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진한 피비린내가 숲속을 가득하게 채워 흐른다.
곳곳에 널린 시신에 배고픈 까마귀 떼와 짐승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그들의 대부분은 마교의 무인들이었고, 그중 몇몇은 곤륜의 도사들이었다.
챙, 채앵!
쇳소리에 놀란 까마귀들이 푸드덕거리며 나뭇가지로 날아올랐다가, 사방이 먹잇감이니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다시 내려앉는다.
“저쪽이다!”
메아리처럼 멀리서 들려온 외침.
채앵!
“크악!”
쇳소리는 어김없이 비명을 만들었다.
때론 멀어지고 때론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는 소리의 발원지는 숲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 * *
“허억, 허억…….”
운암은 지쳐 있었지만, 눈동자에 담긴 정광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양풍에서 시작된 마교의 습격을 쫓아온 지 사흘.
밤낮없이 흔적을 쫓아온 그들은 마교의 선두가 쫓고 있던 방유척 일행을 우선적으로 확보할 수 있었다.
한 명의 노인과 두 명의 중년 사내.
방유척과 그의 식솔이었다.
그들을 확보한 운암은 곧바로 추격을 멈추고 도주를 감행했다.
지금의 전력으로 잔혼마도 이강백이 이끄는 칠동천의 세력들과 전면전을 치를 수는 없었다.
민초들의 피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 뻔했지만, 그 홀로 모든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가슴이 아파 왔지만 일단은 물러나야 했다.
증원을 요청했으니 일단 방유척을 안전한 곳으로 옮긴 다음, 마교를 몰아내는 것이 나으리라 판단한 것이다.
추격에서 도주로 목적을 바꾼 운암은 곤륜의 도사들과 남쪽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보호해야 할 대상이 있으니 속도를 제대로 낼 수 없었고.
“크크크, 여기까지 도망치다니 곤륜의 어린놈들이 아주 제법이구나.”
“…….”
가장 원하지 않았던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다.
적의 추격을 뿌리치지 못하고 포위되어 버렸다.
방유척을 뒤쫓던 칠동천의 선봉.
주위를 둘러싼 적들의 수만 해도 어림잡아 오십여 명에 달하는 것 같았다.
전력 차이가 너무 컸다.
또한, 그들은 이강백이 선별한 칠동천의 정예였다.
이전의 격돌에서 확인한 바로 탄기는 물론 의기의 무인들까지 동원된 상태.
무공의 우위로도 전력의 차이를 메꿀 수가 없었다. 결국, 진을 구성해 버티며 적의 수를 최대한 줄여야 했다.
운암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주변을 살폈다.
전력이 열세인 상황에서 그들이 버티는 방법은 더욱 유리한 지형을 선점하는 것이다.
“전현! 손방! 바위!”
운암의 외침과 함께 전현과 두 명의 제자가 마교의 포위망 한 곳으로 쏘아졌다.
“전요! 이중방진!”
남아 있는 제자들이 방유척 일행을 중심으로 해서 원을 그리듯이 방어진을 만들었다.
“이동!”
명령이 내려짐과 동시에 곤륜의 제자들이 검극을 세우고 원을 이룬 채 이동을 시작했다.
또다시 싸움이 시작되었다.
진형을 이루어 움직이는 것은 엄청난 속도 저하를 초래하지만, 대신에 막강한 방어력을 얻는다.
특히나 그들이 구성한 이중방진은 두 개의 삼재진을 겹친 진형으로 천룡각 제자들이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 온 것이었다.
바깥 원이 적의 공격을 막고 안쪽 원이 그 막은 적을 공격한다.
그 와중에 운암이 그 중심점에서 원형의 방어진 곳곳을 뛰어다니며 장력을 뿌려 대었다.
하지만 적들의 수가 너무 많았고, 며칠간의 추격전으로 인해 제자들의 피로가 누적된 것이 문제였다.
“큭!”
방진의 곳곳에서 상처 입은 제자들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버텨!”
운암이 방진의 틈새로 파고든 마교도의 머리를 터트리며 독려했다.
삼 장여, 멀지 않았다.
바위를 등지고 부채꼴 모양으로 횡진을 이룬다면 전방에서 공격해 오는 적만을 막으면 된다.
“일장! 횡진! 신호탄!”
바위에 다다랐을 때 운암이 삼재진에서 벗어나 칠동천의 무인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진형을 완벽하게 구성할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해서였다.
퍼엉!
지면을 밟으며 내지른 일장이 터져 나가고 칠동천의 무인들이 운암에게 공격을 집중했다.
“합!”
사방에서 날아오는 공격에 운암이 쉬지 않고 장력을 뿜어내며 돌아다녔다.
“사숙!”
그사이 진형을 구성한 전요가 신호탄을 쏘아 올리고 운암을 불렀다.
적들의 틈을 휘젓고 다니던 운암이 눈앞의 적을 터트려 버리고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후우…….”
운암이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포위망을 바라보며 숨을 가라앉힌다.
진은 완성되었다.
신호탄을 쏘아 올렸으니 증원을 위해 하산한 곤륜의 무인들이 확인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신호탄을 터트린다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아군에게 연락을 취할 수도 있지만, 적에게 발각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선택은 한정되어 있다. 위험한 도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제부터 최대한 빠르게 적의 수를 줄인다.
눈앞에 칼끝을 세우고 겹겹이 포위해 오는 마인들의 모습.
호흡을 고르는 운암의 귓가에 진을 구성한 제자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지쳐 있다.
곤륜과 마교 모두 다시금 진형을 구성하느라 잠시간의 틈이 생겼지만, 지체해서는 안 된다.
서둘러 적의 수를 줄이고 다른 곳으로 도주해야 했다.
선봉에 이어 적이 추가된다면 영영 도망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자신이 활로를 만들어야 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입에 단내가 나도록 싸울 수밖에.
지금으로선 그 방법뿐이었다.
‘제길, 조금만 더 강했다면…….’
갑자기 진무가 생각났다.
만약 그였다면 충분히 뚫어 내고도 남았을 텐데.
하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손님이다. 그리고 이것은 곤륜이 해야 하는 일이었다.
꾸욱.
운암은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지고 싶지 않다.
진무가 할 수 있다면 자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전현, 전요! 진형, 유지!”
“……!”
세 개의 단어를 연달아 외친 운암이 적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제길, 모두 자리를 지켜라!”
좌우의 핵심적인 위치를 맡은 전현과 전요가 검을 움켜쥐었다.
콰앙! 퍼억!
운암이 횡진의 앞을 좌우로 번갈아 움직이며 포위망을 좁혀 오는 마교도들을 공격했다.
그렇다고 해서 횡진에 전혀 공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담은 현저히 줄었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도 운암을 도울 수는 없었다.
진형이 흐트러지는 순간 방유척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지금 그들의 목표는 방유척을 안전하게 마교의 손에서 구출하는 것이다.
설령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더라도.
그렇기에 홀로 나선 운암이 위험한 상황임을 알면서도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쿠르릉!
용트림처럼 매서운 소음과 함께 운룡대팔식의 절초들이 순서를 가리지 않고 펼쳐졌다.
쾅! 퍼억!
운암의 장력의 터트려질 때마다 장력을 얻어맞은 자들이 피 분수를 뿜으며 쓰러졌다.
“사숙! 과합니다! 내공을 아끼십시오!”
진형을 지키던 전요가 다급히 소리치지만 운암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지금은 힘 따위를 아낄 상황이 아니었다.
한 번에 한 놈은 무조건 쓰러뜨려 전력을 줄여야만 했다.
그리고 재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한다.
“하압!”
쩌어엉!
쏘아진 장력이 거칠게 터지는 순간 운암을 향해 칼을 휘둘렀던 마인의 몸이 반이나 날아가 버렸다.
“후욱, 후욱…….”
근육이 찢어질 정도로 몸을 움직였고, 과도할 정도로 내공을 소모하긴 했으나 효과는 있었다.
운암이 장력을 뿜으며 광룡(狂龍)처럼 날뛰는 통에 좁혀 오던 포위망이 주춤거렸다.
마교와 곤륜 모두 지친 싸움에서 아주 잠시 숨 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그 사이 운암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흉포한 눈으로 포위망을 일별했다.
줄었다.
포위망이 현저하게 얕아졌다.
사력을 다한 덕분에 부상자와 사망자를 합해도 반절밖에 되지 않는다.
조금만 더, 앞으로 딱 열 명.
열 명만 줄이면 적의 추격을 피해 다시 도주를 시작할 수 있었다.
“마, 모조리, 죽인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으나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던 운암이 적들을 살기 어린 눈으로 쏘아보며 이전보다 더욱 기세를 끌어 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포위망이 갈라진다.
드르륵, 드르륵.
무거운 쇠가 땅을 끌며 다가오는 소리.
질식할 듯이 공간을 채우는 짙은 마기와 함께 다가오는 인물.
마치 열린 문 사이로 걸어오는 것처럼 느긋하기 짝이 없는 걸음의 그는.
“이, 이강백.”
운암의 턱 언저리에 짙은 근육이 생겨나고, 곤륜 제자들의 얼굴에 절망감이 떠오른다.
마교 십이동천 중 신강과 청해의 경계를 담당하는 칠동천의 주인.
잔혼마도 이강백.
마교 서열 이십 위의 고수이자 거대한 참마도를 사용하는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의 뒤를 따라 칠동천 본대의 무인들이 포위망에 더해진다.
쿠웅!
가볍게 들어 올렸던 참마도가 바닥을 수직으로 거칠게 내려찍었다.
팽팽하게 평행을 유지하던 기세가 일시에 깨어져 버렸다.
“곤륜의 어린놈들.”
“…….”
검게 물든 이강백의 눈동자가 횡진의 앞자락을 막은 운암을 향한다.
“구야자를 내놓거라.”
“개소리!”
운암의 외침에 이강백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오른다.
“이강백! 전쟁을 할 참인가?”
“전쟁? 우습구나, 곤륜의 제자야. 마교와 곤륜 사이에 전쟁이 아닌 날도 있었더냐?”
이강백이 수직으로 세웠던 참마도를 한 손으로 잡아 들고 운암을 가리켰다.
“버티면 모두 죽는다. 결정해라.”
간결한 위협과 함께 마기가 훅하고 뿜어져 나와 곤륜의 제자들을 짓눌렀다.
“웁!”
진형을 이룬 제자들이 그 위압감에 억눌린 신음을 만든다.
강의 경지에 도달한 무인이다.
숱한 위기를 넘겨 올 정도로 뛰어난 곤륜의 제자들에게 기세만으로도 내상을 입힐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과연 할 수 있을까?
운암의 마음속에 불안감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해야만 한다. 아니,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곳에서 그와 싸울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었다.
운암이 막지 못한다면 모두가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도륙당할 것이 틀림없었다.
“사숙.”
“……?”
“이제 저희에게 맡기십시오.”
운암이 머뭇거리는 사이 전요와 전현이 진형을 포기하고 옆으로 다가와 검을 움켜쥐었다.
그들 또한 알고 있는 것이다.
이강백이 나타난 이상 진형은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
“사숙께선 우리 곤륜의 미래입니다.”
“전요의 말이 맞습니다. 저희가 싸우는 동안 사숙께선 물러나셔야 합니다.”
전요와 전현이 서로 질세라 운암의 앞을 가로막는다.
“전요…… 전현…….”
“사숙께선 진룡의 이름을 이으실 분입니다. 절대로 이런 곳에서 죽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을 굳건하게 드셔야 합니다.”
전요의 말을 전현이 잇는다.
“군자의 복수는 십 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고 했습니다.”
“…….”
“저희는 이곳에서 죽을 테니 사숙께선 다음 전장에서 놈을 죽이시면 됩니다.”
“전현.”
“물러나라는 말씀은 마십시오. 저희에겐 구야자를 마교에 빼앗기는 것보다 사숙을 지키는 것이 더욱 중합니다.”
전현의 말에 뒤에서 진형을 구성하고 있던 곤륜의 제자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보다 한참이나 많은 나이의 사질들…….
“걱정 말고 저희 말에 따라 주십시오. 곤륜 무인에게 있어 가장 명예로운 것은 마교와의 전장에서 죽는 것입니다.”
아!
전현의 말에 운암은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무엇을 불안해했단 말인가?
무엇을 우려해 머뭇거렸단 말인가?
전현의 말이 옳다.
한순간 깨닫자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편해졌다.
이길 수 없으면 어떠하단 말인가?
곤륜의 무인은 마교를 막아선 중원의 수호자다. 그것이 그들의 명예이자 오랜 시간 지켜 온 의지였다.
이기고 지고의 문제를 떠나 목숨을 걸고 지킬 뿐이었다.
‘내가 멍청하였구나. 사질들에게 볼썽사나운 꼴을 보였어.’
운암이 가슴이 크게 부풀도록 숨을 들이쉬었다가 일시에 내뱉으며 앞으로 나섰다.
“사숙?”
전현과 전요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지금부터 천룡각의 제자들은 마도의 악적을 맞이해 싸운다. 나머지 제자들은 증원이 올 때까지 구야자를 끝까지 보호하라.”
한껏 힘이 들어간 목소리가 짜릿하게 울려 퍼진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비록 원했던 상황은 아니었으나, 운암의 결연한 기개에 더 이상의 만류를 포기한 전현과 전요가 이강백을 향해 자세를 취했다.
“눈물겨운 놈들이군. 그래, 하는 꼴을 보니 결정을 한 모양이구나.”
휘릭!
크게 휘돌려진 참마도를 어깨에 얹어 든 이강백이 자세를 낮추고, 그와 동시에 눈에서 살기와 뒤섞인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한 놈도 빠짐없이 썰어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