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씨발, 진짜 어지간히 오래도 씻네.
목욕을 하러 간 당세령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하필이면 이 작은 마을에 이런 큰 객점이 웬 말인가?
더욱이 장사가 안돼서 파리나 날리는 판에 점소이는 또 웬 말인가?
“어서 옵셔!”
힘차게 인사한 눈치 빠른 점소이는.
“목욕물을 준비하겠습니다!”
“말 여물도 곧 준비됩니다!”
“혹시 여벌 의복이 없으시다면 내드릴 수 있는데…….”
“술과 음식은 뭘로 대령할까요?”
무려 네 개의 문장을 동시에 내뱉으며 흡족해하는 당세령으로부터 추가금을 받아 낼 정도로 빠릿빠릿하다.
고작해야 열다섯 살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영업력이 뭐 저리 출중하단 말인가?
객점을 했다면 웃돈을 주고 데려다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진무는 벌써 만들어져 탁자를 가득 채운 음식과 술에 탄식을 내뱉었다.
하필이면 이딴 큰 객점에 와서.
하필이면 음식도 맛있고.
하필이면 술맛은 왜 이리도 좋은지.
이래서야 하루만 쉬고 싶겠느냔 말이다.
당세령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그도, 그의 가랑이……도 제법 지친 상태기는 했다.
“도사님, 이 술은 어떠십니까?”
“…….”
아직 도포를 입고 있어서인지 알아서 진무를 도사라 칭한 점소이가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시선을 맞춰 왔다.
퐁!
술 마개가 열리고 향긋한 냄새가 코를 찔러 왔다.
“배, 백화로?”
고급술이다.
한 병에 은 한 냥은 족히 가는.
“놓고 가라.”
“예!”
이미 예상했다는 듯이 잽싸게 탁자 위에 병을 놓은 점소이가 물러났다.
“뭐야? 혼자 시작한 거야?”
니가 늦게 나온 거거든.
목욕을 마친 당세령이 젖은 머리를 탈탈 털며 탁자로 다가왔다.
싹 씻고 옷까지 갈아입으니 완전 새 사람이네, 새 사람이야.
“아씨…….”
점소이가 또 다가왔다.
“어? 철관음?”
당세령이 점소이가 소반에 받쳐 들고 온 차의 향기에 반색했다.
백화로에 이어서 철관음이라니? 여기 도대체 정체가 뭐지?
“안계 철관음입니다.”
그 와중에?
철관음 중에서도 가장 이름 높은?
뭔…… 도대체가 이런 곳이랑 어울리는 거냐?
진무가 어이없어하는데 점소이가 정중한 인사와 함께 차를 건넸고, 당세령은 당연하다는 듯이 그걸 받아 홀짝거렸다.
아니, 이 여자는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못 느끼는 건가?
“유칠아, 수고했어.”
“네, 아씨.”
“…….”
이름을 알아?
진무가 영 적응되지 않는 눈빛으로 당세령을 쳐다보자.
“아는 객점이야, 여기. 유칠이 주인이고.”
“……아!”
그래서 주인이 보이지 않았구나.
하긴, 혼자서도 열 몫은 하겠다.
“당가 세력권의 마지막 지점이라고 해야 하나? 경계지. 여기를 벗어나서부터는 아무리 사천이라고 해도 당가와는 전혀 연관이 없거든.”
“……아. 설마, 그럼 여기 사는 사람들 모두?”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투자만 한 거야. 마을 사람들은 당가와는 관계없어. 객점에 투자한 건 혹여 우리 무인들이 멀리 나갔다가 돌아올 때 불편함 없이 쉴 수 있도록.”
“아.”
성도에서 천사백 리나 떨어져 있다. 거의 사천성의 끝자락에 달했는데, 거기까지가 세력권이라니.
참 대단한 집안이다.
이제야 점소이의 행동이 전부 이해가 되었다.
목욕물, 옷, 말 여물에 철관음과 백화로까지 있을 만했다.
돈이 있으면 돈지랄도 해야지.
그러고 보면 도사들은 참 불쌍하다. 특히나 무당은.
* * *
다음 날, 모처럼 편안하게 쉬고 일어난 진무는 또다시 곤륜이 있는 청해성을 향해 출발할 준비를 했다.
“어? 말이?”
진무의 표정에 당세령이 흐뭇하게 웃는다.
말까지 준비되어 있었던 거냐?
그것도 한혈마(汗血馬)야?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유칠아, 혹시 시간 되면 집에 전서구 하나만 보내 줘. 그래도 간간이 소식은 전해야 하니까.”
“전서구요?”
“응, 없어?”
“있긴 한데……. 연초에 지원금을 보내 주실 때 빼고는 따로 연락을 안 해서요.”
“뭐 못 가면 어쩔 수 없구. 나중에 청해성에서 보내면 되니까.”
“어쨌든 알겠습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두 분.”
“그래.”
“그리고 잘 어울리세요.”
거기까지 영업력 발휘하지 않아도 된다, 이 새끼야.
유칠은 당세령과 진무가 사라질 때까지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자, 그럼 이제 달려 볼까?”
“그래.”
그녀의 말에 진무가 말고삐를 힘껏 움켜잡았다.
하루를 푹 쉬어 상쾌한 기분에 보기에도 윤기가 좔좔 흐르는 힘 좋은 한혈마까지.
모든 것이 갖춰졌으니 멀리 보이는 숲을 그대로 질주해 통과할 생각이었다.
쫘악!
말채찍을 내려치자 힘 좋은 두 필의 말이 바람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마을을 벗어나 숲의 어둠 속으로 접어들었다.
청해를 향해 갈수록 평지가 급격하게 사라졌다.
원래 중원의 서쪽은 고원이었고, 평지가 거의 없었다.
산자락은 대부분 암반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널린 것이 기암괴석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평야보다 산자락을 오가며 달릴 때가 더 많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을 타고 갈 만큼의 길이 발달해 있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들의 행로는 곤륜을 향해 직선으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시는커녕 인적조차 드문 그곳을 향해.
얼마나 말을 달렸을까?
쉬지 않고 채찍질을 하던 진무는 묘한 느낌을 감지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산들이 장엄하게 펼쳐진 곳.
‘뭐지?’
진무가 눈이 살짝 가늘게 뜨고 좌우를 살폈다.
무언가 따라오고 있었다.
당세령을 호위한다던 무인?
아니, 그러기에는 느껴지는 수도 너무 많았거니와 지난번에 자신에게 들킨 이후로는 가까이 다가온 적도 없었다.
그럼 짐승?
“왜?”
갑자기 진무의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지자 당세령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느끼지 못한 것일 터다.
진무는 손가락으로 당세령을 제지한 뒤 날카로운 눈매로 주변을 살폈다.
이미 멈춰 선 말은 거칠게 투레질을 해 대고 있었다.
“…….”
주위를 살피며 진무는 귀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들리지 않는다.
짐승이라면 그럴 리가 없다.
일단 숨소리를 감출 수 없을 터였고, 짐승들 특유의 묘한 살기가 느껴져야만 했다.
마치 정지해 버린 것처럼 종적을 감춘 느낌.
[야, 너 개코랬지?]난데없는 전음에 당세령이 발끈하며 눈을 세모꼴로 떴다.
[냄새를 잘 맡는다고 했다.] [맡아 봐.] [뭘?] [이 주변에 깔린 이질적인 냄새.] [니가 너무 옆에 있어서 만리추종향 냄새만 나는데?]그러게 왜 그딴 걸 뿌린 거냐. 이 쓸모없는 여자야.
진무가 짜증스럽게 얼굴을 찌푸리는 순간.
“어?”
당세령이 문득 한곳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말 등을 차고 날아오른 진무의 신형이 곧바로 그쪽을 향해 쏘아져 나갔다.
파앙!
위치는 절벽에 자리 잡은 작은 바위.
휘어져 뻗은 검이 순식간에 푸른 검기를 만들어 내며 바위를 조각냈다.
그리고 바위 조각과 먼지만이 있어야 할 곳에 튀어 오르는 붉은 선혈.
“적이다!”
진무가 외침과 동시에 또 다른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멀 때야 몰라도 이미 가까워진 이상 아무리 몸을 숨긴다고 해도 진무의 기감을 피할 수 없었다.
“칫! 발각되었다!”
다급히 터져 나온 목소리와 함께 수십여 명의 복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부는 진무를 향해.
또 일부는 당세령을 향해.
깡! 스걱!
수는 많았지만, 진무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어김없이 살이 잘려 나가고 피가 튀어 올랐다.
진무는 싸움을 시작함과 동시에 적들을 빠르게 파악하고 있었다.
스물, 아니 그 이상.
청성산에서 보았던 자들과 비슷한 무위를 가진 자들이었다.
문제는 당세령이다.
그녀에게 붙은 놈들이 전보다 많았다.
또한, 당시에는 당세령이 먼저 선공을 해서 적들의 시선을 빼앗았지만, 지금은 기습을 당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당세령이 암기를 쓰는 무인이기 때문이다.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전략을 세워 사용했을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는 암기는, 반대로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제대로 힘을 쓰기 어렵다.
당위라면 몰라도 당세령은 아직 이 불리함을 뒤집을 만한 실력이 되지 못했다.
암기를 배제하고 오롯이 그녀의 무위로만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
아니나 다를까 이미 전에 보았던 백색 연검을 뽑아 채찍처럼 휘두르며 적과 싸우고 있었다.
결국, 기물이 제 위력을 발휘하길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얼마나 버틸지 예상할 수 없는 그녀를 위해.
“하압!”
진무의 검에 유형화되어 피어오른 푸른 선기가 곧장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쾅! 퍼펑! 펑!
검을 떠난 검환이 적들의 몸을 꿰뚫고 지나가 절벽 면에 닿아 폭발하자 먼지가 자욱하게 일며 절벽이 허물어져 내렸다.
“모조리 썰어 주마, 개새끼들!”
진무가 두 눈에 시퍼런 광망을 뿌리며 먼지 속을 누비기 시작했다.
선기가 뭉쳐진 푸른 검강과 함께.
* * *
“그 녀석……이었군.”
“예?”
절벽 위에서 시작된 싸움을 지켜보던 대랑의 말에 청랑대 오 조장 미추가 의아하게 물었다.
하지만 대랑은 대답 대신 싸늘한 미소를 머금었다.
“범상치 않을 것이란 생각은 했으나 그새 저렇게나 발전했는가.”
“…….”
“미추, 일 조에게 신호를 보내라. 청랑대를 물려 주변을 포위한다.”
“하면?”
미추가 답을 구했으나 대랑은 이미 절벽 아래를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신호를 보내라! 모든 조는 일대를 포위한다!”
“예!”
대답과 동시에 뿔피리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뿌우우-!
절벽에 닿은 소리가 메아리치는 순간 공격하던 복면인들이 일제히 몸을 뒤로 뺐다.
죽인 자가 고작 열도 되지 않는다.
또한, 당세령에게 붙은 자들조차 승기를 잡고 있음에도 물러나기 시작했다.
설마?
진무는 별안간 스치는 불안감에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절벽을 훑어 내리듯이 달려오는 거대한 기운.
“……!”
안력을 집중해 다가오는 기운을 살피던 진무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놈이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혔던, 대랑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월각의 노인.
그리고, 그의 신형이 경로상에 있던 당세령을 향해 쇄도했다.
“안……!”
진무의 다급한 외침이 끝을 맺기도 전에 당세령은 다가오는 적을 향해 연검 유운을 펼쳐 내었다.
뱀의 대가리처럼 세워진 검극이 살기 어린 기운을 품고 대랑의 몸을 꿰뚫을 것처럼 뻗어 나갔다.
따아앙!
날아오는 그대로 후려친 주먹에 유운의 끝이 튕겨 나가자 당세령의 얼굴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나를 뭘로 보고!”
취릿! 파앙!
내려치듯이 검의 손잡이를 당기자 유운검이 생명을 머금고 살아난 듯 나선처럼 휘어지며 대랑의 몸을 휘어 감았다.
전처럼 층층이 썰어 버리려는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
대랑의 몸이 유령처럼 휘어지며 나선의 틈에서 빠져나오더니 순식간에 당세령의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망할!”
탄강을 써서 공격하면 당세령이 다칠 수 있었기에 진무가 다급하게 몸을 날렸지만 너무 늦었다.
준비 동작이 존재하지 않는 대랑의 일장이 당세령의 옆구리에 닿았다.
그리고 거대한 기가 요동치듯이 폭발했다.
퍼어엉!
일장을 고스란히 맞은 당세령의 몸이 달려온 진무보다 빠르게 튕겨 나가 절벽에 부딪혔다.
쿠웅.
“제길!”
진무가 급히 몸을 돌려 당세령의 앞을 막아섰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적의 공격에서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당세령!”
대랑이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었기에 온전히 당세령을 돌볼 수 없었다.
“크으…….”
“……!”
다행이다.
힘겨워 보이긴 해도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만한 일장을 맞고도 정신은 있는 모양이었다. 이건 뭐 인간 방패도 아니고, 그놈의 맷집 때문이라면 얜 진짜 난년이다.
그 모습에 다가오던 대랑이 멈춰 섰다.
“호오? 그걸 맞고도 버텼단 말이더냐?”
살기로 가득한 와중에 신기함이 묻어나는 눈빛.
“괜찮냐?”
“뭐……. 심하게 욱신거리긴 하네.”
맷집이냐? 역시 맷집인 거냐?
진무가 힐끗 고개를 돌리자 그녀의 옆구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보이는 저…….
“……너?”
진무는 어이가 없었다.
맷집만이 아니었던 거다.
옷 속에 받쳐 입은 저 빛나는…….
“천잠보의가 아니었으면 바로 뒈질 뻔했네.”
천잠보의라니.
당세령이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아 내며 진무의 옆에 섰다.
얘는 정말…… 당가를 떠나면서 뭘 얼마나 들고나온 걸까.
역시 돈은 많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