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범은 죽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
뭐 그런 말이 있지만, 이 새끼들은 이름은 안 남기고 다른 걸 참 많이도 남겨 놨다.
진무가 살펴보고 있는 시신들.
조금 전까지 진무를 향해 칼을 들이밀며 죽인다고 협박했던 마교 칠동천의 무인들이다.
실력도 안 되고, 하다못해 말총값도 안 되는 자식들이 감히.
먼저 마교를 추격한 운암과 곤륜의 도사들은 북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진무는 그 흔적을 따르며 본진에서 벗어난 마교의 무인들을 찾아 하나씩 죽여 가며 이것저것 알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일단 팔다리를 부러뜨리고 사지근맥을 친절히(?) 잘라 주니, 하나의 이름이 툭 튀어나왔다.
구야자 방유척.
마교가 뒤쫓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방유척인 거지?
그럴 리가 없다.
그는 진무의 벗이었고, 분명 이십 년 전쯤 죽었다.
물론 그 사실을 아는 것은 진무를 비롯한 몇몇뿐이었다.
오랜 인연을 가지고 있던 진무는 그의 묘지를 자신의 거처 옆에 만들었고, 제사까지 지내 주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뜬금없이 마교가 그를 뒤쫓는단 말인가?
설마?
그 녀석도 어디서 불로초라도 하나 구해다 처먹었나?
모를 일이다.
좌우지간 그 때문에 마교의 칠동천 녀석들이 이백이나 청해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칠동천 전체가 들어왔다면 곤륜이 나섰다고 해도 청해는 쑥대밭이 되었을 테니까.
한 가지 이상한 것은.
북리도천이 방유척의 죽음에 대해 알 리 없다고 해도 방유척 하나를 얻기 위해 곤륜과 싸운다고?
말도 안 된다.
오랫동안 자신의 숙적인 놈이었기에 그 지랄 맞은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진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 놈이다.
그놈이 무림에 피바람을 일으킨다면 그건 순전히 제 놈 기분이 언짢아서일 것이 틀림없다.
어쨌든 마교 놈들이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곤륜의 영역을 공격했을 리는 없다.
그렇다는 것은 어떤 미친놈이 방유척의 흉내를 내고 있다는 뜻인데.
촤악!
진무는 검에 묻은 피를 바닥에 털어 냈다.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아직 말값은커녕 여물값에 비해도 한참 멀었다.
그리고 발자국 모양을 봤을 때 말고삐값 정도는 될 몇이 근처에 더 있는 게 확실하다.
방향은 북동쪽. 가는 경로상에 있다.
누군가 도망쳤고, 놈들이 쫓아갔다.
인원은 다섯. 차근차근 빚을 받아 낼 것이다.
파앙!
한곳으로 방향을 잡은 진무의 신형이 곧장 쏘아져 나갔다.
“사, 살려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아이를 보호하듯이 끌어안은 여인이 오들오들 떨며 뒷걸음질 쳤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 한가롭게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이 찾아오기 전까지.
그들은 잔인한 미소를 머금고 사람들을 무차별로 학살했고, 여인은 아이를 안고 도망쳤다.
뛰고 또 뛰었지만, 고작해야 산어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신발이 벗겨져 살가죽이 찢어지고, 넘어지고 굴러 옷은 흙투성이로 변했다.
그럼에도 아이만큼은 힘껏 안고 지켰다.
본능적인 모성 때문이다.
하지만 힘이 없었다.
“크흐흐.”
살육에 미쳐 버린 짐승은 금세 그녀를 따라잡았고, 칼날을 혀로 쓸며 여인을 향해 다가갔다.
“살려 줘?”
그럴 생각도 없으면서 물은 것이었지만, 겁에 질린 여인은 미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다섯 중 하나가 잔인하게 웃으며 작은 칼 하나를 여인의 앞에 던져 놓았다.
툭.
“……?”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여인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사내가 살기로 번들거리는 눈으로 말했다.
“죽여. 그럼 살려 줄게.”
“……!”
어찌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어미에게 어찌 그 같은 말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짐승조차도 제 새끼를 위해 목숨을 거는데!
여인은 가혹한 운명에 절망하며 미친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저런, 싫어? 그럼 내가 도와주지.”
사내가 여인의 손에 칼을 쥐여 주었다. 그리고 그 손을 다시 잡았다.
“자, 이렇게 하는 거야.”
그는 친절한 설명을 곁들이며 아이를 향하게 칼끝을 겨누었다.
여인이 발악하듯이 버텨 봤지만 그 우악스러운 힘을 이길 수가 없었다.
위급한 순간이 되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 모성이라더니, 어찌하여 자신은 이리도 나약하단 말인가.
칼끝이 아이의 목에 닿는다.
막 내린 눈처럼 하얀 속살에 칼이 파고들어 선홍빛 핏물을 쏟아 낸다.
아픔을 느낀 아이의 울음이 자지러지듯이 날카로워지고, 여인의 눈에서는 하늘을 저주하는 눈물이 터져 나온다.
“자, 좀 더 노력해 봐? 어렵지 않잖아?”
사내는 여전히 사악할 정도로 친절했고, 지켜보는 이들은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흥미진진한 눈으로 바라보며 낄낄대고 있었다.
“다 됐어. 이렇게 쉽잖아.”
휙!
무언가 세찬 바람이 스친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여인은 참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어찌 이리 악독하고 잔인하단 말인가? 어미가 아이를 죽이게 하다니.
절망감에 몸부림치던 여인은 문득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아이의 울음이 멈추질 않는다.
어째서?
여인은 절망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감았던 눈을 어렵게 떴다.
아이가 울고 있다.
분명 피로 범벅이 되었어야 했는데?
문득 자신의 손을 잡았던 사내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된 걸까?
그때 감정 한 올 실리지 않은 잔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런 개새끼들이…….”
여인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피를 흠뻑 뒤집어쓴 진무가 조금 전까지 여인의 손을 잡고 아기의 목숨을 위협하던 사내의 머리통을 움켜쥐고 있었다.
꽈득, 콰드득.
“끄으으…….”
안면을 움켜쥔 진무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기괴하기 짝이 없는 소리와 함께 사내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었다.
“고삐는커녕 말똥에도 못 미치는 놈.”
콰득, 콰드드드.
진무의 손은 그리 크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다섯 개의 손가락이 그의 눈, 코, 입을 중앙으로 당겨 모으며 살을 그악스레 파고들었다.
퍼석!
튀어 오르는 핏물과 함께 사내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뒤로 넘어가 버렸다.
얼굴은 짐승이 뜯어먹은 것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고 피로 범벅이 된 진무의 손에는 요상한 모양의 살점과 허연 뼈가 쥐어져 있었다.
“…….”
진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이를 안고 실어증 걸린 사람처럼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는 여인.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흐르는 발과 넝마가 되어 버린 옷만 봐도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도망을 쳤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럼에도 아기를 보호하듯이 몸을 둥글게 말고 있다.
뿌드득.
진무가 콧등을 찡그리며 흠칫한 표정으로 칼을 꺼내 들고 있는 마교 무인 넷을 응시했다.
“네, 네놈은 뭐냐?”
한 놈이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진무를 향해 외쳤다.
“우리는 마교 칠동천의 무인이다!”
안다. 이 새끼들아.
지금 중요한 것은 네놈들의 신분이 아니라 네놈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가다.
진무가 서늘한 눈빛으로 한 걸음 내딛자 막대한 투기가 전방으로 훅 뿜어졌다.
“크윽!”
고작 투기인데.
그 정도에도 충격을 받을 만큼 허접한 놈들이.
차라리 곤륜의 제자들이었어야지. 민초는 건들지 말았어야 했다.
더욱이 도망친 여인을 악착같이 따라와서 죽이려 했다니.
저벅.
또 한 걸음.
무거움이 세상을 짓눌러 놓는다.
“허, 허락한다면 여인을 놓고 가겠다.”
참 재미있는 녀석이다.
내가 지금 여인 때문에만 이러는 것이라 생각하는 건가?
“말, 여물…….”
“뭐?”
“니들 목숨값으로는 절대로 못 갚아.”
나지막하게 울리는 진무의 목소리에 마교의 무인들이 두려움 사이에 의아함을 품는다.
하지만 개소리라고 치부하기에는 진무의 기세에 짓눌려 숨조차 쉬지 못하며 몸을 떨어 대고 있었다.
음, 그래선 안 되지.
니들이 너무 쉽게 죽어서는 안 되지.
그 말, 당가에서 먹이고 기른 품종 좋은 한혈마(汗血馬)다.
하루에 천 리를 달리고도 지치지 않아 또 달리는 놈이다.
지금쯤 현포루에서 질 좋은 여물을 먹으며 진무를 기다리고 있어야 할 그 귀한 놈을 니들이 죽였다.
이건 그런 귀한 말을 죽인 복수이기에 더욱 잔인해야만 했다.
진무가 기세를 풀어 버리자.
“허억, 허억…….”
억눌려 있던 무인 넷이 일제히 헐떡거리며 숨을 쏟아 내었다.
“서로 죽일래?”
니들이 했던 것처럼.
“동료를 최대한 잔인하게 죽이는 놈은 봐줄게.”
진무의 차가운 말에 마교도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핀다.
“아니면 같이 덤벼 봐. 내 옷자락 하나라도 잘라 내는 놈이 있으면 그놈도 봐주지.”
진무는 그 말이 진심인 것처럼 빙긋이 웃어 주었다.
살기조차 느껴지지 않는 그 모습에 마교 무인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결국 둘 다 죽이겠다는 말이 아닌가?
“이봐, 뭘 고민하고 그래? 좋은 기회잖아. 옷자락을 조금이라도 자르면 돼. 참고로 나는 살면서 스스로 다짐했던 것을 어겨 본 적이 없는 사람이야.”
진심이다.
진무는 결단코 자신의 다짐을 어겨 본 적이 없었다.
“왜, 뒷짐이라도 져 줄까?”
진무가 인정 넘치게 양손을 뒤로 가져갔다.
마도 무인들이 빠르게 서로의 눈빛을 교환했다.
강하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것이 틀림없는 상황이다.
그럴 바에는 혹시나 정말로 그의 옷자락이라도 자른다면, 그래서 그가 정말로 약속을 지켜 준다면?
“죽여!”
그렇지.
잘 선택했다.
진무의 입가에 그 어떤 때보다 싸늘한 미소가 떠오른다.
이런 놈들 따위 강기를 휘둘러 잘라 버리면 그만이다.
숨쉬기만큼이나 쉽다.
하지만 절대로 그럴 순 없지.
곧게 뻗어 오는 칼의 예기 따위는 진무의 몸에 상처 하나 만들지 못했다.
탁!
슬쩍 차올린 발끝이 사내의 손목의 방향을 바꾸었고.
푹!
옆에서 칼을 휘둘러 오던 마인의 심장을 꿰뚫는다.
그리고 이은 발로 휘두른 칼의 방향만 바꿔 주면.
텁!
칼날이 다음 사내의 목에 박히고, 진무가 칼등을 밟아 힘을 더한다.
꾸득.
칼등이 사라질 때까지 박히자 핏물이 쏟아진다. 곧바로 발을 세워 발등으로 다음 사내의 목 뒤를 당겼다.
푸푹!
마교 무인 넷은 진무를 공격했다. 진무는 그 방향만 바꾸어 놓았을 뿐.
“크윽…….”
서로가 서로의 가슴에 칼을 박아 넣고, 목을 자른다.
“끄르륵.”
바람 빠지는 신음과 함께 무인들이 진무를 중심으로 마치 흐트러진 꽃잎처럼 쓰러졌다.
그리고 여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진무는 처음 얼굴을 뜯어 버린 놈의 옷자락을 찢어 내고 신발을 벗겼다.
그러곤 여인에게 다가갔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여인이 사력을 다해 벗어나려 애를 썼다.
당연히 그럴 터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진무는 마교인과 똑같은 무림인일 테니까.
하지만 진무는 억지로 여인의 발을 잡고 천을 감고 신발을 신겼다.
“아…… 으…….”
상처 때문에 쓰라린지, 아니면 무서워서인지 여인이 말도 못 하고 고통스럽게 얼굴을 찡그렸다.
“없는 것보단 나을 거다.”
“…….”
“정신을 차리면 저쪽으로 가라. 시신은 있을지 모르지만, 칼 들고 목숨을 노리는 놈들은 없을 테니까.”
진무는 그들의 뒤를 쫓아왔고 놈들은 북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진무가 알려 준 방향으로 가면 마교인은 없을 것이다.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무뚝뚝하게 말한 진무는 곧장 일어났다.
“저쪽이다. 방향을 잊지 마라.”
진무는 다시 한번 여인에게 방향을 가르쳐 주고 북동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지금이라면 괜찮다.
이미 먼저 양풍에 도착해 마교를 뒤쫓고 있을 운암이 마교 놈들의 의도를 알아냈을 것이다.
풍환의 제자가 될 정도로 뛰어난 놈이다.
흥분하면 말을 더듬긴 하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아는 녀석이다.
분명 지금쯤 곤륜의 지원대가 증원되었을 것이고, 방유척의 이름을 들었다면 정무맹에 소식을 전했을 것이 틀림없다.
가장 가까운 곳은 사천.
아무리 청해의 일이라고 해도 마교가 남하한다면 도울 수밖에 없었다.
정무맹이 움직이고 사천이 움직인다.
한시가 급하니 이미 증원이 되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진무는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는 여인을 바라보다 북동쪽으로 몸을 날렸다.
파앙!
발길에 솟구친 흙더미가 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의 몸이 화살처럼 쏘아졌다.
아직 놈들에게 받아야 할 빚이 많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