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전쟁이 끝났다.
전쟁에서 승리한 천웅방은 승리의 환호성을 지으며 원래의 거처인 난주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천웅방은 여전히 타는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손님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철혈붕권 천우명을 비롯한 철검단의 핵심 인사들이었다.
원공후가 천우명만을 자신의 거처로 불러들였고, 두 패의 수뇌들은 거처의 앞에서 대치하며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막 전쟁이 끝난 시점이었고, 서로가 여전히 칼을 들이밀고 있었으니 바라보는 눈빛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 와중에 모두가 똑같이 의아해한 것은 소방주인 원천호조차 참석하지 못한 자리에 진무가 참석했다는 사실이었다.
도대체 그가 어떤 인물이기에.
* * *
천웅방주의 거처 내부.
의자에 앉아 있던 진무가 밖을 힐끗거리며 눈을 찌푸렸다.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알아볼까요?”
그 앞에 앉아 있던 천웅방주 원공후가 묻는다.
“됐어. 귀찮게시리…….”
진무가 투덜거리는 사이 천우명이 비워진 찻잔에 공손하게 차를 따랐다.
“뭔 차를 계속 따라?”
“……예? 자꾸 비워 내시는 게 입에 맞으신가 해서요.”
“술도 아니고, 입에 맞겠냐?”
진무가 핀잔을 주자 천우명의 얼굴이 금세 시무룩해졌다.
“그나저나 사패천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나 말해 봐. 공후의 말이 죄다 사실이냐?”
진무의 물음에 천우명이 원공후를 슬쩍 쳐다봤다. 뭔 말을 했는지 알아야 대답을 할 것 아닌가?
“니들 민초들에게 손대고 있다며? 인신매매에 강도질까지 한다던데?”
“아! 음…… 예.”
무슨 말인지 깨달은 천우명의 얼굴이 침중하게 굳어졌다.
진무가 허탈하게 웃고는.
“내가 분명히 무림인이 아니면 건들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넌 그 지경이 되도록 뭘 했냐?”
“그, 그건…….”
천우명이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푹 숙였다.
하여간에 뻔뻔하지 못한 녀석. 그냥 천주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하면 그만인 것을.
“그건 그렇고, 장로들이 물갈이됐다고 하는 건?”
“……예. 천주, 아니 신임 천주가…….”
진무를 앞에 두고 호칭을 정리하지 못한 천우명이 몇 번이나 말을 바꾸느라 우물쭈물했다.
“그냥 유월청이라고 해.”
“소, 속하가 어찌 감히.”
“지랄하네. 예전엔 그냥 이름 불렀잖아.”
“…….”
“말해 봐. 물갈이 이후에 좌천된 장로 녀석들 다 어디로 갔냐?”
“그게…… 모두가 각자의 문파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갔다고?”
“예. 몇은 아예 은거해 버렸습니다.”
“하아, 정말 미치겠네. 그놈들 모으느라고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그럼 새로 장로가 된 놈들은 어떤 놈들이야?”
“근래에 급부상한 자들입니다.”
“급부상해?”
“예. 천주에게 막대한 자금을 바친 문파의 인물들입니다. 녹림, 흑사방, 수채, 야금당 등에서 선발한.”
천우명의 말에 진무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녹림에 수적패들까지 본성에 끌어들였다는 말이 진짜였구만. 하아, 아주 뭐 미쳐 돌아가네. 꼬라지가 개판이겠어. 죄다 도둑놈만 앉혀 놓았다는 거 아냐.”
녹림은 산 도적, 장강 수채는 물 도적, 흑사방은 불한당, 야금당은 각종 범법 행위를 자행하는 녀석들이었다.
“살막주는?”
“문을 걸고 봉문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어째서?”
“천, 아니 유월청이 돈을 벌어 오라며 마구잡이식으로 살행을 지시해서요.”
진무의 얼굴은 점점 찡그려졌다.
살막주에게 사람을 죽여서 돈을 벌어 오라 했단다.
중원 살수들의 적통을 자처하는 그가 아니던가?
살수이기는 하되 명분 없이 생명을 해하지 않고, 의미 없는 살행은 절대로 하지 않는 놈.
무분별한 살인을 저지르는 살수는 그저 악귀일 뿐이라고 말했던가?
살행은 절대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주장하는 꽉 막힌 놈이었다.
“그놈에게 그런 지시를 내렸다면 꽤 열 받았겠군. 쯧쯧. 하오문주, 아니지, 은위단주 명세찬은 어찌 되었어?”
“천주님이 돌아가신 이후부터 행적이 묘연해졌습니다. 유월청이 너무 많은 돈을 뜯어내는 통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은위단은 곧 하오문이다.
개방이 정무맹에서 그러하듯이 하오문은 사패천의 핵심 정보 조직이었다.
어쨌든 사방 천지 그들의 눈이 깔리지 않은 곳이 없었고, 어떤 면에서는 개방보다 훨씬 더 뛰어나기까지 했다.
중원 천지에 기녀나 예인(藝人) 없는 기루가 어디에 있으며, 점소이 없는 객점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관이며 무림까지 내밀한 정보를 취급하는 것은 개방보다 그들이 한 수 위였다.
그런 귀중한 자산을 내쳐?
이 정도면 사패천의 근간 자체가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다.
사십 년을 노력해서 세웠건만, 고작 이 년이라는 시간 만에.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다 돈 때문이라니.
“하아, 정말 미치겠네. 아니 도대체 어째서 그놈이 돈에 미친 게야? 비고에 쌓인 그 많은 돈은 놔뒀다가 뭐 하려고?”
“예? 비고가 있었습니까?”
원공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데 갑자기 천우명이 진무의 시선을 회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 자식, 설마?
“우명.”
“……예?”
“너 혹시.”
진무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자.
“이 멍청한 놈을 죽여 주십시오, 천주님.”
천우명이 급히 바닥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사패천에서 비고의 존재를 아는 인물은 단 셋뿐이었다.
사패천주였던 혁련무강, 제자인 유월청. 그리고 천우명.
그리고 비고를 여는 방법은 오직 진무와 천우명만 알고 있었다.
당시에는 의심이 많았기 때문에 천우명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자신이 불미스러운 일로 죽게 되면 제자에게 알려 주라 당부는 했었는데, 지금 반응을 보아하니…….
“너.”
“…….”
“까먹은 거냐?”
천우명이 머쓱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린다.
까먹었구나.
이 멍청한 새끼.
니가 사패천의 몰락에 아주 단단히 일조를 했구나.
“그게, 불로초 찾는 데만 너무 혈안이 되어 놔서…….”
그건 칭찬할 일이다만…… 잠깐만.
진무의 머릿속에 갑자기 스치는 생각 하나.
“야, 너 혹시 광서성에 백가장이라는 곳 알아?”
“예? 글쎄요. 하도 많이 돌아다녀서…….”
그래, 니 머리로 기억할 리가 없지. 아니, 근데 많다고?
“우명아, 혹시 너 채기법 전수한 적 있냐?”
“채기법이라면…….”
천우명이 얼굴을 찌푸리고 골똘히 생각을 하다가 무릎을 탁 쳤다.
“아! 그 싸가지 없는 놈!”
하아, 생각났구나.
그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을 한 줄 아냐?
다행히 무혈을 찾아서 양의심공을 얻긴 했지만.
“우명아. 많이 돌아다녔다고 해서 묻는 건데, 혹시 다른 놈도 있니?”
“아니, 글쎄요. 없는 것 같은데요?”
천우명이 멍청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는다.
저 미친놈 봐라, 저. 그게 머리나 긁고 말 일이냐?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진무가 주먹을 슬쩍 들어 올렸다가 한숨과 함께 내렸다.
모든 것은 자신의 잘못이다.
멍청한 천우명에게 채기법을 가르친 것도 자신이고, 제자에게 사패천의 비고를 여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은 것도 자신의 잘못이다.
자신이 제자에게 미리 가르쳐 주었다면…… 어쩌면…….
고민이 되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백표가 떠올랐다. 진무로 인해 갱생되고 난 뒤 지난 죄업을 목숨으로 속죄하겠다던 녀석, 그러나 진무의 도움으로 다시 살아갈 마음을 먹은.
어쩌면 자신의 제자도 그러할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비고를 여는 방법을 알려 주면 제자인 유월청이 사패천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지 않을까?
그래, 혹시나 그럴 수도 있는 일 아닌가?
머릿속이 무척이나 복잡해진 진무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지, 생각해 보면 굳이 그럴 이유가 있을까?
백표와 유월청은 다르다. 백가장과 사패천 역시 다르다.
고작 광서성의 정파 소속 문파와 중원 삼패인 사패천을 어찌 비교한단 말인가?
그리고 사패천은 원래 진무의 것이었다.
처음 세웠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온전히 제 것이었다.
그때 안 죽었다면 유월청이 천주가 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혈연지간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사패천을 망친 놈을 뭐 하러 어르고 달래서 다시 맡긴단 말인가?
어차피 돌아왔는데.
물론 인제 와 사패천의 수좌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이미 그의 꿈은 훨씬 더 원대해졌다.
중원.
단 한 사람도 홀로 지배해 본 적이 없던 그곳.
그가 원하는 것은 정사마를 아우르는 최강의 고수가 되는 것이며, 고금의 역사에 없었던 중원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자면 한곳에 매여 있어서는 안 된다.
자신을 대신해 사패천을 다스릴 자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유월청은 아니다.
이미 제 욕심에 썩어 버린 놈이다.
무릇 썩은 살을 치유하려면 시간이 적잖이 필요한 법이다. 또한, 치유하는 동안에도 그 살을 썩게 만든 균이라는 놈이 어디에 얼마만큼 퍼질지 모를 일이니,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환부를 모조리 도려내고 새살이 돋게 하는 게 좋다.
“우명, 공후.”
“예. 천주님.”
“사패천을 되찾아야겠다.”
진무의 한마디가 둘의 가슴 속에 거친 파문을 만들어 냈다.
“명하십시오.”
서로를 바라보던 원공후와 천우명이 결연한 표정으로 진무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사패오왕 중 둘이 앞에 있으니 사뭇 든든하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할 수는 없는 일이다.”
“…….”
“우선은 너희 둘에게 맡기겠다. 천웅방을 거점으로 해서 세력을 규합해라. 유월청에 의해 좌천된 장로들을 포섭해 기초를 다지고 나면, 사패천 예하의 세력들을 외곽에서부터 하나씩 손에 넣어라.”
“알겠습니다!”
둘의 심장이 조금씩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사패천을 만들고자 했었던 젊은 시절의 기억이 떠오르고, 세월과 함께 늙어 사그라들었던 혈기가 다시 끓어오르는 느낌이었다.
“시작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처음 천중산에 터를 잡았던 그때를 떠올려라.”
“예. 천주님!”
“단, 포섭되지 않는 장로들은 참하되, 은위단주 명세찬과 살막주는 반드시 끌어들여야 한다.”
“알겠습니다.”
천우명과 원공후가 생기 넘치는 눈으로 힘차게 대답했다.
믿음직한 녀석들.
진무가 흐뭇하게 웃으며 둘을 잠시 바라보았다.
일단 둘 중 하나를 대리자로 세워야만 했다.
충직하지만 고집이 쇠심줄보다 질긴 원공후.
우직하지만 하나를 가르치면 둘을 까먹는, 치명적으로 멍청한 천우명.
음, 역시 이 녀석들은 아니다. 그럼 누구로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던 진무가 씩 웃었다.
때마침 딱 적당한 사람이 있었다.
“공후, 우명.”
“예.”
“앞으로 나를 대신해 새로운 사패천을 이끌 녀석이 있다.”
“예?”
“……?”
잠시 바라보던 원공후가 의아하게 묻는다.
“누구를 생각하시는지?”
“이미 경험해 봤잖아?”
진무의 말에 원공후의 눈에 떠오른 것은 당황이었고, 천우명의 눈에 떠오른 것은 의아함이었다.
천우명이야 적생에 대해 모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혹시 그를 염두에 두고 계신 겁니까?”
원공후의 물음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하지만 천주님. 들어 보니 그리 오랜 인연도 아닌데…….”
“안다. 하지만 때를 만나지 못했고, 기회를 얻지 못하였을 뿐, 충분한 재목이다. 너희 둘이 도와준다면 능히 잘 이끌어 나갈 것이다.”
“하지만…….”
원공후가 재차 말하려 하자 천우명이 콧김을 내뿜으며 성을 내었다.
“뭔 말이 그리 많아! 천주님께서 하라면 하는 거지!”
“…….”
원공후가 천우명을 빤히 바라봤다. 어제까지만 해도 성난 소처럼 죽인다고 날뛰던 놈이.
하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고는 피식 웃고 만다.
파격적인 인사.
혁련무강은 항상 그런 식이었다. 예전에도 능력만 갖췄다 싶으면 모두가 반대한다 해도 자리에 기어코 앉혀 놓았다.
“알겠습니다. 명대로 하겠습니다.”
“좋아.”
“하면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나?”
“예.”
진무는 경쾌하게 대답했다.
“공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