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캉!
허공에서 튕겨진 검날이 불꽃을 튀긴다.
쿵! 콰앙!
뒤이은 주먹에 실린 강맹한 기운이 목표를 놓치고 애꿎은 담벼락을 거칠게 터트려 놓았다.
“마도, 간악한, 개! 곤륜, 영역, 침범!”
문장 구성이 엉망인 적수공권의 권사가 맹렬한 기세를 뿌리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분명 ‘간악한 마도의 개 따위가 곤륜의 영역을 침범하다니.’라는 말이리라.
“흐흐흐. 눈치가 빨랐구나. 이년 하나만 더 취하고 간다는 것이.”
깊은 밤 혈광을 뿌리는 사내는 한쪽 손에 사람 하나를 들고 있었다.
정신을 잃은 여인.
마땅히 가려야 할 곳들이 찢어진 것을 보면 범하려 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채음보양, 죽음!”
그의 외침을 잘도 알아들었는지 주변에 있던 검수들이 삼재진을 이루며 검을 뻗었다.
캉! 카캉!
하지만 마인의 무위가 생각보다 뛰어났다.
살짝 뒤로 몸을 물리며, 세 곳에서 뻗어진 검극이 하나로 모이는 순간 펼친 손바닥으로 잡아 튕겼다.
쩡!
진한 반탄음과 함께.
“큭!”
다소 내력이 약했던지 제일 오른쪽에 있던 검수가 비틀거리며 물러났고, 마인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죽어라!”
방향을 비틀며 옆으로 훌쩍 뛰어오른 마인의 손에서 어둠과 같은 마기가 송곳처럼 뻗어 나갔다.
“사제! 위험!”
문장 구성이 엉망이었던 권사가 급히 허리춤에 주먹을 당겨 모았다가, 지면을 강하게 밟음과 동시에 뻗어 내었다.
쿠루루루!
일권의 지르기가 순간적으로 수백의 잔영을 만들며 마인을 향해 날아갔다.
“헉!”
자신의 공격이 성공하기도 전에 권기에 노려진 마인은 재빨리 방향을 바꾸며 물러났다.
하지만 권의 잔영이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방향을 바꾸더니 마인을 향해 폭격하듯 내리꽂혔다.
콰콰쾅!
주먹의 비를 피해 연신 뒤로 물러나며 도망치던 마인은 결국 손에 들고 있던 여인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합!”
날카로운 기합성과 함께 음험한 마기가 전신에서 일어나 그에게 날아드는 주먹을 마주했다.
쾅! 쾅! 콰쾅!
마기와 권기의 부딪힘이 허공에 터진 폭죽처럼 흔적을 만들어 내며 고막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터졌다 생각한 순간 권사의 눈빛이 살기등등하게 빛났다.
흩어진 꽃잎처럼 부서졌던 권기가 거친 회오리를 만들며 마인을 덮어 갔다.
표화탄공수(飄花彈空手).
곤륜 권법의 일절이라 불리는 무공이었다.
“제기랄!”
졸지에 권격의 잔영을 모조리 뒤집어써 버린 마인의 몸에서 둔탁한 격타음이 울려 퍼졌다.
뻑! 뻐벅! 뻑!
“크윽!”
호기로웠던 마인은 수십 대의 권격을 얻어맞은 충격에 비틀거리며 물러났고.
“베!”
짧게 외쳐진 음성.
머뭇거림이라고는 없었다.
마인이 몸을 세우기도 전에 검광이 목 언저리를 스친다.
푸학!
솟구친 피가 부챗살처럼 뻗어 나가 옷자락을 적셨음에도 검을 그어 낸 검수의 표정에는 조금의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잔당! 흩어져!”
권사가 외치자 검을 든 검수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 * *
‘곤륜이군.’
인근 전각의 지붕 위에 선 진무가 아래에서 벌어지는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충 보아도 상황이 짐작되었다.
권사와 검수들에게서 느껴지는 선기. 도포는 입지 않았지만 곤륜의 도사들이 분명하다.
그들이 몸을 움직이며 펼친 경공은 분명 곤륜의 절학인 운룡대팔식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들이 목을 베어 버린 자는 마교도였을 것이다.
여인의 상태를 보았을 때 필시 채음보양과 같은 염치없는 짓을 하려다 신분을 숨긴 채 양풍현을 돌아다니던 곤륜의 순찰조에게 걸린 상황이겠지.
뭐, 잠을 깨운 놈들을 조지러 왔는데 곤륜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김이 새 버렸다.
얻을 게 있는데 괜히 그들과 싸울 필요는 없었다.
대충 상황도 정리된…… 어?
돌아가려던 진무는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마인과 싸웠던 권사가 고개를 쳐들고 진무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런 젠장.
재빨리 신분을 밝히려 품을 뒤졌지만.
망할, 목욕을 한 직후라 태극패를 놓고 왔잖아? 어쩌지?
진무가 잠시 고민을 하는 사이.
파앙!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 무인이 다짜고짜 진무를 향해 공격해 왔다.
하필이면 운룡대팔식이다.
경공과 장법을 합쳐 만들었다는 기괴한 무공.
더구나 느껴지는 기세가 적어도 의기는 넘어 보인다.
설마? 곤륜의 장로인가?
그러기에는 너무 젊어 보이는데?
몸을 날림과 동시에 공격이 날아오니 변명할 여지조차 생기지 않았다.
일단은 막고.
후웅!
몸을 비틀며 피한 진무가 재빨리 항변을 하려는데 권사의 주먹이 쉴 틈 없이 날아왔다.
이런 젠장.
곤륜의 도사라는 사실을 알았는데 줘 팰 수도 없고, 공격 속도도 생각보다 빠르다.
허공에 뻗어졌다가 회오리를 생성하며 쏘아지는 권공에 진무가 훌쩍 몸을 뒤로 물렸다.
“이봐! 일단 내 말 좀.”
“마! 척살!”
뭐라는 거야!
당최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말이 엉망이다.
대충 들어보면 ‘마(魔)를 척살하겠다.’는 뜻 같은데.
이 자식이! 어딜 봐서 내가 마도인처럼 보인단 말인가?
“이봐! 진정 좀 하고 내 말부터!”
휘류류류!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
눈빛을 보니 광기 비슷한 것이 서려 있는 게, 암만 봐도 살짝 미쳐 있었다.
이 곤륜 도사 새끼, 뭐 약이라도 하는 건가?
진무가 권사의 공격을 피해 내며 어찌할까를 고민했다.
그런데 단 한 방의 공격도 성공시키지 못한 것이 분했던 것일까?
“마! 용서, 없다.”
권사가 더욱 기운을 끌어 올리며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권격을 만들어 내었다.
살짝 기분이 언짢다.
마(魔)라고 한 것일 텐데 왠지 쌍말을 들은 듯한 것은 기분 탓일까?
“이놈 자식이!”
짜증 어린 음성과 함께 진무의 양손이 활짝 펼쳐져 원을 그리며 합해졌다.
무당의 태청산수.
경지가 높아진 진무의 손이 천수관음의 그것처럼 변해 바늘구멍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허공을 가득 메웠다.
권사의 표화탄공수가 뛰어나긴 했지만 천 개의 손에 비할까?
취리릭!
권영이 사라지고, 권사의 손목이 진무의 손에 잡혔다.
“……!”
꽤나 놀란 것인지 권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퉁!
진무는 손목을 휘돌려 권사의 두 주먹을 튕겨 내었다. 그로 인해 권사의 가슴팍이 활짝 열리며 허점을 드러낸다.
“일단은…… 정신 좀 차리자!”
팡!
권사의 열린 가슴을 향해 가볍게 질러진 일장.
무거움은 담지 않았다. 그저 선기를 담아 밀어 쳤으니 일장이라 부를 것도 없는 공격이었지만, 그것을 날린 것이 진무였기에 실려 있는 힘이 만만치 않았다.
다가가각!
밀려 나는 권사의 발에 기왓장이 와그르르 무너졌다.
진무의 잘못이 아니다.
집주인이 변상을 요구하면 저 권사 놈이 그랬노라 딱 잡아뗄 요량이었다.
한데 권사의 눈빛이 변했다.
딱히 호승심이 가라앉은 것 같지는 않은데 약간 놀란 표정이다.
“선기?”
밀려났다가 몸을 세운 권사가 묘한 표정으로 진무를 바라보았다.
“누구?”
이 새끼…… 새삼 말이 무척 짧다.
“무당! 진무!”
상대의 반말에 심통이 나 버린 진무가 똑같이 반말로 이름을 밝혔다.
권사가 한참을 바라보다가.
“현포루. 그대군.”
자신의 가슴을 슬쩍 쳐다보고는 공손하게 포권을 한다.
그의 눈빛에서 형형하게 빛나던 광기는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근데 현포루?
진무가 묵고 있는 객점의 이름이 아닌가? 어떻게 알았지?
“무당……. 오해, 사과.”
“…….”
행동과 표정은 정말로 미안해하는 것 같고 인사는 도가의 공손함을 담은 예법인데 도무지 말투가?
멀리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권사의 눈에 또다시 광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진무, 바빠, 나중, 현포, 인사.”
아니 자꾸 뭘 알아듣지도 못하게 지껄이고 있어. 암호냐?
지극히 공손한 모습으로 재차 인사를 한 권사가 싸움이 일어난 곳을 향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날렸다.
파앙!
야, 가냐?
홀로 남겨진 진무는 잠시 눈을 끔벅이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건 또 색다른 황당함이다.
뭐 저딴 이상한 게 다 있지?
나이는 비슷한 또래인 것 같고, 무공도 제법인데…….
하아, 생각하지 말자. 머리만 복잡하다.
정말이지 진무라는 놈의 팔자는 인복이 없는 게 분명하다.
쫓아갈 의지를 상실해 버린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신이 묵고 있는 객점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괜히 나왔다.
그냥 내공으로 귀나 막아 버릴 것을.
* * *
다음 날.
아침밥을 들고 온 소년이 조심스럽게 별채를 기웃거리다 진무를 발견하고는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뭔가 극도로 조심스러워하는 눈초리에 진무가 대뜸 물었다.
“뭐 하냐?”
“예? 아, 아닙니다.”
“어젯밤, 싸움, 아는 거?”
“……예?”
겁에 질린 소년이 흠칫하는 표정을 짓는다.
“……아, 미안. 나도 모르게.”
그 망할 놈의 말투가 생각보다 중독성이 있는 건지, 아니면 잠을 설쳐서 그런 건지 자꾸 귓가에 맴돈다.
“어젯밤에 소란이 있었던 것 같은데 뭐 아는 것 없냐?”
“무슨 말씀이신지.”
소년이 목을 움츠리며 눈치를 보았다.
짤랑.
“아! 있긴…… 했는데.”
어린놈이 밝히기는. 그래도 공돈을 받은 때문인지 눈빛에 두려움이 조금 사라졌다.
“그래? 제법 큰 소란인 것 같던데?”
소년이 진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아, 청해는 처음이신가 해서요.”
“음, 모처럼이긴 하지. 꽤 오래되었고.”
“아 그렇군요. 전 또…….”
원래 이 동네 버릇이 이런가? 도사고 점소이고 뭔 말을 계속 하다 말아? 그리고 왜 안도하는 거지?
“이 양풍에서 그 정도는 으레 있는 일입니다.”
“으레?”
“예, 종종, 왕왕이요.”
소년이 강조하듯이 말했다.
“흐음, 왜?”
“근처에서 사람이 가장 많은 도시니까요.”
“응? 다른 마을이 없어?”
“아예 없지는 않지만, 드문드문 있기도 하고 그마저도 몇 가구 안 되거든요. 그 때문에 미친 마교인들이 곤륜의 영역인 줄 알면서도 자주 넘어오죠. 거의 매일 싸워요, 곤륜 도사님들과.”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진무가 청해에 와 본 것은 아주 젊은 시절이었다.
지금이 아니라 낭인으로 살던 젊은 시절의 혁련무강이니 지금으로부터 한 육십 년 전쯤?
싸움이 빈번하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세세한 것을 기억할 수는 없었다.
언뜻 스치는 것들이 전부였다.
곤륜파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그 괴물 놈이 있다는 것 정도?
“그러니까 보자, 지금 곤륜의 순찰조가 운암 도장 조인가? 그럴 거예요.”
“운암?”
“그 말 이상하게 하는 도사님 있어요.”
“아!”
어제 그놈이다. 확실하다.
점소이라는 놈이 제법 아는 게 많다. 갑자기 말문이 터지기라도 한 것인지 돈값을 하려는 건지, 아무튼 과할 정도로 많은 정보를 알려 주고 있다.
“근데 니가 곤륜의 순찰조에 대해서는 어찌 아냐?”
“왜 몰라요? 양풍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다 아는 것을.”
진무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소년이 은근슬쩍 또 바라는 눈빛을 한다. 어제는 무림인 어쩌고 하면서 손을 싹싹 빌더니.
태세 전환이 전광석화 같은 녀석이다.
어린놈이 이리도 타락하다니.
하긴 이런 격전지에서 점소이로 살아남자면 당연하겠지.
짤랑.
“이곳은 곤륜파의 영역이에요.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은 것도 많아서 무슨 일이 생기면 순찰조에게 알리거든요. 어제 마교와 싸운 것도 사람들이 알려 줘서 그럴 거예요.”
대충 이해가 될 듯하다.
민초의 눈은 매서운 법이다. 싸울 순 없어도 보고 듣고 말할 줄은 아니까.
더욱이 마교인들은 대부분 민초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친다.
윗대가리들이라면 몰라도 그 아래 있는 놈들 중에는 정상인 놈들이 거의 없다.
원체 막 나가는 놈들이라 어제처럼 채음보양은 물론이거니와 납치, 살인과 같은 각종 강력 범죄를 밥 먹듯 저지른다.
그리고 그런 자들을 상대하자면 꼭 필요한 것이 정보였다.
그러니 소년의 말이 사실이라면 곤륜은 막대한 정보망을 가지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
민초의 눈은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법이니까.
잠깐, 정보망?
그러고 보니 그 말 짧은 운암이라는 놈이 분명 현포루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놈 자식이.
“어쩐지 이곳을 알더라니. 이 자식, 니가 말했구나?”
“예?”
“나 여기 있는 거.”
“아!”
진무가 째려보자 소년이 납죽 엎드렸다.
“죄송합니다. 마교인인 줄 알고.”
망할, 이 자식의 투철한 신고 정신 덕에 재수 없었으면 자다가 칼침 맞을 뻔했다.
뭐, 하지만 그게 이놈의 잘못이겠는가? 오해할 수도 있지.
진무는 엎드린 소년을 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도포를 걸쳤다.
“어?”
짐 속에 묵혀 두었던 도포에 도관까지 갖춰 쓰는 모습에 소년이 놀란 눈을 했다.
“도사……셨어요?”
“응? 내가 말 안 했나?”
“……예.”
“무당, 도사, 진무.”
“아…… 무당.”
제법 들은 풍월은 있는지 무척이나 송구해하며 허리춤에서 좀 전에 받았던 철전을 꺼냈다.
“저는 대인께서 도사신 줄은 모르고…….”
돌려주려는 것이다.
“됐다. 잘 먹었다.”
“……?”
“그리고, 말은 잘 데리고 있어. 나중에 찾으러 올 테니까. 이건 여물값.”
진무가 철전을 들고 내밀었던 손에 은원보 하나를 올려 주었다.
“너무…….”
많다는 말이겠지. 안다, 이놈아.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열심히 사는 네놈이 귀여워서 주는 거니까 이 몸의 넘치는 아량에 감격하도록.
진무는 자신을 바라보는 소년의 시선을 뒤로하고 곤륜산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감사합니다! 대인! 아니 도사님!”
대문을 나서는 곳까지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식이, 거 인사할 줄 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