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당가를 떠난 진무는 곧장 서북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목표인 청성산까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래저래 여유를 부린 탓에 반나절이 훌쩍 지난 저녁나절에야 겨우 청성산 기슭의 한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단 좀 씻을까?”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굳이 뭐하러 서두른단 말인가? 청성산이 코앞인데.
간만에 뜨끈한 물에 몸을 좀 씻고 나서 느긋하게 식사를 하고 쉴 생각이었다.
청성산에 오르는 것은 내일 아침.
어쨌든 같은 도문이 아니던가?
무당의 제자가 되어 정갈한 모습을 보여야지, 지저분하게 찾아갈 수는 없었다.
객점을 잡은 진무는 주인에게 넉넉히 비용을 치르고 방으로 갔다.
잠시 쉬다가 물이 준비되었다는 말에 몸을 푹 담그고 묵은 때를 불리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을까? 뜨거웠던 물이 식을 때쯤 허기를 느끼고 눈을 뜬 진무는 무당파 소속임을 알리는 도포로 갈아입고 식사를 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들어올 때는 그래도 밝았는데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찾아와 있었다.
오늘은 고기를 마음껏 먹어야겠다.
그래도 첫 만남인데 청성에서 술과 고기를 먹을 수야 없지 않겠는가?
양의심공 후반부를 찾을 때까지는 철저하게 무당의 번듯한 도사 흉내를 내 볼 생각이었다.
“주인……장?”
음식을 시키려던 진무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사람들이 많지 않은 식당이다.
숙식을 제공하는 객점에 딸린 곳이라 고작 여덟 개의 탁자가 있는 일 층짜리 공간이었다.
그런데 그 여덟 개 중에.
“니, 니가 어떻게 여기에?”
진무는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눈앞의 인물을 향해 삿대질했다.
“따라왔지.”
소면 그릇을 앞에 두고 자신을 향해 방긋 웃으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여인.
당세령이었다.
“어떻게?”
“걸어서.”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그럼 뭘 묻는데? 혹시 이거?”
진무가 눈을 찌푸리는데 당세령이 품에서 작은 자기 병 하나를 꺼냈다.
독?
“당가야, 우리 집.”
“…….”
“만리추종향(萬里追從香).”
“…….”
“해장국에 털어 넣었어.”
“…….”
“당가에서 가장 뛰어난 물건 중 하나. 뱃속에 들어갔으니까 씻어도 안 사라져. 원액이라서 약효가 십 년은 갈걸?”
당세령이 웃는다.
진무는 그녀의 미소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이런 미친년이?
설마하니 해장국에 만리추종향을 넣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이거.”
또 하나의 병.
특이한 갈색 자기 병이었다.
“고독의 일종이야.”
“고, 고독(蠱毒)이라고?”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게 틀림없다.
고독이라는 것은 일반 액체나 분말, 기체로 이루어진 독과는 달랐다.
쉽게 말하면 지극히 잔인한 방법으로 길러진 기생충 같은 것인데.
상대에 섭취하게 하여 정신을 통제하거나 신체에 직접적인 고통을 주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으로, 독 중에서도 가장 악랄하기로 이름난 독이었다.
때로는 죽음에 이르게까지 하는데…… 그걸 먹였다고?
“뭔 생각을 하는 거야? 니가 아니라 내가 먹었어.”
“……?”
저건 또 뭔 소릴까?
자신이 먹다니? 설마 자살이라도 하려고?
“이건 당가의 비전인 추향고(追香蠱)라는 건데. 만리추종향을 쫓는 역할을 해. 일반적인 고독이랑은 다르게 인체에는 무해하지.”
“…….”
“그리고 내가 가진 재능에 대해서 잘 모르지? 이상하게 난 태어날 때부터 후각이 발달했다고 하더라고. 그 때문에 몸이 약했어. 냄새가 너무 강해서 음식도 제대로 못 먹었거든.”
아, 그래서 약초만 처먹었냐? 약초 냄새가 더 독한 거 아니었어?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이게 괜히 만리추종향이란 이름이 붙은 게 아니거든. 만 리까진 아니더라도 꽤 먼 거리에서도 냄새가 나. 누차 말하지만 난 후각이 아주 뛰어나고. 거기다 추향고까지 먹었으니 넌 절대로 도망 못 간다.”
이런 거머리 같은 년!
만리추종향도 모자라 추향고라는 것까지 쓸 줄이야.
진무가 순식간에 힘이 쭉 빠진 얼굴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니, 진짜 뭐 이런 년이 다 있단 말인가?
지난 팔십 년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유형이다.
후각이 날 때부터 발달했다고?
개냐? 개야?
진무가 힘없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이건 뭐 더 이상 할 말도 없었다.
정말 죽여서 아무도 모르게 파묻어 버릴까?
심각하게 고민되던 참이었다.
“야, 배고프지? 이리 와 앉아. 고기도 좀 시키고, 술도 한잔하고.”
“…….”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다.
이렇게까지 거머리 같을 줄이야.
* * *
사천성 성도 북서쪽, 관현(灌縣) 서남쪽에는 이름난 명산이 있었다.
사계절이 짙푸른 수목으로 뒤덮인 수많은 봉우리가 마치 성곽과도 같다 하여 청성(靑城)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더욱 유명해진 것은 그곳에 자리 잡은 구파의 거두이자 오대도문의 하나인 청성파 때문이었다.
속세에서는 법술로 사람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하고, 무림에서는 뛰어난 검공으로 더욱 유명한 곳.
구파의 일맥이며 아래로 수많은 제자와 속가를 거느린 뛰어난 도문이자 무가.
그것이 당금 청성을 수식하는 말들이었다.
도가의 하루가 그러하듯 청성파의 아침은 언제나 한결같다.
새벽 조례가 끝나면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 하루를 보내는 것.
청성이 다른 도문과 다른 점이라면 세속을 멀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교류할 뿐더러 속가제자들이 기거할 도관까지 마련해 두고 있었기에, 속인들은 물론 도량에 제를 드리러 온 여인들이 문파 내에 기거하기도 했다.
또한, 오대도문 중 화산과 함께 여제자를 받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청성에는 두 개의 큰 유파가 존재했다.
무공을 수련하는 무량도관과 길흉화복을 점치는 법량도관이 그것이었다.
청성의 제자들은 도력을 수련하는 중에 일정한 경지가 되면 선택을 하게 된다. 무공에 재능을 보여 무량도관에 들 것인지, 법술에 재능을 보여 법량도관에 들 것인지.
하지만 그로 인해서 차별을 받지는 않았다.
엄연히 그 모두가 청성의 제자였기 때문이었다.
올해 마흔두 살의 상우는 법량도관을 선택한 일대제자로 영관전에 소속되어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중년의 도사 상우는 식재료를 싣고 온 노인 우생에게 물병을 건넸다.
“허허, 그러게요. 오늘따라 짐이 많습니다. 해서 일꾼을 하나 더 고용해 왔지 뭡니까.”
우생이 이마에 주름이 가득 잡히도록 웃고는 목젖이 움직이는 게 보일 정도로 물을 벌컥대곤 물병을 옆에 앉은 주름 가득한 사내에게 건네었다.
“죄송합니다. 곧 조사전에 제를 올릴 때가 되어서요.”
“아, 벌써 그리되었습니까?”
“예.”
“하면 잠시 이 친구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가서 영관전주님을 좀 뵙고 오겠습니다.”
“예. 영관전 뒤쪽 그늘에서 쉬시게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앞뜰에는 제자들이 많이 지나다니니.”
“예. 그러시지요.”
우생이 영관전으로 들어간 뒤에 상우는 노인에게 길을 안내했다.
“자, 갑시다.”
상우가 앞서고 노인이 넉넉한 웃음을 지으며 뒤따랐다.
영관전 뒤편 한적한 담벼락.
두 아름은 됨직한 늙은 나무가 잎을 사방으로 뻗어 햇볕을 적당히 가리는 데다 오가는 이들까지 적으니 쉬기에 딱 적당한 장소였다.
잔바람에 땀이 식어 갈 때쯤 사내가 상우를 향해 나지막이 말했다.
“오랜만에 뵙소, 귀영.”
“오랜만입니다, 악료.”
한데 어찌 된 일인지 둘의 대화가 달라졌다.
우생 노인과 함께 있을 때만 해도 초면인 듯하더니, 지금은 마치 오래전부터 서로를 알고 지낸 듯한 어투였다.
“대랑께서 청랑대와 함께 오신다는 연락은 받았소.”
“청랑대 세 개 조가 청성파의 인근 어촌에 위장 대기 중이고 대랑께선 나머지 세 개 조와 함께 오고 계신 중이오.”
“당가와의 마찰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괜찮습니까?”
상우의 말에 악료라 불린 사내의 미간에 주름이 깊어졌다.
“듣기로 당가가 무인들을 풀어 수소문하고 있다 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청성파의 심기도 매우 날카로워졌고요.”
“청성에서도 움직였소?”
“예. 무량도관 소속의 일대제자 셋이 이대제자 스물과 함께 하산하였습니다.”
“그렇군.”
“좀 더 주의를 기울여 주십시오. 괜히 저들의 눈에 띄어 좋을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귀영, 그대의 일에만 충실하시오. 청랑대의 일은 청랑대에서 알아서 할 것이니.”
질책하는 듯한 상우의 어조에 악료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들의 움직임에는 항상 은밀함이 있어야만 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림에 정체를 드러내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이미 정무맹의 양소방이 그들을 뒤쫓고 있었기에 잦은 소란은 좋지 않았다.
“언짢았다면 죄송합니다. 대랑께서도 바라지 않으실 듯해서.”
상우의 음성에 미안해하는 마음 따위는 조금도 담기지 않았으나 악료는 참을 수밖에 없었다.
청랑대가 존경해 마지않는 대랑을 들먹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모두 삼궁주라는 인물의 예하였으나 소속이 달랐다.
상우, 즉 귀영은 삼궁주 직속의 영은당 소속이었고 악료는 대랑 직속의 청랑대 이 조장이었다.
비록 상우의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괜한 일로 드잡이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악료는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어찌 되었소?”
“거의 다 찾았습니다. 백운각의 조사전에 있었습니다.”
“그랬군. 서가의 한 곳에 은밀하게 봉했을 줄 알았더니…… 무혈의 자리는 찾았소?”
“알려진 모양 그대로였습니다. 이제 무혈을 찾으러 백가장으로 간 적영만 오면 됩니다.”
“적영과 연락이 끊어졌다 들었소만?”
이번엔 악료가 비웃듯이 말하자 상우가 싫은 기색을 여실히 드러내었다.
“그로 인해 무인 하나를 급파했으니 걱정은 접어 두시지요.”
“쯧쯧, 영은당의 일 처리는 여전히 미흡하기 그지없군. 삼궁주께선 어찌 그 같은 일을 우리 청랑대에 맡기지 않고 영은당에 맡기셨는지.”
“…….”
악료가 혀를 차자 상우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영은당을 무시하지 마시오.”
“흥. 무시? 일 처리나 똑바로 했으면 좋겠군.”
“말씀이 과하시군요.”
상우가 몸에서 은근한 살기를 피워 올리며 악료를 쏘아보자 잠시 대화가 끊어졌다.
“악료, 더는 자극하지 마시오. 큰일을 앞두고 청랑대와 영은당이 싸우는 일은 없었으면 하니까.”
“흥! 마찬가지요.”
큰 소리로 싸우지 않았다 뿐 서로를 대함에 불편함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며칠 뒤 조사전에 제를 올리는 날, 미리 야간 제를 지내는 순번을 변경해 두었으니 그때 이곳의 후반부를 빼낼 생각이오.”
퉁명스러움이 잔뜩 묻어 있는 말투였지만 악료는 더 이상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마음에는 들지 않았지만, 그와의 마찰은 그의 수장인 대랑이 바라지 않는 일임을 알기에.
“확보하는 즉시 청성을 떠날 것이니 뒤나 잘 부탁드리지.”
“알겠소. 청성산 동쪽 기슭 중강(中江) 나루에서 기다릴 것이니 물건을 확보하면 그곳으로 오시오. 그때쯤이면 대랑께서도 합류하실 것이외다.”
“예. 그럼 그때 뵙지요.”
상우의 대답에 악료는 차분한 표정으로 비꼬았다.
“그대의 자신감이 일을 그르치지 않길 빌지.”
“뒤만 잘 지켜 주신다면 실수야 있을까.”
비웃음을 잔뜩 머금은 상우의 표정에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쥔 악료가 맞받아 대꾸하려 했지만, 막 영관전 뒤로 뛰어든 이에 의해 수포로 돌아갔다.
열다섯 정도 되어 보이는 어린 도사.
“사숙, 여기 계셨습니까?”
“옥항 네가 영관전에는 어쩐 일이냐?”
“장문인께서 찾으십니다.”
“장문인께서?”
“예. 손님이 오셔서 장문인이 부르고 계십니다. 여기 계신 줄도 모르고 한참을 돌아다녔네요.”
“이런, 잠시 쉰다는 것이 너를 힘들게 하였구나.”
“아닙니다.”
“한데 어찌한다? 쉬느라 아직 식자재 검수를 다 마치지 못했는데.”
“제가 마저 할 터이니 서둘러 상청관으로 가 보십시오. 장로님들까지 모두 모이시는 모양입니다.”
“오냐. 그럼 부탁하마.”
상우가 옥항의 어깨를 두들겨 주고 악료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하면 수고해 주시오.”
“예. 도장.”
“다음에 뵙시다.”
“예.”
도포 자락을 휘적이며 걸어가는 상우를 향해 악료가 허리를 깊이 숙였다.
옥항과 악료를 뒤로한 상우는 서둘러 상청관으로 올라갔다.
무슨 일인지 제법 사람이 많이 몰려 있었다.
“사숙, 오셨습니까?”
청성의 이대제자 옥청이 공손하게 인사했다.
“오냐. 그나저나 별안간 무슨 일이냐? 이 시간에 어찌 이리들 모여 있어?”
“아, 그게.”
옥청이 슬쩍 상청관을 바라보곤.
“중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
그 말에 상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반가운 손님이라 해도 어찌 영관전 소속인 자신까지 부른단 말인가?
“중한 손님이라니?”
“지금 월청호의 접객당에 당대의 무당지검이 찾아와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