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당세령은 탁자에 놓여 있는 술병을 잡자마자 가까이 다가온 사내의 대갈통을 거세게 후려쳤다.
부서져 허공에 흩날리는 술병 조각.
선 채로 뒤로 넘어가는 얼굴에 검상이 가득한 털보 사내.
“좀 조신하게 보이려고 했더니 이런 망할 자식이! 뭐? 술 시중?”
손잡이만 남은 술병을 손에 든 당세령이 핏발이 잔뜩 서린 눈으로 한기를 토해 내었다.
차아앙!
“이년이 감히!”
털보 사내가 쓰러지자 그의 일행들이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칼부터 뽑아 들었다.
안 그래도 운암의 지도(?) 아래 제대로 사랑의 기술을 수련한답시고 성질머리를 있는 힘껏 누르고 있던 터라 당세령은 가득 채워진 화약고 같았다.
거기에 멍청한 낭인 놈들이 사태 파악을 못 하고 심지를 당겼으니.
“쟤들 아마 죽진 않겠지만…….”
진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사이 당세령의 손이 가까운 뱁새 눈깔 낭인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이런 개만도 못한 놈이! 사내 맛이라고? 어디 진정한 여자 맛부터 봐라!”
쩌억!
첫 번째 주먹은 얼굴!
뒤이어 솟구친 무릎이 사타구니에 작렬했다.
뽀작!
“크에엑!”
어딘가 터져 버린 듯 뱁새 눈의 낭인이 기괴한 음성과 함께 눈을 허옇게 까뒤집으며 주저앉았고.
“이런 개 같은 년!”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반응조차 하지 못했던 세 번째 낭인이 뒤늦게 칼을 휘둘렀지만.
“넌 앙칼진 게 좋다고 했지?”
허리를 비스듬히 꺾어 칼날을 피해 낸 당세령의 손톱 다섯 개가 날카롭게 섰다.
쫘자자작!
“끄아악!”
범이 앞발을 후려치듯이 긁어내자 낭인의 얼굴 피부가 고랑처럼 깊게 파였다.
“내가! 앙칼지기로 따지면! 천하제일인 여자야!”
쫙! 쫘좍! 쫙!
당세령의 양손이 잔인하게 그어졌다.
“끄아악!”
그때마다 허공에 피가 튀어 오르고, 사내의 몸에는 마치 짐승이 할퀸 듯한 상처가 생겼다.
취릿! 뻐어억!
그리고 이어진 뒤돌려 차기가 사내의 뒤통수에 거칠게 작렬했다.
“이런 개자식들이 뒈질라고! 어디서 감히!”
순식간에 마룻바닥을 잠자리 삼아 누워 버린 낭인들의 모습에 객점 안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주인장!”
“예?”
당세령의 살기 어린 모습에 객점 주인이 부동자세를 취하며 대답했다.
“병신같이 쓰러진 놈 셋, 그리고 우리 셋. 예약한 사람들이 저 모양이니 이젠 자리 있겠죠?”
“……옙!”
열 손가락에 묻은 피를 뚝뚝 흘리며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당세령 앞에서 절대로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겠지.
“그럼 술! 제일 잘하는 요리! 가져다줘요!”
“예!”
당세령의 주문에 객점 주인이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지, 진무 도장…… 정말로 당 소저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것이.”
당세령의 연모를 응원했던 사실은 어느새 까맣게 잊은 운암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진무로서는 안 봐도 뻔한 그의 착각을 고쳐 주고 싶었지만.
“뭐 해, 자리 생겼어. 앉아.”
당세령이 자신이 창출해 낸 자리에 앉아 환하게 웃으며 손짓했다.
언제 싸웠냐는 듯이.
역시 독보적이다.
그래도 덕분에 편히 먹고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당세령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하게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다시 원래의 시끌벅적한 모습으로 돌아갔고.
“뭐야? 벌써?”
한 상 가득 차려지는 술과 음식.
숙수가 살아오는 동안 발휘해 본 적이 없는 속도로 만든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음식이 놓이는 순간 진무가 젓가락질할 새도 없이 사라졌다.
병째로 술을 들이켜고 쉬지 않고 음식을 입으로 쑤셔 넣는 당세령은 마치 한 마리 아귀(餓鬼)처럼 보였다.
“자, 잘 먹네요.”
“그, 그러게.”
걸신들린 듯한 그녀의 모습에 질린 운암과 진무는 차마 젓가락질을 하지 못했다.
“무어 해, 머거.”
입안에 음식을 잔뜩 처넣고 우물거리듯이 말하는 당세령.
너나 많이 처먹어라…….
하여간 조신함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더구나 이런 피바다에서 목구멍으로 음식이 잘도 넘어가겠다.
“아, 배부르다.”
한참이나 고개를 처박고 음식을 먹어 치우던 당세령이 빵빵하게 부푼 배를 두들기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데.
“으, 으음.”
술병에 얻어맞고 기절했던 털보 낭인이 정신을 차렸다.
그리곤 잠시 멍한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아마 호되게 머리를 맞았으니 아주 짧게나마 기억이 사라졌을지도.
그리곤, 낭심을 잡고 쓰러져 있는 사내와 맹수에게 당한 듯 피투성이가 된 사내를 발견하고 얼굴을 흉신악살처럼 일그러뜨린다.
“아니, 니들?”
벌떡 일어난 사내가 칼을 뽑아 포만감에 취한 당세령을 노려보았다.
“이런 개 같은 년이!”
자신에게 닥친 불행이 무엇이었는지 이제야 기억난 모양이었지만, 이젠 운암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이미 가볍게 눈을 흘긴 당세령이 탁자 위에 놓았던 젓가락을 튕기고 있었으니까.
핑! 따앙!
나무로 만든 힘없는 젓가락이 널찍하고 두툼한 칼날에 힘차게 박혔다.
“…….”
눈을 찢어질 듯 부릅뜨고 칼에 박힌 젓가락과 당세령을 번갈아 쳐다보는 털보 사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리를 다시 사고 싶으면 두 냥 내. 금으로. 아니면 술 시중이라도 들든가?”
돈이 있어도 산다고는 말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서늘한 빛을 품은 당세령의 눈빛에 털보 사내가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알만 굴렸다.
차마 시선조차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오줌을 지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하기 싫으면 꺼져. 니 동생들 데리고.”
그나마 관용을 베푸는 것을 보면 배도 부르고 술도 한잔한 덕분인지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왜? 한번 해 볼래?”
당세령이 장난스럽게 남은 젓가락을 쥐자 털보 사내가 재빨리 쓰러진 일행을 부축해 세우고 도망치듯 객점을 빠져나갔다.
당세령 덕분에 두 개의 탁자를 얻게 된 것은 물론, 그들이 값을 치른 방 네 개까지 공짜로 얻게 되었다.
물론 객점 분위기를 싸늘하게 바꾸어 놓은 덕분에 모두가 진무 일행을 괴물 보듯 하고 있긴 했지만.
“더 먹을 거야?”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안 먹었거든.
너 혼자 다 처먹었지.
“뭐야, 안 먹었네? 그럼 먹고 있어. 난 좀 씻어야겠으니까.”
탁자 주변을 온통 피바다로 만들어 놓고 손톱 밑에 살점까지 낀 꼴을 하고서도 참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과연 냉심독녀.
당세령이 객점 주인에게 목욕물을 데우라 하고 제 방으로 가 버린 뒤, 진무가 막 새로운 음식을 시켜 운암과 술을 한잔하려는데.
“이, 이보시오.”
“……?”
멀찍하게 앉아 있던, 서른 후반쯤으로 보이는 낭인 하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혹 뉘신지 물어도 되겠소?”
“왜 그러오?”
진무의 대답에 낭인이 혹여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까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아니 저들을 그리 쉽게 상대하는 것을 보니 보통 분들은 아닌 듯하여.”
“아, 저희는 곤…….”
낭인의 말에 운암이 공손하게 답하려는 것을 진무가 막았다.
강호에서 쓸데없이 호구 조사에 응하는 것은 그다지 현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소문이 빠른 낭인들을 상대로는 더욱 그러하다.
“그저 이름 없이 유랑이나 하는 처지에 무슨 이름이 있겠소.”
“…….”
진무가 둘러대듯이 말했지만, 낭인은 그가 이름을 밝히기 꺼리는 것을 깨닫고 더 묻지 않았다.
“아까 그 무사님의 실력을 보면 이름 없는 분들은 아닌 듯하나, 어지간하면 지금 즉시 이곳을 떠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낭인의 말에 진무가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왜 떠나야 합니까?”
“아까 그대의 일행이 짓이겨 놓은 자들은 이 일대에서도 유명한 마염단(魔炎團)이라는 낭인대의 막내들이오.”
마염단?
유명하다는데 들어 본 적 없다.
볼 것도 없이 잔챙이.
하긴 그 셋의 실력으로 보면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지만.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객점 안의 사람들이나 주인까지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다.
특히, 장사를 하는 객점 주인은 혹여 자신에게까지 피해가 미칠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그 마염단이라는 자들이 몇 명이나 되오?”
“열 명이오.”
“열? 그럼 고작 일곱 남았구만.”
참 웃기는 놈들이다.
고작 열 명 가지고 ‘단’이라는 이름을 붙이다니. 하물며 마염이란다.
하여간에 사파 놈들 허세하고는. 귀엽다, 귀여워.
진무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낭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걱정했다.
“고작 일곱이 아니오. 아까 그대들이 상대했던 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인물들이오. 모두가 쟁쟁한 위명을 가지고 있단 말이오. 듣기로는 단주의 무위가 현기에 이르렀다 하더이다.”
현기란다.
모처럼 신선하다.
근래에는 죄다 의기에 강기에 오른 놈들만 봐서 탄기의 끝자락에 있는 당세령조차 우습게 느껴질 정도였는데.
“더욱이 제 기분이 상하면 살인을 밥 먹듯이 하기에 관에서도 주시하고 있으나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이들이오.”
그의 말에 진무가 입꼬리를 매끄럽게 말아 올리며 웃었다.
원래 싸움터를 찾아다닌다고 해도 낭인들에게는 현상금이 붙지 않는다. 하지만 관에서 주시하고 있다면 필시 현상금이 있을 터였다.
“제법 값이 나가겠군.”
“뭐요?”
“그 마염단이라는 자들.”
“그게 무슨?”
“아니, 살인을 한 것을 알면서도 관이 섣불리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면 응당 현상금이 붙었을 게 아니오?”
진무의 물음에 잠시 응시하던 낭인이 무언가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묻는다.
“설마…… 엽인(獵人)이셨소?”
그의 질문에 진무가 그저 웃기만 하자.
“어쩐지 그 무사의 실력이 나이답지 않게 대단하다 했더니……. 내 엽인이시라니 더는 말하지 않겠소이다. 하지만 조심하시오. 듣기로 그들이 합격진까지 수련해, 제법 뛰어난 엽인들도 다수 죽어 나갔다고 하니.”
합격진.
그건 좀 궁금하다.
단장이 현기에 이른 놈들은 도대체 어떤 합격진을 구사할까?
낭인은 그 말을 끝으로 진무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진무 도장, 엽인이 뭡니까?”
운암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엽인, 혹은 엽사. 원래 사냥꾼을 칭하는 말인데, 보통은 도망친 범죄자나 현상금이 걸려 있는 마두들을 잡아서 먹고 사는 이들을 가리키지. 상금엽인(賞金獵人), 줄여서 엽인.”
“현상금을?”
“그래. 우리에게 경고를 해 주러 왔다가 엽인이라는 것을 알고 물러간 건 그 때문이야.”
“그렇군요. 그런 것까지 알다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뭘, 이까짓 걸 가지고.
살수, 낭인, 엽인.
그들 모두가 일정한 돈을 목적으로 중원을 떠돌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사람 죽이는 것은 살수, 대신 싸우는 것을 낭인, 대신 잡아 주는 것을 엽인이라고 부른다.
등 따시고 배부른 정파의 후기지수들과는 달리 죄다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사는 이들이고, 그런 만큼 그들 간의 선을 명확히 긋는다.
싸움을 업으로 삼았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싸움터를 전전하는 삶을 살지만, 마염단 같은 자들을 잡는 건 엽인들의 영역이기에 더 참견하지 않고 물러나는 것이다. 지금처럼.
그나저나 특이한 인물이다.
낭인들은 대체로 타인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뿐더러 동료라 해도 걱정을 하지 않는 법이다.
죽음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렇다.
그들의 삶에 있어 어제 옆에서 싸우던 이가 내일 죽어 없는 것은 허다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언제든 같은 목적을 위해서 동료가 되었다가, 일이 끝나면 헤어진다.
그런데 도망치라 경고까지 한다고?
“이보시오!”
진무의 부름에 낭인이 고개를 돌렸다.
“이름이 뭐요?”
“……적생. 작은 낭인대를 이끌고 있소.”
적생(積生).
삶을 쌓아 간다.
매번 목숨을 걸면서도 살아야만 하는 낭인에게는 무척이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충고 고맙소.”
진무의 말에 낭인, 적생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뒤로 그들의 일행이 보였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술을 마시고 있지만, 주고받는 눈빛에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가득히 담겨 있었다.
“특이한 낭인대로군.”
“……예?”
진무의 중얼거림에 운암이 의아하게 쳐다봤지만, 진무는 따로 대답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