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74
174화
“합! 하압!”
검진을 이루어 펼쳐지는 검술이 사뭇 날카로움을 더해 가는 모습에 명진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 짐처럼 남아 있던 오룡궁의 재건.
일 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무당의 전폭적인 지지로 인해 거의 완공 단계에 이르렀다.
더욱이 각 궁에서 지원한 이대제자와 더불어, 추후 모집한 제자들까지 더해져 훈련을 시작하니 이제는 제법 그 모양새를 갖추었다.
“사숙, 오늘 수련은 이걸로 끝났습니다.”
검진 훈련의 지도를 마친 진허가 명진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했다.
“오냐. 수고하였다.”
오룡궁의 실무인 진무가 진정한 무당지검으로서 거듭나기 위해 표주를 나간 뒤로 각 궁의 실무를 맡은 제자들이 돌아가며 이대제자들을 지도하고 있었다.
“근래 오룡궁이 제 모습을 찾아 가는 듯하여 기쁘신 모양입니다.”
“암, 내 숙원을 풀었음이니.”
“그 숙원이 사숙에게만 해당하겠습니까? 무당의 숙원이지요. 근래 진궁 사형이 하남까지 영역을 넓혀 재정 상황이 좋아진 터라 태화궁(太和官)의 재건에 관한 이야기까지 나온다지요?”
“그래. 아침에 장문인께서 말씀하시더구나.”
“참 장한 녀석입니다. 진무 그 녀석으로 인해 무당이 이리 순식간에 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그게 어디 진무 하나의 덕이냐? 모두가 잘해서 그런 게지.”
“하하, 괜히 좋으시면서 그러십니다.”
“험험, 흰소리 말거라.”
명진이 헛기침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 녀석이 없으니 적적하시지요? 청상이랑 청우도 없고.”
명진의 기쁜 얼굴에 담긴 티끌만 한 수심을 눈치챈 진허가 넌지시 물어 왔다.
명진은 딱히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내심 정말로 섭섭했던 듯 무연한 시선으로 떠 가는 구름을 쳐다보았다.
“매정한 녀석, 사숙께서 이리 걱정을 하시는데 서신 한 장 전하지 않고.”
괜히 덩달아 기분이 가라앉은 진허가 이 자리에 없는 진무를 짐짓 나무라듯 말하자 명진이 싫은 티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매정하다니!”
“예?”
“너는 어찌 사형이 되어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이냐? 바빠서 그런 게야, 바빠서. 표주가 어디 쉬운 일이더냐?”
“……?”
“더 말 말거라. 내 듣자 하니 청성과 곤륜에서 장문인께 감사 서신을 보냈다고 하더구나. 곤륜에서는 진룡 그분이 직접 서신을 보내셨다. 마교로부터 제자들은 물론 민초들까지 구했다지? 뿐이냐? 진룡 그분의 목숨을 구했단다. 덕에 오랜 병증까지 완화되었다고 서신에 고맙다는 말만 수차례 적혀 있었느니라.”
“…….”
“더욱이 당가의 여식을 구하고, 그 과정에서 정무맹이 오랫동안 쫓고 있었던 그 궁이라는 자들의 꼬리까지 잡을 수 있었다고 맹주가 입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을 했다고 하더구나.”
명진이 말을 쉬지 않는다.
“장문인께서 오늘 아침에 공동의 장문인께 편지를 받고는 어찌나 감탄하시던지.”
“……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진허가 쉬지 않고 팔불출처럼 제자 자랑을 늘어놓는 명진을 향해 떨떠름하게 물었다.
“너도 천웅방의 이야기를 들었겠지?”
“……예, 대강…….”
“대강이라니? 대강이라니!”
이제는 버럭 화까지 낸다.
“그 간악한 무리에게 쫓기는 공동의 제자 열 명과 개방도 열 명을 진무 혼자서 구했단다. 그런 걸 어찌 흘려들어!”
“…….”
“쯧쯧, 내 장로 회의에서 단단히 말해야지. 그런 중요한 일이 있으면 배워야겠다고 생각하며 정진해야지. 대강 듣다니. 허 참.”
명진이 못마땅한 눈빛으로 진허를 째려보았다.
“……그, 그러게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참 대단한 녀석입니다. 그 녀석이 무당의 이름을 이리 드높일 줄은 몰랐습니다.”
진허가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말하자 명진이 헛기침을 하곤 숨을 고른다.
“헛헛, 그게 어디 진무 홀로 한 것이겠느냐? 각 궁의 실무자인 너희 일대들이 잘하고 있기 때문이니라.”
“…….”
그냥 ‘다 진무 때문이다.’라고 하시지.
진허는 실무 회의 때 명진 사숙 앞에서 절대로 진무의 험담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미리 당부해야겠다고 단단히 다짐했다.
“참, 청우와 청상의 소식은 들었느냐?”
“……예?”
“그 녀석들이 말이다. 허 참, 신통도 하지. 이대제자인 녀석들이 벌써 내로라하는 실력을 보여 용봉관 갑무반에서 한 자리씩 차지했다는구나.”
명진의 말이 청우와 청상으로 이어진다.
보나 마나 이 또한 자랑일 터였다.
무당 제자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명진이었다.
하지만 사실은 생각보다 팔불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진허는 잠시 했다.
그렇게 말 한번 잘못 꺼냈다가 진무와 청상, 청우에 대해 다 아는 자랑을 줄줄이 늘어놓는 명진의 말을 한 시진 가까이나 듣게 된 진허는 완전히 지쳐 귀가 축 늘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고서야.
“사, 사숙.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응? 벌써? 모처럼 너와의 대화가 재미있거늘. 벌써 가게?”
“바쁜 일이 생각나서요.”
더 듣다가는 귀에서 피가 날 것만 같아서요.
“도사가 바쁜 일은. 좀 더 놀다 가거라.”
“아닙니다, 사숙. 서둘러 가 봐야 해서…….”
황급히 인사를 하고 오룡궁을 빠져나가는 진허의 뒤로 명진의 외침이 들려왔다.
“진허야! 내일 또 놀러 오너라! 내 술이라도 한잔 받아 놓으마.”
아쉬움이 담뿍 담긴 명진의 목소리에 진허는 재차 굳게 다짐했다. 오기야 하겠지만 절대로 진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리라.
진허가 돌아가고 난 뒤, 명진의 마음은 순식간에 적적해지고 말았다.
아직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았는데.
이미 진허로 인해 진무의 이야기를 꺼낸 뒤라 머릿속에서 잘 지워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명진은 자신도 모르게 자랑을 늘어놓을 먹잇감(?)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운공 어른을 뵙지 않은 지 오래되었군. 모처럼 몇 가지 무공을 더 필사할 일이 있으니 한번 뵈러 가 봐야겠어.”
* * *
“…….”
운공은 잠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무당 도사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하나이며 간악한 절대자 혁련무강 앞에서도 의기를 굽히지 않았던 명진.
이제는 오룡궁주가 된 그다.
의기롭고, 공명정대하고, 침착하고, 과묵하고…….
그런데 그가 쉴 새 없이 떠들어 댄다.
그 통에 아직 자신은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녀석이…… 헛헛!”
“…….”
장서각에 지낸 뒤 찾아오는 사람이 몇 되지 않았기에 대화가 절실했던 운공이었지만.
“이보게.”
“……예?”
“그만…… 좀 하면 안 되겠나?”
“뭘요?”
제자 자랑질 말이야.
그 말이 목구멍까지 솟구쳤던 운공은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명진의 마음을 어찌 모를까?
전대의 무당 제자들 중 가장 출중했던 그였다.
현 장문인인 명현조차 일대제자였을 때 명진이 장문인이 되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혁련무강에 의해 더 이상 무공을 사용할 수 없는 폐인이 되었음을 알았을 때 모두가 얼마나 마음을 아파했던가?
십 년을 넘게 병석에 누워 있던 그가 제자를 들이고 다시 기력을 회복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당장 장서각을 떠나 그를 찾아가고 싶었던 마음이 굴뚝같았던 운공이었다.
그런 그가 기른 제자, 진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사이 재능을 깨우쳐 무당지검이 되고, 오대도문을 돌며 은혜를 입히고, 정무맹에까지 도움을 주고 있으니 자랑하고 다닐 만도 했다.
말은 하지 않았어도 그동안 명진이 가지고 있었던 설움과 안타까움을 대리로 해소해 주는 듯하지 않던가.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한 시진은 좀 심했다.
혼자서 그 긴 시간을 쉬지도 않고 떠들어 대는 건 정말이지 심한 처사였다.
“그나저나, 그 녀석이 백가장이라는 곳을 거쳐서 당가, 청성, 곤륜에 이어 공동산에 올랐다고?”
“예. 가는 곳마다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는군요.”
“흐음.”
명진의 말에 운공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진다.
그 모습에 의아함을 느낀 명진이.
“어찌 그러십니까?”
“그게 좀…….”
“……?”
혹시나 자신의 제자를 폄하하는 말을 하지 않을까 싶어 눈매가 가늘어진 명진을 향해 운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이 말했다.
“실은 말일세. 그 녀석이 떠나기 전에 내가 한 말이 있어서 그렇다네.”
“어떤 말씀을?”
“청무 조사님의 일을…….”
“청무……라 하시면?”
운공의 말에 명진도 언뜻 떠오르는 부분이 있었다.
표주를 보내 달라 청하던 제자가 직전에 물은 것이 청무 조사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분에 관한 이야기에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게 말일세. 녀석이 양의심공에 대해 관심이 많은 듯하여 내 안 된다고 설득을 하면서 한 말이었네.”
“양의심공이요?”
“그래.”
“어찌?”
“음, 이것을 어찌 말해야 할지.”
운공이 자꾸 말을 아끼자 명진이 더욱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양의심공의 후반부에 관한 내용이라네.”
“후반부요?”
“으응. 내가 괜한 말을 했어.”
자꾸만 말을 아끼는 운공의 모습에 명진의 얼굴에 평소와 다른 짜증이 서린다.
“그게 대관절 무슨 소립니까?”
다그치는 듯한 명진의 말에 운공이 난색을 표했다.
“음…… 실은 말일세.”
운공이 천천히 입을 떼었다.
기록되지 않은 역사이기도 했지만, 이제까지 양의심공에 대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따로 전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운공의 긴 이야기가 끝났을 때 명진의 눈은 왕방울만 하게 커져 있었다.
그동안 무당 장문인들만 익히는 양의심공이 실은 두 권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사실도 몰랐는데, 태극을 이루는 요결이 오대도문에 나누어져 봉인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놀랄 만한 일이었다.
“어, 어찌 그런 이야기를…….”
명진은 비로소 모든 것들이 이해가 되었다.
진무가 강의 경지를 이루고도 실의에 빠져 있었던 이유가, 장서각에 다녀온 뒤로 갑자기 표주를 떠나고자 했던 이유가.
모두가 양의심공 때문이었다는 것을…….
“허…….”
“내가 괜한 소리를 한 게야. 앞길이 창창한 녀석에게 괜한 소리를…….”
하지만 운공의 걱정과는 달리 명진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녀석, 그런 고민이 있었으면 이 스승에게 말하지 않고…….”
“응?”
그게 무슨 소린가?
“아닙니다. 그만 가 보아야 할 듯하군요.”
갑자기 결연한 표정이 된 명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자네 어딜 가는가? 이보게.”
운공이 다급하게 불렀지만, 명진은 벌써 장서각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저 사람 설마?”
운공은 명진의 뒷모습에서 왠지 모르게 묘한 불안감을 느꼈다.
“……아니겠지?”
운공이 애써 고개를 저으며 머릿속을 채운 불안감을 떨쳐 내려 노력했다.
그 사이 장서각을 나온 명진은 울적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신의 제자이자 무당지검으로 성장한 진무.
그동안 준 것보다 받은 것이 훨씬 더 많은 명진이었다.
스승을 구하기 위해 절벽에서 떨어지고, 십수 년간 그 애틋함으로 수발을 들었지 않던가.
그로 인해 기력을 되찾아 다시 오룡궁의 궁주로 제구실을 할 수 있게 된 명진이었다.
자신이 가르치기 전에 스스로 배워 익히고 깨달았으며, 도동 출신이라는 모멸감까지 견뎌 가며 그토록 노력해서 무당의 든든한 기둥으로 자란 아이였다.
나아가 무당의 재정을 탄탄하게 했고, 오룡궁을 재건하는 발판을 만들었으며, 작금 무당의 이름이 다시 중원을 떨쳐 울리게 하고 있었다.
“내 좀 더 살피지 못했음이야. 스승이 되어서 그 아이의 고민마저 돌보고 해결해 주었어야 했는데.”
홀로 얼마나 고민을 했을까?
무당의 대제자가 되어 양의심공을 익히려 생각했던 차에 무당지검이 되어 그 기회를 잃었으니 박탈감이 오죽할까.
명진은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사랑스러운 제자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못했던 무력감이 일시에 그를 찾아왔다.
“오냐! 이 스승이 해결해 주마. 내 비록 태극요결이 담겼다는 후반부를 찾아 줄 순 없으나 장문인께서 가진 전반부는 반드시 네게 전해 줄 것이니.”
명진은 혹여 다른 도문에 남아 있다는 후반부가 소실되었다 할지라도, 진무가 무당의 규율 때문에 양의심공을 익히지 못하는 불상사를 막고자 다짐했다.
운공은 청무가 태극요결을 익히려다 마성에 빠져들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말도 안 되지. 진무는 그분보다 훨씬 더 뛰어난 아이다. 확실해. 내 그 아이에게 마땅히 새로운 길을 열어 줘야 하느니.”
어느새 그의 마음속에는 선대에 대한 존경보다는 애제자에 대한 믿음이 더욱 커져 있었다.
“서둘러야지. 벌써 공동이라니. 그 아이가 돌아오면 내 반드시 양의심공을 안겨 주리라.”
명진의 눈에 열의가 가득히 담긴다.
달라 할 것이다.
주지 않으면 장문인에게 강탈이라도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그의 마음은 무당의 전통보다 스승으로서 제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희열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이 그의 발걸음을 재우쳐 자소궁에 이르게 했고, 문을 힘차게 열 원동력이 되었다.
“장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