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어쨌든 한혈마를 끌고 가는 게 이상해서 유심히 봤지.”
“그게 왜?”
“이상하잖아. 한혈마 한 마리가 돈이 얼만데 이런 꼬맹이가 끌고 다니겠어?”
“하긴.”
“그래서 유심히 살펴보니 당가의 표식이 있더라고. 가문에서 기른 말 중 우수한 품종에는 일부러 이렇게 표식을 하거든. 나중에 씨말로 써야 하니까.”
당세령이 가리킨 말의 귀에는 과연 삼각형 모양의 자그마한 낙인이 찍혀 있었다.
아…….
“그래서 추궁했지, 어디서 났냐고. 근데 곤륜으로 가는 도사가 맡겼다고 하잖아. 그래서 혹시나 한 거야. 니가 아닐까.”
아!
“근데 이 녀석, 함께 있다 보니 말솜씨가 제법이더라고. 눈치도 꽤 빠른 편이고.”
“그래서?”
“그래서는. 이런 인재는 당연히 낚아채야지.”
진무는 감자현에 있던 그 넉살 좋은 객점 주인을 떠올렸다.
“그럼? 이 녀석도?”
“어, 객점 하나 내주려고.”
당세령이 히죽 웃었고 대웅이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참, 쉽게도 말한다.
객점 하나 내는 걸 무슨 저잣거리 당과 하나 사 먹듯이 말하냐.
“어쨌든 오늘 표국에 의뢰해서 대웅이랑 그 가족들까지 사천으로 보내기로 했어. 지금 여기서 만나기로 했었고.”
그건 잘됐네.
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기 오네.”
당세령이 관도 쪽으로 손을 흔든다.
한눈에도 표사입네 하는 복장을 한…… 꼽등이?
저 녀석도 익숙하다.
그러니까 분명 이름이…….
“야! 문태석!”
그래, 문태석.
사천에서 만났던 그 암수 서로 볼썽사납게 정답던 문태석이다.
“이 자식이, 빨리빨리 안 다녀? 웅천표국주한테 거래 끊자고 할까?”
“아이구 아가씨. 어찌 그러십니까요. 최선을 다해 달려왔습니다.”
문태석이 억울하다는 듯이 목을 움츠렸다.
“이게 진짜 결혼하더니 빠져 가지고.”
아, 그사이에 결혼했구나.
꼽등이랑 꼽등이가.
“대웅이랑 같이 가. 가족들까지 포함해서 당가까지 호위해. 우리 가문에서 특별하게 키워야 할 인재니까 가는 데 불편함 없도록 하고.”
“예. 이미 짐을 실을 수레와 마차도 준비했습니다.”
“그래. 좋아. 명심해, 나중에 물어보고 조금이라도 불편했다고 하면 거래를 끊어 버릴 거니까.”
“걱정 마십시오. 저 이제 유부남입니다!”
문태석이 제 가슴을 치며 장담했다.
“좋아. 그럼 출발해.”
당세령의 말이 끝나고 문태석과 대웅이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그런데.
“넌 안 가냐?”
“내가 왜?”
“…….”
“어떻게 도망쳐 왔는데 다시 가? 이제 너 따라갈 거야.”
당세령의 얼굴에 이상한 결의가 넘친다.
“내가 없을 때 기녀를 만나거나 하는 일이 있었다면 그건 용서해 주겠어. 하지만 이제부턴 절대로 안 돼! 알겠어?”
그런 적도 없거니와, 애초에 니가 신경 쓸 부분이 아니거든.
아, 젠장.
거머리 같은 게 진짜.
진무는 눈앞의 애물단지를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서 죽여 버릴까 하는 고민을 새삼 몇 번이나 했다.
* * *
끈질기게 들러붙는 거머리 한 마리와 함께 오른 곤륜의 분위기는 매우 무거워져 있었다.
죽은 이들도 문제였지만, 방유척으로 위장한 이들 때문이었다.
누군가 마교와 곤륜, 혹은 정무맹과의 전쟁을 유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격이라 할 만했다.
이런 일을 꾸미는 이유는 단 하나, 이득이다.
그렇다면 정무맹과 마교의 전쟁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구인가?
예전이라면 당연히 사패천이 지목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무맹에서 최근 새로운 적에 대해서 선포했다.
궁(宮), 의문의 무리.
그들을 배제할 수가 없었다.
그로 인해 곤륜의 수뇌들이 모여 심각하게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일단, 정무맹에 연락을 취하라. 어떤 취조를 해도 놈들이 입을 떼지 않으니 그들을 기다리는 수밖에.”
장문인 운해가 굳은 얼굴로 명했다.
“알겠습니다. 한데 장문인,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마교 추격전에 나섰던 운암이 조심스럽게 의사를 드러내었다.
“말하게.”
“진무 도장과 함께 온 일행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진무 도장의 일행이라면 그 당가의 여식을 말하는 것인가?”
“예. 당가는 원래 그러한 일에 능하지 않습니까?”
“음. 그렇기는 하나 손님인데 부탁하기가…….”
운해의 말에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더욱이 당가의 금지옥엽이라 했으니 그러한 경험이 없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봉신관의 주인이자 유일한 여장로인 운령이 고개를 저었고.
“맞습니다. 심문을 하자면 더러 사내들도 눈을 찌푸리는 일이 일어나는 법이거늘. 실례인 줄 압니다.”
운검 장로가 그 말에 동조했다.
“……그래 보이지는 않던데요?”
“응?”
운암이 중얼거리자 운해와 장로들이 의아한 표정을 했다.
“그게, 꽤 경험이 많아 보여서. 성격도 굉……장히 드세 보이고…… 무공도 그만하면.”
“…….”
운암의 말에 장문인과 장로들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 * *
“야! 한판 하자니까?”
당세령의 음성이 쩌렁쩌렁하게 천룡각을 울리고 진무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당세령과 함께 곤륜에 오른 뒤 천룡각에서 기거하기 시작한 지 이틀째.
곤륜 역시 여류 무인이 산문에 드는 것에 조금도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역시 망할 무당만 그런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무공의 끝이 태극이라 믿는 놈들이 음양의 조화를 금하다니.
하지만 지금은 그런 무당이 훨씬 그리웠다.
눈앞에 있는 당세령 때문에.
“하자고!”
지치지도 않고 자신을 도발하는 당세령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제자들 많잖아.”
“누구?”
“곤륜……. 아, 젠장.”
진무가 천룡각의 제자들을 지목하려다가 또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제법 예쁜 얼굴을 하고 있는 당세령에게 관심을 보였던 천룡각의 호승심 넘치는 도사들이 이제는 하나같이 슬금슬금 피하는 눈치다.
눈에 멍이 든 놈, 다리가 부러진 놈, 이빨이 나간 놈.
전부 하루 만에 당세령이 만들어 낸 광경이다.
이 회복력 좋고 지치지 않는 여인은 천룡각에 기거를 시작함과 동시에 눈에 보이는 족족 비무를 신청했다.
그녀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천룡각의 제자들 역시 풍환이 공들여 키운 인재들이었다.
그런데 탄기의 경지에 이른 실력에 쇠가죽을 두른 소인 양 뛰어난 맷집을 가진 그녀의 상대가 될 수 있는 것은 운암뿐이었다.
그 운암마저도 장로 회의에 참석하느라 자리를 비웠으니, 그녀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진무에게 아침부터 귀찮게 들러붙고 있는 것이었다.
“하아, 그냥 혼자 수련해.”
“재미가 없단 말이야.”
“그럼 딴 데 가서 놀든가!”
“어허! 그 무슨 섭섭한 소리. 낭군이 여기 있는데 어찌 아녀자가 따로 떨어져서 논단 말이야? 더욱이 곤륜에는 여제자들도 많고.”
“그래서?”
“지켜야지. 혹시나 한눈팔지 않도록.”
우렁차게 외치는 그녀의 말에 천룡각의 제자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러다간 중원 전역에 소문이 날 판이다.
진짜 죽여야 하나?
뭐, 그래도 마냥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당세령이 설치고 돌아다니는 통에 동료의 죽음으로 인해 무거워졌던 분위기가 옅어지고, 서서히 활기가 돌아온다.
진무가 고심하다가 슬쩍 천룡각을 바라보았다.
이 층 창가로 풍환이 보였다.
빨리 후반부의 구결을 알아내야 하는데.
풍환을 곤륜에서 빼내는 것만도 문젠데 이런 거머리까지 귀찮게 하니 머리가 복잡했다.
따로 술이라도 마시자고 할까? 전에 보니 자주 마시는 것 같던데.
아니면 무공을 가르쳐 달라고?
그래. 그편이 뭔가 설득력도 있고 좋다.
마교와의 싸움에서 부족함을 느꼈다고 하면서,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꾀어내는 것이다.
지금 곤륜은 진무를 은인 대하듯이 한다.
당연하다. 그가 구한 곤륜의 제자가 열 명도 넘으니까.
또한, 민초의 죽음을 외면했다 대놓고 꾸짖기까지 했으니 이제 운암마저도 진무를 대함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운암과 함께 마교를 뒤쫓았던 이들이 소문을 내 준 덕분에 함부로 호승심을 드러내는 이도 없었다.
천룡각은 물론 곤륜의 도사들의 시선에 비친 진무는.
화가 나면 사람을 잔인하게 찢어 죽이는 악귀 도사로 소문나 있었다.
얼굴만 패서 쓰러진 이강백의 다리뼈를 마디마디 부숴 놓았다는 이야기는 그 소문에 정점을 찍어 놓았다.
이젠 모두가 호승심이 아닌 두려움이 깃든 눈으로 진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장문인 이하 장로들마저 은인으로 인정해 주는 판에 제자들의 눈에는 두려움까지 깃들었으니 누구도 진무의 행동을 제약할 수 없었다.
하물며 무당에 대한 연민을 마음속 깊이 가지고 있는 제정신일 때의 풍환은 가르침을 달라는 진무의 청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야! 그냥 한판 하자니까!”
이 거머리를 어떻게 떼어 놓느냐 하는 것인데…….
그냥 같이 데려가야 하나?
어쩌면 전처럼 뒷발로 쥐를 잡을지도 모르고.
진무가 줄기차게 고심하고 있던 그때.
“당 소저께선 여전히 활기차시군요.”
회의차 운궁으로 갔던 운암이 돌아왔다.
“아, 운암 도장!”
진무에게 끈질기게 조르고 있던 당세령이 반색을 했다.
“합시다!”
듣기에 따라 참 다양한 상상을 하게 되는 말을 쉽게도 내뱉는다.
그래도 생각은 있는지 진무를 제외하고는 쉽게 반말을 하거나 하진 않았다.
“당 소저께서는 정말 지치지도 않으시는군요?”
“지치다니요? 아침부터 너무너무 쌩쌩한걸요.”
“하하, 정말 당 소저의 호승심은 못 말리겠습니다.”
“그러니까 한판.”
“저도 그러고 싶지만, 오늘은 두 분께 긴히 부탁드릴 일이 있습니다.”
부탁? 뭔 또 귀찮은 일을 시키려고?
진무와 당세령이 운암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그, 방유척으로 위장했던 이들 말입니다.”
“그게 왜?”
“당최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게 당 소저의 도움을 좀 빌렸으면 해서…….”
운암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왜 당세령이 아닌 진무의 눈치를 살핀단 말인가?
“어떤 도움요?”
“가능하시다면 심문을 좀.”
“아, 난 또 뭐라고. 어렵지 않죠.”
당세령이 대수롭지 않게 웃자 운암이 진무를 슬쩍 바라보았다.
왜? 뭐?
진무가 눈을 찌푸리자 운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괜찮으시죠?”
“…….”
그걸 왜 나한테 묻지?
“아무래도 좀 그럴까요?”
뭐가?
“진무 도장의 연인이신…….”
이 자식의 아가리를 찢어 놓아야 하나.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당세령이 흐뭇하게 웃는다. 넌 또 왜 쪼개냐?
“괜찮지? 가게 해 줄 거지?”
“…….”
아, 둘 다 꺼졌으면 좋겠다.
“제게 물을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당 소저께서 허락하면 된 것이지요.”
진무의 말에 운암의 얼굴이 밝아졌다.
“아,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당세령이 신이 난 듯이 대답했다.
가만 보면 죽이 참 잘 맞어, 둘이.
“그런데 운암 도장. 혹시 만약 제가 뭐라도 얻어 내면…….”
응? 보상을 바라는 건가?
진무가 순간 답을 찾은 기분으로 당세령을 쳐다보았다.
그래,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도와주고 나서 풍환에게 알고 있는 구결을 알려 달라고 하면 될 일이 아닌가?
만약 진무가 묻는다면 또 무당을 도와야 한다 어쩐다 하고는 간악한 사패천주를 외칠지도 모르지만 당세령이라면?
진무가 반색하며 당세령에게 말하려는데.
“장로님이나 장문인과 비무를 할 수 있겠습니까?”
“아, 그건 걱정 마십시오. 제가 특별히 부탁해 놓겠습니다.”
“예! 그럼 갑시다!”
야, 잠깐.
잠깐만 내 말 좀 들어 봐.
지금 이게 대가로 고작 비무 따위나 받을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당세령과 운암은 벌써 저만치 사라지고 있었다.
젠장. 됐다, 됐어.
원하는 걸 남의 도움을 통해 얻어서야 되겠는가?
어쨌든 일단 떼어 내긴 했으니까.
그녀가 심문에 열중하느라 모습을 보이지 않는 동안.
“반드시 얻고야 만다.”
진무는 풍환을 만나기 위해 천룡각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