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동굴, 벽면에 일 장 간격으로 홰를 꽂아 내부를 밝히고 무너지지 않도록 줄지어 세운 돌기둥.
그리고 그 끝에 단상을 만들어 의자를 놓은 곳.
붉은 수염을 가진 노인이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긴 수염이 가슴께까지 내려와 있었으나 얼굴은 주름 하나 없는 홍안(紅顔)에 호목.
정무맹, 사패천과 더불어 당금 무림을 삼분하는 일월마교의 주인, 적염제(赤炎帝) 북리도천.
과거 사패천주 혁련무강과 천하제일의 자리를 놓고 겨루었던 그는 이제 명실공히 무림의 최강자라 불리고 있었다.
“…….”
나른한 듯 반개한 그의 눈앞에 오체투지로서 존경을 표하며 두 줄로 늘어서 기다리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있었다.
교주를 대신해 일월마교를 이끌어 가고 있는 소교주와 열 명의 장로였다.
“원로원주가 보이지 않는군.”
나지막한 음성이었지만 동굴이 진하게 울리고, 엎드린 모두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지금의 회합을 주관한 것은 소교주 하후성이었다.
혁련무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난 뒤부터 북리도천이 폐관에 들어간 지 이 년.
출관한다는 보고가 없었는데 갑자기 그가 나타나자 모두가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원로원주는 근래 건강이 좋지 않아서 회합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그래?”
대장로 목등여의 말에 북리도천이 피식 웃는다.
“그렇군.”
“…….”
“그럼 참석할 수 없지. 그래선 안 되지.”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장로들과 소교주가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 탓인지, 폐관을 오래 해서인지 교주의 성격이 많이 유해진 것이라 여겼다.
“마강.”
“예, 교주님!”
북리도천의 부름에 뒤에 서 있던 염왕대주 마강이 급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괴월이 아파서 소교주가 주관하는 회합에도 참가하지 못할 정도라는 구나.”
“…….”
괴월은 원로원주의 이름이다.
철지량에 의해 팔 하나가 날아가 버린 뒤로 대장로에서 원로원으로 물러난 인물이었다.
“그래선 안 되지. 가서 목을 잘라 오너라.”
“……!”
마치 가서 들꽃 하나 꺾어 오라는 것처럼 태연자약하게 지시를 내리는 그의 음성에 모두가 사색이 되어 버렸다.
“쓸모가 없어지면 죽어야지. 아파서 거동도 못 하는 놈을 원로원주에 앉혀 놓아서야 되겠는가?”
“명을 받들겠습니다.”
교주의 말도 안 되는 지시가 내려졌지만, 마강은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그런 곳이 마교였다.
그들에게 자신의 생각이며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교주의 말이 곧 법인 곳이다.
명을 받은 마강이 서슬이 퍼런 기세를 뿌리며 호법부의 무인들과 대전을 나가려 하자 소교주 하후성이 급히 앞으로 나와 고개를 조아렸다.
“교, 교주님! 그것은 제가 지시한 일입니다! 제가 쉬라 하였습니다.”
“…….”
이마를 바닥에 대며 힘껏 외치는 하후성의 모습을 북리도천이 턱을 괸 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거운 침묵이 이어지고.
톡, 톡, 톡.
북리도천의 손가락이 팔걸이를 때리는 소리가 천둥처럼 하후성의 귀를 파고들었다.
북리도천의 얼굴은 어떠한 감정조차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평온했으나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가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행했던 버릇이었고, 그때마다 누군가는 목이 잘리고 사지가 나누어졌다.
“소교주가 명을 내렸다?”
“…….”
“성아, 거참 이상하구나. 나는 그것을 허락한 적이 없는데.”
나지막한 목소리에 소름이 돋아 오르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나를 대신하여 듣고 살펴 보고를 하라 하였지, 아픈 원로원주의 사정을 봐주라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내 기억이 잘못된 것이냐?”
“아, 아닙니다. 그것은 저의 직권으로…… 웁!”
변명을 하던 하후성의 몸이 갑자기 짜부러질 듯이 바닥에 밀착되었다.
“그도 이상하구나. 너에게 직권이라는 것을 누가 주었더냐?”
“크윽…… 죄……송…….”
“주제넘은 짓이다. 너는 아직 교주가 되지 못했느니.”
“용서를…….”
하후성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짓눌려 있는 사이 북리도천의 시선이 멈춰선 마강을 향한다.
“뭐 하는 게지? 명이 떨어진 지 오래되었는데?”
“죄송합니다.”
교주의 질책에 마강이 급히 대전을 빠져나갔다.
그것으로 원로원주 괴월의 죽음은 번복될 수 없는 결정이 되었다.
톡, 톡, 톡…….
북리도천은 팔걸이를 때리며 말없이 기다렸다.
하후성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고 긴 침묵은 마강이 핏물이 뚝뚝 흐르는 머리 하나를 가져오고 나서야 끝이 났다.
“혹시나 또 아프거나 아플 예정인 녀석들이 있으면 지금 말하거라. 당장에 고통이 사라지게 해 줄 터이니.”
누가 감히 눈을 시퍼렇게 뜬 채 죽은 괴월의 머리를 바라보며 그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없다면 됐고. 듣자 하니 칠동천의 이강백이 청해로 움직였다지?”
“…….”
대답할 수 없었다.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소교주가 급히 회합을 소집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교주의 명령 없이 병력을 움직인 것이다.
“성아, 네가 한번 대답해 보려무나. 혹 이것도 너의 직권에 의한 일이더냐?”
북리도천의 허락이 있고서야 하후성이 간신히 억눌렸던 숨을 토해 내었다.
“아, 아닙니다. 교주님.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하면 누가 그런 지시를 했더냐? 설마하니 근래에 이강백이 간을 놓고 다니는 토깽이 흉내를 낸다더냐?”
되지도 않는 비유지만 역시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다.
“말해 보거라, 성아.”
“그, 그건.”
톡, 토톡.
손가락이 움직인다.
그의 심기를 거슬렀다가는 아무리 자신의 손으로 들어앉힌 소교주라 해도 무사하지 못함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미 전례가 있다.
앞서 있었던 다섯 명의 소교주.
모두가 북리도천의 눈에 차지 못했고, 모두가 똑같이 목이 잘렸다.
하후성은 자신만은 같은 길을 걷고 싶지 않았다.
“구야자 때문입니다.”
“들었다. 하나 변명이 될 수 없음을 알 터다.”
“그, 그것은…….”
하후성이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눈동자를 불안하게 굴려 대었다.
“구야자의 명성이 나의 명보다 지엄하더냐?”
톡. 까드득!
손톱이 팔걸이를 때리기를 멈추더니 이번엔 긁는다.
쇠로 된 팔걸이가 대패질이라도 한 것처럼 긁혀 나왔고, 북리도천의 반개했던 눈이 범처럼 빛난다.
“말해 보라. 그의 명성이 나의 명보다 지엄하더냐?”
따로 기세를 끌어 올리지도 않았음인데 그의 목소리에 담긴 위엄이 대기를 짓눌렀다.
“아닙니다! 교주님!”
소교주 이하 장로들이 일제히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외쳤다.
“좋다. 하면 어찌해야 할까?”
“제, 제가 책임지고 처리하겠습니다.”
하후성이 바닥을 향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외쳤다.
“불가(不可).”
“……!”
“너는 소교주로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너의 결정이 원로원주 괴월을 죽게 했고, 나의 명 없이 움직여서는 안 되는 이강백이 제멋대로 날뛰게 만들었다. 나 북리도천의 마교가 그러했던 적은 없었다.”
꾸지람이 목줄기에 닿은 칼보다 훨씬 더 무섭고 공포스럽게 느껴졌다.
북리도천이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엎드린 하후성을 향해 다가왔다.
끝이다.
하후성은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다.
“쯧쯧, 그 전 녀석들보다 재질이 뛰어나 자리를 주었더니 어찌 이리도 실망스러운가. 마강, 지금 즉시 소교주를 거처에 유폐하고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 물 한 모금조차 허락지 말라.”
“예! 교주님.”
마강의 대답과 함께 호법부의 무인들이 하후성을 양쪽에서 구금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죽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마뇌(魔腦).”
“예!”
“지금 즉시 이강백을 제외한 십이동천의 주인들을 모조리 본성으로 불러들여라. 그리고 지난 이 년간 십이동천을 운영했던 기록을 모조리 가져오라 하라.”
“예!”
“나머지 장로들은 들어라. 이강백이 청해를 침하였으니 진룡이 두고 보지 않을 터. 나는 신강에 도사의 냄새가 배는 것을 원치 않는다.”
철저하게 막으라는 말임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교주의 명이 내려졌으니 십이동천 전체에 경계령이 떨어지리라.
마교의 주요 무인들이 청해와 곤륜의 경계로 나설 것은 틀림없는 일이었다.
“육지마동(六指魔童).”
“예! 교주님!”
북리도천의 부름에 오른손 손가락이 여섯 개인 오척단구의 장로가 급히 나와 엎드렸다.
“추혈살귀(追血殺鬼) 일백을 내어 주겠다. 가서 이강백을 잡아 오라.”
추혈살귀는 교주가 가진 어둠의 암살자들이었다.
추적과 은신, 경공, 암살에 능한 자들.
요인을 암살하거나 구출하고, 교주의 반대파를 숙청하는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실력이 모자라서 숨어 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것이 교주가 그들에게 내린 임무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들은 교주의 호위대인 염왕대에 필적할 정도로 강했다.
“단, 구야자로 인한 곤륜과의 마찰은 불허한다. 만약 이미 진룡에게 당했다면 시신을 회수하고, 먼저 발견한다면 목숨만 붙여서 데려와도 좋다. 내 직접 배를 갈라 간이라는 것이 있는지 봐야겠느니.”
“예! 교주님.”
육지마동이 급히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그로서 칠동천주 이강백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교주가 배를 가르겠다 했으니 그는 이제부터 시한부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
* * *
푸드득!
날갯짓하며 내려앉은 전서구의 발에서 작은 쪽지를 꺼내 읽은 사내의 눈이 더없이 커졌다.
그러곤 다급하게 달려 이름 모를 암자로 향했다.
“한림입니다.”
“들어오라.”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을 연 무인, 한백이 가져온 쪽지를 기골이 장대한 노인에게 바쳤다.
“뭣이! 육지마동에 추혈살귀까지 마교 본성을 떠났다고? 크하하핫, 역시 북리도천도 구야자의 이름을 무시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로구나. 되었다, 되었어. 작은 미끼에 대호가 걸려들었구나.”
쪽지를 읽은 노인이 화색을 띠며 대소를 터트렸다.
“어찌할까요?”
“어찌하긴. 당초의 계획보다 일을 키워야 할 것 아니더냐.”
“…….”
“이강백은 어떠하냐?”
“현재 구야자의 허상을 쫓게끔 해 두었습니다.”
“그가 우리의 계획을 눈치챌 가능성은?”
“이미 탐욕에 눈이 먼 자입니다. 이미 정교하게 꾸며진 구야자의 신병까지 확인하였으니 옳고 그름조차 구분하지 못할 것입니다.”
“크크크, 멍청한 마인 놈 같으니. 제 죽을 줄도 모르고 불나방처럼 달려들겠구나.”
“…….”
“한림.”
“예.”
“이강백의 행적을 육지마동과 곤륜에 흘려라.”
“……?”
“구야자를 쫓은 이강백은 얼마 가지 않아 곤륜의 추격대를 만난다. 이강백과 칠동천의 정예라면 진룡이 직접 나서지 않는 이상 곤륜의 제자들은 무조건 몰살당한다.”
“하면?”
“구야자가 잡히면 정체가 드러난다. 그럼 계획은 무산된다. 그 전에 곤륜의 지원대와 이강백이 부딪힐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 와중에 육지마동과 추혈살귀들까지 도착한다면 진룡이라 해도 쉽진 않을 것이다.”
이궁주의 말에 한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으로 판을 키우실 생각이시군요.”
“옳다. 곤륜의 제자들이 죽고 진룡의 손에 육지마동과 이강백까지 죽어 버리면 북리도천이 직접 나설 것이 뻔하다. 그럼 정무맹도 가만 있을 수는 없겠지.”
“하면 저희는 어디까지 개입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개입?”
이궁주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행적을 흘리는 것까지다. 북리도천이 여전히 건재하니 그의 시선을 끌어 좋을 것이 없다. 어차피 저들이 다 알아서 해 줄 일이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연락을 보내겠습니다. 하면 구야자의 허상과 미끼들은 어찌할지.”
“미끼는 먹혀야지. 큰 놈을 잡자면 입에 바늘이 꿰어지게 해야 할 것 아니더냐?”
버린단 말이다.
하지만 한림은 가타부타하지 않고 군례를 올리듯 가슴에 손을 대고 물러났다.
“흐흐흐, 잘하면 이번 일로 정마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