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담평익의 명령과 함께 벽에 등을 댄 이들이 깍지 낀 손을 을무반 칠 조원들이 발디딤 삼아 솟구쳐 올랐다.
을무반 칠 조가 담을 넘고 난 뒤에 이어진 정적.
어찌 된 일인지 병장기의 다툼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그그긍!
곧바로 열리는 서문.
“신속하게 돌입한다!”
현무단주 옥당의 외침과 함께 무인들이 쾌속하게 그 입구로 쏘아져 들어갔다.
동시에 담벼락의 중심을 밟고 솟구친 양소방이 허공에 높이 떠 아래를 훑었다.
“……!”
없다.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이, 이게 대체?”
마치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았던 것처럼 황량함만이 감도는 장원의 안쪽으로 내려선 양소방.
남문과 북문에서 밀고 들어온 당가와 제갈가의 무인들도 황당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양소방이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당위와 함께 제갈세가의 의창분가주가 달려왔다.
“내부를 샅샅이 살펴라! 적의 흔적을 찾아라!”
명령을 내린 양소방은 곧바로 눈앞의 전각을 향해 뛰어들었다.
벌컥!
문이 열리고 내부가 드러난다.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분명 삼궁의 종적을 발견하고 개방의 거지들이 외부에서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설마 감시를 피해 도망쳤단 말인가?
양소방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함께 전각으로 들어선 무인들을 향해 외쳤다.
“흔적을 찾아라. 이 거대한 장원에 있던 자들이 도망치고도 눈에 띄지 않았다면 필시 내부 어딘가에 통로가 있을 터. 서둘러라!”
“예!”
양소방의 명령에 무인들이 전각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일부는 서적이며 문건들을 확보했고, 일부는 혹여 있을지 모를 비밀 통로의 흔적을 살폈다.
“비흔!”
현무단의 무인 배극렬이 뛰어와 급히 고개를 숙였다.
“기관이 발견되었습니다.”
“비밀 통로구만!”
“예. 현재 의창분가주가 살펴보고 있습니다.”
“알겠네. 가 보세.”
배극렬을 따라 날 듯이 달린 장원 깊숙한 곳에 지어진 소담한 전각.
그리 크지 않은 곳이었으나 ‘匚(혜)’자 구조로 입구가 넓었다.
양소방이 도착했을 때 의창분가주 제갈현성이 전각 앞의 석상을 살피고 있었다.
“어찌 되었는가?”
“곧 입구가 열릴 듯합니다.”
“음.”
양소방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그리고 제갈현성이 곧이어 석상의 한 곳을 만지자.
쿠궁. 드드드드.
전각 앞의 마당 한쪽이 솟구쳐 오르고, 거대한 통로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이놈들, 이곳을 통해 도망쳤구나.”
양소방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사이 뒤늦게 당위와 당가의 무인들까지 도착했다.
“확인하겠습니다.”
“조심하게.”
“예!”
현무단주 옥당이 홰를 밝히고 무인들과 함께 비밀 통로의 입구로 진입했다.
그런데 막 그들이 입구를 넘어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딸깍.
소름 끼치는 소음이 들려왔다.
뒤이어 코를 찌르고 드는 유황 냄새.
설마?
양소방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곧장 소리를 질렀다.
“현무단주!”
쿠우우, 콰아앙!
거친 폭음과 함께 입구가 통째로 주저앉는다.
장원 전체가 뒤흔들릴 정도의 거대한 폭발에 귀가 먹먹해져 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폭발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연쇄적으로 작용하도록 꾸며 놓은 함정이 있었던지 장원 안의 모든 전각들에서 순차적으로 폭음이 울렸다.
쾅! 콰쾅! 쾅!
장원 내부가 삽시간에 불바다로 변하고 전각들이 모조리 붕괴된다.
내부를 살피던 무인들이 몸에 불이 옮겨붙은 채 여기저기서 튀어나와 고통스럽게 비명을 질렀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한순간에 만들어진 지옥도에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아…….”
양소방은 처참하게 변해 버린 광경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깊은 탄식만을 흘렸다.
“양소방! 물러나야 한다! 이 정도의 폭발이라면 관에서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빨리 이 자리를 수습하고 물러나지 않으면 되레 우리가 모두 뒤집어쓰게 돼!”
당위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다.
묻혀 버렸다.
겨우 쫓아온 궁에 대한 단서가 폭발하는 거대한 장원과 함께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 * *
뿌우우-
슬픔을 머금은 채 길게 울리는 각적(角笛: 뿔피리) 소리가 정무맹의 앞뜰을 침중히 흔든다.
백의를 입은 무인들이 줄지어 서 있는 사이사이 하얀 천으로 덮인 채 놓여 있는 시신들.
모두가 형용할 수 없는 진한 분노 속에서 침묵하고 있었다.
정무맹, 제갈분가, 당가 소속의 무인 스물두 명이 부상을 당하고 오십칠 명이 죽었다.
현무단주 옥당과 함께 비밀 통로로 진입했던 이들은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그들에 대한 장례는 화창한 볕 아래에서 진행되었다.
비라도 오면 좋았을 날씨였다.
차라리 그랬다면 흐르는 눈물이나마 감출 수 있었을 텐데.
단 위를 바라보는 무인들의 굳은 얼굴은 펴질 줄을 몰랐고, 흐르는 눈물은 연신 방울져 바닥을 적셨다.
단 아래.
햇볕 좋은 날.
오늘을 결코 잊지 않을 정무맹의 차디찬 분노가, 다가올 전쟁을 예견하듯 사위를 메웠다.
* * *
장례식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이, 정무맹 모처에서는 검성 철지량에 의해 회의가 소집되었다.
대군사 제갈협진, 용봉관주 등여평, 비흔 양소방을 비롯해 정무맹 예하 무인대의 수장들과 각 문파와의 연락을 담당하는 무인들이 모두 모였다.
긴급히 소집된 회의였기에 각 문파의 수뇌들은 참석하지 못하고 말을 전할 무인들만 모인 것이다.
사천에 이어 의창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장례식이 치러지는 중이기에 회의장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엄숙했다.
“모두 들어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오.”
철지량의 한마디에 조심스럽게 소곤거리던 소리마저 사라졌다.
“대군사.”
“예.”
제갈협진이 앞으로 나서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모두 사천과 의창의 사건에 대해서 들으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제갈협진은 이제껏 자신들이 은밀하게 쫓아 왔던 ‘궁’이라는 집단에 대해 설명했다.
“오 년 전부터란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실상 그들의 정체에 대해 알지 못하여 그동안 조사에 집중했을 뿐, 각 문파에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음.”
제갈협진이 손짓하자 군사부의 무인이 미리 준비된 서른두 개의 두루마리를 가져와 연락 무인들에게 하나씩 돌렸다.
“이는 지금까지 맹에서 조사해 온 궁에 대한 내용을 축약한 것입니다.”
족자를 받아 든 이들은 그 내용을 확인하고 참담하게 얼굴을 굳혔다.
그 안에는 각자가 소속된 문파의 지역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소상히 적혀 있었다.
전혀 신경 쓰지 못했던 사소한 일들부터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일들까지.
“모두 들으라!”
회의장을 가득 채운 웅성거림을 철지량이 손을 들어 진정시켰다.
“그들은 이번 일을 통해 정무맹에 적대적인 세력으로 밝혀졌다. 그에따라 본 맹주는 그들을 사패천, 일월마교에 이어 정파의 공적으로 선포한다.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지금 이 사실을 즉시 소속 문파에 알리고, 예하 모든 곳에 전하라.”
정무맹주에 의한 선전 포고.
무한, 정무맹의 본진에서 천명한 그의 뜻은 정파의 이름을 내건 모든 이에게 알려질 것이다.
“명을 받듭니다!”
철지량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모두가 대답을 마치고, 연락 무인들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회의장을 서둘러 빠져나갔다.
또 다른 격전의 시작을 알리는 이야기였기에 잠시도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비어 버린 회의장에 남은 것은 창밖을 바라보는 철지량, 제갈협진, 양소방과 등여평뿐이었다.
“암황은 돌아간 것인가?”
“예. 의창의 사건 이후 독자적으로 조사하겠다 하였습니다.”
“그 친구답군.”
애초에 삼궁주라는 자를 잡기 위해 양소방과 함께 호북성을 찾은 당위였다.
의창의 일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사천으로 돌아간 것을 보면, 적의 꼬리를 놓쳤으니 다음을 준비할 참인 것이다.
철지량은 당위를 잘 안다.
그가 돌아가고 나면 당가는 전력으로 움직일 것이다. 무엇보다 은원에 명확한 위인이니까.
대부분의 사람이 당가의 영향력이 사천에 국한되어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수백 년을 사천의 제왕으로 군림해 온 당가였다.
무가로서의 자존심보다 가문의 이익을 우선시하기에 그들의 방계는 관과 군부에까지 미쳐 있다. 그리고 그 충성도는 마교에 필적한다.
관무불침이라는 말이 있지만 당위가 그따위 것을 지킬 리 있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하려 할 것이다.
개방이 무림 전역의 정보를 취합한다고 해도 사각지대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당가의 집요한 움직임은 바로 그 보이지 않는 각을 메워 줄 터였다.
“한바탕 거센 바람이 불겠군요.”
“그렇겠지.”
양소방의 말에 철지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부터는 우리도 바빠지게 될 게야.”
“당초 계획했던 것들을 이제 하나씩 이루어 가야 하니까요. 앞으로는 용봉관주께서 하실 일이 많으실 겁니다.”
양소방이 슬쩍 고개를 돌리자 등여평이 미소를 머금었다.
“이미 갑무반을 구성할 인물들이 선발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용봉관이 원래의 목표대로 나아갈 것입니다.”
등여평이 품에서 작은 종이 하나를 꺼내 내밀자 철지량이 그 안에 적힌 이름들을 하나씩 눈에 담았다.
화산의 현산, 무당의 청상과 청우, 공동의 천용덕, 제갈의 산산, 해남의 이백의, 남궁창위와 황보웅까지 모두 여덟이었다.
“모두가 각 조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인 아이들입니다.”
“좋네. 등 관주와 대군사는 이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등여평과 제갈협진이 물러난 뒤 양소방만이 남았다.
철지량은 아련한 눈으로 아직 끝나지 않은 장례 행렬을 바라보았다.
“아쉽게 되었군. 뒷북을 치다 못해 피해만 입었으니…….”
“망할 놈들. 화약 밀거래에 손을 대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이 같은 일을 예상했어야 했는데.”
양소방의 얼굴이 찡그려진다.
“그걸 어찌 알았겠는가. 하지만 단서를 놓쳤으니 그것이 걱정일세.”
철지량의 중얼거림에 양소방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당가에서 포로들에 대한 심문이 계속 이어지고 있으니 어찌 아쉽다 하겠습니까? 곧 또 다른 단서를 찾아낼 것입니다.”
“음.”
“놈들은 이번 일의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될 것입니다.”
멀리 창밖으로 장례 행렬이 사라진 다음에서야 철지량의 시선이 거두어졌다.
“그 아이, 곤륜으로 갔던가?”
그가 묻는 것이 누구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아닙니다. 하지만 유랑을 하면서 천천히 움직인다 했으니 곧 도착할 것입니다.”
“대단한 녀석이야. 큰일을 해 주었어.”
“무당지검이 아닙니까? 그의 선대가 그랬던 것처럼 언제나 무림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글쎄. 하지만 그 녀석을 처음 보았을 때 왠지 우리와는 다른 길을 간다는 느낌이 들었지.”
“…….”
“적사투관을 재현했다고?”
“예. 본인도 모르는 눈치더군요.”
“그래. 그랬을 것이야. 정신이 없었을 테니까. 그나저나 당위의 마음에 제법 들었던 모양이군. 가문의 기보를 내어 줄 정도라면.”
“예.”
“허허, 한번 두고 보세. 그 녀석이 가는 무림은 어떤 모양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