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24
124화
당위의 등장과 함께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던 청랑대의 육 조장 별한과 무인 일부가 빠져나왔다.
“대랑!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이곳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속히 피하십시오!”
수십 명의 무인들이 대랑의 앞을 가로막으며 당위를 향해 검을 세웠다.
하지만 당위의 시선은 그들을 향해 있지 않았다.
“세령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신의 딸.
막돼먹은 성격으로 자랐지만 한번 탓해 본 적도 없는 딸.
오빠들과 스무 살이나 차이가 나는 딸은 어미의 젖조차 제대로 물지 못하고 자랐다.
그녀가 태어나던 해 어미가 죽었기 때문이다. 워낙 노산이었던 탓이었다.
그럼에도 씩씩하게 자랐고, 가끔씩 사고를 치긴 해도 엇나가지는 않았던 어여쁜 딸이었다.
그런데 매 한번 들어 보지 않은 자신의 딸이 어째서 저리도 처참한 모습으로 누워 있단 말인가?
한쪽 팔은 못 쓰도록 변해 버렸고, 복부에서 번진 핏자국으로 몸 전체가 붉게 물들었다.
“아아…….”
당세령을 향해 뻗어지는 당위의 손끝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곱디고운 네가 어찌.”
잔잔하게 울리는 목소리에는 안타까움과 함께 지독한 분노가 서려 있었다.
“망할 놈. 감히 내 딸을 보호조차 하지 못할 실력이었더냐?”
그 분노가 순간 진무를 향한다.
화가 나는 것이다.
그것이 진무의 죄는 아니었지만, 그로 인해 위험에 처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양소방의 전서구에도 적혀 있지 않았던가?
불의한 놈들이 진무를 노리고 있다고.
“지금입니다. 대랑. 놈의 시선이 돌려진 틈에…….”
피윳!
허공을 가른 한 줄기의 섬광에 대랑을 채근하던 육 조장 별한의 머리에 붉은 구멍이 뚫렸다.
“닥치고 기다리라.”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당위의 음성이 모든 곳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곧이 들을 청랑대가 아니었다.
이미 청성과 아미, 당가의 무인들이 외곽을 공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까지 치고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 위험해진 이상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젠장! 공격해라!”
단 한 수의 손짓에 별한이 죽어 버리자 청랑대의 무인 수십이 당위를 향해 몸을 날렸다. 자신들은 여기서 목숨을 잃더라도 대랑만은 도망치기를 바라며.
“날파리 같은 것들이…….”
고개를 돌린 당위의 미간에 깊은 골이 만들어지고 그의 손이 가볍게 들렸다.
쿠우웅!
짓누른다.
고작 올라갔다 내려진 손짓 한 번에 대기가 압축되듯이 짓눌리고, 몸을 날렸던 청랑대의 무인들이 모조리 바닥에 처박혔다.
그리고 수십, 수백, 수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섬광이 여름날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콰콰콰콰!
바닥에 처박힌 청랑대의 무인들은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그들의 몸뿐 아니라 그들 주변에 빼곡하게 박혀 있는 수많은 암기.
간격을 재는 것이 무색할 만큼 많은 양이었다.
그것은 이미 당위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허공에 뿌려져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당위이기에 가능했다.
그가 바로 수천 개의 암기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 어느 곳이든 날려 보낼 수 있다는 시대의 절대자 암황이기에.
청랑대 무인들의 시신에서 빠져나온 핏물이 바닥을 가득 적시는 사이 당위의 시선이 대랑을 향했다.
“네놈이냐? 내 딸을 이리 만들어 놓은 것이.”
“…….”
당위의 서늘한 물음에 대랑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당위에 비해 무공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대랑이 익히고 있는 뇌령신기나 그가 이룬 경지는 중원 정파를 이끄는 정무칠성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고, 능히 승부를 볼 만큼 강했다.
하지만 진무에게 입은 상처. 소모해 버린 공력.
그로 인한 차이는 극명하다.
또한, 이미 적들에 의해 일대가 포위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을 뚫어 낸다 해도 지금의 몸 상태로는 당위의 암기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상대할 수 없다면 비밀이라도 지키는 수밖에.
‘아, 삼궁주. 내가 너무 오만했던 모양이오. 나로 인해 아까운 청랑대마저 전멸하게 되었구려.’
후회는 해서 무엇하랴. 이미 승패는 판가름 난 것을.
하지만 혼자 죽을 수는 없다.
죽더라도 자신의 묘비에 새겨 둘 무인의 이름 하나쯤은 필요하다.
정무칠성의 한 사람인 암황 당위.
그리고 언젠가 궁의 앞길을 막게 될지도 모를 전도유망한 약관의 무인 진무.
그 정도면 충분하다.
대랑은 당위를 노려보며 자신이 가진, 자신에게 남은 모든 기운을 끌어 올렸다.
파지지직!
극한까지 끌어 오르는 뇌령신기에 그의 전신에서 전격이 튀어 올랐다.
‘내가 오늘 이곳에서 죽더라도 부디, 대궁주와 궁의 앞날을 부탁하오. 궁의 원대한 계획을…….’
양손을 역으로 향하게 한 대랑의 손이 그 안의 공간을 억누르듯이 합쳐진다.
뇌령신기, 멸천뢰(滅天雷).
응축된 기운이 서서히 형체를 갖추자 대랑의 눈동자가 백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기운을 이기지 못한 옷자락이 찢어질 듯 펄럭거리고 바닥의 돌이며 흙이 거세게 밀려났다.
“네놈…… 지금 무슨 짓을?”
대랑의 모습에 당위의 눈동자에 옅은 긴장감이 어린다.
“크크크, 암황. 아무리 네놈이라고 해도 절대로 막을 수 없을 것이다.”
“…….”
눈앞의 노인. 그가 대체 무엇이관데 이만한 기운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의 두 손에 모여 응축된 기운.
그는 지금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끌어 올리고 있다.
뒤틀려 있는 기운뿐 아니라 생명력의 근원인 선천지기마저 더하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다.
이미 눈동자는 초점을 잃었다.
그리고 불안정하다. 당장에 터질 것처럼.
그는 지금 자신의 기운으로, 자신의 생명까지 담보로 하여 일대를 날려 버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제길!”
강기의 무인이다.
느껴지는 기운의 크기를 보았을 때 자신에 근접한 경지에 도달한 자다.
그런 자가 동귀어진을 결심한 이상 피하지 못할 것을 직감한 당위는 곧장 진무와 당세령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모든 기운을 뽑아 쌍장에 실어 뻗었다.
콰류류류!
당위의 쌍장에서 강맹한 열기가 쏘아져 나가고.
꾸우우우!
괴기스러운 소리와 함께 빨려 든 대기가 짓눌려 그 한계점에 달해 손이 겹쳐지는 순간 폭발했다.
쿠아아앙!
거대한 폭발에 이은 빛무리가 눈이 시릴 만큼 세상을 환하게 물들이고, 폭풍이 사방을 휩쓸고 퍼지면서 모든 것들을 소멸시켰다.
자갈들이 부서져 모래 알갱이처럼 아스러지고, 거대한 기암괴석의 절벽은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휘오오오!
그리고 한 곳을 핵으로 삼아 생겨난 회오리.
폭발이 만든 바람과 먼지가 그 중심의 진공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 줄기의 빛이 섬광처럼 뻗어 나간다.
퓻!
공기의 마찰조차 무시해 버린 빛이 모든 것이 모여든 진공의 한중간을 꿰뚫었다.
푸스스스.
세상을 집어삼킬 듯 빨아 대던 진공의 회오리가 일순 멈췄다.
속절없이 몰아치던 바람이 가라앉자, 흙먼지와 돌 더미가 조각나 버린 육편과 핏물을 머금고 흩날리는 재처럼 떨어졌다.
쿠우우우.
폭발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뒤틀린 대기가 비명을 질러 대었고, 그 중심의 광경이 드러났다.
거대한 짐승이 깨끗하게 물어뜯고 지나간 것처럼 상체의 반쪽이 날아가 버린 대랑.
그를 중심으로 깊게 팬 십여 장의 원형 구덩이.
그리고 원래의 자리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선 당위.
녹빛 장삼은 형체 없이 사라졌고, 양팔은 피투성이로 변해 있었다.
그로 인해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진무와 당세령.
마지막 일격을 당위가 자신을 희생해 막아 낸 것이다.
대랑은 끊어지는 생명의 마지막 순간에 당위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무엇…….”
상체의 반이 뜯겨 버린 상태임에도 아직 기가 흩어지지 않아 쓰러지지 않은 대랑이 쥐어짜듯이 묻는다.
진공의 회오리를 멈춘 한 줄기의 섬광.
“당가 암기술의 궁극, 일점혈(一点穴).”
“일점…… 좋은…… 과연, 암황.”
대랑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내력이 온전했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 진무에게 상처를 입지 않았다면 막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이제 와 무슨 소용인가.
푸학!
세차게 뿜어지는 피와 함께 대랑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우욱!”
그와 동시에 당위가 무릎을 꿇었다.
대랑이 죽어 가면서 펼친 마지막 초식의 위력은 가공할 정도였다.
도대체 정체가 무엇이기에 이런 위력의 무공을 사용한단 말인가?
천천히 일어난 당위의 시선이 맑아진 하늘 위의 구름께에 닿았다.
“조용하던 무림에 무언가 태동하고 있단 말인가? 앞으로 시끄러워지겠구나. 꽤나…….”
읊조리듯 중얼거리는 그의 목소리 뒤로 싸움이 끝나 가고 있었다.
청랑대의 무인들은 세 문파의 협공을 견디지 못했고, 도망치는 이 하나 없이 잡히거나 죽었다.
당가 세력권의 끝자락 감자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던 기암괴석의 절벽 계곡.
불어오는 바람에 잔인한 혈향이 감돌고, 수도 없이 널린 시신 위로 까마귀 떼가 날아들었다.
* * *
누군가에게는 치열했고 누군가에게는 목숨을 건 싸움이 끝난 지 이틀.
연합했던 아미와 청성의 무인들이 돌아가고 난 뒤, 감자현의 객점 안에는 각 파의 장로들과 당위가 일부의 무인들과 함께 머무르고 있었다.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소?”
다가온 청성의 장로 녹운각주 자경의 물음에 당가의 무인이 고개를 저었다.
객점 후원에 마련된 당가의 거처.
그곳에는 정신을 잃은 진무와 당세령이 머물고 있었기에 당가의 주력인 독혈각 무인들이 물샐틈없이 둘러싸고 경계를 서고 있었다.
진무와 인연이 있던 자경이었으나 상태를 확인할 수조차 없었다.
당위의 명령으로 인해 누구도 그 안에 발을 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는 수 없이 물러난 자경이 탁자로 돌아와 앉자 아미파의 장로 보현이 넌지시 묻는다.
“암황께서 상처를 입을 정도라니, 도대체 적들의 정체가 뭐란 말입니까?”
“글쎄요. 포로들 모두를 당가에서 구금하고 있으니 알 길이 없지요.”
“그와 비슷한 자들이 청성에도 나타났다 하지 않았습니까?”
“예. 하지만 모두가 죽은 뒤였고 그에 대한 조사도 당가에서 했기에…….”
자경이 씁쓸하게 웃었다.
당가가 마치 주인이라도 된 양 나서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현장에는 그 성질 더럽기로 소문난 암황 당위가 직접 와 있다.
더욱이 그 딸이 사경을 헤맨다고 하니 감히 따지고 들 수가 없었다.
“흠.”
보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불호를 외웠다.
그들과 싸웠던 이들은 보통의 인물들이 아니었다. 능히 일파에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을 만큼 뛰어난 자들이었다.
특히나 당위와 싸운 자가 남긴 흔적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십여 장의 너비에, 족히 반 장은 될 듯한 깊이로 파인 원형 구덩이.
정무칠성 정도는 되어야 가능한 수준의 흔적이었다.
“당대의 무당지검이 대단하긴 한 모양입니다. 암황을 상처 입힌 자와 싸우고도 목숨을 부지했다니.”
보현의 말에 자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보았다지요?”
“예. 그의 말로는 의기의 경지라 했는데…….”
“의기요? 약관인 무인이 의기의 경지에 올랐단 말입니까?”
보현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랐지만, 자경의 표정은 답답하기만 했다.
어쩌면 진무가 제 실력을 감추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탓이다.
어쩌면 의기가 아닌 강의 경지인지도…….
‘무당은 실로 대단한 자를 키워 내었구나.’
자경이 속으로 가만히 도호를 외는데 객점 밖이 소란스러웠다.
그리고.
“진무 도장은 어디에 있나? 암황은 또 어디에 있어?”
반가운 얼굴이 찾아왔다.
쉬지 않고 달려오느라 흙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쓴 양소방과 용봉단의 칠 조 무인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