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78
178화
원로들에게 서신을 보내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공동파의 전역을 뒤지고 다녔지만 진무는 별다른 소득을 얻어 내지 못했다.
하긴 사람이 다르고 문파가 같지 않은데 숨긴 곳이 같을 리가 없었다.
서가와 조사전이 아니라면?
장문인의 거처?
그건 좀 아니다.
아무리 자유로이 도관을 둘러보라는 허락을 얻었지만, 공동의 핵심 전각인 광성전을 함부로 뒤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놈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곳이라면…… 설마 삼 광구와 사 광구?
그 또한 너무 멀리 갔다.
그 중한 것을 광산에 감추었을 리가 없다.
그래도 여차하면 곡괭이를 들고 그곳을 뒤져 볼 각오도 한 참이지만, 그건 다른 곳을 완전히 뒤져 보고 난 다음이어야 했다.
하루 이틀 후면 원로들의 서신이 올 것이라 했으니 그때까지는 열심히 이곳저곳을 뒤지고 다니는 수밖에 없다.
“어? 저자들은?”
막 운암과 함께 식사를 하러 나서는데 멀리 일반인의 복장을 한 이들이 다수 돌아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광산 인부들인가?
아니다. 그렇다고 보기에는 몇몇 옷차림이 무척이나 화려하고 얼굴에 귀티가 흐른다.
“아, 진무 도장.”
진무에게 구함을 받았던 종려다.
천웅방에게서 도주하다 부상을 입었던 터라 의실 신세를 지고 있다더니 이제 제법 나은 듯 멀쩡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덕분에 많이 나았습니다.”
“다행이군요. 무량수불.”
진무가 그럴싸하게 도호를 외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전에 제를 올리신다고 하셨다더니, 벌써 끝나신 모양입니다?”
“아, 예.”
제는 무슨. 향도 안 피웠다.
“한데 저분들은?”
“아, 한 번씩 상행 중에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도문에 제를 드리러 오는 사람들입니다.”
“아.”
진무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옷차림이 비싸 보인다 했더니.
상단이라면 분명 양손 가득히 후원 물품이나 지원금 같은 것들을 들고 왔으리라.
팔자도 편하다, 멍청한 것들.
도문에 빈다고 나쁜 일이 안 생기리라 믿다니.
그나저나 공동 놈들은 정말로 욕심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광산만 해도 평생 먹고살 것인데 상단에까지 지원을 받고 있었다니.
하지만 딱히 참견하고 싶지는 않았다. 부러울 뿐.
“이제 식사를 하러 가시는 겁니까?”
“예.”
“하면 함께 가시죠. 제가 특별히 음식을 준비하라 이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종려가 앞서 걸으며 길을 안내했고 지나치는 공동의 제자마다 진무를 향해 매우 공손하게 인사를 해 왔다.
먼저 걷던 놈이 진무더러 지나가라며 길을 비켜 주는 경우도 있었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은인이 되길 잘했다.
모심에 예를 다하는 모습이 매우 흡족했다.
식당에 도착하자 종려는 다른 도사들이 먹는 음식이 아닌 특별식을 준비하게 했다.
숙수장에게 각별히 신경 쓰라 일렀기 때문인지 식사의 질이 이전보다 훨씬 더 좋았다.
역시 광산으로 돈을 버는 도문은 다르다.
별도로 숙수들을 고용해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기에 매일이 건강식에 산해진미다.
가지가지로 부러운 놈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무당에도 이런 식당 하나 만들어야겠다.
아니, 백표를 데려다가 도사를 만들어야 하나?
아, 그거 괜찮네. 전문적으로 고기만 써는 도사.
어쨌든 모처럼 기름지지 않은 음식을 맛있게 잘 먹었다.
식사를 같이한 종려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며 돌아갔고 함께 식사를 마친 운암과 당세령이 기분 좋은 표정으로 진무를 뒤따랐다.
자고로 배부르고 등 따시면 잠이 온다고 했던가?
요 며칠 양의심공의 흔적을 찾아다니느라 심신을 혹사했더니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꺼억!”
진무가 흐뭇하게 배를 두들기자 식사를 함께한 당세령이 진무를 휙 째려보았다.
“조심 좀 해 줄래? 여성 앞에서 실례잖아. 꺽꺽 트림이나 하고.”
별, 넌 트림 안 하냐?
“밥 먹었으니 또 할 거야? 좀 쉬자. 응?”
당세령이 투덜거리고 운암이 기대감을 품고 힐끗댄다.
두 놈 다 비무를 청할 때는 밤샘도 불사하더니…… 망할 것들.
그래 쉬어라, 쉬어.
자고로 너무 당기기만 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가끔은 느슨하게도 해 줘야지.
“그래. 쉬자. 대신 내일부터는 또 열심히 해야 해, 알았어?”
“응!”
좋단다.
어쨌든 자신도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진무가 나른한 표정으로 거처로 가던 중에 제를 올리러 왔다는 상단의 인물들과 마주쳤다.
뭐 굳이 아는 척할 필요는 없다.
내 손님도 아닌데.
“상단주님, 혹시 공동에 도천(盜泉)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도적의 샘이라고?”
“예.”
“거, 말도 안 되는 소리. 이름 높은 도문에 도천이 웬 말인가? 흰소리 말고 저쪽으로 가서 기다리게. 내 장문인을 만나고 올 터이니.”
“예.”
아는 척하지 않는다고 오가는 대화까지 들리지 않을 리는 없다.
도천?
진무가 슬쩍 고개를 돌리자 운을 띄운 상단의 인물이 기다렸다는 듯 눈을 마주치며 웃어 왔다.
하, 요놈 보게나.
피식 웃음이 났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순박한 표정의 중년 사내였지만, 자신을 찾아온 인물임이 분명하다.
아니라면 뜬금없이 공동산에서 도천을 찾을 이유가 만무했다.
도천, 그것은 진무와 원공후만이 아는 오랜 기억 속의 이야기였다.
필시 저 중년 사내는 공동산에 오른 자신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원공후가 보낸 인물일 터였다.
공동파의 눈을 속이기 위해 무공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을 보낸 것이다.
“야, 니들 먼저 가서 쉬어라.”
“응? 너는?”
“난 그냥 산책이나 좀 할까 하고.”
“산책은 무슨.”
당세령이 투덜거렸지만, 혹시나 진무가 쉬기 싫으면 가서 일이나 하라고 할까 싶어 서둘러 거처로 걸음을 옮기고.
운암 저 자식……도 뭘 시킬까 싶어서 은근슬쩍 뒤따른다.
그들이 돌아간 뒤 홀로 남은 진무는 상단 인물들이 향한 광성전 쪽으로 걸었다.
상단주가 장문인을 만나러 들어간 뒤인지 상단의 인물들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공후가 보냈나?]귓가에 들어온 진무의 전음에 순박한 표정을 가진 사내가 고개를 살짝 돌리다 진무를 발견했다.
“아이쿠, 배야. 다들 여기 좀 있게. 내 뒷간에 좀 다녀오겠네.”
“하하, 유 집사님. 어째 많이 드신다 싶더라니. 어서 다녀오십시오.”
“공동의 음식이 어디 보통 음식인가? 속세에서 보기도 힘든 산해진미라 내 무리를 한 모양이야.”
일행과 떨어진 사내는 부리나케 뒷간이 있는 방향으로 뛰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미 진무가 미리 기다리고 있었다.
사내가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급히 달려와 인사를 했다.
다만 혹시라도 보는 눈이 있을지도 몰라 절을 올리지는 않았다.
“천주를 뵙습니다. 이번에 영보당(靈寶黨)에 배속된 전령 유장입니다.”
영보당? 유장?
처음 듣는 이름들이다.
뭐, 적생이 새로 만든 곳인가 보지.
“어쩐 일인가?”
“총사가 전하라 한 서신을 가져왔습니다.”
적생이?
진무는 사내, 유장이 내민 서신을 받아 펼쳤다. 천천히 읽는 사이 유장의 설명이 더해진다.
“천웅방과 철검단의 무인들을 통합해서 세력을 재편 중이며, 원 방주는 감숙의 사파 세력들을 손에 넣고 있습니다.”
“쓸데없는 짓을……. 주력이 될 녀석들만 모으면 될 텐데.”
“그리 전할까요?”
“아니다. 적생이 계획을 세우고 있을 테니 알아서 하라고 해라.”
“예.”
“한데 자금이 이렇게나 많이 든다고?”
진무가 서신의 맨 하단에 적힌 숫자를 보며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예. 총사께서 무인대를 추가로 모집하게 될 경우 필요한 자금을 대략적으로 추산한 액수라 했습니다.”
틀린 말도 아니다.
무인대 하나를 만들자면 꽤 많은 비용이 든다. 기본적으로 지급해야 할 무기에 갑주, 거기다 녹봉까지.
“원 방주가 천웅방의 전답을 팔더라도 재원을 마련해 보겠다고 전하지 말라 했으나 총사께서 설령 그렇다 해도 천주님께 드리는 보고에 이를 누락할 수는 없다고 해서.”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재원을 마련하려는 원공후의 충성심이나 작은 보고 하나 누락하지 않는 적생이나.
더욱이 적응하는 데 오래 걸릴 것이라 생각했던 적생이 무척이나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천우명이 둘을 보고 많이 배워야 할 것인데.
진무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 방주에게 전답을 팔 필요는 없다고 전해.”
“예?”
“공동의 일이 끝나면 재원은 내 직접 마련해 줄 테니 그때까지만 기다리라고 해.”
“…….”
유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진무가 도사로 위장해 살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들은 바 있었다.
그것도 가난하기로 중원 전체에 소문난 무당이었다.
그런 그가 무슨 돈이 있어서.
“천주님, 외람된 말씀이오나 총사가 추산한 금액은 황금 여덟 관에 달합니다.”
“알아.”
이 자식이 사람을 뭘로 보고. 그쯤은 있다.
은밀하게 동림전장에 맡겨 두었던, 과거 단강구의 밀수꾼들에게 뺏은 황금 열 관.
아깝긴 하지만 새로운 사패천을 위해 쓰는 돈이라면 어찌 쾌척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어차피 사패천의 비고에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잠자고 있다.
원래 내 돈이지만 내 돈은 아닌 돈이…….
일단은 그것을 되찾기 위한 투자라고 여기면 될 일이었다.
“천주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것이.”
처음 보는 놈이 걱정은.
“너, 나에 대해 제대로 듣지 못했구나?”
“……예? 그게 무슨.”
“나는 이제껏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내가 한 다짐이든 타인에게 한 약속이든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
“…….”
유장이 진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오랜 세월?
무슨 세상 다 산 노인처럼 말하고 있다. 딱 봐도 자신의 반 토막이나 살았을까 싶은 어린 청년이.
자신이 말해 놓고도 딱히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진무가 약간 머쓱해진 표정으로.
“그냥 그렇게 알고 있으면 돼. 적생에게 전해. 내가 반드시 그 돈을 마련해 줄 테니 생각한 바대로 끌고 가라고.”
“……알겠습니다. 그리 전하겠습니다.”
미심쩍기 짝이 없으나 천주의 말에 항명해서는 안 된다는 주의를 받은 뒤였다.
“더 전할 내용은?”
“아, 총사께서 이후 어느 곳으로 가실지 여쭈라 했습니다.”
“음.”
옳은 말이다.
적생은 지속적인 연락을 강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은위단주를 다시 포섭해서 이쪽으로 끌어들인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정사마의 모든 곳에 은위단, 아니 하오문의 눈과 귀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전에는 반드시 확고한 연락책이 있어야 했다.
전서구든, 표식이든.
“며칠이 걸릴지 모르지만 앞으로 닷새 정도는 공동에 머물러야 할 게야.”
“그 후에는 어디로 가시는지요?”
“섬서성 화산.”
“음, 하면 저희가 산문 밖에서 닷새 후에 기다리겠습니다.”
“더 걸릴지도 모르는데?”
“괜찮습니다, 천주님. 언제까지고 기다리겠습니다.”
“알겠다.”
유장의 충성스러운 대답에 진무가 빙긋이 웃었다.
“자, 그럼 돌아가지. 괜히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워 좋을 것이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대화를 마무리한 후 진무는 삼매진화(三昧眞火)를 일으켜 서신을 태워 버렸다.
유장은 다시 자신이 있던 상단 일행에게로 돌아갔고, 진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거처로 돌아가 쉬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흠, 어서 양의심공의 후반부를 찾아야 하는데.”
약속을 했으니 적생에게 돈을 보내야 한다.
그러자면 섬서의 성도인 서안(西安)까지 가야만 했다.
동림전장이라 해도 지부를 사방에 깔아 두지는 않으니까.
어차피 공동의 일이 끝나면 화산으로 가야 할 터이니 큰 상관은 없었다.
가는 길에 찾아서 주면 될 일이다. 하지만 마냥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다.
이제 곧이다.
공동과 화산.
양의심공만 얻고 나면 정무맹과는 완전히 안녕이다.
스승님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뭐 어떠랴?
어쨌든 앞으로 사패천 본성과의 전쟁에 대비하자면 준비는 빠를수록 좋을 터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감숙의 난주에서 찾아서 줄걸.
“어? 진무 도장!”
생각이 짧았던 자신을 반성하며 걷는 진무를 누군가 부른다.
광성전의 전령을 담당하고 있다는 일대제자 종오였다.
“어딜 다녀오시는 겁니까? 거처에 계신 줄 알고 갔더니 운암 도장과 당 소저만 쉬고 계신 터라 한참을 찾아 돌아다녔습니다.”
무슨 일이길래?
진무가 의아해하자 종오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장문인께서 급히 오시랍니다.”
“장문인께서? 무슨?”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뒷말을 흐리는데.
“자세히는 모르겠고 기다리시던 연락이 왔다고 전하면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기다리는 연락이라면?
설마 원로들이 답신을 보낸 것인가?
의문에 동그랗게 뜨였던 진무의 눈이 기쁜 빛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두근거리기 시작한 심장.
기대감이 한껏 차오른 진무가 심장 박동보다 빠른 걸음으로 광성전으로 향했다.
“지, 진무 도장?”
뒤에 멀뚱하게 남은 종오가 까마득히 작아진 진무의 뒷모습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거…… 많이 기다린 소식인 모양이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