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6
16화
외유가 결정된 이후.
장문인 및 장로들의 명으로 진무는 청우와 청상을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냥 마음대로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사부인 명진에게 인사를 하고 각 궁에 들러 사숙과 사형들에게 알려야 했다.
원화관에 들르자 낡았지만 깨끗하게 잘 빨린(?) 도포와 관모를 새롭게 지급해 주었다.
새것도 아니고 새것처럼 고친 헌 옷을 주면서 생색은 더럽게 낸다.
그래도 원화관에서 명진의 식사를 챙겨 주기로 하여 사부에 대한 걱정은 덜었다.
“하하, 사제가 벌써 이리 장성해 첫 외유를 나가니 내 기쁘기 한량없다!”
진허가 다가와 어깨를 두들기다 말고 몰래 품속으로 전낭 하나를 찔러주었다.
“슬쩍 빼돌린 게다. 사질들과 맛난 것 사 먹거라. 아끼지 말고.”
“예.”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일단은 고맙게 받았다. 원래 공짜라는 것은 다 좋은 거니까.
진무는 담담한 표정으로 전낭을 열었다.
“아, 아니, 이 녀석 참. 몰래 열어 보지 않고.”
“…….”
철전 열 개.
설마? 겨우? 고작?
야, 아끼지 말라며?
진무가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진허가 크게 웃었다.
“이런, 너무 많아서 놀란 모양이구나. 괜찮다. 너를 위해 사형이 이 정도도 못 줄까.”
많아? 너무 적어서 보는 건데?
아…… 말을 말자, 말을.
찢어지게 가난한 도사 놈 같으니라고.
어쨌든 원화관을 나온 진무가 다음으로 들른 곳은 영은궁이었다.
“……안 되고, ……주의하고, ……절대 해서는 안 되느니라. 알겠느냐?”
“…….”
자신을 앞에 두고 반 시진에 달하는 시간 동안 했던 말 또 하고, 다시 하고, 아주 밑도 끝도 없이 반복하는 일장 연설의 지루함에 혼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무서운 명공.
다 똑같은 말을 다르게 반복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뭔, 하지 말라는 게 그리도 많은지.
대답은 ‘예.’하고 공손하게 했으나 절대로 그래 줄 생각은 없었다.
원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성이 아니던가.
그리고.
저 새낀 왜 계속 째려봐?
멀리서 이글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진혜의 모습에 진무가 오만상을 구기며 쏘아보았다.
이런 쌍놈의 새끼가. 눈 안 깔어? 확.
예전 같았으면 일단 쥐어 패고 볼 일이었으나 지금은 도사였고, 또한 사형이었으니 참아 줄 수밖에 없었다.
요 새끼 하나만 걸려라, 아주.
잠시만 참으면 이 지긋지긋한 도문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진무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잘 다녀오너라.”
“예. 사숙.”
진무는 역시나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영은궁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뒤이어 우진궁에서 외부 세력과 조율하고 확인해야 할 수많은 사항…….
옥허궁(玉虛宮)에서 태극 문양이 선명한 검을 새로이 지급받고.
정동궁에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일에 대비해 속명단, 금창약, 붕대…… 등등까지 받아 들고 나서야 마지막으로 자소궁에 들렀다.
장문인에게 외유를 나섬을 고하기 위함이었다.
아니 각 궁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산 능선을 따라 수십 리에 걸쳐 띄엄띄엄인데 뭔 절차가 이리도 많은지.
외유고 뭐고 나가기도 전에 지칠 것만 같았다.
절차를 간소화해야지. 망할 놈들 같으니. 이제는 말하기 입 아프지만 역시 망해 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허허, 짐이 제법 되는구나.”
“…….”
명현의 말에 진무가 각 궁을 돌며 받아 온 짐들을 바라보았다.
아주 한 짐이다.
놓고 가면 안 되나.
“첫 외유니 이것저것 빼먹지 말고 챙겨서 가거라. 물가를 조심하고, 으슥한 곳에 가지 말고…….”
아! 제발 그만! 그만!
무슨 다섯 살 먹은 꼬마냐!
내내 무당산에 처박혀 있던 니들 누구보다 이 몸의 세상 경험이 많다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조금만, 조금만 참으면 될 일이었다.
“그래. 청우와 청상이 함께 간다고?”
뒤에 엎드려 있는 청우와 청상을 향해 흐뭇한 표정으로 묻는 명현의 말에 진무가 힘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잘되었구나. 똘똘한 아이들이니 도움이 될 것이다.”
“…….”
“자, 그럼 이만 가 보거라. 해야 할 일이 막중함을 잊지 말고. 무당의 이름에 누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예. 장문인.”
끝났다. 드디어!
몰아치는 해방감에 서둘러 짐을 챙기고 나가려는데, 명현이 재차 진무를 불러세웠다.
“진무야.”
아, 또 왜!!
“연락은 하루에 한 번씩 꼭 하거라.”
질린다…….
“예. 장문인.”
빌어먹을 도문.
정말이지 무서운 놈들이다.
그저 산문을 나가기 위한 절차를 수행하는 것만으로 이렇게 무기력하게 만들 수가 있다니…….
자소궁을 나온 진무는 진허와 진소의 배웅, 진혜의 매서운 눈초리를 받으며 드디어 무당산을 내려갔다.
해검지를 지나 무당의 영역을 벗어나자 비로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 도문의 냄새가 나지 않는 것만으로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진무를 감싸고 돌았다.
‘흐흐흐, 얼마 만에 보는 세상이냐!’
진무는 메고 있던 짐보따리를 내팽개치고, 양팔을 벌린 채 눈을 감고 상쾌하기 그지없는 세상의 공기를 만끽했다.
“후읍! 아 좋다.”
진무뿐 아니라 청우는 물론, 항상 무표정하기만 하던 청상의 얼굴에도 흥분의 기색이 가득했다.
자, 그럼 가 볼까?
“청우야.”
“예! 사숙.”
“들어.”
“…….”
“내 짐.”
“……예.”
청우가 등에 멨던 제 짐을 앞으로 메고 바닥에 팽개쳐진 진무의 짐을 등에 메었다.
“청상아.”
“…….”
“검 들어야지?”
“검은 본인이 휴대해야 합니다. 자고로 무인에게 생명과도 같은…….”
고지식하기 짝이 없는 놈.
“다시 올라갈래?”
청상이 빛보다 빠르게 진무의 검을 등 어림에 메었다.
“자, 가자!”
단강구의 청양상단.
진무와 청우, 청상의 첫 외유가 활기차게 시작되었다.
* * *
무당산 초입에서 청양상단까지는 고작 백 리를 조금 넘는 길이라고 했다.
말을 타고 달리면 반나절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
그런데 시작부터 방해꾼이 끼어들었다.
“어이, 거기.”
“…….”
“도사 놈들, 가진 거 다 내놔 봐.”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진부한 대사를 내뱉으며 십여 명의 장한들이 진무 일행을 막아섰다.
진무는 잠시 눈앞에 벌어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눈만 끔벅거렸다.
익숙하다 못해 식상하기까지 한 대사는 차치하고서라도, 이곳은 무당산이다.
근래 세상이 바뀌어 미친것들이 넘쳐 난다지만, 무당파 앞마당에서 도사에게 돈을 뜯으려 들다니.
간뎅이가 부은 거냐?
“그대들은 누구요? 무당의 도포를 모르지 않을진대, 감히 무당산에서 우리의 앞을 막다니.”
진무가 어이없는 상황에 직면해 당황을 감추지 못하는 사이 청상이 매서운 눈빛을 하고 앞으로 나섰다.
“우리의 앞? 놀고 있네.”
“…….”
“좋게 말할 때 그 등에 진 거 다 꺼내 놔. 그럴 리야 없겠지만 꼬불쳐 놓은 돈 같은 것도 있으면 같이 좀 내놔 보고.”
어째서 이런 놈들이 무당산 인근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딱 봐도 행인의 돈이나 뺏는 뒷골목의 잡스러운 놈들이다.
“휴, 청상아.”
“예. 사숙!”
“정리하고 가자. 해 지기 전에 도착해야지.”
“알겠습니다.”
청상이 듬직한 표정으로 검을 뽑아 들었다.
“제가 도울까요?”
청우가 나서려 했지만, 진무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삼류 잡배야. 넌 그냥 짐이나 들고 있어.”
“……눼.”
청우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물러나는 사이 청상과 잡졸들의 대치가 시작되었다.
“지금이라도 물러나면 다치는 일은 없을 것이오.”
“다쳐? 지랄하고 있네. 알아서 짐과 돈을 내놓고 꺼졌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맨 앞에 있던 얍실하게 생긴 사내가 품에서 단도를 역으로 뽑아 들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던지 십수 명의 장한들이 마찬가지로 야비한 표정을 지으며 무기를 꺼내 부채꼴 모양으로 청상을 에워쌌다.
그래. 그래야지.
지금까지는 너무도 익숙한 진행이었다.
어느 동네를 가도 있는 불량배들의 행동은 마치 한 명의 사부에게 전수받은 것처럼 똑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쯧! 감히 무당산에서 이런 무도한 짓이라니!”
“흥! 망해 가는 문파 따위! 신경이나 쓸까 보냐!”
파바박!
선두의 사내가 빠르게 달려 거리를 좁히며 청상을 향해 뛰어들었다.
역으로 들린 단도가 청상의 얼굴을 향해 횡으로 그어졌다.
쉬익.
허리를 살짝 젖히며 한 발자국 물러난 청상의 얼굴 앞으로 단도의 예리함이 스쳤다.
그리고 곧바로 몸을 돌리며 이어진 뒷발이 곧게 뻗어 왔다.
단도에 이은 각법이 매우 깔끔했지만 딱히 놀랄 것 없는 불량배의 솜씨였다.
청상은 발을 떼지도 않고 상체를 젖힌 그대로 비스듬히 꺾어 검집의 끝을 찔렀다.
툭!
검집이 사내의 무릎 뒤 위중혈(委中穴)을 살짝 누르자.
“아악!”
사내가 고통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허물어졌다.
한숨이 절로 나오는 잡배다.
저런 것들이 뭘 믿고 무당파 도사의 앞을 막아섰지?
진무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놈! 뭣들 하느냐! 놈을 공격해라!”
한 놈이 쓰러지자 녀석들이 떼거지로 덤벼들기 시작했다.
역시나 익숙한 진행이었다.
대부분 저런 경우 잠시 후, 검조차 빼지 않은 청상에 의해 모두 쓰러져 살려 달라, 잘못했다 빌 것이다.
청자 배, 무당의 이대제자.
무당파 안에서야 가장 막내 항렬이었으나, 이미 십 년 가까이 고된 수련을 이어 온 무인이다.
그 정도만 되어도 작은 현에 자리 잡은 무관의 사부 정도는 찜 쪄 먹는다.
청자 배에서 가장 모자란 실력을 가진 청우만 해도 무형지기를 뿜어내는 실력이다.
하물며 청상은 어떠한가?
검에 기운을 담는 충검(充劍).
검기의 바로 아랫단계를 이룬 무인이었다.
더욱이 얼마 전 청우에게 당한 뒤로 진무에게 몇 가지 가르침을 받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전보다 검공이 가진 초식의 이해도가 높아져 훨씬 더 강해진 상태였다.
애초에 동네 삼류 불량배 열 명에게 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쩍! 뻑! 짝!
보란 듯이 뒤엉킨 난전에 검집으로 육신을 후려치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려왔다.
순식간에 혈도를 얻어맞은 둘은 이미 땅바닥에 쓰러져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진무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청상과 싸우고 있는 습격자들을 면밀하게 살폈다.
‘호오, 요놈들 봐라?’
둘.
습격해 온 놈들 중에 움직임이 좋은 녀석들이 숨어 있었다.
칼을 쓰는 것이 무척이나 익숙하다. 제법 경험이 많은 놈들이었다.
그저 동네 불량배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
하지만 합공을 한다 해도 청상의 실력이 조금 앞선다.
쯧쯧, 니들은 안 된다니까…….
한숨이…….
“크윽!”
그 순간 들려오는 이질적인 신음.
어? 청상이다.
청상이 어깨 아래쪽에 상처를 입고 두어 걸음이나 물러났다.
“사형!”
청우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서려 하는 것을 진무가 잡았다.
분명 실력이 위인데도 눈먼 칼에 맞았다.
문제는 경험의 부족.
산에 처박혀서 무공만 죽도록 익혀 온 청상이었다.
아마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일정한 합을 정해 놓고 싸우는 것과 현실적인 싸움은 다르다.
그들의 싸움에는 일정한 투로나 형식이 없다.
난잡한 공격에 자신들의 실력을 숨기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청상이 그들의 허접스러운 공격에 익숙해져 실수를 범할 때까지.
이른바 무림 초출들이 흔히들 겪는 실수였다.
어떤 변수도 발생하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실력 차가 나지 않는 이상, 어지간한 고수도 삼류 무사의 비수에 당할 수 있는 게 이 바닥이다.
실력은 있되 부족한 경험이 독이 되는 것이다.
쯧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