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저라면 차라리 지금이라도 명령을 내려 선단을 횡으로 깔고 돌파가 시작되는 순간에 길을 열었을 것입니다.”
“계속해 봐요.”
“돌파진은 계속해서 전진할 수밖에 없으니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오기를 기다려 열었던 길을 닫아 섬멸진을 막습니다. 그리고 갇혀 버린 돌파진을 집중 공격해 무너뜨리면 적은 약 삼 할의 피해를 입습니다. 그와 동시에 살아남은 선단을 후퇴시키고 돌파진을 무너뜨린 본진이 섬멸진을 상대하는 거죠.”
“그럼 세 번째 무리는?”
“고수들로 편성된 별동대로 하여금 섬멸진이 무너질 때까지 괴롭히며 시간을 끌어야지요.”
진무는 적생을 놀란 눈으로 응시했다.
현장이 체질인 군사라 해서 별스러운 놈도 다 있구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 자식……. 생각보다 더 대단하다.
그가 말한 전술은 철검단을 철저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런 보석이 낭인들 사이에 숨어 있었을 줄이야.
“물론, 제가 말씀드린 것은 계획일 뿐입니다. 애초에 전력이 너무 차이가 나면 불가능한 계획이지요.”
맞는 말이다.
힘의 격차가 너무 크면 어떠한 전술을 세워도 소용이 없다.
“적생.”
진무가 적생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마음이 다급하니 존대가 나오질 않았다.
적생이라면 지금 천웅방의 본진에 피해를 줄이면서 철검단을 막을 방법을 생각해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무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미 철검단의 선두가 천웅방 일진의 낭인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적생의 말대로라면 선단이 무너지고 본대와 철검단이 부딪히기까지 남은 시간은 반 시진뿐이다.
“……예? 왜 그러시는지?”
“당신 나 좀 도와줘야겠어.”
“……예?”
“선단의 낭인들은 얼마 버티지 못한다.”
“그렇겠죠.”
“그 이후에 막을 방법은?”
“……예? 그게 무슨?”
“있어, 없어?”
진무가 눈을 크게 뜨고 다그쳤지만 적생대의 낭인들은 차마 끼어들지 못했다.
“야, 갑자기 왜 그래?”
당세령이 눈을 찌푸리며 물었지만, 진무의 시선은 적생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적생. 방법을 생각해. 선단이 무너지고 난 뒤에 철검단을 막을 방법이 필요하다.”
“…….”
“시간이 없어. 선단이 무너지면 철검단의 선두가 곧장 본진으로 밀고 들어올 거야. 철검단의 선두가 본진에 길을 만드는 순간 곧바로 천우명이 난입해. 그럼 그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을 거야.”
진무의 말에 적생이 얼굴을 찌푸리고 머리를 굴렸다.
“적생! 이길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니다. 천웅방이 최소한의 피해를 입은 채 첫날의 전투를 끝내기만 하면 된다.”
진무의 눈빛에 적생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가.
“그저 시간을 끄는 방법이라면…… 가능은 하겠지만.”
“……!”
“하나 본진의 진형을 바꾸어야 합니다. 방법을 생각한다 한들 누구도 말을 들어 주지 않을 텐데…….”
적생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진무의 얼굴은 더없이 밝아졌다.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됐어. 방법이 있기만 하면 된다.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해 줄 테니까.”
“예?”
“세령!”
진무가 다급하게 당세령을 불렀다.
시간이 없었다.
이미 철검단의 선두가 낭인대가 구성한 선단부를 도륙하며 진격하고 있었다.
쓸 수 있는 모든 패를 써야만 하는 순간이었다.
“말해.”
진무의 행동이 내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당세령이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독 있지?”
“…….”
“있어? 없어?”
“있어!”
당세령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좋아. 암기도 있겠지?”
“그래.”
역시 당가를 나온 그녀가 아무런 준비 없이 왔을 리가 없다.
전에도 그랬다.
분명 품 안에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는 당가의 물건을 숨기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철검단의 선두는 돌파가 목적이기 때문에 공격 범위가 좁다.
“암기랑 독을 전부 사용해서라도 철검단의 진격을 조금만 늦춰.”
“뭐? 나 혼자? 무슨 말도 안 되는. 상대는 철검단이라고.”
당세령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운암, 세령을 부탁한다.”
“예. 무진님의 말씀이라면. 하지만 둘이서 가능할지?”
“잠시만, 아주 잠시만 지연해 주면 된다. 독이랑 암기를 모조리 쏟아부어. 다 쓰고 나면 곧바로 본진으로 도망치고.”
“아니, 내가 왜? 그딴 짓을 해야…….”
“부탁이다.”
진무의 말에 당세령의 눈동자에 작은 파문이 일어났다.
“부탁…… 알았다.”
당세령의 대답을 듣자마자 진무는 곧바로 적생을 옆구리에 끼어들었다.
왜소한 체격이라 그리 무겁지 않았다.
“무, 무진 대협?”
적생이 당황하지만, 진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세령, 운암. 부탁한다.”
다시 한번 말한 진무가 곧바로 몸을 돌려 청웅방의 수뇌부가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이, 이놈들, 뭐 하는 짓이냐! 아직 명령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진무와 적생이 자리를 이탈하자 좌측의 낭인대를 지휘하던 천웅방의 책임자가 소리를 질렀다.
“운암! 갑시다!”
“예!”
당세령과 운암이 갑자기 전투가 벌어진 선단을 향해 달려나가자.
“저, 저런 미친 것들이?”
무인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도망치는 줄만 알았던 두 놈은 본진으로, 두 놈은 목숨이 위험천만한 선단부로 뛰어들다니?
그리고 그 자리에 덩그러니 남아 있던 적생대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스러워하고 있었다.
* * *
전투가 벌어진 이후 모든 이의 시선이 선단의 전투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진무를 막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본진의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천웅방의 고수들이 포진해 있었기에 진무를 향한 제재가 강해지기 시작했다.
“웬 놈이냐!”
“거기 서라!”
진형을 구성하고 있던 무인들이 진무의 뒤를 쫓으며 달려왔고, 갑작스러운 소란에 천웅방의 정예들이 진무를 막아서고 있었다.
하지만 멈춰서는 안 된다.
최대한 빨리 원공후에게 도착해야만 했다.
그래야 지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 있었다.
이 상황에서 원공후와 천우명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었다.
“멈춰라, 이놈!”
본진의 핵심부를 지키는 호위 무인들이 막아서는 순간 진무가 적생을 안은 채로 강하게 지면을 밟고 솟구쳤다.
“저, 저런! 놈을 막아라! 놈이 방주님께로 가고 있다!”
하지만 모든 내공을 발산하기 시작한 진무의 속도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진무가 향한 곳은 천웅방의 깃발이 꽂힌 곳.
그곳에 원공후가 있다.
진무는 허공에서 자신을 향해 날아온 검격을 모조리 피해 내며 지면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쿠웅!
거친 소음을 만들며 수뇌부가 있는 본진의 중심에 내려서자 사방에서 검기가 날아들었다.
따다다당!
손과 발을 움직여 검을 쳐 내자 진무의 주위에 순식간에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 벌어진 틈 사이로 원공후가 보였다. 진무는 기다리지 않고 몸을 날렸다.
“이노옴!”
원천호를 비롯한 다섯 아들들이 원공후의 앞을 막았고 장로들이 진무를 향해 곧바로 검을 날려 왔다.
“공후!”
주변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진무의 외침과 함께 강렬할 기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원공후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진무가 입을 오물거렸고, 그의 낯빛이 당황스럽게 변했다.
“머, 멈춰라!”
원공후의 거친 일갈에 날아오던 검과 공격이 일제히 멈췄다.
“바, 방주님?”
“아버님?”
그의 아들들과 장로들, 그곳에 있는 모든 무인들이 원공후를 바라보았다.
원공후의 두 눈은 찢어질 듯이 크게 뜨여 있었고 숨소리는 더없이 거칠어져 있었다.
무언가에 잔뜩 놀란 표정이었다.
“네놈이 어찌…….”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무엇에 놀란 것일까?
“설명은 나중이다. 공후, 지금 시간이 없다. 반드시 내 말을 들어야 한다. 아니면 천웅방은 무너져.”
“…….”
“공후!”
당황스러워하는 원공후를 향해 진무가 날카롭게 외치는데.
“이런 방자한 놈!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원천호가 진무를 향해 살기를 피워 올리며 검을 겨누었다.
천웅방의 장로들은 물론, 무인들까지 마찬가지였다.
새파랗게 어린 놈이 자신들의 수좌를 반말로 능멸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멈추라 하지 않더냐!”
원공후가 다시 한번 세차게 소리를 질렀다.
그사이 진무가 원공후를 직시하며 계속해서 입을 오물거렸다.
전음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무슨 말을 나누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원공후의 눈동자가 거칠게 떨렸고, 얼굴 표정이 쉴 새 없이 변했다.
“그, 그것을 어찌…….”
“공후. 지금 나를 믿어야 한다. 시간이 없어!”
“으으음…….”
원공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버님?”
원천호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하고 원공후와 진무를 번갈아 바라보는데.
콰아아앙!
낭인들이 구성하고 있던 선단부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폭발음의 주인은 당세령이 분명하다.
오래 막지는 못한다.
선단이 무너진 이상 당세령이 모든 암기와 독을 쓴다고 해도 금세 철검단의 선두가 이 진에 들이닥칠 것이 분명했다.
“이런 씨발! 말 좀 처들으라고!”
진무의 거친 욕설과 함께 원공후가 명령을 내렸다.
“말하시오. 일단은 그대의 말에 따르겠소.”
“아버님!”
“방주님!”
갑작스런 원공후의 결정에 모두가 대경실색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걸로 된 것이다.
“이자는 뛰어난 군사다. 그의 명령에 따라 진형을 움직여 철검단을 상대해.”
진무가 적생을 가리키며 말하자 원공후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천호. 저분의 말에 따라라.”
“……그게 무슨?”
원천호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나타난 새파랗게 어린 사내는 누구이며, 그가 데려온 이의 명령을 따르라니?
당장에 철검단이 본진으로 들이칠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 아니던가?
“천호!”
“예? 예!”
“방주로서의 명령이니라. 소방주와 장로들은 지금 즉시 저자의 말에 따라 진형을 변경하고 철검단에 응전하라!”
“……알겠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순간이지만, 기세를 가득히 품은 원공후의 명령이 내려졌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적생. 부탁한다. 천웅방을 지휘해라.”
“아, 아니. 무진 대협. 전술을 세울 순 있어도 저는 이만한 병력을 운용해 본 적이…….”
“서툴러도 좋다. 얼마간의 피해를 입어도 좋다. 철검단의 진격을 멈추기만 하면 된다.”
“무진…….”
“서둘러라! 공후가 너의 말을 들어줄 것이다. 그리고 믿어라. 천웅방의 정예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잘 훈련된 이들이니까.”
“…….”
진무는 부릅뜬 눈으로 적생의 어깨를 다잡았다.
적생의 얼굴에 황당함이 흘러넘쳤다. 낭인으로 참가한 전투에서 갑자기 총사가 되라니.
진무는 적생에게서 고개를 돌려 원공후를 바라보았다.
의문이 가득한 얼굴.
묻고 싶은 것이 수없이 많은 눈빛이었다.
“공후, 대화는 나중이다. 일단 지금의 상황부터 해결한다. 적생을 도와라. 그럼 살 수는 있을 것이다.”
위엄 넘치는 말투와 눈빛이 원공후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원공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하지.”
진무는 그 말을 끝으로 전장을 향해 달렸다.
천웅방은 이제 적생의 말에 따라 제 활로를 도모할 것이다.
적생이 전황을 파악하는 능력 하나만 보고 감행한 도박이었다.
어쩌면 그 수가 통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이제 당세령과 운암을 구하러 가야 했다.
“적생이라 했소?”
“…….”
“명을 내리시오.”
원공후의 말에 황당함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적생이 서둘러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전술을 원공후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