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진무의 앞을 가로막은 당세령의 등.
설마? 그 무시무시한 뇌기의 강기 구슬을 막았……다고?
“크으윽.”
진무의 의아한 표정에 대한 답을 들려주듯 당세령이 신음성을 내뱉는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은유검은 흉물스러울 정도로 조각난 채였고, 검을 들고 있는 팔은 피범벅이 된 채로 축 늘어져 있었다.
옷은 물론, 살가죽까지 터져 나가 근육이 드러나 보일 정도였다.
“……너?”
일그러진 진무의 표정에 당세령이 고통을 참기 위해 이를 악물고 웃었다.
뒤늦게 그녀를 찾아 함께 온 구척의 만류에도 포위망으로 다가섰던 당세령은 진무가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이 지니고 있던 암기를 모조리 뿌렸다.
아무리 훈련이 잘된 청랑대의 무인이라고 하더라도 당가가 가진 암기 중에서도 최정수에 속하는 두 개를 당해 낼 수는 없었다.
포위망이 얇아진 틈을 타 당세령이 파고들었고, 구척이 막는 사이 진무를 향해 뛰었다.
뇌구의 앞으로 다가선 당세령은 은유검을 원처럼 꼬아 휘둘렀다.
뇌구의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판단하고 행동할 정도로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었다.
당세령은 나선 문양으로 만든 방패처럼 변한 은유검으로 뇌구를 막았다.
그 결과가 지금의 모양이다.
은유검은 박살이 났고, 그녀는 한쪽 팔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버린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녀가 팔 하나를 내주는 정도로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당가의 기보인 은유검이 강기에 맞설 정도로 대단한 기물이기도 했거니와, 앞선 진무와의 싸움에서 대랑이 과할 정도로 많은 내력을 소모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의 맷집도 한몫을 단단히 했을 터다.
“왔구나……. 지원군은?”
“크으…… 아직.”
대랑을 노려보는 당세령이 얼굴을 고통스럽게 구긴 채 고개를 저었다.
지원군이 안 왔단다. 근데 뭐 하러 혼자 왔단 말인가?
또라이인 줄은 알았지만 정말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겨우 목숨 걸고 살려 놨더니…….
안 그래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나타나서는.
이렇게 직접 뒈지러 올 줄 알았으면 그냥 도망이나 치는 거였다.
진무는 살면서 가장 큰 후회를 하고 있었다.
“허! 이건 또 뭐냐?”
대랑이 치밀어 오른 화를 겨우 참는 표정으로 당세령을 노려보았다.
그러곤 주위를 슬쩍 살핀다.
포위망을 구성한 한 곳에서 들려오는 병장기 소리.
지원 병력이 아니었다.
“어이가 없구나. 이놈을 구하러 왔더냐? 고작 혼자서?”
“아니…… 둘. 한 사람은…… 싸우고 있어.”
“허, 실로 미친 것들이로고.”
상처를 입었음에도, 말을 잘 이어가지 못하면서도 진무만큼이나 당당한 그녀의 말에 대랑은 분노도 잊고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쪼개기는……. 망할 난쟁이 똥자루 같은 미친 노인네야. 늙었으면 사람들 고생시키지 말고 방구석에나 틀어박혀 있을 것이지. 덤벼! 그 누런 이빨을 죄다 뽑아 줄 테니까!”
말하기조차 버거워 비 맞은 중놈 중얼거리듯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였지만, 대랑이 그를 듣지 못할 리 없었다.
상대가 어떤 괴물인지도 모르면서. 한 대 처맞고 사경을 헤맸던 주제에, 너덜거리는 팔을 하고서 인신공격에 해당할 정도로 직설적인 도발까지 주절대는 중이다.
더구나.
“이런 개 같은 년이! 오냐! 둘 모두 죽여 주마!”
도발이 통해 버렸다.
대랑이 살기를 사방으로 뿜어내며 양손에 강환을 만들어 내고, 당세령이 자신이 가진 기운을 모조리 끌어 올리며 쏘아져 나갔다.
콰앙!
아무리 대랑의 기운이 약해졌다고 한들 그녀가 어찌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어불성설이다.
고작 두어 번의 초식 만에 강기를 머금은 주먹에 복부를 맞고 되돌아와 땅바닥에 처박혀 뒹굴었다.
“끄으으…….”
겨우 몸을 일으키는 당세령의 모습에 진무의 눈가가 찡그려졌다.
또 버텼다.
찢어진 그녀의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내의.
역시나 당가의 기물 천잠보의다. 보검으로도 잘라 낼 수 없다는 그것의 영능이 그녀를 대랑의 일격에서 또 버텨 내게 한 것이다.
하지만 입으로 검붉은 피를 게워 내는 것도 모자라 복부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부러진 갈비뼈가 충격으로 인해 어딘가를 찔러 버린 게 분명했다.
은유검과 천잠보의.
대랑의 공격을 두 번이나 버티게 해 준 기물을 가졌다는 것은 천운임과 동시에 억세게 재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두 번의 공격이 얼마나 강력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세 번은 없을 것이 분명했다.
“야, 너…… 그러다 죽어.”
진무의 말에 당세령이 겨우 몸을 일으키고 고개를 돌렸다.
“버티고…… 있어. 이번엔…… 내가 막아 줄게.”
입가가 피범벅이 된 채로 웃는다. 미쳤다. 정상이 아니다.
당세령은 두 눈에서 새파란 독기를 뿜어내며 비틀비틀 다가와 진무의 앞을 막아섰다.
툭 치면 그대로 나자빠질 모양새여도 대랑이라는 놈이 더는 봐줄 리가 없었다.
“천잠보의…… 그래, 네년은 그것을 입고 있었지.”
눈이 아예 돌아가 버린 대랑의 손에 또다시 강렬한 백색 구체가 어려 파지직거렸다.
망할 뇌구.
분명 자신이 가진 힘을 모조리 담아 던질 것이 분명했다.
“괜찮아. 아직은…… 넌 내 거니까…… 내가 지켜 줄게.”
“…….”
당세령이 힘겹게 중얼거렸다.
자신의 앞을 막은 그녀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이 보였다.
미친년. 진짜 뭐 하러 와서는.
진무가 이를 악물었다.
여지껏 솟구치는 핏물을 삼키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래도 당세령이 두 번이나 막아 주었기 때문에 내상으로 들끓던 기운이 조금 가라앉고, 기혈이 제자리를 찾아 가고 있었다.
당세령은 죽을지도 모르는, 아니 반드시 죽게 될 상황임에도 어떻게든 진무를 지키기 위해 악착같이 버티고 있었다.
딱히 감동적이지는 않다.
부질없는 몸부림에 불과할 뿐이다.
천우명을 제외한 누구도 자신을 살리기 위해 앞을 가로막은 일은 없었다.
잘 보이기 위해서라면 모를까?
동료? 애초에 그따위 말로 맺어진 관계가 아니었다.
쓸데없는 일에 목숨을 거는 행동이야말로 가장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진무였다.
‘그래도…….’
그녀에게 지켜질 수는 없었다.
남자가 여자를 지켜야 한다는 따위의 이유가 아니다. 비록 그것이 오랫동안 이어져 온 불변의 진리처럼 통용되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오만한 허세일 뿐이었다.
여자가 세면 남자가 지켜질 수도 있지.
하지만 보호받는 것 자체가 진무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누가 감히 자신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중원의 절대자 중 하나였던 사패천주 혁련무강이었으며, 무당에서 가장 강한 무당지검이었다.
그런데 자신을 지킨다고? 새파랗게 어린 년이?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리하게 둘 수는 없다.
뿌드득.
진무가 이를 갈며 회복된 진기를 사지백해로 퍼트렸다.
둘 다 죽을지도 모른다.
놈이 강환을 사용하기 시작한 이상 접근할 수는 없었다.
아직 몸 상태가 그만하질 않았다.
진무는 짚고 있던 검의 끝자락 날카로운 부분을 둘로 쪼갰다.
하나는 두툼하게, 또 하나는 얇고 예리하게.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무당에게도 암기술 하나쯤은 있었다.
검공으로도 충분히 강했고, 정정당당함을 표방하기에 사용하지 않을 뿐이었다.
무당의 폐목환(閉目換).
허수로 상대의 눈을 가리고, 그 그림자에 담긴 공격으로 적을 노리는 음험한 공격법이다. 그렇기에 더욱 쓸 리가 없는, 그야말로 암수.
딱 한 번.
더 이상의 기회는 없을 것이다.
놈이 당세령을 공격하느라 잠시간 방어가 약해지는 틈을 노려야만 했다.
대랑의 정신이 당세령에게 집중된 사이 두 개의 조각에 진기를 나누어 담았다.
“와! 개 같은 노인네야! 몇 번이고 막아 줄 테니까!”
당세령의 악에 받친 외침이 핏물과 함께 토해지고.
“이런 망할 년! 독하기가 사갈 같구나! 죽어라!”
자꾸만 일어나는 당세령으로 인해 완전히 꼭지가 돌아 버린 대랑이 가진 모든 힘을 끌어 올려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뇌구를 만들었다.
지금!
대랑의 손이 뿌려지고 강기가 허공을 날아오는 순간, 두 개의 검 조각을 순차적으로 쏘아 낸 진무가 남은 모든 진기를 동원해 당세령을 안고 굴렀다.
콰아아앙!
뇌구의 폭발이 진무와 당세령을 집어삼키고.
따아앙!
들켜 버린 첫 번째 조각이 대랑의 손에 튕겨 나갔다.
“감히, 이따위 치졸…….”
푸욱!
대랑의 눈이 황당함을 머금고 크게 뜨였다.
그의 심장 부위에 박힌 얇은 검 조각.
분명 막았거늘.
그 뒤에 하나가 더 숨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생각보다 깊이 들어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쓰러질 정도의 상처는 아니었지만, 그 한 방으로 인해 기운으로 막고 있던 상처가 터져 버린 것이 문제였다.
복부와 가슴, 그리고 눈의 상처.
재차 핏물이 터지고, 기혈의 흐름에 아주 작은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대랑이 순간적으로 비틀거렸다.
“이, 이 망할 것들이 감히 나에게.”
으드득.
심장 부위에 박혀 있던 검 조각을 뽑아 우그러뜨린 대랑이 고개를 들었다.
당세령은 충격파에 정신을 잃은 뒤였고, 진무는 그녀를 보호하듯이 그 위를 덮고 있었다.
움직일 힘도 없는 놈이.
밟으면 그저 꿈틀거리는 게 고작인 놈이.
눈과 가슴을 긋고 복부에 상처를 남긴 데다, 이제는 암기까지.
더욱이 갑자기 나타난 년은 자신의 공격을 버텨 저놈에게 시간을 벌어 주었다.
분노로 막아 둔 눈의 상처에서 흐른 피가 대랑의 눈동자를 다시금 붉게 물들였다.
그래. 목을 비틀어 뽑자.
죽어서도 그 고통을 잊지 못하게 해 주리라.
대랑이 진무와 당세령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 순간 사방에서 병장기 소리가 들려와 대랑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이전처럼 한 곳이 아닌, 그들의 포위망 전체에서.
설마 지원군?
그럴 리가, 분명 지원군 경계를 위해 일 조장인 벽하를 보냈다.
지원군이 왔다면 마땅히 그가 먼저 자신의 앞에 나타나 경고를 했어야만 했다.
“대랑! 당가입니다. 청성과 아미까지 왔습니다! 벽하와 청랑 일 조는 전멸했습니다!”
“……!”
외곽을 포위하고 있던 오 조장 미추의 말에 분노로 가득 차 있던 대랑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분노로 인해 뒤죽박죽되었던 정신이 돌아오고, 마음이 냉정하게 가라앉았다.
물러나야 한다.
하지만 몇 발자국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진무와 당세령.
아직은 시간이 있다.
당가와 청성, 아미가 왔다고 해도 청랑대의 무인들이라면 얼마간은 버텨 줄 것이다.
물러날 때 물러나더라도 눈앞에 있는 두 연놈만은 찢어 죽이고 가리라.
“어이…….”
“…….”
당세령을 덮고 있던 진무가 힘겹게 몸을 돌려 누웠다.
“들려?”
이 미친놈이 드러누워서는 또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어째서 다 죽어 가는 놈이 저런 웃음을?
“큭큭, 얘가…… 당가…… 대가주…… 딸이거든.”
“……?”
“그 아비가…… 아껴 마지……않는.”
우우우우!
때맞추어 잔인함을 머금은 긴 장소성이 들려온다.
“니들……이 깨운 거야. 괴물을…….”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점점 짙어지는 진무의 웃음과 함께, 막대한 존재감을 가진 그 무언가가 수십의 섬광을 뿌리며 먹잇감을 향해 하강하는 독수리처럼 내려앉는다.
위협을 느낀 대랑이 급히 몸을 뒤로 물렸다.
파파파파팍!
그리고 그와 함께 떨어진 섬광이 미처 몸을 빼지 못한 오 조장 미추의 몸을 꿰뚫었다.
퍼석!
그리고 쓰러진 미추의 머리를 짓밟아 터트리는 그 괴물.
녹빛 장삼을 휘날리며 내려온 그의 모습에 공격을 피해 물러났던 대랑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다, 당위…….”
암황, 당위.
사천의 제왕이 거대한 분노를 머금고 강림했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위압감으로 보이는 모든 곳을 짓누르며.
“크크, 넌…… 이제…… X 됐어.”
당위의 등장과 함께 긴장이 풀려 버린 진무가 정신을 잃으며 힘겹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