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00
100화
피식 웃는 진무의 말에 모두가 눈을 부릅뜨며 쳐다보았다.
“표현만 다르지 돈 뜯는 건 똑같잖아.”
“돈을 뜯다니요!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백여린이 벌떡 일어났고 백표는 무표정했다.
“지나쳐? 뭐가?”
“그건 저들이 자발적으로…….”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마.”
진무가 백여린의 말을 끊었다.
“단지 조금 더 나을 뿐이야. 조금 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뿐이지.”
“…….”
“백가장이 가진 계림의 드넓은 대지. 그게 다 백가장 땅은 아니잖아. 그럼에도 너희는 늘 그래 왔듯이 후원이라며 세금을 받고 있지.”
“하지만 우리는 그 돈으로 주변의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마다 도왔습니다. 기근 때마다 무상으로…….”
“무상? 웃기고 있네.”
“…….”
“그 많은 돈과 곡식은 어디서 났나? 상단도 아닌 무가가? 니들이 농사라도 지어 봤어?”
“…….”
“너희와 패력당의 차이는 받은 것을 돌려주었느냐 아니냐의 차이야. 애초에는 모두가 민초들이 일군 것이지. 원래 그들의 것이었어.”
진무의 말에 백여린이 항변할 말을 찾지 못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들에게는 너희나 패력당이나 똑같아. 그저 무림인이지.”
“…….”
“단지 편견이야. 패력당은 사파니까 그들이 보호비를 받으면 그냥 뜯어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실상은 너희와 똑같아. 단지 너희가 그리 믿지 않는 것뿐.”
백여린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들이 과연 패력당과 다른가라는 진무의 화두가 마음을 찌릿하게 울렸다.
“사파는 빼앗기 위해 싸우고 정파는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것 또한 결국 누군가 만들어 낸 편견에 불과해. 사실상 둘 다 좀 더 많은 이득을 위해 싸우는 거야. 좀 더 많은 영역을 가지면 문파는 더욱 강성해지니까.”
진무의 설득.
그는 사패천주였다.
사파 간에서는 수많은 분쟁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리고 그 분쟁에서 언제나 둘 중 하나의 편만을 들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많은 중재를 했었다. 그것이 분쟁을 해결하는 수순이었다.
그리고 그 중재를 듣지 않는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칼을 들어도 좋아. 스스로의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서로를 공격해도 상관하지 않겠어. 다만.”
진무가 자리에서 일어나 칼을 꺼내 들었다.
그러곤.
쑤욱!
싯푸른 검강이 넘실거리며 피어올랐다.
“나 역시 의견을 좁히지 못했으니까 내 뜻대로 할 수밖에 없어. 그리고 나는 무림인이니까 힘으로 말할 수밖에 없지.”
쿠우우우.
대기가 뒤틀리며 괴성을 질러 대기 시작했다.
진무가 자신의 기운을 끌어 올려 보이는 모든 것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차라리 이게 나을 수도 있어. 다 죽여 버리면 계림에는 정사 아무도 남지 않을 테니까.”
짙은 살기가 모두의 가슴을 짓눌렀다.
결국은 다 똑같다. 무림인이기 때문이다.
그저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다.
만약 녹림이나 수적이었으면 달랐을 것이다. 그들은 빼앗는 것만이 목표인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허울 좋은 정파의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그들 역시 사파와 다를 바가 없다.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이들을 쫓아내려 하는 이유로 그들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받는다는 것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그만큼 이익이 줄기 때문이었다.
“자, 결정해. 모조리 죽든가, 아니면 내 뜻대로 서로 양보를 하든가.”
무지막지한 진무의 기운에 모두가 답답함을 떨치지 못하고 숨을 헐떡거렸다.
“하, 합의……하겠습니다.”
백여린의 한마디.
“좋아.”
진무의 기운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숨도 못 쉴 정도의 기운을 뿜어내더니 거두어들이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마 전부가 아니란 말인가?’
백표가 나른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는 진무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실력으로는 도무지 어디까지가 진무의 끝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 그럼 됐지?”
“……예.”
“예.”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과는 아니었으나 백여린과 노영찬이 동시에 대답했다.
“하지만…… 사과는 받아야겠소.”
대장로 사마소가 노영찬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사과?”
“그렇소. 패력당주는 저희 장주님께 혼첩을 내밀며 희롱했소.”
마치 어른에게 이르는 아이처럼 고자질하는 모습에 노영찬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진무를 쳐다보았다.
진무가 슬쩍 눈을 찡그리며 노영찬을 쳐다보자 그가 사색이 되어 고개를 숙였다.
“사, 사과하겠소. 내 과했습니다. 다시는 그 같은 마음을 품지 않겠소.”
“…….”
하지만 실상 진무의 생각은 달랐다.
쉰 가까이 되어 보이는 놈이 욕심이 많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뭐, 상관없는데?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냐? 나도 말년에 화양이를 첩으로 들였는데.
뭐 사과한다니 된 모양이지만.
“자, 그럼 다 해결되었으면 협정서를 쓰고 그만 돌아가 봐. 나도 나름 고민할 게 많거든.”
“알겠습니다.”
패력당주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찌 보면 그에게는 이득이 된 셈이었다.
만약 진무가 백가장의 편을 들어 싸우고자 했다면 고스란히 영역을 내어 주고 도망쳐야 할지도 몰랐다.
“저, 당주님?”
“응?”
“혹시 그 말씀을 미리 드리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저희와는 관련 없는 놈이니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아!”
들은 적이 있다.
안 그래도 그 때문에 근래 주변 사파에서 서신이 날아오고 있었다.
발견 즉시 죽이면 현상금을 주겠다고 했던가?
분명 그 때문에 각지에서 사파인들이 몰려들면 또다시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랬다간 저 무지막지한 놈에게 또?
노영찬이 수하의 말에 퍼뜩 생각난 듯이 진무를 향해 말했다.
“저, 대인.”
“왜?”
“일간에 저희 쪽으로 협조 서한이 날아온 게 있습니다.”
“……?”
“서남쌍괴라고. 근래 호남 남부와 광서 북부에서 유명해진 놈인데. 약관의 무인과 마흔쯤 된…….”
말을 하던 노영찬의 뒷말이 흐려졌다.
진무와 백표.
약관의 무인과 마흔쯤 되는…….
“아, 나도 그 소문 들었어. 우리가 이쪽으로 오는 길에 그런 개 같은 별명이 붙었다고 하던데. 그게 왜?”
“…….”
노영찬은 심장이 쪼그라들 뻔했다.
정말 개 같은 별명이다.
당장에 돌아가서 서신을 모조리 불태워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왜?”
“아, 아닙니다! 별일…….”
“실없기는. 그만 가.”
“예!”
노영찬은 다시 한번 범굴에 대가리를 들이밀었다가 나온 기분으로 서둘러 패력당으로 돌아갔다.
* * *
“그래. 개방의 누구시라고?”
“삼결제자 이복동입니다.”
“…….”
삼결제자.
무슨 무슨 개도 아니고 이름이 이복동이란다.
개방을 불러오랬더니 고작 삼결 따위가 와?
슬쩍 백표를 째려봤더니 모른 척을 한다. 망할 놈 같으니.
“제일 높으시고?”
“예. 계림분타주를 맡고 있습지요.”
아, 젠장.
광서성이 사파쪽 영역권이라는 것을 깜빡했다.
휴, 정말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방도가 몇 명?”
“정식 제자는 한 스물쯤 됩니다.”
스물.
길거리 비럭질하는 거지들 다 모아도 그 정도는 되겠다.
“혹시 이런 거 본 적 있는지?”
진무가 품에서 개방의 협전을 슬쩍 꺼내 보였다.
유심히 살펴보던 이복동이 진무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적선입니까? 귀해 보이는 분께서 통이 작으시네요. 조금만 더 쓰시지. 딸린 식구들도 많은데.”
“…….”
아니야. 탐내지 마. 너 줄 거 아니야. 침도 흘리지 말고.
젠장, 양소방의 협전도 모르는 삼결제자다. 하긴 양소방 개인의 협전일 테니 삼결 따위는 모를 수도 있겠다.
망할 노인네.
개방 전체에서 쓰이는 협전을 줄 일이지 부분적으로 쓰이는 협전을 주다니. 나중에 바꿔 달라고 해야겠다.
진무는 협전을 품에 넣으며 다시 물었다.
“혹시, 양소방은 아시는지?”
“허헛! 당연하지요! 개방의 영웅이신 무풍개님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건 아는 모양이다. 하긴, 원체 유명한 양반이니.
그래도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망할 개방 놈들. 아주 개판이다. 이래서야 도대체 뭘 맡긴단 말인가.
딱 봐도 광서를 버린 거나 다름없다. 아니 정사가 공존하는 이 중원 땅에서, 어? 적이 있는 곳에 좀 더 많은 인원을 충원해야지.
아무리 지방 한직에 돈 나올 구멍 없는 곳이라지만 분타주가 고작 삼결이 웬 말인가? 그것도 협전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는 거지를…….
“휴우. 혹시 본방으로 가는 전서구는 있소?”
“예. 있습니다.”
“하면 연락을 보내서 양소방 어른께 내가 좀 찾는다고 전해 주시오.”
“예? 무풍개님을?”
“그렇소.”
진무의 대답에 이복동이 물끄러미 바라본다.
“뉘시기에 개방의 영웅을 찾으시는 거요?”
갑자기 말의 어조가 바뀌었다.
대답 여하에 따라서는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듯이 기세를 끌어 올린다.
모양새를 보니 백표에게도 못 미치는 실력인데, 아마 딱밤 한 대면 죽지 않을까?
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무당지검, 진무요.”
“무당…… 예에?!”
이복동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저, 정말 무당지검 진무 도장이십니까?”
이 정도로 유명한가?
더욱이 양소방의 이름이 나왔을 때보다 훨씬 더 놀란 표정이었다.
심지어 백표조차 무당지검이라는 뜻을 알고 있는지 놀란 표정으로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아니 근데 왜 양소방의 협전은 모르냐고?
그래도 자신의 이름을 아는 듯하니 왠지 어깨가 으쓱해진다.
진무는 슬쩍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는 무당 도사의 태극패를 자랑스럽게 꺼내 보여 주었다.
“무당, 진무…….”
태극패의 뒤편에 쓰인 이름을 확인한 이복동이 천신이라도 본 표정이 되었다.
설마 싶기도 했지만, 정파로 이름난 백가장에서 손님으로 있는 자이니만큼 거짓일 리가 없었다.
이복동은 곧바로 넙죽 엎드렸다.
“개방의 삼결제자 이복동이 당대의 무당지검을 뵙습니다.”
“아, 인사는 됐고. 서둘러 전해 줄 수 있겠소?”
“당연합니다. 무당지검을 뵙거든 무조건 협조하라는 위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한데 연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그건 말하기 곤란한데?”
“…….”
“전해 주기만 하면 알 거요.”
“음, 알겠습니다. 다른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음, 내 갈 길이 급하니 인근에 개방의 상급 제자들이 있으면 백가장으로 불러 주시오. 양소방 어른이 오실 때까지만 있어 주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인근 호북에 연락을 보내면 하루 이틀 내로 가능할 것입니다. 속히 진행하겠습니다.”
“고맙소. 내 이복동이라는 이름을 기억했다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양소방 어른께 전해 주겠소.”
“저, 정말입니까!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이복동이 감격한 표정으로 열심히 절을 올리고 날 듯이 뛰어나갔다.
어떻게든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꼴이 가상했다.
물론 진무가 아니라 양소방의 눈이겠지만.
이복동이 떠난 뒤, 백표가 놀란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물어 왔다.
“정말로 무당지검이었습니까?”
“왜? 거짓말 같냐?”
“아니, 그게 아니라…….”
너무 어울리지 않아서.
설마하니 무당지검의 칭호를 가진 자가 술 먹고, 고기 먹고, 욕설에, 반말까지 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무당지검을 모르는 이가 중원에 누가 있단 말인가?
그 이름을 동경하는 이들이 모르긴 몰라도 수백, 아니 수천은 될 것이다.
“은공께선 정말로 굉장한 분이셨군요.”
“낯간지럽다.”
그래도 존경 어린 눈빛을 보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이런 줄 알았으면 진작에 말해 줄걸.
“구해 주신 은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건 천우명 그 멍청한 놈 때문이었고.
“다시 한번 약속드립니다. 백가장에 베푸신 은혜를 생각해 반드시 자진을…….”
“뭐 하러?”
“예?”
“살아서 더 좋은 일 많이 해라.”
“…….”
“죽으면 죄가 사라지냐? 그냥 면피하는 거야. 그냥 살아. 살아서 착한 일 많이 하는 게 죽은 이들에게 죄를 갚은 것이라 평생 생각하며 살아.”
“…….”
백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미 은혜를 입었다. 자신을 구해 주고, 가문을 구해 주었다.
그리곤 이제 살라 한다. 자신의 죄를 알고서도.
아, 이 은혜를 어찌 다 갚는단 말인가? 이분은 정말로 현세에 다시없을 도인이시구나.
진무는 한동안 말이 없는 백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한참을 고개를 숙이고 있더니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 그리곤 이내 그의 발밑에 물방울이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젠장! 또 우냐? 또 울어?
한동안 잠잠하더니…….
참!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소검을 나에게 줬다고 하는 건 비밀이야, 알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