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이게 무슨 소리냐?”
막 잠자리에 들려 했던 당가주 암황 당위가 옅게 전해진 진동에 밖을 향해 물었다.
“확인하겠습니다.”
그의 침소 밖을 지키던 무인이 달려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이런 폭발은 당가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일이었다.
관에서는 금하고 있는 일이었으나 당가에서는 암기 개발을 위해서 폭약을 사용하는 일이 잦았다.
지난번엔 신형 천왕침통(天王針筒)을 개량한다고 폭약을 과하게 쓴 때문에 전각 하나가 통째로 날아간 적도 있었다.
“흠, 이놈들이. 밤에는 실험을 하지 말라 했더니.”
당위는 눈살을 찌푸렸다.
폭발은 둘째 치고 화재가 일어나면 밤에는 처리하기가 곤란했기에 내린 명령이었다.
그런데 이 열정 넘치는 놈들이 또 늦게까지 실험을 한 모양이라 생각했다.
“쯧쯧, 다시 주의를 주든가 해야지, 원.”
혀를 차며 한숨을 쉰 당위가 다시 잠자리에 들려는데 소란을 알아보러 갔던 무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보고를 했다.
“대가주님!”
“왜?”
“외성 정문에서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그래?”
별일이다.
어떤 미친놈들이 당가의 외성문에서 소란을 피운단 말인가?
“몇 놈이더냐?”
“한 놈입니다.”
“뭣이? 설마 한 놈을 잡기 위해 폭약을 썼단 말이냐?”
“그것이 아니라…….”
뒷말을 흐리는 수하로 인해 당위가 짜증을 내었다.
“빨리 말하지 못할까!”
“그게, 아가씨께서.”
“뭣이!”
지금 당가에서 아가씨라 불리는 사람은 하나뿐이다.
자신의 하나뿐인 딸 당세령.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애지중지 키운 덕분에 사고란 사고는 다 몰고 다니는.
당위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나서 잠옷 바람으로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년이 또 뭔 미친 짓거리를 했단 말이냐!”
“그게 아니라…….”
“이런 망할 놈이! 서둘러 대답…… 아니다. 내 직접 가야겠다!”
파아앙!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당위가 지면을 밟음과 동시에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아, 한바탕 또 난리가 나겠네.”
눈 깜짝할 새에 담벼락을 넘는 당위의 모습에 무인은 다급히 뛰어가 내성의 경계 종을 울렸다.
따아앙! 따아아앙!
대가주가 몸소 나섰는데 장로들이 잠이나 처자고 있었다가는 분명 불호령을 들을 것이 분명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 * *
“이게 지금 무슨?”
날 듯이 뛰어올라 성벽 위에 도착한 당위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아래를 바라보았다.
사고뭉치 딸의 소식에 득달같이 달려왔더니만 대관절 이게 다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정문 앞이 난장판이 된 것도 모자라 부상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더구나 당세령의 모습이 가관이었다.
바닥을 얼마나 뒹굴었는지 옷은 흙투성이였고, 얼굴은 뻘겋다 못해 시퍼렇게 부어올라 있었다.
“대가주님을 뵙습니다.”
성벽 위의 무인이 갑자기 나타난 당위의 모습에 기겁하며 엎드렸다.
당위뿐만이 아니었다.
뒤를 이어 갑작스러운 종소리에 침소에 들었던 당가의 장로들도 떼를 지어 나타났다.
“허, 이게 지금.”
당가의 장로들 또한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저거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기다려 보게.”
대장로 당가정이 나서려는데 당위가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있는 그대로 말해 보거라. 쟤가 왜 저기서 처음 보는 놈에게 맞고 있는지.”
당위의 질문에 엎드린 무인이 급히 아뢰었다.
“그게 실은 본가를 찾아온 자에게 아가씨께서 먼저 시비를…….”
“먼저 시비를 걸었어? 하아, 저년이 정말.”
당위가 얼굴을 찌푸리자 무인이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상세하게 말했다.
요약하자면 당세령이 방문객에게 난데없이 시비를 걸었고, 그가 진각으로 녹둔대를 무너뜨렸으며, 와중에 당세령이 그에게 비무를 신청해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내용이었다.
“허!”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느낀 진동이 폭발음이 아니라 진각에 의한 것이란 말인가?
아니 외성 정문에서 진각을 밟아 내성에서 느껴질 정도가 되려면 도대체 어느 정도의 위력이어야 한단 말인가?
더욱이 단 한 명이다.
아무리 외성이라고 하나 당가의 정문에서 홀로 이런 깽판을 친 자가 있었던가?
“굉장한 아이로군. 대체 정체가 뭐길래?”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몰라?”
“예. 앞선 근무자가 방명록에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당위의 얼굴에 찌푸려졌다.
안 그래도 근래 묘한 자들이 사천에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은 뒤였다.
벌써 두 명이 사망했기에 장로들에게 명을 내려 사천을 뒤지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와중에 당가를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있는 자라.
더욱이 자신의 딸과 비슷한 또래인 것 같은데 무공의 격차는 언뜻 보기에도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초식의 정교함이 상당히 떨어지기는 해도 딸의 내력은 이미 탄기의 수준에 올라 있었는데도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참…… 많이도 맞는군.”
멀리서 보고 있었지만, 죽도록 맞고 있는 딸의 모습이 선명했다.
지금도 주먹과 발에 정신없이 차이고 구르는 중이지 않은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자식이 웬 알지도 못하는 놈에게 얻어맞고 있는 광경은 그리 보기 좋은 광경이 아니었다.
“어찌할까요? 멈출까요?”
장로 당가정의 물음에 당위가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고심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음. 일단…… 놔둬 보게.”
“예?”
“그동안 오냐오냐 키워서 성격이 워낙 제멋대로지 않은가.”
“그건…….”
그렇지만, 이라고 대답하려던 당가정이 뒷말을 삼켰다.
“목숨이 위태로운 것도 아니고 상대도 적당히 사정을 봐주고 있는 듯하니…… 한번 흠씬 두들겨 맞을 때도 있어야지.”
“진심이십니까?”
“뭐…… 음.”
잠시 두고 볼 생각이었으나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저런 피도 눈물도 없는 놈. 사내라는 놈이 어찌 저리도 인정이 없어. 저 예쁜 것이 때릴 곳이 어디 있다고.’
당세령이 얻어맞아 땅바닥을 뒹굴 때마다 그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 * *
빠악!
휘어져 들어온 정강이에 옆구리를 맞은 당세령의 몸이 살짝 떠올랐다.
팽이처럼 회전한 팔꿈치가 방비할 틈도 없이 관자놀이를 노려 왔다.
쩍!
퉁! 터덩!
바닥에 떨어져 튕기는 그녀의 모습에 둥글게 진을 친 당가의 무인들이 움찔거리며 달려들려 했다.
“멈……춰…….”
간신히 쥐어짠 듯한 목소리.
바닥에 엎어졌던 당세령이 힘겹게 손을 들어 무인들을 저지했다.
하지만 무인들은 그녀의 말을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당가주의 고명딸인 그녀를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쾅! 퍼억! 퍼벅!
진무를 향해 달려든 무인들이 다시금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하악, 하악…….”
당세령이 숨을 몰아 내쉬었다. 잔뜩 거칠어진 숨만큼이나 극도로 끓어 오르는 호승심에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당가의 딸로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기분이었다.
대련을 할 때면 혹여나 자신에게 자그마한 생채기라도 생길까 조심하는 통에 오라비들도, 장로들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들과의 대련은 심심하기만 했다.
언제나 자신이 이겼으니까.
하지만 눈앞의 상대는 달랐다.
“캬악, 퉤!”
입 안에 가득 고인 핏물을 거칠게 뱉어 낸 당세령은 욱신거리는 충격에 얼굴을 찡그렸다.
이 자식은 여자라고 자신을 봐줄 생각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았다.
가슴께까지 파고든 자신의 얼굴을 거침없이 주먹으로 후려치는 것도 그렇고, 드러누운 자신의 복부를 역시나 사정없이 발로 걷어차는 것도 그랬다.
그런 와중에 당세령은 진무의 옷자락 하나 건드려 보지 못했다.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벌떼처럼 덤벼들었지만, 진무에게는 조금도 위협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런 쌍! 모두 물러나지 못해!”
당세령이 온 힘을 다해 고함을 지르자 진무를 공격하던 당가의 무인들이 움찔하며 동작을 멈췄다.
“아가씨! 위험합니다.”
“닥쳐! 내 싸움이야!”
당세령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당가의 무인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잠시의 휴식으로 호흡이 돌아온 당세령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진무를 바라봤다.
적이든 뭐든 상관없었다.
아니, 적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이라면 지금처럼 당당히 정문으로 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손속에 사정을 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쓰러진 자들 중에 부상을 입은 자들은 있어도 죽은 자들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둘러싼 당가의 무인들이 백을 넘어감에도 당당하고 느긋하게 깔아 보는 눈빛.
발아래 수십이나 되는 당가 무인들이 쓰러져 있음에도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있었다.
‘정말로 마음에 들어!’
당세령은 그런 진무의 모습에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너 진짜 사내구나?”
“…….”
그럼 여자겠냐?
진무가 대번에 눈을 찌푸렸다.
뭐 저렇게 악착같은 여자가 다 있단 말인가?
어째서 별호에 독 자가 붙었는지 잘 알겠다.
절대 살살 패지 않았다. 딱 죽지 않을 정도로 팼다.
그만큼 맞았으면 쓰러질 만도 한데 지가 무슨 칠전팔기(七顚八起) 역전의 용사도 아니고 끈질기게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와중에 이젠 웃기까지 해?
정말이지 맷집과 회복력만큼은 끝내주는 여인이었다.
“자! 계속해!”
뭐가 저리 기분 좋은 얼굴인지 반말을 찍찍 내뱉으면서 시퍼런 독기를 피워 낸다. 으, 질려.
“계속하면 너 죽는다.”
진한 위협이 담긴 진무의 말에도 당세령은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짙어지고 있다.
“상관없어.”
“상관이 없다고?”
“그래. 지금 엄청 신나거든.”
“신이 나?”
설마 뭐 고통을 즐기고 이런 성격인가?
“응!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어. 다들 피하기만 해서.”
마치 한껏 들뜬 아이처럼 웃는 당세령의 표정에 진무가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의 싸움은 딱히 자신에게 유리한 싸움이 아니었다. 이겨 봐야 본전은 고사하고 손해가 더 큰 싸움이니 피하는 게 상책이다.
더욱이 사패천주도 아니고 진무다. 괜히 눈앞의 여인을 죽이기라도 했다가는 무당과 당가의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
“후우. 그만하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내젓는 진무의 말에 당세령의 눈이 세모꼴로 변했다.
“뭐? 왜!”
“왜는. 괜히 너 때문에 당가랑 척이라도 지면 나만 귀찮아.”
“이런 미친놈이. 그러면서 이렇게 팼냐?”
아니, 먼저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 덤벼 놓고는 누가 누구더러 미쳤대?
“안 돼! 절대로 안 돼! 승패도 나지 않았는데 누구 맘대로 끝내! 나를 죽이기 전에는 안 끝내!”
물러설 생각이 없는 당세령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만나도 뭐 이딴 걸 만나서는.
진무의 눈에 비친 당세령은 집요하고 끈질겼다. 승부가 나지 않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은 뻔한 일.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주먹을 움켜잡았다.
“좋아. 그럼 딱 한 방만 막아라. 대신에 피하거나 버티면 니가 이긴 것으로 할게.”
“한 방?”
당세령이 얼굴을 찡그렸다가 이내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의 격차.
버티고 버텼지만, 실력의 차이가 극명하다는 것은 진작에 깨닫고도 남았다. 한 방, 한 방 맞을 때마다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것을 겨우 참아 내지 않았던가.
그리고 지금 그가 말하는 한 방.
지금까지의 모습을 봤을 때 절대로 봐주거나 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좋아! 딴말하기 없기야! 대신 내가 이기면 한동안 우리 집에서 식객으로 머물러야 해. 알겠지?”
“……뭐?”
“약속해!”
진짜 뭐 이런 생 또라이 같은 년이 다 있어? 실력도 안 되는 게 뭐? 이기겠다고?
진무는 어이가 없는 것도 모자라 뒤로 넘어갈 지경이었다.
하지만.
“좋아. 대신 너도 딴말하지 마. 지면 당가에서도 더 이상 이 일로 나를 귀찮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거야.”
“좋아! 약속!”
당세령이 제 가슴을 탕탕 치며 호언장담하고 자세를 잡았다.
그렇게 맞았는데도 참 활기찬 녀석이다.
하아, 그래, 이걸로 됐다.
애초에 봐줄 생각 따위는 없었다. 딱 정신을 잃을 정도로 팼다. 여태 버틴 것도 당세령의 독기가 하도 강해서였다.
이번 한 방으로 끝낸다.
그녀는 이미 탄기에 올랐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다. 또래 중에서는 진무를 제외하고는 최고 수준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 봐야 탄기 언저리.
진무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력이다. 정신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절대로 버틸 수 없게끔. 원래보다 아주 조금만 더 힘을 더해서.
뭐, 죽거나 병신만 만들지 않으면 되는 거 아냐.
꾸우우.
진무가 앞발을 슬쩍 내밀고 몸의 중심을 뒷발에 실었다.
그리고 오른손을 허리께로 잡아당겨 가볍게 움켜쥐었다.
우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