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32
132화
객점을 떠난 진무는 곧장 곤륜산으로 향했다.
산길이 험해 말은 불필요했다.
그렇기에 소년에게 잠시 맡겨 둔 것이다.
또한, 명색이 도사인데 다른 도문을 방문하면서 말을 타고 간다는 것도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다.
곤륜산.
높기도 높다.
멀리서 보였던 도관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아는 게 제법이던 소년에게 산문으로 가는 길의 위치라도 물어볼 것을 실수했다.
보이는 것은 오직 숲을 이룬 나무뿐.
그래 뭐, 귀찮지만 찾아보면 되니까. 잘 먹고 잘 쉬었으니 배나 꺼트릴 겸 좀 뛸까?
진무는 가볍게 기운을 운용해 용천혈에 밀어 넣었다.
상큼한 선기가 발바닥에 어리자 몸이 둥실 떠오르고, 이내 진무의 신형이 나뭇가지를 밟고 솟구쳐 올랐다.
뒷짐을 진 여유로운 모습이었으나 순식간에 나무의 끝점에 다다라 날 듯이 하늘 위를 노니는 모습.
한 줌 진기로 구름 밟듯 허공을 누빈다는 무당의 제운종이 극에 달한 모습이었다.
높이 자란 나무의 끝자락에 살포시 내려앉은 진무는 천천히 주위를 살폈다.
곤륜산의 중턱.
울창하게 숲을 이룬 나무 사이로 삐죽하게 솟은 지붕이 보였다.
곤륜파의 산문이다.
진무는 곧장 나뭇가지 위를 평지 삼아 내달렸다.
가느다란 나뭇가지의 끝을 차 내며 한 번에 삼, 사 장씩 날아가는 모습이 실로 표홀하다 할 만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이윽고 산문 인근에 내려선 진무는 혹여 실수를 저지르지나 않을까.
“나는 도사다. 도사다. 도사다.”
자기 암시를 통해 최상의 연기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산문을 향해 다가섰다.
“나는 도사…… 와! 이건 뭐…….”
진무는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고 말았다.
거대하다.
아니 가히 장엄하다 할 만했다.
같은 도문임에도 청성과 무당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한 아름이 넘는 두 개의 기둥을 양옆에 박아 넣고 그 위에 도관의 지붕을 덧씌운 곤륜의 산문은 실로 놀라웠다.
돈이 많이 들었을 텐데.
인근 민초들을 정보망으로 부리더니만, 역시 선행을 베풀면서 뒤로는 착취를 한 걸까?
진무는 혀를 내두르며 곤륜의 도사들이 지키고 있는 산문을 향해 다가섰다.
한 가지 의아한 것은 마교와의 격전지임에도 산문을 지키는 무인이 둘뿐이라는 것.
어째서?
“멈추시오!”
꼿꼿이 선 산문의 제자 하나가 진무를 향해 외쳤다.
딱딱하고 사무적인 말투가 곤륜의 규율이 엄정함을 드러내고, 은은하게 빛나는 눈동자가 그들이 가진 자신감을 나타내었다.
제법이다.
훈련이 잘된 자들이었다.
무당이 흐르듯이 유하다면 청성은 순박하니 맑고 곤륜은 무겁고 호쾌하다.
같은 도맥을 따라 걷는 이들인데 어찌 이리도 느낌이 다르단 말인가?
“외관은 도인으로 보입니다만, 미리 약조가 되어 있지 않거나 패가 없는 분들은 이곳에 발을 들일 수 없소.”
약조? 그딴 걸 했을 리가 없다.
표주 나온 도사가 무슨 언질을 주고 방문한단 말인가?
그리고 처음인데 당연히 통행패 따위가 있을 리 만무했다.
“아, 저 그게.”
진무가 태극패를 보여 주려 걸음을 내딛는데.
“……!”
순간 걷고 있던 진무의 발이 바닥에 닿지 못하고 멈췄다.
아니, 내딛지 못한 것이다.
마치 경계를 나눈 듯이 발밑에서 막대한 위화감이 느껴져 왔다.
산문을 지키는 무인들의 수준이 낮아 보이지는 않으나 진무의 발걸음을 멈출 정도는 아닌데.
진법?
설마 산문 인근에 곤륜의 무인들이 숨어 있는 건가?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살폈지만, 진무는 아무런 기척도 읽어 낼 수 없었다.
강의 경지에 이르고 내공이 더없이 높아진 지금이다.
찾고자 노력하면 반경 십 장 내에 있는 은신자의 기척 정도는 읽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피부를 통해 느껴지는 미세한 살기는 사람의 그것과는 달랐다.
날카롭게 벼려진 첨극이 주는 예기(銳氣)가 틀림없었다.
기관이다.
하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하다.
산문 일대에 흔적조차 찾기 힘들 정도로 기관을 설치하자면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었을 터.
딱히 오가는 사람도 없는데 어디서 이 많은 자금이 나온 걸까?
따로 상단이라도 운영하는 건가?
의아하기 그지없었지만 어차피 곤륜의 사정인데 진무가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니었다.
결국 내디디려 했던 걸음을 당겨 멈춘 진무가 산문의 제자들을 바라보며 품을 뒤졌다.
괜히 자존심을 세운답시고 들어갔다가 기관이 발동해 버리기라도 하면 그 복구 비용이 어마어마할 테니까.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야 없지.’
하지만 진무의 생각과는 달리 멈춘 진무의 행동에 산문을 지키고 선 제자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경계심을 품는다.
“그대는 누구요?”
자식들, 놀랐구나?
하긴, 진무가 발을 멈춘 곳이 정확히 기관이 발동되는 범위의 한계점이었다.
놀라는 것이 당연했다.
“여기.”
“태극패? 무당?”
진무가 ‘어사 출도’라도 외치듯이 내민 신분패를 본 곤륜 도사들의 경계심이 살짝 누그러졌다.
“본인은 무당의 진무라고 하오.”
“무당의 진무…… 아!”
이름을 되뇌던 도사의 얼굴에 놀람이 깃들었다.
“무당지검이시군요?”
“……어?”
어떻게 알았지?
갑자기 반갑게 다가오는 모습에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리 언질을 받았습니다.”
누구한테?
“청성을 떠나신 지 한 달이 넘었다고 들었는데 그간 유랑을 하신 모양이군요?”
유랑은 아니고 아주 사소하게 죽을 뻔했던 싸움이 있었지.
“따라오십시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신분을 알리자마자 뭔가 쉬워진 느낌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날카롭던 기도가 훈풍처럼 누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교와의 격전지를 지키는 이들답다.
산문의 제자들마저 기운을 발출했다가 거두는 것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막 곤륜 제자를 따라 산문을 지나려는데, 문득 뒤편에서 소란스러움이 밀려왔다.
누구?
진무를 따라 고개를 돌렸던 산문의 제자가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운암 사숙!”
운암이라면 그 문장 구성력이 매우 떨어지던 그놈 아닌가?
한참 나이가 어려 보이는데 사숙이라고?
산문을 지키는 도사들 나이가 열 살은 많아 보이는데.
“하산하셨던 순찰조입니다.”
그딴 설명은 안 해도 된다.
“잘됐군요. 산문을 비우는 것이 걱정이었는데 순찰조분들과 함께 오르시면 될 듯합니다.”
기관을 봐서는 혼자 지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진무가 얼굴을 살짝 찌푸리는데 운암이 진무를 알아보고 반가운 척을 하며 다가왔다.
“현포루의 무당 제자시군요. 지난밤에는 큰 결례를 범했습니다. 현포루에 사과를 드리러 갔으나 이미 떠나셨다 하기에 아쉬움을 금할 길 없었는데…… 이제야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곤륜의 운암입니다.”
“아, 예. 저도 어제는…… 어?”
진무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들어 운암을 쳐다보았다.
뭐야 갑자기?
왜 말을 잘해?
진무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운암이 머쓱한 표정으로 웃었다.
“아, 제 말투 때문에 놀라셨지요?”
당연히 놀라지.
어제만 해도 막 흥분해서 보이는 족족 때려죽일 기세로 말을 이상하게 하더니.
오늘은 뭐가 저렇게 조리 있고 논리 정연하며 차분한 데다 예의까지 바르단 말인가?
달라도 너무 다른 거 아니냐? 완전 딴 사람인데?
“제가 흥분하면 마음이 급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이 그를 채 따라가지 못하여.”
운암이 부끄러워하며 뒷머리를 긁적거렸고.
“사숙께서 좀 그렇죠.”
“하긴 저희도 처음에는 적응하는 데 꽤 오래 걸렸습니다.”
일행이 동조하며 웃었다.
“어허, 손님 계신데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운암의 말에 순찰조의 도사들과 산문의 도사들이 짐짓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장난쳤다.
“자, 올라가시지요. 한데 성함이?”
“무당지검이시랍니다. 사숙.”
중년은 되어 보이는 도사가 공손하게 말했다.
“무, 무당지검이시라고요?”
어제 분명히 이름을 말했던 것 같은데.
운암이 꽤나 놀랐는지 진무를 쳐다보았다.
무당지검에 대한 소문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작금의 중원 도문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가 아니던가.
지난밤에 분명 이름을 들었던 것 같기는 한데 워낙 흥분해 있었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약관에 무당을 대표한다는 그를 직접 만난 흥분 때문인지 운암이 눈을 크게 뜨고 다가와 진무의 어깨를 와락 움켜쥐었다.
“무당! 반갑! 붙어! 희망!”
“…….”
호승심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을 하곤 콧김까지 씩씩거리며 뿜어 댄다.
놔라, 이놈아. 아프다.
“사숙, 사숙! 또 흥분하십니까?”
“아! 죄송.”
운암이 진무의 팔을 놓고 물러나서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여, 역시 이상한 새끼다.
가까이하지 않는 편이…….
* * *
운암과 함께 산문을 떠난 진무는 가파른 계단을 한참이나 올랐다.
이건 뭐 거의 등반 수준이었다.
마교와 그렇게 오랫동안 싸워 오면서도 단 한 번도 본산이 털린 적은 없다고 하더니, 그 말이 단박에 이해가 갔다.
이래서야 올라오다 뒈질 판 아닌가.
하늘과 다다른 끝이 눈에 드러나고, 제자들이 한창 수련을 하고 있는 것인지 기합 소리가 산자락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며 메아리친다.
그리고 산청의 끝에 다다르는 순간.
“아!”
또다시 감탄이 나온다.
곤륜산 정상.
무당보다 훨씬 더 오랜 역사를 이어 왔다는 곤륜의 도관은 마치 거대한 도시를 방불케 했다.
삼 층, 혹은 오 층에 달하는 거대한 전각 여덟 개가 팔괘를 이루듯이 자리잡고, 그 주위는 크고 작은 건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빼곡하게 자리 잡은 수많은 도관들이 그 정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은 가히 불가사의라 할 만했다.
어떻게 이 높은 산정에 이런 도관을 지을 수 있었을까?
더구나 사방이 절벽인데.
돈이면 귀신도 부린다더니, 과연 인간의 능력은 끝이 없고 재물의 능력은 실로 대단하다.
진무가 혀를 내두르며 감탄하는데 안내역을 자처한 운암이 때마침 운을 뗐다.
“크게 보이는 것이 곤륜팔관입니다.”
똑같이 여덟인데 무당팔궁에 비할 바가 아니다.
더욱이 무당은 이제 육궁뿐인데.
“나머지는…….”
운암이 설명을 하며 걷는 사이 거대한 연무장에 도착했다.
“차압!”
열 지어 선 백여 명의 도사들이 기합성을 지르며 검극을 뻗어 낸다.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검진, 권법, 검공까지.
백여 명씩 무리 지은 것만 넷이다.
“여긴 합격진을 수련하는 연무장이고 각 궁마다…….”
설명 못 해 줘서 죽은 귀신이라도 있는 것인지 운암이 쉬지 않고 떠들어 대었다.
듣고 싶어 들은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엄청난 규모였다.
더욱이 각 진(陣)에서 뻗어지는 기세가 대기를 무겁게 짓누른다.
무당, 청성에서는 보지 못한 모습이다. 아니, 오래 머물진 않았으나 당가에서조차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과연 구파의 하나라 할 만했다.
외따로 떨어진 채 오랫동안 마교와 격전을 치르며 중원을 지켜 온 수호자라 하더니, 과연 그 명성에 걸맞은 모습이었다.
“자, 들어가시지요. 저곳이 곤륜의 중심, 운궁(雲宮)입니다.”
운암이 가리킨 곳.
여덟 전각의 중심점이 되는 곳에 작고 아담한 건물이 있었다.
다른 건물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그조차도 삼 층이나 되는 것이 무당 자소궁에 비견될 정도였다.
곤륜이 다른 건 몰라도 일단 재정은 정말 풍부하구나.
부럽다.
운암을 따라 운궁으로 들어가자 미리 산문에서 연락을 받은 것인지 장문인과 장로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시게. 곤륜의 장문인 운해일세.”
청수하다기보다 호협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날카롭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용문도포의 도인이 진무를 맞이했다.
어? 풍환(風煥)이 아니네?
장문인이 바뀌었다.
진무가 기억하는 곤륜의 장문인은 분명 풍환, 그 노괴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