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으핫핫핫!”
귀가 먹먹하다.
웃음소리에 딱히 기운이 담긴 것도 아닌데.
“무당지검이 우리 공동에 이리도 큰 은혜를 베풀다니. 으핫핫핫!”
“…….”
습관인가?
도포를 입은 산적이 연신 웃음을 터트린다.
공동파의 장문인 정심(正心).
도사란 놈이 불가와 비슷한 도명을 쓰고 있기는 한데, 외모는 어지간한 채주 놈들조차 당장 대형으로 받들어 모실 상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저 얼굴이 어떻게 정파 도사냐, 녹림계의 큰 별이지.
더구나 나름대로는 호탕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매번 건물이 떠나가라 울려 대는 웃음.
뭔 웃음소리가 화통을 삶아 먹었나, 아니면 애초에 화통인가……. 아무튼 커도 너무 크다.
“그나저나 우리 제자들을 어찌 구한 겐가?”
“곤륜을 떠나 공동으로 오는 길에 천웅방에 전쟁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음, 하긴 제법 소란스러웠지. 낭인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었다 들었네.”
“예. 한데 전쟁이 끝나는 것을 보고 서둘러 오는 길에 공동의 제자들이 쫓기는 모습을 발견했지 뭡니까.”
“그랬구만. 우리 아이들에게 실로 천운이 닿은 게야. 자네를 만나다니 말일세.”
“별말씀을요.”
“으핫핫핫, 이 사람, 겸양은.”
정심이 또다시 호탕하게 웃고는 재차 묻는다.
“그런데 곤륜의 전서구에 적혀 있기로는 진룡 어른의 제자와 당가의 여식도 함께 오고 있다 들었는데?”
참, 궁금한 것도 많은 놈이다.
은인께 무례하게시리 말이야, 어?
“오다가 다른 누군가가 다급하게 쫓기고 있는 소리를 들어 잠시 헤어졌습니다. 아마 곧 도착할 것입니다.”
“그렇구만.”
정심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를 향해 말했다.
“말이 길었구만. 자, 가세. 자네가 공동에 베푼 은혜를 기리기 위해 연회장에 음식을 준비해 두었다네.”
“예.”
흐흐흐, 역시 초장부터 대접이 다르구나. 은인이 되길 잘했다.
진무는 흐뭇한 표정으로 정심을 따라 연회장으로 향했다.
연회장 안에는 이미 많은 음식이 차려져 있었고, 공동의 수뇌들도 모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자, 들게.”
“…….”
“왜 아니 드는가? 아 참, 무당에는 십계가 있었지?”
넌더리가 난다, 그놈의 십계 타령.
“뭐 어떤가? 내 눈감아 줄 테니 걱정 말고 한잔하게. 으핫핫핫!”
이젠 평생 귀에서 저놈의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이 문제다.
온갖 산해진미는 그렇다 치자.
문제는 눈앞에 놓인 반짝이는 잔이었다.
이건 분명 놋쇠에 금을 입힌 금동배(金銅盃)다.
구명지은을 입은 은인을 위한 것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고 넘어갔겠지만, 장로들이 각자 손에 쥔 잔까지 죄다 금동배다.
더욱이 술을 담은 병이며 음식을 담은 그릇들은 무려 오채자기(五彩瓷器)였다.
오방색으로 다섯 개의 무늬를 새겨 구운 그것은 사발같이 싼 것도 은 한 냥의 가치를 지니는 고가품이었다.
망할 도사 놈들이 지들이 원시천존이라도 되는 줄 아나. 뭔 놈의 사치가 이렇게 하늘을 찌르고 지랄이야?
감숙에서 공동의 영향력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런데 그저 술 마시는 잔이며 병을 이런 비싼 것들을 쓴다고?
돈 나올 구멍이 없는데?
설마 이놈들도 곤륜처럼 정무맹의 지원금을 받는 걸까?
그렇다면 진짜 망할 놈들이다. 피 같은 남의 돈으로 흥청망청이라니.
여러 번 드는 생각이지만 무당은 도포를, 검을…… 벽곡단을…….
풀떼기 처먹고도 살찐 청우를 제외하고는 전부 비실비실한데, 젠장.
술자리를 보던 진무의 머릿속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왜 그러는가?”
아무리 권해도 진무가 술을 마실 생각을 않자 정심이 웃음을 거두고 의아하게 물었다.
“아, 아닙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잔이…….”
“응? 아!”
그제야 진무의 머뭇거림을 깨달은 듯 정심이 또 웃는다.
“으핫핫핫!”
작작 좀 웃어라, 제발.
“무당지검께선 우리 공동의 사정에 대해서 꽤 어둡구만.”
“……예? 그게 무슨?”
“공동은 다른 도문과 다르다네.”
물론 이제까지 같은 성향은 하나도 없었다.
“다른 도문과 달리 세속적인 것을 멀리하지 않지.”
뭐 어쩌라고. 화산에서는 혼인도 하는 마당에.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돈을 밝힌다는 말일세! 으핫핫핫!”
그걸 그렇게 자신 넘치게 좋아하면서 웃을 일이냐? 도사라는 놈이? 그것도 장문인이라는 놈이? 진짜 녹림도였던 거 아니야, 이놈?
“우리는 금욕적인 삶을 지양하네. 도(道)라는 것이 반드시 그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지향이 아니고 지양?
아, 그렇다면 제법 많은 상단과 거래를 한다는 뜻인가? 수많은 가문에 후원금을 받고? 어쩐지.
하지만 그래도 너무 사치스럽다.
남의 돈을 가지고 이래도 되는가 싶을 정도였다.
아니, 물론 안 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원금을 받아 풍족한 곤륜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걔들은 마교랑 싸우며 중원을 수호한다는 자부심이라도 있지.
도대체 니네는 뭐냐?
천웅방에게 밀려서 감숙조차도 먹지 못하는 문파가.
그리고 실수로 금동배에 흠집이라도 나면? 오채자기가 깨지기라도 하면 큰일이…….
쨍그랑!
저런, 말하기 무섭게 하나가 깨졌다.
진무가 한없이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데.
“저런! 손은 다치지 않았나?”
익숙한 얼굴의 장로 정문이 호들갑을 떤다.
사람을 먼저 걱정하는 걸 보면 진정한 도사라 할 수 있지만, 깨진 게 오채자기다.
어찌나 아까운지.
내 돈도 아닌데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
“공동은 꽤 많은 상단과 연을 맺고 있는 모양입니다.”
“응? 상단? 그딴 곳과 뭐 하러 연을 맺는단 말인가?”
뭐? 그게 아냐?
“이 사람, 우리 공동을 몰라도 너무도 모르는군. 산문을 오르며 보지 못했던가? 산 곳곳에 깊은 동굴이 있지 않던가?”
“아, 예. 암묘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진무가 무당의 그것을 떠올렸다.
무당산에만 해도 모두 일흔두 개의 암묘가 존재했다.
“암묘?”
“아닙니까?”
하긴 암묘라고 하기에는 입구가 좀 크긴 했다.
“암묘라니. 하긴 그리 볼 수도 있겠구만. 핫핫핫!”
뭐가 좋다고 자꾸만 처웃는 건지.
“그거 죄다…….”
죄다?
“광산일세.”
“…….”
진무가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정심을 바라보며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광…… 광산?
그 막, 철광석, 금, 옥, 이딴 거 캐는 그런 곳?
“공동산 주위는 예로부터 광물 자원이 풍부하게 나는 곳일세.”
“…….”
“오래전 나라에서 하사한 땅이라 세금만 빼곤 전부 공동파에서 관리하고 있지.”
그렇구나…….
진무는 그제야 눈앞의 금동배가 이해되었고, 오채자기가 깨지면 사람부터 걱정하는 그 마음이 이해되었다.
광산이란다.
그것도 산 곳곳에 그리 많이 뚫린 게 죄다 광산이란다.
어쩐지 장문인이 헤플 정도로 웃음이 많다고 했더니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금이든 뭐든 다 헤퍼서 그런 거였어.
어쩐지 모두의 얼굴에 여유가 묻어난다 했더니 돈이 마르려야 마를 수가 없어서 그런 거였어…….
진무 등을 구하러 왔던 놈들이 갑의며 보검을 든 것을 보고 단순히 준비성이 투철한 것이라 여겼다.
알고 보니 그저 돈이 썩어 나서 그런 거였다.
이런 금싸라기 강보를 둘둘 말고 태어난 놈들 같으니라고.
아, 진심으로 슬프다.
가엽고도 가여운 무당이여. 다른 도문은 다들 이렇게 잘 먹고 잘살고 있는데.
어째서 니들만 그렇게…….
이 씨발, 그때 무당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었는데…….
진무는 오래전 무당을 습격했던 일을 뼈저리게 반성했다. 그리 불쌍한 놈들인 줄 알았다면 손속에 사정을 두었을 것이다.
안 그래도 불쌍한 놈들의 따귀를 죽어라고 때렸으니 무당이 혁련무강을 두고두고 욕하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곤륜의 풍환이 그리 절절하게 무당을 애틋해하는 이유를 이제야 제대로 깨달을 것 같았다.
잘사는 놈들도 많은데 고작 욕했다는 이유로 가난하기 짝이 없는 도문을 있는 대로 심하게 털어 버렸으니.
“핫핫핫!”
기름진 고기를 입 안 가득히 베어 문 정심이 환하게 웃는다.
꼴도 보기 싫은 저 여유.
두고 보자.
양의심공을 대성해서 정사마의 가장 높은 자리에 오르면 공동부터 집어삼키리라.
광산을 모조리 뺏을 것이다.
싹 다 내가 가지고! 무당에 좀 나눠도 주리라.
“자, 먹게. 어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네만 오늘은 일단 먹고 마시며 즐기게.”
먹기를 권하는 정심의 말에 진무가 결연한 표정으로 한 손에 젓가락을 쥐고 다른 한 손에는 금동배를 움켜쥐었다.
오냐! 이놈들 내 사활을 걸고 먹어 주마.
내 토하고 싸는 것을 반복해서라도 배를 비워 내고 지칠 때까지 먹어 주겠노라.
조금이라도 많이 먹어서 태생부터 가진 네놈들의 부를 축내어 주마.
진무는 그때부터 미친 듯이 입 안에 술과 음식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마음속으로 불쌍한 무당 생각에 눈물을 흘리며.
* * *
날이 밝고 본격적으로 공동에서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다른 도문과 마찬가지로 새벽같이 일어나 맑은 공기를 마시며 기체조 비슷한 것으로 시작한다.
이른바 도인 양생술이라 불리는 체조였다.
의성(醫聖)이라 불린 화타가 만들었다는 오금희(五禽戱)처럼 동물의 모양을 본떠 만든 것인데, 각 도문마다 다른 모양이며 순서였지만 목적하는 바는 똑같다.
동작마다 서로 다른 호흡법으로 체내에 쌓인 사기를 몰아내고, 선기를 받아들이기 쉬운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적생의 연락을 받고 뒤늦게 출발해 새벽녘에 공동에 도착한 운암과 당세령도 잠에서 깨어 밖으로 나왔다.
반나절 가까운 시간 차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곧장 공동으로 달려온 터라 생각보다 빨리 도착한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양의심공을 찾자면 부려 먹을 것들이 필요했는데.
쥐잡이 당세령이나 우직하게 자신을 믿고 있는 운암이라면 필시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진무와 운암이 공동의 제자들과 함께 양생술을 시작하자 당세령은 잠에서 덜 깬 표정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호오? 개야?”
원숭이다.
“지금 건 늑대?”
호랑이다. 이 무식한 것아!
당세령이 동작 하나, 하나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참견해 왔지만 전부 틀렸다.
그래도 양생술을 통해 사기를 몰아내며 청량한 아침 공기를 마셨더니 속이 제법 편해졌다.
“흐음, 대단한데? 혈색이 좋아졌잖아?”
너도 무인이라면 운기 중에 건들지 마라.
양생술을 끝내고 운기를 통해 호흡과 기운을 달래는 진무의 옆에 쪼그리고 앉은 당세령이 신기한 듯이 진무의 낯빛이 변하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후우…….”
마지막으로 한곳에 몰아넣은 탁기를 차분히 내뱉고 일어난 진무가 눈을 뜨자 당세령이 불쑥 입을 열었다.
“나도 가르쳐 줘 봐.”
“뭘?”
“방금 했던 거.”
“도인도 아니면서 뭐 하러?”
물론 진무도 외양만 도사였지만.
“피부가 좋아지는 것 같길래.”
“…….”
명성 높은 도가의 양생술을 고작 피부 미용을 위해서 가르쳐 달라니.
어떻게 하면 사고가 너처럼 굴러가냐?
진무가 당세령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운암한테 배워.”
“싫어. 어찌 외간 남자에게.”
“나는?”
“낭군.”
진무의 물음에 당세령이 배시시 웃으며 부끄러워한다.
부끄러워하지 마! 이 미친 허언증 환자야!
진무는 휙 몸을 돌려 당세령을 무시하고 장문인을 만나기 위해 공동의 대도관인 광성전(廣成殿)으로 향했다.
“어디 가? 아침 안 먹어?”
“운암이랑 먹어. 할 일이 있다.”
“그럼 나도 나중에 먹을래.”
쫓아오며 끊임없이 재잘거리는 당세령의 말을 끊임없이 귓등으로 흘리며 광성전 앞에 다다르자 일대제자들이 가득히 모여 있었다.
다른 도문처럼 아침 식사 전 실무자들의 조회를 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째 조회를 여는 모양새가 이상하다.
마치 일감이라도 받으러 온 노동자들처럼 줄지어 서 있었다.
“종려!”
“예!”
“삼 광구!”
“예.”
“종한.”
“예.”
“사 광구!”
광구(鑛區)?
뭔 광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