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비키시오!”
청상의 기세가 날카롭게 변하고, 청우가 두툼한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객점 안이 당장에 칼을 뽑고 주먹을 휘두를 듯이 흉흉한 분위기로 변해 버렸다.
“물러나시오.”
다가선 청상과 청우를 막은 독혈각의 무인들.
그들 역시 마치 적을 대한 것처럼 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기세를 뿜는다.
“비키라 했다.”
청상의 살기가 닿는 모든 것을 헤칠 듯이 날카롭게 뿜어 나오며 당가의 무인들을 위협했다.
물론 무당의 이대제자이자 용봉관 을무반 칠 조장에 불과한 그가 나설 자리는 아니었다.
양소방이 있었고, 칠 조의 교두인 소요검객 담평익이 함께였기 때문이다.
그가 과할 정도로 살기를 뿜는 것은 진무 때문이었다.
뒤늦게 당가가 거처로 삼은 감자현의 객점에 들어섬과 동시에 진무를 찾았다.
청성과 아미의 장로들에게 들은 바로는 상태가 위중하다 했다.
하지만 독혈각의 무인들이 길을 막고 비켜 주지 않자 화가 난 것이다.
‘허, 평소에는 차분하고 냉철하던 청상과 순박하기만 한 청우가 저런 모습이라니.’
담평익은 지금 둘이 보이는 분노에 의아함을 품었다.
당장이라도 싸움이 일어날 듯한 분위기.
“무당의 제자들은 그만 물러나거라.”
양소방이 둘 사이에 이어지던 팽팽한 긴장감을 덜어 내었다.
“어르신!”
청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소리를 지르자 양소방이 눈을 찡그렸다.
“내 말이 들리지 않는가?”
“하지만…….”
청상이 비벼 볼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진무의 상태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차마 발을 물릴 수밖에 없었다.
“청상.”
보다 못한 담평익이 청상에게 다가갔다.
“물러나거라. 설마하니 당가가 진무 도장에게 위해라도 가하겠느냐?”
“담 교두님.”
“어허, 물러나래도. 이곳은 사천이다. 또한, 당가의 객점이야. 당가에는 당가의 법도가 있음을 어찌 모르는가?”
“…….”
담평익의 꾸짖음에 청상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기세를 풀었다.
하지만 독혈각의 무인들을 노려보는 눈빛은 여전했다.
“자네들도 물러나게.”
청상과 청우가 한발 물러나자 양소방이 독혈각의 무인들을 향해 다가갔다.
“멈추십시오.”
“뭐라?”
“대가주께서 허락지 않으셨습니다.”
양소방이 직접 다가갔음에도 독혈각의 무인들이 물러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양소방이 다가온 만큼 나서며 길을 막는다.
“이자들이 감히!”
양소방이 누군지 알면서도 막아선다.
하지만 힘으로 물리고 들어가기에는 당가라는 이름이 너무 거대했다.
탁, 끼이익.
그 순간 후원으로 가는 문이 열리고 안에서 짙은 흑의에 전갈 문양을 새긴 무인이 나왔다.
“독혈각의 당태진이 무풍개 어른을 뵙습니다.”
“…….”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기에는 너무 유명한 인물이었다.
당가 대가주 암황 당위의 다섯 아들 중 둘째.
순수한 독공으로 의기의 경지에 오른 독혈각의 수장이었다.
“만독수(萬毒手). 오랜만일세.”
만독수는 당태진이 다루지 못하는 종류의 독이 없다 하여 붙여진 명호였다.
“대가주님께서 기다리십니다.”
“음.”
당태진이 옆으로 슬쩍 물러나자 독혈각의 무인들이 좌우로 물러나 길을 열었다.
자신의 아비를 대가주라 부른다는 것은 공적인 자리임을 강조하는 것과 같았다.
왠지 무거워진 마음으로 걸음을 내딛는 양소방의 뒤를, 청상이 냉큼 따라붙었다.
“무당의 제자는 멈추시게.”
“……!”
양소방이 문으로 들어섬과 동시에 당태진이 손을 뻗어 청상을 막았다.
“대가주께서 허락하신 것은 무풍개 어른뿐이라네.”
낮고 담담하지만, 목소리에 상대를 짓누르는 위압감이 서려 있었다.
“이!”
노려보는 청상의 소매를 담평익이 급히 잡아당겼다.
“비흔께 맡겨 두고 잠시 기다리세.”
“…….”
담평익의 만류로 차마 더는 내딛지 못했고 후원으로 가는 문이 닫혔다.
그 후에도 청상과 청우는 내내 그들의 앞을 막은 독혈각의 무인들을 노려보며 대치했다.
* * *
당태진에게 안내된 양소방이 찾아갔을 때, 당위는 누워 있는 자신의 딸 앞에 앉아 있었다.
다쳤다는 진무가 걱정되었지만, 일단은 당위를 만나는 것이 먼저였다.
“오랜만이오. 대가주.”
“…….”
양소방의 인사에도 당위는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그 마음을 어찌 모를까?
중원의 정보에 누구보다 밝은 양소방은 당위가 그의 딸인 당세령에 대한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일은 정무맹, 그리고 정파 무림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었다.
“따님의 일은 안타깝게 되었소.”
“…….”
양소방의 말에 돌아앉은 당위의 미간에 주름 하나가 생겨났다.
“하지만 덕분에 오랫동안 뒤쫓고 있던 적들의 잔당을 잡았으니 실로 그 공적이 크다 할 수 있소. 이제부터는 정무맹에서 맡을 테니 그만 포로로 잡은 잔당을 인계해 주시오.”
양소방의 말에 당위가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가 어째? 공적? 잔당을 돌려줘?”
“…….”
당위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들거렸다.
만약 병석에 누운 자신의 딸이 아니었다면 분명 막대한 기세를 끌어 올려 양소방을 위협했을 것이다.
“이봐, 양소방.”
“…….”
“내 딸이 다쳤어.”
“알고 있소.”
“그런데 그 원흉인 놈들을 내어달라?”
“정무맹의 중요한 일이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당위의 반응에 양소방의 눈이 매섭게 변했다.
“니들은 뭘 했나? 그동안 내내 쫓고 있었으면서 내 딸이 이 모양이 될 때까지 뭘 했냐는 말이야.”
당위의 말에 양소방의 얼굴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
“정무맹의 이름을 대면 내가 냉큼 내줄 줄 알았어? 꼴 같지도 않은 것들이 감히.”
“당위! 말을 삼가라!”
양소방이 날카롭게 외치며 노려보았다.
“조심하는 게 좋아, 양소방. 만약 네놈의 기세에 내 딸의 상처가 조금이라도 도지면 그 즉시 고슴도치로 만들어 버릴 테니까.”
살벌한 표정으로 으르렁거리는 당위의 모습에 양소방이 끓어 오르던 감정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망할 당가 놈 같으니.
제 놈이, 제 가문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그가 또 저 지랄 같은 성질머리를 부리고 있었다.
저놈의 독불장군 같은 성격 탓에 정무칠성이라 불리면서도 다른 문파와 극악할 정도로 교류하지 않는다.
‘망할 놈. 나이를 처먹어도 하나도 변하지 않는군.’
그의 나이 칠십이 넘었다.
당위를 어린 시절부터 알아 온 양소방은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애송이 시절부터도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배고 후배고 가리지 않았다.
그나마 올곧게 늙어서 다행이지, 소싯적엔 사고란 사고는 다 몰고 다닌 인물이었다.
사고뭉치라는 딸년의 성격이 어디서 왔겠는가?
자고로 피는 못 속이는 법이다.
애초에 그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협상이 어려울 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가주씩이나 된 이후에도 이렇게 대놓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긴, 평소 정무맹이 정파 무림의 수뇌 행세를 한다며 고깝게 보아 온 그가 아니던가?
오죽하면 용봉회에 당가의 인물은 단 한 명도 보내지 않았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도움이 필요할 때였지, 그와 드잡이를 할 때가 아니었다.
당가가 사로잡은 포로들은 궁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에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양소방. 잘 들어. 놈들은 당가의 식솔에게 상처를 입혔어. 그것도 내 딸에게 말이야.”
“…….”
당가가 가장 우선하는 원칙.
당가는 식솔의 죽음이나 은원을 절대 좌시하지 않는다.
그 대상이 설사 당금의 황제라고 할지라도 목숨을 바쳐 갚고자 하는 것이 당가의 철칙이었다.
더욱이 당가 직계, 그것도 제 딸이니 눈이 돌아갈 만도 했다.
뭐, 잘된 일이기는 하다.
궁이라는 자들은 이미 적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당가를 건드려 놓은 이상 앞으로 궁이라는 자들은 무림에서 가장 집요하고 잔인한 적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에 대해서 반드시 알아야만 했다.
그것이 정무맹의 뜻이었고, 양소방의 역할이기 때문이었다.
“당위. 잘 생각해라. 상대는 거대한 조직이다.”
“그래서?”
“당가의 힘만으로는…….”
“닥쳐라. 양소방.”
당위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양소방을 쏘아보았다.
“너 따위가 뭐라도 된 양 당가의 힘을 판단하려 들지 마라. 그 아가리를 꿰매 버리기 전에.”
당위의 서릿발 같은 목소리에 양소방이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사과하지. 하지만 공조가 필요하다는 것은 너도 알지 않나?”
“…….”
양소방의 말에 당위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너와 싸운 자는 대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또한 네가 잡은 청랑이라는 무인대를 이끌고 있고, 궁이라는 은밀한 단체의 소속이지.”
“…….”
양소방이 먼저 자신이 아는 바를 꺼내 놓자 당위의 미간에 주름이 하나 더 생겨났다.
당위도 잘 알고 있었다.
양소방이 말한 대랑이라는 노인.
그의 힘은 강했다.
정무칠성이라 불리는 절대자에 비견될 정도였다.
아니, 어쩌면 더 강할지도 모른다.
그런 자가 궁이라는 곳에서 일개 무인대를 이끌 정도라면 양소방의 말대로 당가만의 힘으로는 어려울지도 몰랐다.
하지만 자존심이라는 녀석이 그 사실을 인정하게 만들지 않았다.
“이봐. 당위. 어떤가? 원한다면 모든 것을 당가와 공조하겠다.”
“우리 당가가 너희의 똥구멍이나 쫓으란 말이냐?”
“아니. 명령을 들으라는 게 아니다. 어느 정도의 선만 지켜 준다면 순수하게 협조하겠다는 말이지.”
“협조? 뭐 좋아. 너희 거지새끼들의 정보력은 어느 정도 인정하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것만큼은 누구도 따를 수 없다.
누가 뭐래도 이 중원에서 개방과 사패천의 하오문의 정보력을 따라갈 수 있는 단체는 없을 테니까.
일단 쪽수부터가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괜히 십만 방도라 떠들고 다니는 게 아니었다.
살살 구슬리는 말에 당위의 말투가 누그러지자 양소방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포로들을 정무맹에 넘겨라. 개방에서 조사하겠다.”
“아니, 포로들은 당가에서 조사한다. 필요하면 동석해서 확인해.”
성질머리하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누가 조사하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어차피 궁의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이를 당가뿐 아니라 청성과 아미에서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조사해 왔던 모든 사실을 수면 위로 올리고 정무맹 예하의 모든 문파에 알려야 했다.
“좋아. 그렇게 하지. 대신 조건이 있다.”
“말해 봐. 합당하면 수락하지.”
“조사는 당가에서 하되. 함부로 움직이지 마라.”
“승인을 받으란 말이냐?”
“아니. 움직일 때는 함께 움직인다. 또한, 모든 전략은 대군사의 뜻에 따른다.”
“제갈협진의? 결국 승인을 받으라는 말이나 다름없군.”
“좋게 생각해라.”
“좋아. 하지만 협조라는 사실을 잊지 마라. 잠시 연합할 뿐이다.”
정무맹과 연관되는 것이 못내 불쾌했지만, 당위는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좋아. 그렇게 하지.”
“되었군. 언제 움직일 생각이지?”
“내 딸의 상태가 호전되는 즉시.”
“음, 많이 다쳤나?”
“빨리도 물어보는군. 걱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새끼.”
나이가 들어도 말투는 그대로였지만 그건 나름대로 괜찮다.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은 아니다. 혈기 넘치고 친근했던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하니까.
“부러진 갈비뼈가 위험했지만 다행히 폐는 찌르지 않았다. 내상이야 곧 돌아오겠지.”
“음, 위험했나 보군.”
“그래. 다만 팔이 걱정이군.”
당위의 걱정스러운 시선이 붕대로 감겨 있는 당세령의 팔을 향했다.
“진무 도장은 어찌 되었나?”
“그 망할 자식?”
당위가 또다시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진무만 생각하면 화가 났다.
대랑과의 싸움이 끝나고 딸의 상세를 살펴보았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치밀었다.
구척이 정황을 상세히 설명했기 망정이지 그 자리에서 모가지를 따 버릴 뻔했다.
딸이 상처를 입은 것은 모두가 진무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자식만 아니었으면 딸이 그딴 놈들에게 노려질 일도 없었지 않은가.
하지만 구척의 말을 들어 보았을 때, 그는 당세령의 목숨을 구해 준 것이 확실했다.
스스로 희생양이 되어서 적의 미끼가 되기까지 했는데 위험에 제 발로 나선 것은 딸이라지 않는가.
당가는 은혜를 입은 것이나 다름없다. 당가는 원수를 잊지 않지만 은혜도 잊지 않는다.
은혜를 입으면 배로 갚는다.
그것이 당가의 철칙이니까.
“몸에 좋은 걸 처먹여 놨으니 알아서 깨겠지.”
“몸에 좋은 거?”
“그런 게 있다.”
두루뭉술한 말에 양소방이 고개를 갸웃거렸고.
‘녹여 내는 건 제 놈 운이고.’
당위가 짜증을 내며 입맛을 다셨다.
“참!”
무언가 기억난 듯이 양소방을 휙 째려보는 당위.
“……?”
“니네 다음부터 전서구 반말로 찍찍 갈겨서 보내면 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