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79
179화
진무는 곧장 광성전 문 앞으로 다가갔다.
“장문인!”
급한 마음이 목소리에까지 전해져 잔떨림을 만든다.
“으핫핫핫! 진무 도장인가? 어서 들어오시게.”
참, 웃음이 많은 놈이다.
하지만 이 마당에 그게 뭐가 중요할까?
허락이 떨어짐과 동시에 진무가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다.
장문인 정심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앉아 있었고, 대담을 나누고 있던 상인은 진무가 들어오자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마음 같아서는 정심의 멱살을 낚아채고 알아낸 것을 모조리 토하라며 윽박이라도 지르고 싶었으나, 일단은 공손하게 상인이 앉았던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눈알만 이리저리 굴렸다.
“진무 도장.”
그래! 말해! 어서!
뭐냐! 어떤 연락이 온 것이냐!
진무가 이글이글 불타는 눈빛으로 정심을 바라보았다.
집중을 하다 못해 갑자기 눈앞의 모든 움직임이 느리게 보이고, 정심의 숨소리마저 귓가에 들려온다.
마치 영겁을 지나는 기분. 그의 손이 옆으로 움직여 작은 서찰 하나를 집어 들고 천천히 꺼내 진무의 앞에 내려놓는 그 순간까지 진무는 참을 수 없는 답답함에 속으로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으핫핫핫! 내 이런 비밀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네.”
웃을 시간에 말을 해.
“자네가 찾는 물건이 맞는지 모르겠네만.”
각설하고 핵심만 말하라고, 이 자식아.
진무는 그의 입에서 양의심공이라는 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내 서신에 혹 무당에서 본파에 무언가를 남기신 것에 대해 아느냐 원로님들께 여쭈었다네.”
과정 생략 안 하냐?
“했더니 다른 분들은 잘 지내느냐? 본산의 상황은 어떠하냐? 제자들은 수련을 잘하고 있느냐? 하며 이런저런 근황을 물으시더군.”
이 자식이 진짜 죽고 싶은가…….
뭔 이야기를 이따위로 늘린단 말인가?
군협지 쓰냐? 분량 모자라는 게 아주 일생일대의 고민이야?
그냥 말해! 목숨 분량 줄이고 싶지 않으면!
진무의 호흡이 눈에 띄게 거칠어졌다.
이러다가 ‘없다.’라는 말을 들으면 정심의 혓바닥을 뽑아 버릴지도 모를 정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한데, 한 분이 오늘 서신을 보내셨더군.”
스윽.
정심이 서신을 진무의 앞으로 밀었다.
진무의 눈동자가 세차게 떨린다.
“봐도…….”
허락을 구하듯이 묻자, 정심이 고개를 끄덕인다.
진무는 기다릴 것도 없이 서신을 찢을 듯 펼쳤다.
“선대께서 전하시길 무당에서 찾아와 무언가를 원한다면 복마동으로 안내하라고 하셨다는군. 인연이 있는 자라면 그곳에서 찾을 것이라 하시었네.”
진무도 읽었다.
그런데 복마동(伏魔洞)?
광성전이나 삼 광구나 사 광구가 아니었어?
공동을 뒤진 지 어언 닷새. 어지간한 곳은 다 쑤시고 다녔음에도 그런 이름을 가진 전각은 본 적이 없었다.
진무가 의아하게 쳐다보자.
“복마동은 나로부터 사 대(四代) 전의 장문이셨던 무령(武靈) 조사께서 만드신 곳이라네.”
“…….”
백 년 전?
양의심공이 나누어진 때다.
“복마동은 처음에는 수련장으로 사용되었지.”
“…….”
“하지만 얼마 안 가 폐쇄되고 말았다네.”
폐쇄?
못 들어간다는 말인가?
“기관 자체가 너무 강하니 실효성이 없어서 그리되었지.”
“…….”
“생각해 보게. 요즘 같은 세상에 뭐하러 목숨 걸고 기관에 들어가서 수련을 한단 말인가? 차라리 보검 하나 구해 차고 영약 하나 사서 먹으면 훨씬 더 성취가 빠른데 말이야.”
이 자식이 무슨 영약이 논두렁 잡풀도 아니고.
심마니가 괜히 심산유곡에서 산삼을 발견하면 ‘심봤다!’라고 외쳐 산천에 고하고 절을 올리는 줄 아나.
그리고 보검? 말이 쉽지.
당대 가장 유명한 명장이었던 구야자의 보검 한 자루에 돈이 얼만지나 알고 하는 소릴까?
뇌에 근검절약 대신 금붙이만 덕지덕지 낀 도사 놈 같으니.
그러니 니들이 구파에서도 최약체라고 평가받는 게다.
“폐쇄되었다고 하시면, 이젠 못 들어간단 말씀입니까?”
“그건 아닐세. 노후화되어 위험하다는 말이지. 그간 아무도 그곳을 돌보지 않았거든.”
다행이다.
무너지기 직전이든 아예 무너졌든, 거기 있기만 하면 된다.
그깟 기관 따위에 굴할 것이냐? 그 안에 무당에 돌려줄 물건이 있다는데.
“안내해 주십시오.”
“응? 지금 말인가?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지금 갑니다.”
“응? 뭐?”
“지금 가자구요.”
“아니, 이렇게 빨리 말인가?”
진무가 활활 불타오르는 듯한 열의를 보이자 정심이 약간 당황한 듯이 물었다.
“당장! 안내해 주십시오.”
“…….”
달리지 못해 있는 대로 좀이 쑤신 말처럼 성급한 진무의 반응에 정심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원, 사람. 생각보다 급한 성격이었구먼.”
안 급하게 생겼냐?
며칠을 뒤졌음에도 허탕을 치다가 단서, 아니 확실한 장소를 발견했는데?
“가시자니까요?”
진무가 고집을 피우며 벌떡 일어나자 그 기세에 밀린 정심이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네. 그럼 어떤 곳인지만 보여 주도록 하겠네.”
진무는 앞서 걷는 정심의 뒤를 따라 걸었다.
저벅, 저벅.
느리다.
공동의 장문인이 이렇게 동작이 굼뜰 줄은 몰랐다.
무인이라는 놈이 경공을 배웠으면 써야 할 거 아냐?
이제 조사전을 지나고 고작 몇 개의 건물을 지났을 뿐이었다.
저벅, 저벅.
빨리 걸어라! 아니 차라리 달리란 말이다. 이놈아! 어서 나를 복마동으로 안내하지 못해!
하지만 위치를 모르니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뒤를 쫓을 수밖에 없었다.
전각이 끝나는 곳.
제자들의 수련을 위해 세워 둔 목인장이 가득한 대연무장의 한쪽 구석.
그저 돌을 쌓아 올린 벽이라 생각했던 곳에 눈여겨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작은 문이 있었다.
수련장 주제에 뭐가 이리도 발견하기 힘들게 만들어 놓았단 말인가?
그리고 커다란 자물쇠는 어찌 채워 놓았고?
또, 얼마나 관리를 하지 않은 것인지 거미가 일가를 이룬 것처럼 거미줄이 몇 겹으로 쌓여 문을 온통 막고 있었다.
진무가 떨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는 사이에 정심은 열쇠 꾸러미를 꺼내 하나씩 맞춰 보고 있었다.
그냥 뜯어!
털컥.
녹슨 열쇠가 밀려 들어가자 문만큼이나 오래 사용하지 않은 것인지 잠금쇠가 힘겹게 열렸다.
그리고 문 안쪽으로 드러난, 지하로 향하는 돌계단.
햇빛이 비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영역이 극명하게 나누어져 그 안의 공간이 마치 무저갱처럼 느껴졌다.
후욱!
오랫동안 막혀 있던 곳이 열리니 안쪽을 채우고 있던 공기가 퀴퀴한 습향을 풍기며 바람처럼 밀려 나온다.
“푸우.”
정심이 얼굴을 찡그리고 바람에 섞인 먼지를 흩어 내려 손을 휘적거렸다.
“하도 오래 사용하지 않아서…….”
대체 얼마나 사용하지 않았기에?
“내가 도문에 들어오기 전부터 사용하지 않았다고 들었으니 오십 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네.”
음, 그래. 그쯤은 되어야 폐쇄했다고 할 수 있지.
“들어가시죠.”
“음…….”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우는 진무를 도통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는 공동의 은인이 아니던가?
고민하던 정심이 미리 준비해 온 홰에 부싯돌을 당겼다.
탁, 타닥! 화르륵!
“어쩔 수 없구만. 자, 들어가세.”
딱, 딱, 딱.
발이 돌계단에 닿으며 내는 소리가 사방을 채웠다. 땅을 밟을 때와는 사뭇 다른 그 거친 소리에, 진무는 제 심장도 마찬가지로 찌르르하게 울려 옴을 느꼈다.
계단은 쉼 없이 이어져 깊고 또 깊은 곳까지 들어가 있었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돌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공간이 점차 커지기 시작하더니.
화르륵.
정심이 벽면에 걸린 홰에 불을 놓자 지하에 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공간이 불빛 아래 드러났다.
그리고 그 공간의 한편에 검은빛을 내는 거대한 철문이 있었다.
철문의 위쪽.
이름난 석공이 음각으로 파낸 듯한 용사비등(龍蛇飛騰)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복마동(伏魔洞).
글자만 보았는데도 심장이 세차게 뛰어오른다.
백 년 전의 인물이 만든 곳. 무당에게 전해야 할 물건이 그 안에 있다 했다. 필시 후반부의 한 조각일 것이다.
“이곳이 복마동일세.”
정심이 철문과 복마동의 글귀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도 보았겠지만, 구시대의 유물에 불과하다네. 방치된 지 오래되어서 제대로 작동할지도 모르고…… 그리고 이게 생각보다 너무 수준이 높아 일 관을 통과한 자도 없다네.”
그제야 진무는 복마동의 문이 잠겨 있던 이유를, 거미줄이 가득했던 이유를, 폐쇄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요즘 세상에 맞니 안 맞니 하더니. 이 자식들…….
약해서 못 들어간 거네.
어쨌든 그 끝에 뭔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공동의 원로가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만약 죽어 버렸다면 영영 찾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쓰읍, 하아…….”
진무가 긴장과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깊이 숨을 마셨다 내쉬었다.
“자, 그럼 보았으니 돌아가세.”
뭐? 여기까지 와서?
진무가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정심을 째려보았다.
“들어가야지요.”
“허, 이 사람, 내 말을 듣지 못했는가? 폐쇄된 지 오래라 기관이 어찌 작동될지도 모르네. 그리고 복마동이 만들어진 이후 끝까지 가 본 사람도 없거니와 따로 기관 도해(圖解)가 남아 있지 않아서 너무 위험하네.”
“장문인!”
“……?”
“그러니 당연히 제가 들어가야 합니다.”
“…….”
“제가 공동파를 찾은 이유를 아시지요?”
“그야. 무당지검으로서 오대도문의 시험을 받기…… 설마? 자네 여기를 시험으로 생각하는 그런 건 아니지?”
“예.”
“아, 아니. 시험은 이미 충분하네. 자네가 천웅방으로부터 제자들을 구하였을 때 이미 끝난 게야. 내 무당에 전서구도 이미 보냈어.”
정심의 말에 진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제게는 이것이 시험입니다. 또한, 그 안에 남겨진 물건을 반드시 찾아야 하구요.”
이의는 받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말에 정심이 얼굴을 찡그렸다.
진무는 무당지검이자 공동의 제자를 구한 은인이었다.
도해도 없는 복마동에 들여보냈다가 앞길 창창한 진무에게 불상사라도 생기면 큰일이었다.
더구나 이제껏 복마동이 만들어진 이후 통과한 자가 아무도 없지 않던가?
“이보게. 다시 한번 생각하게. 이곳이 어쩌면 무당지검을 시험하는 최적의 장소일지 모르지만, 나는 자네가 혹시 모를 위험에 처하기를 원하지 않네. 그 안의 물건이 정 필요하다면 내 지금이라도 기관진식에 밝은 제갈에 도움을 청해 보겠네.”
급해 죽겠구만 뭔 개소리를 하고 있어.
그런 사람을 지금부터 찾아서 기관을 해제하자면 얼마나 시간이 소요될 줄 알고.
“한 일 년이면 충분하지 않겠나?”
미친놈인가?
하루여도 숨넘어갈 판에 일 년이란다.
당연히 기다려 줄 여유나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열어 주십시오.”
“…….”
“장문인. 저는 그저 허울뿐인 인증을 받기 위해 공동을 찾은 것이 아닙니다. 당연히 구했어야 할 공동의 제자입니다. 그것으로 평가받는 것은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지요. 하물며 공동의 누구도 통과하지 못했다면 제게 있어서 최고의 장소임이 틀림없습니다. 저는 이곳을 통과해 무당지검으로서 당당히 인정받고자 합니다.”
“…….”
정심이 항상 얼굴에 짓고 있던 미소를 지우고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자네는 정말로 고집스러운 사람이구먼. 자네의 뜻이 그러하다면 내 더는 말리지 않겠네.”
결국, 진무의 뜻을 존중하기로 한 정심이 철문 쪽으로 다가가 옆 벽에 기관 장치를 작동하는 손잡이를 당겼다.
털컥! 그그그…….
관리를 하도 안 해서 녹이 슨 것인지 문이 반쯤 열리다 멈춰 버린다.
얼추 보이는 두께만 해도 두 뼘이 넘는 철문이었다.
“이런. 뭐가 걸린 모양인데.”
더는 기다릴 수 없다.
진무는 정심보다 빨리 다가가 철문을 잡아당겼다.
끼이…… 그극, 긍.
진무의 강제력에 철문이 쇠 갈리는 소리를 내며 버티다가 젖혀졌다.
그리고 드러난 긴 복도의 모습.
분명 어두워야 하는데 그 안이 이상할 정도로 밝았다. 햇빛 아래만큼은 아니어도 사물을 정확하게 분간할 수 있을 만큼의 밝기.
홰의 화광 때문이 아니었다. 복도의 양쪽에 반 장 간격으로 박혀 있는 돌들이 스스로 빛을 내고 있었다.
“야명주?”
눈이 휘둥그레진다.
복도의 끝이 보이지도 않는데 반 장 간격으로 야명주를 박아 놓다니.
역시 광산 부자는 다르다.
하지만 지금은 부러움보다는 양의심공에 대한 탐욕이 먼저였다.
당장이라도 뛰어 들어갈 것처럼 하는 진무를 정심이 막았다.
왜?
“꼭 들어가야만 하겠나?”
“…….”
말리지 않겠다더니 정심이 다시 한번 묻는다.
말려서 들을 것 같으면 내가 뭐 하러 여기까지 오냐.
진무가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량수불. 어쩔 수 없구만. 광성자께서 자네를 지켜 주시기를 빌겠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파앗!
말을 마치자마자 걸음을 뗀 진무는 잡을 새도 없이 철문 안쪽의 복도로 들어섰다.
덜컥, 슛!
어딘가를 밟은 것인지 양쪽 벽면에서 공기를 가르며 쏘아지는 날카로운 물체가 줄지어 진무의 신형을 뒤쫓는다.
“위험…….”
정심의 외침이 있었지만 이미 진무는 그 자리를 피해 점점 더 안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땅, 푹, 푸푹, 푹!
쏘아진 물체들이 진무의 뒤를 쫓으며 반대편 벽에 깊숙이 박히고 들었다.
그리고 진무의 모습은 어느새 정심의 시야에서 어슴푸레한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그그긍, 쾅.
기관이 작동되자 열렸던 철문이 천천히 닫혀 그 내부를 감추었다.
“무량수불…….”
정심은 처음으로 웃음기를 완전히 뺀 침중한 얼굴로 도호를 외며 진무의 무사를 빌어야 했다.
제발 무사히 돌아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