봤다.
하지만 일본결제은행이 불타오르는 와중에도 나는 여유로웠다. 이곳이 불타오르기 전, 중요한 물건들은 다 피신시켰으니까.
지금 일본결제은행은 쭉쩡이만 가득한 껍데기에 불과했다.
“제가 말했지 않습니까. 군부가 폭주할 거라고.”
“…..설마 제국의회가 폐회한 날 밤에 바로 불을 지를거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는데.”
“일본의 군부를 상식으로 이해하려 한 삭스가 나쁜 겁니다.”
탕! 탕! 타탕!
붉게 타오르는 밤하늘 아래 총성이 울렸다. 하급 사무라이들이 칼을 뽑아들고 일본결제은행의 일본인 직원들을 도살하기 시작했지만, 그 속에 섞여든 뭔가가 총을 발포하기 시작했다.
누가봐도 육군이었다.
헉. 헉.
그때 미 해병대 장교 하나가 급하게 우리에게 달려왔다.
“디트로이트 이사님, 삭스 이사님 제가 엄호하겠습니다. 얼른 장갑마차로 올라타시죠. 크루프강이라 총은 다 튕겨낼 수 있을 겁니다.”
“대응할 수단은 있습니까?”
“……기관총 2정을 실어놓긴 했는데 시가전 한복판이라 써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쏘세요.”
나는 헌팅캡을 고쳐썼다.
총격이 쏟아졌지만 두번이나 암살시도를 당한 탓일까 그렇게까지 패닉은 아니었다.
나를 엄호하는 해병대 장교를 바라보았다.
“치외법권입니다. 제가 사법거래로 커버쳐줄테니 기관총에 있는 탄약 남김없이 쏟아부으세요.”
“…예! 한놈도 남김없이 주님의 곁으로 보내버리겠습니다.”
덜컹.
나는 비장해진 장교와 함께 크루프강으로 떡칠이 된 두꺼운 장갑마차로 올라탔다. 먼저 탄 삭스는 넥타이를 거칠게 풀며 후우 후우 심호흡했다.
“금융업이 이렇게 위험한 일인줄은 처음알았군. 누가보면 전선에 나가있는 종군기자라고 생각할거야. 하! 구제금융해준다고 총쏘는 이딴 미친 나라,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어.”
“어차피 그들은 얼마 버티지 못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지? 이 자들도 지금 죽을 각오로 밀어닥치고 있다고.”
“감당이 안되면 살인멸구. 그게 바로 일본의 실수입니다.”
“무슨 뜻인가?”
“가만히 있었으면 중간이라도 갔을 것을.”
나는 삭스를 보며 씨익 웃었다.
덕분에 추후 메이지정부에 요구할 청구서의 내역도 점점 두꺼워지고 있었다. 삭스는 그런 나를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자네와 있으면 적어도 죽을 염려는 없겠군.”
“금과 자산서류들처럼 중요한 서류들은 이미 도쿄만에 정박한 큐나드 해운 선박에 실어놓았습니다.”
“큐나드 해운? 아 전에 정보를 팔아넘겼던 초대형해운사인가.”
“예, 미쓰비시기선과 미쓰비시상사를 합병해 넘겨주는 조건 중 하나로 걸었습니다. 마부! 요코하마항으로!”
“Yes, sir.”
이랴!
철썩.
육중한 마차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 군마들의 말발굽이 바닥을 페며 속도가 점점 속도가 붙었다.
텅-!
마차에 같이 올라탄 해병장교들은 마차의 트렁크에서 가관총 1정을 꺼내들었다.
“2정 있다고 들었는데?”
“곧 뒤따라올 마차열에 있습니다. 그놈들도 해군이나 해병대니 알아서 탈출하겠죠. 우선 저희부터 안전하게 빠져나갈겁니다.”
“부탁하네.”
철컥.
투타타타타타타타-
한차례 총성이 허공을 긁자 뒤따라오던 사무라이들이 터져나가며 한낱 살점으로 산화했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시신이 길거리에 나뒹굴었다. 가끔 마차의 바퀴에 치일 때마다 덜컹거린다.
하지만 곧 사라진 분보다 더 많은 사무라이들이 닥치고 돌격으로 쏟아졌다.
젠장. 무슨 좀비물도 아니고.
“더 갈겨. 더. 더. 저기도 숨어있습니다.”
“옙.”
전속력으로 달리는 마차 속.
나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사무라이들과 그 속에 섞인 육군들을 곳곳에서 색출해내며 주문을 이어나갔다.
투타타타타타타타-
총열의 화염은 요코하마항으로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사무엘 삭스는 본격적인 육군의 공세에 얼굴이 새하얘졌다.
“도대체 병력을 얼마나 풀어놓은거지?”
“저것들, 하급 사무라이처럼 입었지만 사실 전부 육군장교들이나 일반보병들일 겁니다. 아마 어딘가에 숨은 기마병들이 저희를 따라붙으며 위치를 계속 알려줬을 거고요.”
“….아 무섭다. 빨리 탈출하고 싶군.”
“하하, 동감합니다.”
히히힝!
군마가 투레질을 했다. 모두의 시선이 창밖으로 향했다.
“요코하마항이 보입니다! 바다입니다!”
콰직-
군마의 말발굽이 땅을 힘차게 두드리며 투레질과 함께 장갑마차가 멈춰섰다.
요코하마항에 도착한 우리들은 빠르게 장갑마차에서 내려, 부두에 정박한 큐나드해운 선단 중 한 척으로 달려들었다.
큐나드 해운 소속 용병들은 우리를 발견했는지 부두로 내려왔다.
“디트로이트 이사님, 큐나드해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금부턴 저희가 엄호하겠습니다.”
텅.텅.텅.
밟을 때마다 철판이 울린다.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기다리고 있던 큐나드해운 소속 용병들이 우리들을 엄호하기 시작했고, 무사히 대형상선에 올라탔다.
“후…제기랄. 이거 말년에 전직하고 싶게 만들어주는군. 일본제국에 두번다시 오나 봐라.”
“오게 되실겁니다.”
“……Jesus christ.”
쾅-!
해치가 닫히자 이제 좀 안심이 되는지 사무엘 삭스는 그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리가 풀린 그는 지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 용병들의 틈속으로 한 정장의 신사가 우리들에게 다가왔다.
“디트로이트 이사님, 금과 주요서류들은 저희 선박에 설치된 최상급 금고에 보관했습니다. 목록을 작성해놨으니 나중이 수량체크 한번 해주시면 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 혹시 그것들도 잘 선적되었습니까?”
“예, 공장설비들도 전부 저희 선단에 실어놓았습니다.”
“공장설비?”
삭스는 큐나드 상선의 귀빈실로 안내받으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금과 중요한 서류들을 피신시킨 것은 들었는데, 공장설비는 금시초문이다.
“공장설비는 왜….”
“그 왜 일본군에 납품하던 군수법인들이 소유한 공장설비들이 있지 않습니까. 각 공장마다 핵심적이지만 부피는 크지않은 장비들로 하나씩 압류했습니다.”
“이 와중에 잘도 그런 잇속을 챙겼군.”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보급은 생명이다.
군수물자를 뽑아낼 군수공장들의 핵심장비들만 쏙쏙 압류해 큐나드 상선에 실었다. 공장은 올스톱. 이로서 일본육군은 추가적인 군수물자 생산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뿌우우-
배의 기적소리와 함께 쿠구궁….바닥이 흔들렸다. 큐나드 상선이 선착창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군수공장의 공장설비를 추가로 발주하려고 하면 어떻게 하려고.”
“군수공장의 설비들은 독일제국의 지멘스같은 공장설비회사나 대영제국의 기술회사들에게 주문해야합니다. 하지만 영국은 이미 일본을 등진지 오래죠. 저희는 4달만 버티면 됩니다.”
“지멘스사에 의뢰해도 설비가 제조되는건 대략 3달에서 반년 뒤. 이미 모든게 끝난 이후라 이거군.”
“정확합니다.”
요코즈카 진수부를 통과하자, 장갑순양함 1척과 어뢰정이 큐나드 선단 호위를 위해 따라붙었다.
태평양 1함대 소속이었다.
“후…. 자네를 따라다니면 놀라운 일의 연속이지만, 진짜 내 명에 못살겠군.”
“고생하셨습니다.”
“피습당했던 상처는 괜찮나?”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네요.”
“그래야지. 그 상처 덕에 몇 만이 움직이고 있는데.”
풀썩.
사무엘 삭스가 웃으며 그대로 귀빈실의 침대에 대짜로 뻗었다. 그는 일본결제은행이 불타오르고 큐나드해운으로 탈출한 일련의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재생되는지, 흐릿해진 시선으로 천장을 멍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도착지는 어딘가?”
“이 큐나드해운 선단의 도착지는 영국령홍콩입니다. 거기서 코카콜라 홍콩지부의 임원들이 금고의 금과 서류들을 홍콩지부의 금고로 옮겨, 철통보완 속에 보관할 예정입니다.”
“코카콜라?”
삭스가 미어캣처럼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 이름이 왜 지금 나오느냐는 듯한 그의 얼굴에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예, 코카콜라의 레시피가 미국 애틀랜타와 영국령홍콩에 총 2부가 각각 안치되어있거든요. 레시피를 도난당하지 않기 위해 코카콜라의 금고는 금융업계에서도 최상급인 금고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1억달러짜리 레시피다 이건가.”
“그런 셈이죠.”
나는 슬슬 다리가 아파와 의자를 끌어왔다. 사무엘 삭스도 어느새 허리를 꽂꽂이 피고 앉아있었다.
나는 슥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저희의 도착지는 좀 다릅니다. 중간에 나가사키에 경유해서 내릴 겁니다.”
“나가사키? 이 미친자식아! 일본본토에 다시 돌아가겠다고?”
“물론. 본토는 아닙니다.”
촤륵.
나는 귀빈실에 준비된 일본지도를 한장 펼쳐들었다. 나가사키 인근에 위치한 섬 하나를 손가락으로 턱 하고 찔렀다.
“저희 도착지는 하시마섬(군함도) 탄광입니다.”
***
“석탄이 없다고?”
일본제국.
요코즈카 해군진수부.
연합함대의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콱 미간을 찌푸렸다. 부관은 차렷 자세로 계속해서 보고했다.
“석탄 뿐 아니라 군수물자나 예산도 없답니다. 추가로 군수물자를 찍어내고 싶어도 공장설비가 없다고.”
“…..왜?”
“일본결제은행이 차압을 명분으로 중요한 설비들만 뜯어갔다고 합니다. 독일제국에서 설비를 마련하려면 3달에서 반년이 걸린답니다.”
“그렇게나 오래 걸리나?”
“예, 공장설비 제조회사가 몇 없어서 업계 자체가 독점이랍니다. 주문이 밀려있다고. 그리고 탄광도 같은 이유로 광부들에게 유급휴가를 지시하고 일시적으로 폐광시켰고요.”
“미치겠군.”
마치 군부가 폭주할 걸 미리 계산했다는 듯한 일본결제은행의 행보에 도고 제독은 혀를 내둘렀다. 그러니까 자신은 지금 추가적인 보급이 전부 차단된 상태에서 연합함대를 이끌고 태평양 1함대를 가라앉혀야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거, 시간싸움이 되겠는데.”
“해군대신의 말에 의하면 태평양 5함대나 6함대는 대략 4, 5일 뒤에 도착한다는 모양입니다. 그전에 끝내야한다고 하셨습니다.”
“하, 골때리는군.”
물론 현 상황은 연합함대에게 더없이 유리하다. 요코즈카 해군진수부엔 이미 후지급 전함 한척이 있었고 장갑순양함이나 비방호순양함들이 대거 정박해 있었다.
하지만 미1함대에 비해선 적었다.
“다른 진수부(사령부)들에선 답신은 없나?”
“이미 출발했고 오늘이나 내일 내로 도쿄만에 진입한다고 합니다.”
“그건 다행이군.”
비록 요코즈카 진수부만 놓고보면 태평양 1함대에 미치지 못하지만. 마이즈루, 사세보, 구레 진수부에서 함대를 싹싹 긁어모으면 역전한다. 함대들은 오늘 저녁부터 내일 정오까지 차례로 도착할 것이다.
도쿄만을 완전히 포위한다면 미 1함대라도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현재 미1함대의 전력은 어떻게 되지? 기함 USS 사라토가는?”
“현재 장갑순양함 1척과 어뢰정 3척이 큐나드해운의 호위를 위해 파견나간 상태입니다. 전함이자 기함인 USS 사라토가는 아직 정박해 있습니다.”
타 진수부의 구원도 곧 도착하고.
미 1함대의 전력 대부분이 요코즈카 진수부에 묶여있었다. USS 사라토가 기함까지도.
기회다.
“요코즈카의 장교들에게 전파하도록. 실행은 오늘이다. 부족함 없이 준비해서 대기하도록!”
“하!”
척.
부관은 각잡힌 경례를 한뒤 전파사항을 위해 빠져나갔다.
도고 제독은 정모를 우그극 움켜쥐었다.
“정녕 이 방법밖엔 없는 것인가.”
고국인 일본은 기습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 되어있는가.
하지만 푸념은 짧았다.
그는 주먹을 펴 구겨진 정모를 탁탁 폈다.
“……할거면 전심전력이다.”
턱.
그는 무거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야심한 밤
요코즈카 진수부.
– 시즈카니.(조용히.)
텅.텅.텅.
부두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수병들은 조심스럽지만 빠른 발걸음으로 군함으로 다가갔다.
도고 제독의 명령 아래. 새벽부터 집결한 일본해군들은 전원 갑판으로 올랐다.
후지급 전함의 함교에는 선장인 료 제독과 사령관인 도고 제독이 올랐다.
“전포 조준. 부두에 정박한 미해군 1함대를 향해 조준하라.”
도고제독의 지령.
수병들은 포탑을 움직여 미국측 장갑순양함 조준했다. 미해군은 요코스카 해군진수부의 부두에 정박해 있었지만, 수병들과 장교들 대부분은 군함에서 취침하고 있었다.
끼우웅. 끼우웅.
전함과 순양함의 포탑들이 제각각 목표로 삼은 군함을 조준했다.
“전탄발사. 신호기를 올려라.”
펄럭.
심야한 야간이었지만 보일만한 조명은 충분했다. 미해군 측 반응은 없었다. 부두가 좁아 장갑순양함은 사냥하기 좋게 일렬로 정박해있었다.
사방의 포탑이 그들을 조준했다.
콰아아앙——!
전 주포가 화염을 뿜었다.
콰아아앙——!
콰아아앙——!
겉을 둘러싼 미국 장갑순양함이 폭발했다.
단발에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포를 쏟아부었다. 이 시기 군함들은 석탄저장고를 가지고 있었다. 석탄저장고에 피탄된 장갑순양함은 유폭으로 터져나갔다.
쾅! 쾅! 콰아앙! 퍼엉!
한 척의 장갑순양함이 거대한 화염을 뿜으며 산산조각으로 폭발했다. 그 옆에 불똥이 튄 장갑순양함도 유폭했고, 어뢰정의 어뢰도 유폭했다.
쾅-!
“착탄!!!”
***
따르르르르릉-!
한차례의 경보.
살아남은 미국 군함에 불이 켜졌다. 기함 USS 사라토가는 운좋게 살아남았고, 잠에서 깬 듀이 제독은 재빨리 장교들을 불러모았다.
“무슨 일인가!!!(What’s happening!!!)”
듀이 제독의 포효에 장교들은 일사분란 하게 움직였다. 함교에 위치에 착석했고 그의 부관은 그에게 척 달라붙어 뒤따랐다.
“일본 해군의 기습공격입니다.”
“피해상황은!”
“장갑순양함 4척이 석탄저장고에 피탄. 유폭한 것으로 보이고, 2척은 무사합니다. 1척은 큐나드해운의 호위를 위해 따라붙었고요. 어뢰정들도 보고 할까요?”
“아니, 그정도면 상황이 대강 보이는군. 다른 함들도 빨리 시동걸어서 부두에서 빠져나오라고 하게. 빨리!!!”
“Yes sir!”
듀이 제독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열악한 조명 탓에 어두웠지만, 수십년간 해군생활로 다져진 시야는 밤에도 올빼미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유폭한 군함의 화염도 시야를 틔웠다.
“선전포고도 없이 야간기습이라니. 미친건가 이 잽스 개자식들.”
우그극.
피가나도록 손을 움켜쥐었다.
그간 필리핀 전선에서 싸운 전우들이 비겁한 일본놈들의 기습에 지금 밖에서 떼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차가운 겨울바다 속으로 작열하며 타들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했다.
우우우웅-
시동이 걸린 증기터빈이 웅장한 금속음을 토해냈다.
“전속력으로 빠져나가!!! 대응사격은 갑판에 맡겨두고 우리는 부두에서 빠져나가는데 집중한다!!!”
“옙!!!”
“보급은!!! 보급은 충분한가!!!”
보급이 생명이다.
이대로 전속력으로 며칠을 달릴지 모르는데 석탄이 없으면 필패 확정이었다.
“보급선이 한 척 살아있습니다!!!”
“그럼 벗어나는대로 보급선을 보호한다!!! 그게 터지면 다 끝이야!!!”
듀이제독은 정모의 각을 잡았다.
석탄만 충분하다면 1함대의 우세다.
전드레드노트급이라 불리는 이 군함은 말만 전드레드노트급이지 스펙상 축소형 드레드노트나 다름없었으니.
전체크기와 주포는 드레드노트보다 적다.
하지만 시스템은 똑같다.
파슨스 증기터빈으로 속도는 빠르고, 사격통제장치나 무선통신은 통제사격이 가능했으며, 크루강으로 선체를 둘렀다.
후지급 전함보다 스펙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듀이제독은 성호경을 그었다.
“신께서 보우하사.”
쏴아아-
USS 사라토가는 빠르게 부두를 빠져나왔다.
“우현 전타!!!”
빠르다.
드레드노트보다 함크기가 작은 것은 이 시점에선 최고의 장점이었다. 그 거대한 덩치도 21노트나 속도를 내는데 전드레드노트는 어련할까.
후지급 전함이 최대 18노트로 항행할 때, USS 사라토가는 23노트 안팎으로 전속력을 낼 수 있었다.
“지금부터 우린 회피기동에 주력한다!!! 왠만큼 거리가 벌어질때까지 일단 전속력으로 달려!!!”
그리고.
주포의 사정거리는 이쪽이 더 길었다.
쾅-!
일단 도쿄만으로 해역으로 빠져나오자 숨통이 틔이는가 싶더니, 더욱 최악으로 치달았다.
사세보와 구레에서 증원된 연합함대의 군함들이 도쿄만의 주위로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쏴아아-
물론 착탄은 없었다. 파슨스 터빈으로 돌아가는 기동력은 미국측이 우세했다. 장갑순양함들도 마찬가지다.
세대 자체가 다르다.
오히려 거리가 벌어지니 태평양 1함대가 일방적으로 연합함대를 두들기기 시작했다.
“제독. 작전목표는 어떻게 됩니까?”
“지연전이다. 4일만 버티면 5함대와 6함대가 도착한다. 그전까지 버티려면 우선 도쿄만에서 벗어나야해!!!”
“옙!!!”
쾅-!
전 주포가 불을 뿜었다.
All-big-gun정도의 수준은 아니지만 사정거리 자체가 다른데다 사격통제장치와 무선통신으로 전탄발사를 수시로 때릴 수 있었다.
“착탄!!! 적의 순양함 2척 침몰합니다!!!”
“계속 쏟아부어!!! 아직 포위망 못 뚫었잖아!!! 보급선이 터지면 다 끝이라고!!!”
보급선이 위험하다.
파슨스터빈을 달았다지만 보급선은 대량의 석탄을 싣고 있었다. 그만큼 유폭할 위험성이 높았으니 최대한 보호하면서 전투해야한다.
보급선은 이제 한척 남았다.
4일 간당간당하게 버틸 물량이 남아있었다. 그 물량에 기대 하루종일 포위망 속에서 회피기동을 계속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지금 시각은. 몇일 지났지?”
“이제 갓 하루 지났습니다. 이틀 째입니다.”
콰아아아앙-!
불길한 소리. 착탄당했다.
쾅-! 콰앙! 쾅!!! 퍼엉.
유폭하는 소리에 함교의 장교들 시선이 전부 창밖으로 향했다.
듀이제독은 이빨을 꽉 깨물었다.
“…..젠장. 보급선이.”
보급선이 유폭했다.
남은 석탄 잔량은 대략 12시간 분량. 함교 곳곳에서 한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
“착탄! 적의 보급선에 착탄!!! 성공입니다!!!”
-와아아악!!!!
기함, 후지의 함교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도고 제독과 료 제독은 상대의 보급망을 끊었단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적의 보급선을 없앴다.
회피기동에 그것도 전속력의 기동에 들어가는 석탄의 양은 보통이 아니다. 석탄의 보급을 끊었으니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적함이 멈추리라.
일본해군의 보급이 끊어져 걱정하고 있었는데, 상대의 보급이 먼저 떨어질게 자명해졌다.
료 제독은 손을 내밀었다.
“도고 제독. 수고하셨습니다.”
“료 제독도 고생했군.”
“예, 일본제국 해군의 승리입니다.”
텁.
둘은 악수했다.
이대로 적의 기함 USS 사라토가만 잡을 수 있으면 이번 전쟁. 조기에 종결짓고 미국과 협상에 들어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대로 끝나면 좋으련만.’
벌컥-!
그때, 함교로 달려온 장교가 헐떡이며 소리쳤다.
“견시로부터 보고!!! 10시 방향!!! 대형선박 한 척의 존재를 확인!!!”
장교의 비명에 료 제독이 창문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망원경 없이도 보였다.
딱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크기의 함선이 도쿄만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국적은!!!”
“…..그게.”
장교가 말을 줄였다.
후지급 함교의 모두가 숨을 죽였다.
“영국 국적의 수송선입니다.”
하시마(군함도) 탄광.
석탄을 잔뜩 실은 큐나드의 대형상선.
유니온 잭을 흩날리며 도쿄만으로 진입했다.
쾅-!
도고 제독은 책상을 강하게 내려쳤다.
영국국적의 상선을 나포하거나 쏘면 이 전쟁에 영국까지 말려들게 된다. 영국의 왕립해군까지 상대한다면 해군 최상위국을 적국으로 상정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지는 것이고.
뿌우우-
영국 국적의 선박은 멧돼지같은 기세로 돌진하고 있었다. 나는 반드시 도쿄만으로 진입하겠다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료 제독의 얼굴도 굳어졌다.
“어떻게 할까요?”
함교의 장교들이 모두 도고 제독의 입만을 바라보았다. 누가봐도 명백한 보급선이었고, 저게 통과하면 미 1함대에게 석탄을 보급할 것이 뻔히 보였다.
하지만 저건 영국의 선박이었고. 도고 제독이 할 수 있는 말은 단 한마디 뿐이었다.
주먹이….부르르 떨렸다.
“…..전투를 속행. 영국국적의 선박은 무시한다.”
“하!!!”
텅.텅.텅.
척 경례를 마친 장교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문득 불길한 기분이 엄습했다. 도고 제독은 방금 한마디로 일본제국의 해군의 미래가 판가름 났다는 걸 무의식중에 깨달았다.
저 영국 수송선….
그의 얼굴이 악귀나찰처럼 서서히 찌그러졌다.
…..마케타.(졌다.)
***
“디트로이트 이사님. 하시마섬 근방에 기뢰설치를 완료했다고 합니다. 미국정부와 영국정부에도 왕립해군(Royal Navy)을 통해 도쿄의 전투상황을 전달했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하시마섬.
미쓰비시 탄광의 사장실.
일본결제은행에서 인수합병한 탄광계열 중 미쓰비시 탄광은 최상위 기업에 속한다.
하지만 결국 빚에 허덕이던 걸 출자전환으로 일본결제은행이 인수했다.
‘일본의 탄광기업들은 일본결제은행의 지배하에 있으니, 미쓰비시 탄광 인수로 석탄시장은 내가 틀어쥔거나 다름없고.’
석탄 물량을 빨아들이는 건 손쉬웠다.
나는 그렇게 전 일본열도의 석탄물량을 있는대로 다 빨아들여서 하시마에 쌓아둔 채, 기뢰로 잠가버렸다.
즉, 그들의 석탄 우리의 석탄으로 치환당했다.
턱. 턱.
나는 책상위에 다리를 얹어놓고
뒷목으로 깍지를 쥐었다.
“지금쯤 도착했으려나.”
그리곤 어제 도쿄만에 순찰을 나간 어뢰정으로부터 1함대가 기습당했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석탄보급선을 보냈다.
물론 우리쪽으로. 큐나드해운의 대형선박을 통해서.
아마 지금쯤 도쿄만에 도착했을 것 같다.
“5척이나 보냈는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