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이름?”
“적생입니다.”
“적생? 처음 듣는데?”
“그리 유명하지 않습니다.”
“그래 보이오.”
접수대의 학사가 그의 뒤를 따르는 낭인대를 슬쩍 보고 말했다.
“함께 참여할 생각이오?”
“예. 저희는 낭인대로 참여할 생각입니다.”
“흠, 그럼 저쪽으로 가서 줄을 서시오.”
“예.”
적생은 공손하게 대답하며 접수대와 조금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도 이미 많은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형님, 이번에도 선단부에 배치되겠지요?”
포산이 묻자 적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우리 낭인대의 실력이면 그럴 것으로 보이네.”
“이번에도 꽤 힘들겠군요.”
“음.”
적생과 포산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운암이 궁금해하면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예?”
“선단부에 배치된다는 것이?”
어찌해서 진무가 사파의 전투에 참여하는지는 몰라도 그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일찍이 풍환이 그를 가르칠 때 배움에 정사의 구분은 없는 법이라 했다. 운암은 그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아, 엽인이시라 잘 모르실 수도 있겠군요. 실은 이곳은 저희처럼 이름 없는 낭인들의 실력을 평가하는 곳입니다.”
“평가를 해요?”
“예. 아무리 사파인들이라 해도 실력이 안 되는 자들을 전투에 내세우진 않습니다.”
“아, 그렇군요. 아무리 전쟁이라 해도 의미 없는 죽음은 최대한 배제하려는 것이군요.”
“…….”
운암의 말에 적생이 씁쓸하게 웃었다.
“어쨌든 저희 실력이면 통과는 하겠지만 아마 전투의 선단부에 배치될 것입니다.”
“호오? 선단부라니. 가장 중요한 곳이 아닙니까? 대단하십니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그저 겸양이셨군요. 들어 보니 자주 선단부에 배치되셨던 것 같던데.”
“……예, 뭐 거의.”
운암의 천진난만한 감탄에 적생이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다시 씁쓸하게 웃었고, 옆에서 듣고 있던 진무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멍청한 소리다.
사파인들은 실력이 안 되는 자들이 전투에 휩쓸려 죽을까 하는 것 따위는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대신 죽으라고 낭인들을 모집하는데 뭐 하러 걱정 따윌 한단 말인가?
그저 쓸모도 없는 낭인들을 고용하는 돈이 아깝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투의 선단부에 선다는 의미는 운암의 생각과는 다르다.
정파는 통상 선단부에 정예들을 배치하고 고수들이 앞선다. 모든 싸움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함이라 믿기에 그렇다.
하지만 사파는 다르다. 그들의 싸움은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선단부는 그저 적의 힘을 빼기 위한 칼받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기에 죽는 것이 대부분이다.
한데, 매번 선단부에 서서 싸우면서도 십 년이나 생존했다니.
진무가 적생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는 어쩌면 생각 이상으로 군사로서의 능력이 뛰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진무는 선단부 따위에 서 있을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그가 낭인들과 함께 전투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첫째로 왜 싸우는가를 알기 위함이었으며, 둘째로는 제 식구나 다름없는 천웅방을 공격하기 위해 사패천의 본성에서 온 놈의 낯짝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그였다면 당장에 사패천 본성으로 쳐들어가서 모조리 때려눕힌 뒤 추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진무의 몸이었다.
그딴 짓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아직까지는 사패천과 맞짱을 뜰 만한 실력이 되지 못했다.
그러니 일단 낭인대 소속으로 전투에 참가해서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그를 무엇보다 열 받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제자 놈과 장로 놈들이었다.
망할 제자 자식이 멍청한 결론을 내렸다고 해도 밑에 있는 장로들이 안 된다며 반대를 했어야만 했다.
도대체 천우명 이 자식은 뭔 짓을 하고 다닌단 말인가?
당연히 앞장서 말렸어야 한 일이 아니던가?
두고 보자, 이놈 자식들.
일단 연유부터 알고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 양의심공만 얻고 나면 반드시 찾아가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패 줄 것이니.
진무가 한참이나 씩씩거리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적생대, 앞으로 나오시오.”
호명하는 소리에 적생이 나서려는데.
“내가 하겠소.”
말없이 있던 진무가 적생의 어깨를 잡았다.
“……예?”
적생이 눈을 끔벅이며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진무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아, 아니 지금의 시험은 혼자 하는 시험이 아니라.”
적생이 말리며 설명을 하려 했지만, 진무는 이미 시험관의 앞으로 다가가 있었다.
“응? 뭐야? 낭인대라고 적혀 있는데 어찌 혼자인 게야?”
시험관, 천고락이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의 시험은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낭인대로 참가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평가였다.
그런데 일행으로 보이는 자들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새파랗게 어린 놈이 혼자 나왔으니 어이가 없을 만했다.
“뭐 하는 짓거리야? 빨리 네놈들 패거리를 데려오지 못해?”
“필요 없어.”
“뭐? 이런 어린놈의 새끼가? 미쳤나? 내가 누군지 알고 반말지거리야? 이름도 없는 낭인 놈이!”
니가 반말하길래 반말했다, 왜.
“바쁠 거 아냐? 기다리는 놈들도 많은데 빨리 평가나 해.”
“뭐라고?”
“이딴 평가,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그만 주절거리고 빨리하라고.”
“…….”
진무가 눈을 찌푸리며 말하자 천고락이 화를 내려다가 김빠진 듯 웃었다.
기가 찬 것이다.
실력 평가를 받으러 왔다는 것은 접수대에서 알지 못할 만큼 형편없는 이름을 가졌다는 것이다.
주변에 있는 낭인대들도 덩달아 어이없는 표정이었다.
“별 미친놈을 다 보겠군. 좋다. 이번 시험은 너희 낭인대가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를 보는 것으로, 평가관 다섯의 합공을 일각 동안 버티면 된다.”
“일각씩이나?”
진무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짓자 천고락이 비릿하게 웃었다.
“왜 겁나는가?”
“하아, 겁은 염병. 빨리 시작이나 해.”
칼조차 빼 들지 않고 뒷짐을 진 진무의 모습에 천고락이 실력 평가를 준비하고 있던 무인들을 향해 다가갔다.
“싸가지 없는 놈의 새끼. 모가질 따 버려.”
“예. 그러죠.”
평가관으로 나선 무인 다섯이 잔인한 미소를 머금고 진무의 앞으로 나섰다.
안 그래도 이제껏 성미에 안 맞게 사정 봐줘 가면서 실력 평가나 하고 있느라 꽤 지친 상태였다.
모처럼 손맛 좀 볼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니 흥분되어 볼이 상기되었다.
“멍청한 새끼 보게. 칼도 안 뽑네?”
그저 뒷짐만 지고 선 진무의 모습에 평가관들이 연신 피식거렸다.
지친다.
고작 이런 놈들이 시험관이라니.
저딴 놈들에게 평가를 받고 전투의 선단부에 나설 놈들의 실력이야 알 만했다.
사패천의 본성에서 파견된 무인대와 맞부딪치는 순간 싸그리 전멸할 것이 틀림없었다.
“어이 칼 뽑으라니까, 어린 친구?”
“하하, 호기롭게 나섰는데 지금에서야 겁이 난 모양이구만.”
평가관들이 시시덕거리는 소리에 진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먼저 공격해도 되냐?”
“뭐? 상관없긴 하지만…….”
진무가 대뜸 물어 오자 황당함이 든 평가관 하나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순간.
파학! 쩌억!
움직이는 것을 보지도 못했다.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들의 허접한 실력이라면 진무가 굳이 내공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한순간에 끝날 테니까.
자, 이제 누가 일각을 버텨야 하지?
쩍! 퍼퍽! 빠악!
천고락은 지금 제 눈앞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강렬한 구타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평가관 다섯이 사이좋게 땅바닥에 누웠고, 진무가 그들의 중심에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다.
“야, 이게 다냐?”
“…….”
진무의 물음이 있었지만 천고락은 멍한 표정으로 눈만 끔벅거렸다.
평가를 기다리고 있던 낭인들 역시 다르지 않은 표정이다. 입을 벌린 것도 모자라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뜬 놈도 있었다.
“야!”
“……예?”
천고락은 자신도 모르게 존대를 하고 말았다.
“끝났냐고.”
“……예.”
“됐네. 그럼. 어디로 가면 되냐?”
“외당으로…… 가시면.”
“알았다.”
진무는 심드렁하게 걸어왔던 그 모습 그대로 일행에게 돌아갔고, 일행은 곧바로 천고락이 말한 외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멍하니 그들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천고락이 퍼뜩 든 생각에 서둘러 자신의 상관을 찾아갔다.
* * *
외당, 말이 외당이지 천웅방의 내당 밖에 마련된 천막에 불과했다.
진무의 도움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실력 평가에 통과해 버린 적생대는 낭인들이 대기하고 있는 천막의 한곳으로 갔다.
진무가 대충 아무 곳에나 자리를 잡자, 적생대는 조심스럽게 그와 조금 떨어져 앉았다. 진무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 같은 실력자가 어째서 자신들과 함께하는지, 어째서 하급 낭인대와 함께 선단부에 서려 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도저히 물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저, 진무…… 님?”
차마 도장이라 부를 수 없었던 운암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뭐?”
“한 가지 여쭐 것이 있습니다.”
진무가 운암을 쳐다봤다.
아무리 화가 났기로서니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는 법이다.
운암은 진무의 자랑스런 부하 삼 호이자 장차 정무맹을 손안에 넣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인물이었다.
“말해.”
“어째서 참가하신 겁니까? 정무맹도 아니고 사패천 내의 싸움이 아닙니까?”
궁금할 만도 했다.
당세령 역시 귀를 한껏 기울이고 있지 않는가?
뭐라고 말해 줄까?
어떤 식으로 꼬드겨야 할까?
어디 보자, 일단 다른 이들과 멀리 떨어져 있어 따로 듣는 귀라곤 당세령밖에 없으니.
“그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두, 두 가지요?”
“그래.”
“음, 경청하겠습니다.”
운암이 가르침을 받듯이 정갈한 자세를 취했다.
기특하긴.
쥐새끼처럼 몰래 훔쳐 듣는 당세령과 달리 배울 준비가 된 녀석이다.
“첫째, 식견을 넓히는 거다.”
“예? 식견이라 하시면?”
“너 사패천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
“…….”
“그들의 전투 방법은? 무위는? 고수의 얼굴은 봤고?”
“그렇진 않지만. 이름이 알려진 이들이라면 곤륜에 초상이 있긴 합니다. 더러 간략한 설명이 덧붙여져 있기도 하구요.”
“흥, 모르는 소리.”
“예?”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했다.”
“아!”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경험하는 것이 낫다는 말을 어찌 운암이 알아듣지 못하겠는가?
하지만 운암은 마치 은총이라도 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그, 그럼 두 번째는?”
“우리가 어째서 낭인들과 함께하느냐? 는 것이 궁금하겠지.”
“말씀해 주십시오.”
이미 첫 번째 이유에서 잔뜩 넘어와 버린 운암이 목마른 사슴처럼 답을 기다렸다.
“우리 셋은 아직 정무맹에도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다.”
“예? 설마요? 무당지검이신데?”
“쉿, 목소리 낮춰.”
“죄송합니다.”
“사람들은 제 눈으로 본 것이 아니면 믿지 않아. 직접 본 이들이나 내 이름을 높이 평가하지. 이야기만 들은 놈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을걸? 아마 과장되었다느니 뭐니 하면서 후려치기 열심이겠지.”
“음…….”
“어쨌든 정무맹에서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의 얼굴과 이름이 사패천에 알려져 있을 리는 없어.”
“그렇군요.”
“그것이 두 번째 이유야.”
“……?”
“등하불명.”
“아!”
감탄을 참 잘하는 녀석이다.
“그렇군요. 소속된 자가 아니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낭인이라면 저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겠군요. 저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저들을 살피고자 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쩐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으시더라니, 그런 계획을 세우고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진무 님.”
제법 말귀를 알아듣는다.
더욱이 대강 툭 던진 말에 알아서 끼워 맞춰 해석까지 하는 것도 모자라 존경심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눈빛이었다.
“하면, 실력을 감추어야겠군요? 진무 님께서 좀 전에 평가를 볼 때처럼.”
“그래. 웬만하면 곤륜의 무공은 쓰지 마라. 내공도 마찬가지.”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운암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 봐. 가서 낭인들하고 대화를 좀 나눠. 전쟁터에서 십 년이나 살았으니 배울 게 많을 게다.”
“예! 진무 님!”
운암이 학구열을 활활 불태우며 공손히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그사이 진무가 당세령의 표정을 슬쩍 살폈다.
혹시나 무슨 말을 하진 않을까?
그런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넌 아무것도 안 물어보냐?”
“왜? 물어봐 줘?”
“아니, 뭐….”
“어차피 물어봐도 안 가르쳐 줄 거잖아?”
그렇긴 하지.
“그리고 내가 언제 너 하는 일에 토 단 적있냐?”
싸가지는 없어도 그런 적은 없었다.
“니가 그럼 그런 거겠지. 물어보긴 뭘 물어보냐? 실없기는…….”
진무가 당세령의 반응에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저거 뭔가 바뀐 것 같은데 도무지 뭔지 모르겠다.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여기 적생대를 이끄는 자가 누군가?”
천웅방의 무인이 다가왔다.
수하들을 주렁주렁 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