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백운각에 어찌 다시 들고자 함인가? 조사들께는 이미 인사를 올렸지 않던가?”
“예.”
진무는 잠시 고민했다.
사실대로 말해? 아니면 거짓으로?
하긴,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다. 뭐 하러 사실을 말한단 말인가?
긁어 부스럼만 될 것을.
“그게…… 실은 제가 조사전에서 예를 올리며 수련하는 게 버릇이 되어 놔서요. 무당에서도 선대의 사당인 암묘에서 깨달음을 얻곤 하였던 터라.”
“……?”
자환과 자경이 한동안 진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하긴 진무가 생각해도 약간 개소리기는 했다.
“하면 백운각 조사전에서 명상을 하겠다는 말인가?”
“예. 허락하신다면요. 청성의 조사들의 기운을 받으니 막 깨달음이 떠오를 것 같고 그렇기에.”
진무가 나이답지(?) 않게 어린 척을 하며 부끄러워했다.
“흠.”
의아할 뿐이지 허락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이 무림에 기인이사가 한둘이겠는가?
어린 나이에 무당지검이 된 무인이다. 필시 범상(凡常)할 리 없었다.
충분히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버릇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었다.
더구나 이미 진무에 대한 호감이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 호감까지 더해지니 결과는 당연히.
“허헛, 알겠네. 무에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리하게.”
청성의 서가를 열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영단을 달라는 것도 아니다.
자환이 흔쾌히 허락하자 진무는 날아갈 듯 기뻤지만, 최대한 표정을 감추고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하면 명상을 하는 동안은 홀로 있어도 될는지요?”
“암, 명상을 방해할 순 없지. 그리하게. 자경, 자네가 가서 백운각의 제자들에게 진무 도장의 명상을 방해치 않도록 지키라 이르게.”
“알겠습니다. 장문인.”
“부디 무당지검이 청성에서 또 다른 깨달음을 얻어 가길 기대함세.”
되었다. 너무도 쉽게 풀린다.
이제 그 구멍에 무혈을 꽂기만 하면 된다.
첫 번째 조각을 이리도 쉽게 얻게 될 줄이야.
청성의 도사 녀석들.
참 고맙다. 너희들의 도움은 내 절대로 잊지 않으마.
진무는 속으로 웃으며 자경을 따라 장문인의 거처에서 물러났다.
* * *
“……뭐라구요?”
오밤중에 영관전을 찾아온 자경과 진무의 모습에 상우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백운각의 열쇠를 달란다.
이미 산 아래의 상황을 들은 뒤였다.
그리고 그 상황을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상우였다.
상우는 살아서 청성산에 다시 오른 진무의 얼굴을 보았을 때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상우는 진무의 무위를 여전히 제대로 알지 못했다.
분명 진무는 장문인을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경지를 의기라 밝힌 바 있었다.
청랑대의 이 조장 악료와 그 수하들이라면 이미 그 객점에서 진무를 씹어 먹고도 남았어야 했다.
당가가 끼어든 것이 분명하다. 그놈의 망할 신호탄에 청성의 무인들까지 우르르 내려가지 않았던가?
그 때문에 산 것이다.
좋지 않다.
곧 대랑이 도착하면 이번 계획을 주도한 자신은 책임을 피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또한, 악료와 청랑대의 생사조차 확인이 되지 않고 있었다.
‘제길…….’
다른 것은 둘째 치더라도 상우는 진무가 다시 백운각에 들어가는 일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분명 글귀에 의심을 가졌고, 구멍을 보았다.
조사전에 들어 비밀을 밝혀내기라도 하는 날에는 다 차린 밥상을 애먼 놈에게 뺏기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랬다간 책임 추궁이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은 절대로 무사할 수 없었다.
‘필시 시커먼 속이 있는 것이다. 절대로 막아야 해.’
상우는 표정을 감추고 고개를 저었다.
“녹운각주님. 이 시간에 백운각에 들어가는 것은 문파의 규율에 어긋납니다. 아무리 무당지검이라고 하지만…….”
“허허, 상우야. 네 말은 안다만 이미 장문인께서 허락하신 일이다.”
“아니 그래도 규율이…….”
상우가 자꾸만 반론을 꺼내자 자경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진무가 옆에서 보고 있는데 어찌 법술도량의 일대제자가 장문인의 명 앞에 규율을 들먹인단 말인가.
“어허! 어찌 이래? 어서 열쇠를 내놓거라.”
“……!”
상우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는 더 이상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결국 열쇠를 꺼내 놓고 말았다.
자경이 빼앗듯이 넘겨받고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사, 사숙. 하면 제가 함께 들어가서…….”
“어허! 어찌 자꾸 이런단 말이냐? 내 분명 무당지검의 명상을 방해치 말라 장문인께서 명하셨다 하였거늘!”
“…….”
자경이 상우를 호되게 질책하고 난 뒤 진무에게 말했다.
“허허, 무당지검께선 너그러이 이해해 주오. 나름 규율을 지켜야 하는 제자의 마음인지라.”
“아닙니다. 괜히 제가 무리한 부탁을 하여.”
진무가 머쓱하게 웃자 자경이 더욱 미안함을 머금고 상우를 째려보았다.
“자, 어서 가십시다.”
“예. 자경 사숙.”
“허허헛!”
호탕하게 웃으며 앞서는 자경, 그 뒤를 따르는 진무.
“…….”
그걸 바라보는 상우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지고, 눈에서는 시퍼런 광망이 토해졌다.
* * *
끼이익. 탁.
문이 닫혔다.
짙은 어둠이 가득하다.
진무는 천천히 불을 붙여 백운각의 내부를 밝혔다.
삼 층 높이가 통으로 뚫린 거대한 전각.
벽면을 채운 수많은 청성 도인들의 위패.
그 앞에 원을 두른 역사 청성 장문인들의 위패.
“…….”
진무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그 중심에 섰다.
드디어 혼자만 남았다.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진무는 자신의 목표인 위패 앞으로 다가갔다.
청성 이십육 대 장문인. 풍천 현양자.
어째서 그의 위패 아래 구멍이 존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꿀꺽.
마른침이 울대를 거칠게 타고 넘어갔다.
현양자의 위패가 모셔진 작은 탁자. 공적이 적힌 작은 종이.
모든 것이 완벽하다.
드르르르.
진무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위패가 모셔진 탁자를 밀어 내고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꿇어앉았다.
그의 무릎 앞 작은 구멍 하나.
아, 이 순간을 얼마나 오래 기다려 왔던가?
호흡이 거칠어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며 그의 고막을 울려 댔다.
그래, 이 순간만큼은 뛰어라, 심장아.
양의심공 후반부의 첫 조각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때가 아니면 언제 뛴단 말이냐!
진무는 떨리는 손으로 품에서 작은 소검을 꺼냈다.
무혈이란 이름으로 우연을 가장해 자신에게 찾아온 필연.
아, 이 영롱한 빛이여.
어찌도 이리 아름답단 말인가!
진무는 떨리는 눈동자로 무혈을 들어 구멍에 꽂아 넣었다.
드르륵. 딸깍.
꼭 맞는다.
정말 한 치의 틈도 없이 구멍에 딱 맞아떨어지자 무언가 맞춰지는 소리가 적막으로 가득하던 백운각을 울렸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 당세령, 이 녀석.
넌 정말 중원에서 가장 우수한 소다. 특등이야.
그런데.
“어? 왜 안 열리지?”
소리만 들리고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멀뚱히 앉은 진무가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의 바보스러움을 탓했다.
“분명, 비틀었었지?”
당가의 만병당주 당천기는 자신에게 청강쇄금을 보여 주며.
“이렇게.”
끼릭, 덜컹!
열렸다.
백 년간 잠들어 있었던 비동의 문……이 아니고 마룻바닥 중 한 군데가 열리며 그 속에서 하나의 상자가 솟구쳐 올랐다.
그래. 이게 기관 장치지. 이 얼마나 단순하고 소박한가?
잘 만들었다.
실로 예사롭지 않은 솜씨다.
어찌 이리도 기똥찬 생각을 했단 말이냐. 이걸 만든 자가 옆에 있다면 각종 미사여구를 동원해 칭찬해 주고 싶었다.
진무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 감동의 순간을 만끽했다.
상자 안에는 오래된 양피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캬, 역시. 자고로 기연이란 이래야 한다.
막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동굴을 발견했는데 그 안에 공청석유가 있었다든지, 아니면 우연히 다 죽어가던 영물과 싸워 내단을 얻었다든지.
그거 죄다 군협지 속에서 꾸며진 이야기였다.
어떤 미친놈이 죽어 가는 마당에 자신의 평생이 담긴 무공과 보화를 남 주겠다고 거대한 석실을 만든단 말인가? 아깝게시리.
그리고 기연은 마땅히 허락받은 자만이 얻어야 한다. 운 좋다고 다 얻으면 안 된다.
노력을 해야지, 어? 노력.
비밀을 파헤치고, 열쇠를 찾아 연 끝에 얻어 가는 것이 바로 기연이라야만 한다.
진무는 양피지를 쥐었다.
마치 운명의 상대를 만난 것처럼 ‘찌르르’ 하는 느낌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절?
올릴 필요 없다.
주인도 없는 물건에 무슨 절을 올린단 말인가?
진무는 천천히 양피지의 글귀에 시선을 두었다.
무극이태극(無極以太極), 양동(陽動)하면 음정(陰靜)하라.
“…….”
진무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설마? 이게 끝?
혹시나 다른 내용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양피지가 두 겹인지 비벼도 보고 촛불에 비춰서 숨겨진 글귀가 있는지도 살펴보았다.
그러나 고작 그게 다였다.
다함이 없음은 곧 태극이요, 양이 활발히 움직이면 음은 고요히 머물게 하라. 는 뜻을 가진 글귀가 전부였다.
“이게 뭔 개소리……야?”
도무지 뭔 뜻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아! 그래 네 곳으로 나누어 놓았다 했으니 지금은 당연히 의미를 알 수 없겠지.
그래 기연인데 이렇게 쉽게 찾아서야 되겠어?
진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양피지에 적힌 글귀를 수도 없이 되뇌었다.
분명 네 곳을 모두 찾아가 나머지 조각을 얻으면 의미가 이어지고, 완전한 양의심공을 얻게 될 것이 분명했다.
진무는 외우고 또 외웠다.
그리고 다 외운 뒤엔 당연히 없앨 생각이었다.
뭐 하러 남겨 둔단 말인가?
남들이 알 필요는 없었다. 진무는 양의심공의 후반부를 타인과 절대로 나누고 싶지 않았다.
“내 거야.”
오롯이 진무가 독식해야 할 물건이었다.
그를 통해 묵룡혼원공을 되찾고 정사 위에 군림하며, 황제가 머리를 조아리는 위대한 무인이 될 것이다.
절대로 타인과 공유할 수 없다.
죽을 때도 가져갈 것이다. 줄 것 같냐, 내가.
한데 어떻게 없앤다?
삼매진화로 태워 버려서는 안 된다.
갑자기 화광이 일어나면 밖을 지키는 청성의 도사들이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품에 지니고 가기도 불안하다.
완전 범죄를 하려면 어디에도 증거가 존재하지 않아야 하는 법이다.
한참을 고민하던 진무가 결단을 내렸다.
먹자!
진무는 양피지를 구겨 입 안에 쑤셔 넣고는 침에 양피지가 물러져 넘어갈 때까지 씹고 또 씹었다.
꿀꺽.
크기가 있어서인지 잘 넘어가지 않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기어이 삼켰다.
그리고.
딸깍. 드륵 텅!
상자를 집어넣고 무혈을 반대로 비틀자 튀어 올랐던 마룻바닥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원래 있었던 그 모습 그대로, 작은 구멍 하나만 남긴 채.
그리고 진무는 위패가 놓인 탁자를 원래의 위치로 가져다 놓았다.
이제 청성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얻을 것을 얻었으니 서둘러 인증을 받고 떠나기만 하면 된다.
진무는 열꽃이 필 것처럼 솟구친 흥분을 차분히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혹시나 사람들이 알아볼까 봐.
또한, 명상을 한다고 했으니 빨리 나가서도 안 된다.
느긋이 흥분을 가라앉히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지루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운기조식도 하면서.
덜컥.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달래고 호흡을 차분히 가라앉힌 진무가 백운각의 문을 열었다.
밖에는 자경과 상우, 그리고 그의 명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백운각을 지키던 청성의 제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응? 벌써 끝난 건가?”
반 시진이 채 지나지 않아 밖으로 나선 진무를 향해 자경이 물었다.
“아, 예. 과연 명사의 기운이 서린 곳이라 깨달음이 빨리 찾아왔습니다. 허락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하하! 무언가 깨달았다니 다행일세. 하면 이제 돌아가 쉴 참인가?”
“예. 날이 밝으면 표주를 행하는 도사로서 청성의 어른들께 인증을 받아야 하니까요.”
“알겠네. 서둘러 가서 쉬도록 하게.”
진무의 명상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 쉴 수 있게 된 청성의 제자들이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거처로 걸음을 재촉했다.
진무가 자경과 사라진 뒤 상우는 속히 백운각 안으로 들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진무가 내부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은신을 펼쳐서라도 들어오고 싶었으나, 옆에 자경이 있어 가슴을 졸이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상우였다.
그는 곧바로 구멍을 확인했다.
그대로다.
하지만 묘한 불안감에 촛불을 들고 그 주위를 면밀하게 살폈다.
그리고.
“이, 이놈.”
탁자가 끌린 흔적.
그리고 구멍과 그 위, 자잘한 먼지가 쌓여 있어야 할 공간이 깨끗했다.
“찾았구나!”
상우의 눈에서 시퍼런 살기가 폭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