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상우는 은밀하게 청성을 빠져나왔다. 서둘러 상황을 알려야만 했다.
애초에 은신술을 익혀 첩보를 수집하는 영은당의 무인인 그였다.
그는 법술도관의 한 곳인 영관전의 도인으로 위장하고 있었다.
장로들도 자신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데 법술을 하는 도사들 따위가 자신의 움직임을 눈치챌 리 없었다.
청성의 담벼락을 넘은 그는 곧바로 산 아래를 향해 내달렸다.
마음이 급했다.
일이 틀어졌음을 알려야 했고, 대책을 논의해야만 했다.
그들의 수장인 삼궁주가 어떤 임무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양의심공 후반부’였다.
그 하나를 위해 그간 모습을 감추고 활동해 온 청랑대가 움직였고, 궁의 수뇌 중 하나인 대랑이 직접 움직였다.
무당의 도사가 얻어 갔다면 그의 목숨을 취해서라도 되찾아야 할 일이었다.
그가 향하는 곳은 청성산 동쪽 기슭의 중강(中江) 나루.
악료가 그곳으로 찾아오라 했었다.
그곳에 분명 청랑대의 나머지 조가 숨어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청랑대 이 조의 정체가 드러나는 바람에 당가의 무인들과 청성의 무인들이 산자락을 들쑤시고 다니는 중이었다.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하고 최대한 정신을 집중해 움직여야 했다.
그들의 눈에 들켜서도 안 되고 흔적을 남겨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청성산을 벗어나자 다행히 당가와 청성이 연합한 추격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상우는 청랑대가 머물고 있다 한 작은 움막에 도착했다.
다수의 무인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았기에 대부분의 조원들은 명이 있기 전까지는 흩어져 있었다.
“저산! 저산!”
상우는 곧바로 죽은 악료와 함께 미리 도착해 있다던 삼 조장 저산을 찾았다.
그런데 움막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상우의 눈앞에 보인 것은 한 명의 노인과 그 뒤에 서 있는 청랑대 조장 다섯이었다.
상우는 그 노인의 정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대, 대랑을 뵙습니다.”
상우는 노인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대랑, 오척산.
당금 중원에서 절대를 걷는다는 이들에 비견될 정도로 강력한 궁의 무인.
어쩌면 그 힘이 그들의 주인인 삼궁주에 필적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귀영.”
“예. 대랑.”
“가까이 오라.”
“……!”
대랑의 명에 상우가 무릎걸음으로 빠르게 다가가 발치에 엎드렸다.
“악료가 죽었다. 그의 수하 스물과 함께.”
높낮이조차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에 상우는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무혈을 취하러 갔던 적영은 잡혔고, 그 자리에 양소방이 있었다는구나.”
대랑의 말이 차분하게 이어지는 동안 엎드린 귀영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적영이 임무에 실패했으니 무혈의 행방이 묘연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적영의 죄이지 너의 죄는 아니다. 하지만 너는 어찌 악료가 죽게 두었더냐?”
“…….”
자신의 잘못이 아니다.
상황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을 뿐이다. 하지만 나지막한 목소리가 주는 위압감에 숨이 턱턱 막혀 제대로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악료의 죽음으로 인해 당가와 청성의 무인들이 연합했다. 너의 계획이 무엇이기에 이런 상황을 만들었더냐?”
“대, 대랑. 실은…….”
꾸우욱.
다급히 입을 떼던 상우의 머리가 흙바닥에 처박혔다.
가볍게 그의 머리를 밟은 발.
대랑은 앉은 채로 상우의 머리를 짓밟았다.
기운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일으키는 즉시 불경으로 간주되어 당장에 머리가 짓밟힌 수박처럼 터트려질 것이다.
“적영과 악료가 잡혔으니 임무가 완수되기도 전에 우리의 꼬리가 잡힌 것이나 다름없다. 변명이 아닌 사실을 말하라.”
“죄송…… 용서를…….”
“귀영.”
“…….”
“나는 스스로 실패를 경험해 보지 못해 용서라는 것도 해 본 적이 없구나.”
숨이 막힌다.
가슴이 쪼그라들고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답을 내놓거라.”
대랑의 말에 상우는 재빨리 대답했다. 머리가 터트려지기 전에 뭐라도 말해야 했다.
“대랑. 청성에 있는 양의의 조각이 탈취당한 것 같습니다.”
“……!”
순간 대랑의 눈동자가 거대해졌다. 이제껏 잠잠했던 그의 몸에서 살기가 해일처럼 뿜어져 사방을 가득 채웠다.
파삭, 파사삭.
바닥에 깔려 있던 자갈들이 살기에 아스러지고 옷자락이 베어져 나갔다.
그의 뒤에 있던 청랑대 다섯 조장들의 얼굴이며 몸에 상처가 생겼으나 감히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스으.
떨어지는 발.
다가온 손이 상우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귀영. 내 귀가 어두운 것이냐?”
“…….”
머리채를 잡혀 올라온 귀영의 눈이 대랑과 마주하게 되었다.
마치 거대한 범이 아가리를 벌리고 노려보는 것처럼 두려웠다.
그의 살기가 귀영의 얼굴을 찢어 놓기 시작했다.
“무, 무당의 제자입니다. 무당의 제자가 가져간 듯합니다.”
“…….”
살기 가득한 안광을 쏟아 내던 대랑이 귀영의 머리카락을 놓았다.
“말해 보라. 자세히, 그리고 천천히.”
“…….”
귀영은 본능적으로 죽음의 경계에 발을 들이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지금 대랑의 마음에 들 만한 말을 하지 못하면 그 누구보다 처참하게 죽을 것이다.
그 어떤 것보다 고통스럽게.
“표주를 나온 약관의 무당 도사가 청성을 찾아왔습니다.”
“…….”
그 말에 대랑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진다.
어째서 갑자기 무월루에서 만났던 어린 도사가 떠오른단 말인가?
“그가 양의의 후반부에 대해 아는 눈치였습니다.”
상우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무당의 도사가 후반부의 조각이 숨겨진 백운각을 방문했고, 무언가를 찾는 눈치였으며, 이후 다시 찾아왔다. 명상을 하겠다는 명목하에 사람들까지 모두 물리고.
그리고 그가 백운각에서 나온 직후, 오직 무혈이라는 열쇠만으로 열 수 있는 기관이 해제된 흔적이 발견되었다.
“…….”
상우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조아렸으나 대랑에게서는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양의심공 후반부.
백 년 전 무당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당시의 오대도문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심지어 지금의 무당조차 모르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소검 무혈.
청성에 양의심공의 한 조각을 봉인한 풍천 현양자가 남긴 상자의 열쇠.
현양자는 스스로 목숨을 내놓은 청무의 뜻에 따라 어느 장인에게 부탁해 무혈 외에는 그 무엇으로 열리지도 파괴되지도 않는 상자를 만들어 자신이 받은 양의의 후반부 일부를 담았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물건이 무엇인지, 어디에 감추었는지조차 기록하지 않았다.
하지만 삼궁주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상자를 만들었던 장인의 후예가 궁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양의에 대한 사실을 삼궁에 알린 이후 삼궁주는 오랜 시간을 들여 사라진 무혈의 행방과 청성에 숨겨진 상자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막 열쇠와 상자의 위치를 찾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빼앗겼다고? 삼궁주께서 그토록 오랫동안 노력을 기울이신 물건을?”
“죄, 죄송합니다.”
“…….”
대랑의 눈동자에서 불길이 토해졌다.
이대로 곧장 청성을 찾아가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당장에라도 청성을 무너뜨리고 무당 제자의 모가지를 잡고 내놓으라 하고 싶었다.
“확실한 것이냐? 네 눈으로 그가 가져가는 것을 보았더냐?”
“그, 그건…….”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다.
모든 정황이 그리 말하고 있을 뿐이었다.
“대랑, 맡겨 주십시오. 제가 어떻게든…….”
상우가 발악하듯 외쳤지만 대랑이 뿜은 살기에 막히고 말았다.
“귀영. 살고자 아무 말이나 하는 것이 아니다.”
“…….”
“당가와 청성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우리를 찾기 시작했다. 또한 양소방이 백가장을 떠나 사천으로 오고 있지. 그런데 네가 어떻게 되찾겠다는 말이냐? 고작 너 따위가.”
“…….”
목소리는 나지막했지만 질식할 듯한 압박감이 상우의 전신을 짓누른다.
“청랑대가 뛰어나다 하나 청성과 당가 모두를 상대할 수 없다. 하나 양의의 조각은 반드시 되찾아야 할 일.”
대랑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귀영.”
“……예!”
“다시 청성으로 돌아가거라. 가서 모든 것을 확실히 확인한 후에 연락을 보내라.”
“알겠습니다.”
“저산, 추령.”
“예. 대랑.”
“너희는 상우와 함께 청성에 남아라. 나머지는 나와 함께 무당의 제자가 청성을 나올 때까지 대기한다. 만약 그가 정말로 조각을 얻었다면…… 청성과 당가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순간 되찾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다섯 조장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답하자 대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귀영, 내가 조각을 찾기를 기원하거라. 그렇지 못하면 너와 관계된 모든 것이…… 지워질 것이다.”
“……!”
지워진다.
상우와 관계된 모든 것.
부모, 형제, 자매…… 그리고 상우를 알고 그와 친분을 나눈 모두.
분명 처참하게 살해될 것이었다.
* * *
청성의 시험은 저녁이 되어서 끝났다.
애초에 약식에 불과한 시험이었기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도(道)에 대한 선문답이 있었으나 진무는 그저 웃기만 했다.
사실 뭔 개소리를 하는지 알아듣지도 못했다. 하지만 호의로 가득 찬 청성의 도사들은 그 미소조차 깨달음이라 오해했다.
또한, 진무가 스스로 의기의 경지라 밝혔음에 선대의 장로가 이례적으로 직접 상대했으나 예를 다한 비무였기에 무승부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약관의 진무가 중원 전역에 이름이 자자한 청성의 선대 장로와 동수를 이루었으니 그 놀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시험이 끝나고 진무는 장문인과 장로들이 기다리는 상청관으로 불려가 앉았다.
짐이라곤 칼 한 자루가 전부였으니 이미 떠날 준비까지 마치고 나선 걸음이었다.
“과연 무당지검일세. 경지가 의기에 이르렀다 하나 아직 경험이 부족할 터인데도 본산의 어른인 운현 사숙과 동수를 이루다니. 무당의 미래가 더없이 밝구먼.”
“사조님께서 사정을 봐주신 덕분입니다.”
겸양(?)을 떠는 진무의 모습에 청성 도사들의 칭찬이 줄지어 쏟아졌다.
“어떤가? 시험은 끝났으되 청성에 머문 날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좀 더 시간을 보내고 떠나는 것이?”
자환이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진무를 바라보았다.
뭐? 좀 더 머물라고?
별 미친 소리를 다 듣겠네.
애초에 목적이 없으면 이딴 도문에 자진해서 오지도 않았다.
이제 청성은 됐고, 서둘러 곤륜을 찾아가서 양의심공 후반부의 두 번째 조각을 얻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닙니다. 어찌 제가 신성한 도량의 수행을 방해하겠습니까? 또한 근자에 불의한 이들이 출몰하여 신경 쓰실 일이 많을 줄 압니다. 하니 저는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예의를 다해 읍하는 진무의 모습은 천생 도사의 모습이다.
그런 진무를 바라보는 자환과 청성의 도사들은 흐뭇하기만 했다.
어린 나이에 그만한 무공을 지니면 자만심이 생기기 마련이고, 뽐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법인데 어찌 저리도 겸허하고 공손하단 말인가?
“이거 자네를 보니 그동안 무당과 격조했던 것이 미안하구먼. 내 조만간 명현 장문인께 교류를 청해야겠어. 후학을 이리도 훌륭하게 양성하다니. 역시 무당은 도문의 등불인 게지.”
칭찬도 자꾸 들으면 잔소리다.
그리고 참 지랄 맞다.
등불이라고?
진무가 알기로 청성이 무당과 교류하지 않은 지 십 년이 넘었다.
오대도문으로 묶였으면 뭘 하는가. 무당이 망도추행이라고까지 소문이 났음에도 손 한번 내밀지 않았던 놈들이다. 말이 좋아 격조했다지 아예 연을 끊은 것이나 진배없었던 주제에.
도사라는 것들이 하여간.
뭔가 이득이 된다 싶으니 이제 와서 다시 인연을 만들어 볼 속셈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원했던 것을 얻고 나니 원래부터 도사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진무의 눈에 청성의 모든 게 고깝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쨌든 자네의 마음이 그렇다 하니 더 이상 잡지는 않겠네. 하나 산문 밖까지 배웅하고자 하는 마음은 내치지 말아 주게.”
“장문인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드디어 끝이다.
진무는 이제 희망찬 발걸음으로 곤륜을 향해 나아갈 생각이었다.
“상우야!”
“예, 장문인.”
자환의 부름에 대기 중이던 제복 차림을 한 상우가 다가왔다.
“너 얼굴이?”
“발을 헛디뎌서 굴렀습니다.”
“저런, 조심하지 않고.”
얼굴이 찢어진 모양이 안쓰럽다.
어제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어디서 심하게 구르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상처가 제법 아픈지 진무를 바라보는 눈빛이 무척이나 날카로웠다.
“먼 길 떠나는 진무 도장이다. 행로에 어려움이 없도록 법주를 시행하라.”
응? 또 뭘 한다고? 법주? 여행 가는 사람에게 행운 빌어 주는 뭐 그런 거?
안 해도 돼. 안 해도.
이미 밤도 늦었잖아. 그냥 보내 줘!
진무가 속으로 부르짖는 가운데 그놈의 급급여율령 타령이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망할 도사 놈들…….
그리 걱정되면 여비나 좀 챙겨 줄 수는 없는 것인가? 어쩌면 이렇게도 하나같이 똑같은 짓을 하는지.
결국, 진무는 청성에서 하루를 더 자고 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