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01
101화
푸드덕!
전서구다.
무림에 별난 일들이 많다곤 하지만 정말 신기한 일이다.
아니 아무리 훈련을 시켰다지만 새 새끼가 무슨 냄새를 맡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위치를 잘도 알고 찾아오는 걸까.
“음…….”
전서구의 발에 달린 원통에서 쪽지 하나를 빼 든 소요검객 담평익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호남성 형산(衡山) 인근.
용봉관 을무반 칠 조는 운남성을 오가는 상단 중 하나를 조사하는 임무를 받았다.
신분을 감추고 철저히 조사했으나 우려할 만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복귀해야 할 시점. 그 와중에 날아온 전서구였다.
“이보게, 조장!”
“예!”
담평익의 부름에 흑의를 입고 주위를 경계하던 청상이 훌쩍 뛰어왔다.
믿음직스럽다.
지난 보름간 그가 보여 준 모습은 담평익의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했다.
무공, 조직 활용, 판단력. 모조리 합격점 이상이다.
조원들 중 단연 발군이었다.
누가 담평익에게 혹 ‘천재’라는 사람을 꼽으라 한다면 단연코 청상의 이름을 댈 것이다.
이견 없이 뛰어난 청상의 모습은 누구를 조장으로 앉힐까 했던 고민을 일거에 씻어 버렸다.
물론 조원들 역시 만장일치로 그를 조장으로 인정했다.
또한 보결로 들어온 청우.
그들은 이제 을무반 칠 조에 없어서는 안 되는 무인들이었다.
모두가 사숙이라는 무당지검에게 배웠다고 하는데 진심으로 궁금했다.
약관에 무당지검이 된 그는 청상보다 더욱 뛰어나다고 알려진 터였다.
도대체 어떤 인물일까?
진무에 대한 궁금증이 드는 가운데 담평익이 전서를 내밀었다.
“무풍개 어른께서 보낸 전서구일세.”
“어르신이요?”
“음, 지금 즉시 광서성 계림 백가장으로 이동하라는 명이 떨어졌네.”
“광서성…….”
백가장, 들어 본 적 없는 곳이다.
“이미 호남성에 퍼져 있던 개방의 육결제자 셋이 방도들을 이끌고 그곳으로 이동했다는군. 무풍개 어르신께서도 그쪽으로 온다고 하셨네.”
담평익의 말에 청상이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개방의 육결이면 장로급이란 뜻이다. 그들이 백가장으로 이동했다면?
“사소한 일은 아니란 뜻이군요.”
“그렇네. 이번 일은 자네 사숙인 진무 도장이 특별히 무풍개 어른께 요청한 모양이야.”
“예? 사숙께서 그곳에 계신단 말씀입니까?”
“음. 전서에 그리 적혀 있었네.”
“…….”
담평익의 말에 전서를 다시 펼쳐 본 청상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한 달이 넘게 소식이 없었던 사숙이 아니던가?
“정말 사숙께서…… 하핫.”
“……?”
이렇게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이던가? 그저 소식만 들었을 뿐인데.
담평익은 진무에 대해 더욱 궁금함이 들었다.
“어서 출발하세.”
“알겠습니다. 속히 이동 준비를 하겠습니다.”
청상이 고개를 끄덕이고 조원들을 불러 모았다. 그의 지시에 따라 잠시 동안 머물렀던 곳의 흔적이 깔끔하게 지워졌다.
‘한번 만나 보고 싶군. 진무 도장이라는 사람.’
* * *
사천성 악산(岳山) 인근.
“엣취!”
완탕에 후추를 치던 진무가 갑자기 재채기를 했다.
후추를 너무 뿌렸나?
손가락으로 코를 비빈 진무가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완탕을 쳐다보았다.
맑은 국물이 먹음직스럽긴 했지만.
“백표를 데려올 걸 그랬네. 그 녀석 고기 맛이 훨씬 더 좋은데.”
어떤 산해진미보다 뛰어났던 고기 맛이 그리워진 진무가 입맛을 다셨다.
계림을 떠난 진무는 곧장 사천성으로 향했다.
목적지는 청성산이었다.
그곳에 나누어져 있다는 양의심공 진본의 일부를 찾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 경로에 있는 사천의 당가에 잠시 들러 볼 참이었다.
백가장에서 얻은 소검 무혈.
무언가 비밀이 담겨 있는 것 같기는 한데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양소방을 기다렸다가 물어볼까도 했지만 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그가 쫓고 있는 놈들이 노린 물건이니 필시 달라고 하겠지. 안 준다고 하면 강탈해 갈지도 모른다.
백가장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받은 소정의 대가다. 뭐가 감춰져 있을지도 모르는데 날름 가져다 바칠 수는 없다.
그나저나 통상 이런 경우 기를 주입하면 막 환영이 펼쳐진다든지 작은 기관이 작동해 열린다든지 한다고 들었는데.
모두가 허사였다.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해 봤지만 알 길이 없었다. 군협지를 쓰는 자들이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임이 틀림없었다.
이런 경우 역시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최고였고, 기관진식으로 중원 제일을 꼽자면 응당 제갈이었다.
하지만 이런 소검류의 아기자기한 것에 무언가를 담는 것은 누가 뭐래도 당씨 놈들이 최고지.
걔들은 손가락만 한 원통에 수천 발의 비침을 담기도 하니까.
분명 그들이라면 무언가 찾아낼지도 몰랐다.
듣기로는 당가에 이런 물건만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곳도 있다고 하지 않던가?
무당지검이라 밝히고 도움을 청하면 호기심에 눈이 뒤집혀서라도 도와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어차피 가는 길에 들르는 건데 뭘. 일단 밥부터 먹고.”
막 한술 뜨려는데.
“너무 허름하지 않나요? 실내 분위기도 영 아닌 거 같은데.”
볼을 잔뜩 부풀린 여인 하나와 귀티가 잔뜩 흐르는 복장의 사내가 들어왔다.
“하핫, 양 소저. 원래 이런 곳이 요리 솜씨가 좋은 법입니다.”
“그래요? 별론 거 같은데.”
“하하하! 제 말을 믿어 보십시오. 아마 사천에서 이만한 객점은 없을 겁니다.”
“좋아요. 문 공자님 얼굴에 홀린 셈 치고 한번 믿어 보겠어요.”
“이런, 양 소저께서는 어찌 그리 얼굴만큼이나 말씀도 아름답게 하시는지! 어서 들어갑시다.”
진무가 완자탕을 뜨다 말고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니들 정말…… 그 정도 아니야.
진무가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예. 감사해요.”
예의 바르게 의자를 빼 주자 양 소저라는 여인이 갖은 예쁜 척을 하며 자리로 다가왔다. 하필이면 진무의 바로 옆자리.
설상가상으로 지나가다가 탁자에 살짝 부딪히자.
“어머, 실례했어요.”
“…….”
고개를 돌려 생긋이 웃는 모습에 진무가 얼굴을 굳혔다.
실례인 줄 알면 말 걸지 마라.
“양 소저께선 어찌 그리도 마음 씀씀이가 예쁘신지.”
마음만 예쁘다.
“근데, 저분은 좀 무뚝뚝해 보이세요. 제가 말을 걸었더니 얼굴이 굳는 거 보셨어요?”
“그건…… 양 소저께서 너무 이뻐서 놀란 걸 겝니다.”
놀고들 있다.
거울 봐. 거울!
안 들리게 한답시고 소곤거리면 뭘 하나. 귀에 때려 박히는 수준인데.
둘의 대화를 듣고 있으니 입맛이 사라져 버렸다.
“참, 이번에 계약이 잘된 것 같아요.”
“그러게 말입니다. 덕분에 이렇게 양 소저께 식사를 대접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지 않습니까?”
“아이, 참.”
몸을 배배 꼬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진무가 손에 든 숟가락을 탁 놓쳐 버렸다.
아, 정말 암수가 어찌 저리도 볼썽사납게 정다운가.
그 와중에 둘 다 마음이 있어 보인다. 사내놈은 여인을 꼬이는 게 확실하고, 여인 또한 싫지 않은 눈치다.
꼽등이처럼 생긴 외모는 그렇다 치자.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건 잘못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남녀상열지사야 둘만의 문제라지만, 정도를 지나친 애정 행각은 범죄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거냐? 보는 사람 닭살 오르는 건 생각 안 하냐고?
웬만하면 그냥 둘이 있을 때만 했으면 좋겠다. 물레방앗간이나 보리밭 같은, 뭐 그런 고리타분하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그나저나 옷 태가 남다르십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새로 맞춘 비단옷을 입을 걸 그랬어요.”
“아이, 과찬이세요. 지금도 충분히 좋으신데요?”
“그렇습니까?”
“그럼요. 문 공자 얼굴 때문에 옷 태가 보이지 않는…… 아이참, 내가 무슨 소릴.”
양 소저라는 여인이 발갛게 붉힌 볼을 양손으로 감싸 쥐자 문 공자라는 놈이 흐뭇하게 쳐다본다.
진무가 슬며시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아, 이것들 둘 다 죽일까?
칼춤 한번 춰?
“그나저나 문 공자께서 근래 무공이 크게 성장하셨다면서요?”
진무가 몇 번이나 검을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하는 중인 것은 꿈에도 모르는 양 소저의 말에 문 공자가 부끄러워하며 손을 젓는다.
“그저 작은 성취입니다. 그나마도 사부님이 아니었다면 언감생심 꿈도 못 꿨을 일이지요.”
“저런, 겸손도 하셔라. 벌써 사천에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영안표국에 잠룡이 탄생했다구요.”
“잠룡이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그저…….”
문 공자가 갑자기 느끼한 표정으로 양 소저를 응시했다.
“양 소저를 지킬 힘만 있으면 됩니다.”
“어멋!”
양 소저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염병, 이젠 포기다. 나가는 게 낫겠어.
망할 꼽등이 연인을 보고 있노라면 주화입마가 올 것만 같았다.
진무가 이미 식어 버린 완자탕에는 숟가락 한번 대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아니, 이게 누구야? 문태석이 아니야?”
“…….”
또 한 놈이 무리를 잔뜩 이끌고 무척이나 식상한 대사를 내뱉으며 등장했다.
아니, 너무 구태의연한 상황 아니냐?
객점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을 시기하는 무리의 등장.
그리고 여인을 농락하는 나쁜 무리를 혼내 주며 사랑을 다시 한번 얻어 내는…….
근데 통상 그런 주인공들은 대부분 선남선녀 아니냐?
꼽등이가 아니라?
아니, 오히려 방해꾼으로 등장해 눈을 부라리는 악당 새끼 상판이 훨씬 잘났다.
잠깐……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잘생겼잖아?
악당 역할이 확실한 녀석이 생겨도 너무 생겼다.
미끈한 얼굴에 날카롭게 뻗은 검미. 호목 같은 눈매까지. 심지어 눈을 부라리는 모습까지 멋들어지는 게.
“당신은 구룡파의 막청?”
문 공자, 문태석이 얼굴을 굳히며 일어났다.
얼씨구, 와중에 사파야?
“양 소저, 나의 청은 거절하더니 겨우 이놈을 만나려 그랬소?”
응? 뭐? 설마 쟤한테 구애를 했었어?
왜? 니가 뭐가 모자라서?
객점을 떠나려 했던 진무는 예상치 못한 전개에 눈을 끔벅이며 도로 자리에 앉았다.
재미지다. 이건 뭐 한편의 경극이 따로 없었다.
“막 공자께서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눈을 표독스럽게 뜨고 노려보는 양 소저의 모습에 막청이 눈을 찌푸렸다.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그대에게 줄 선물을 고르려 그 먼 서장까지 다녀오고, 그대를 만나기 위해 당가의 영역인 이곳까지 들어오는 노력을 수도 없이 기울였어. 넌 내 것이라야 해. 문태석이 아니라!”
“미안해요.”
양 소저가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돌렸다.
“미안하다고? 설마 둘…… 벌써?”
그녀의 거절에 막청이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으로 털썩 주저앉는다.
야! 뭔 소리야, 니가 아까워.
니가 뭐가 떨어지냐. 얼굴부터 어? 반안이나 송옥 뺨치도록 잘생겼잖아! 자부심을 가져!
어느새 관객이 된 진무가 막청을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너무 뻔한 이야기인데 나이가 드니 이런 게 자꾸 끌린다.
아주 그냥 감정이입이 절로 되는 게…….
그런데 갑자기 막청이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고 일어났다.
“난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 웅천표국과 생사의 전쟁을 치르더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어.”
막청이 살기를 피워 올리며 노려보자 그의 수하들이 문 공자와 양 소저의 주위를 기세등등하게 에워쌌다.
아니 또 뭘 저렇게까지 할까들.
상상을 초월하는 전개를 옆에서 보고 있자니 흥미진진하다.
거참, 옆에 육포나 당과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막청, 후회할 짓 하지 마라. 피라도 볼 참이냐.”
문태석이 여인을 뒤로 감추어 막고 물러나며 검을 뽑았다.
“후회? 흥, 모두가 네놈 때문이다. 네놈 때문에 일어난 일이야.”
막청과 그의 수하들이 진무를 지나쳐 문 공자를 포위했다.
상황이 살벌하게 돌아가자 혹시나 피해를 입을까 불안해진 객점 안의 손님들이 모두 도망치듯 밖으로 빠져나갔다.
남은 것은 막청 패거리, 문태석과 양 소저. 그리고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상황을 주시하는 진무뿐이었다.
“양 소저. 걱정 마시오. 내 반드시 소저만은 지키리다.”
“네……!”
대충 상황이 예측은 되는데 막청의 수하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얘들아, 쳐라!”
막청의 외침과 함께 병장기를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그래. 이 정도면 오래 봤다.
제법 재미있기도 했고.
결과? 뻔하다. 쪽수부터 후달리는데, 뭘.
갑자기 문태석이 감춰 뒀던 엄청난 무공을 선보이며 이기는 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거기다 대충 느끼기에도 문태석은 약했다. 이런 경우에는 무조건 나쁜 역할을 맡은 막청이 이긴다.
진무가 아쉬운 마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술병을 들고 일어나려는데.
타악.
어?
누군가 진무의 손이 닿기도 전에 술병을 채어 들고 막청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녹빛 당의?
뒤로 묶어 길게 늘어뜨린 머리칼 사이에 주렴 같은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단 여인이다.
그녀는 대뜸 술병을 거꾸로 들고 흔들어 술을 비워 내었다.
걸음걸이가 제법이다.
고양이처럼 사뿐사뿐 날래게 걷는 것이 저쪽에서는 다가가는지도 모르리라. 어, 그런데 설마.
빠가각!
경쾌한 파열음과 함께 산산이 부서진 술병 조각이 사방에 흩날리고.
“이런 미친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칼질이야!”
막청의 후두부를 사정없이 후려쳐 버린 여인이 거센 욕설을 내뱉는다.
뭐야, 이건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