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82
182화
사람의 몸은 기의 통로다.
수백의 혈맥이 있고 그 혈을 잇는 세맥과 대맥이 존재한다.
인간의 몸에는 이러한 맥을 흐르는 기운을 쌓는 곳이 세 군데 있으니 이를 상단, 중단, 하단이라 한다.
일반적으로 무공을 익히는 자들이 사용하는, 배꼽 세 치 아래에 위치한 것을 하단전이라 하고, 가슴뼈가 마주 닿는 곳에서 한 치 가량 아래에 들어간 단중을 중단전이라 하며, 양 눈썹 사이의 인당을 상단전이라 한다.
이는 사람이 기운을 연단하여 사용하는데 있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이며, 하단은 정(精), 중단은 기(氣), 상단은 신(神)이라 한다.
사람이 하단을 깨우치면 인간 본연의 힘을 낼 수 있고, 중단을 깨우치면 기운이 자유롭게 흐르도록 몸이 재구성되니 가지고 태어난 근골과 피부를 벗고 새로이 태어나며, 다시 상단을 깨우쳐 정기신이 모두 활성화되면 영(靈)으로서 등선에 이르는 것이다.
주해본은 청성과 곤륜에서 찾은 것과는 달리 많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새롭게 태어난다고? 탈태환골을 말하는 건가?”
전설상의 경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적사투관을 직접 경험한 진무였으니 믿지 못할 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피식 웃음이 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등선을 한다고?
도사 놈들 허세는 정말 알아줘야겠다.
뭐, 그래도 이쯤은 되어야지.
다른 것도 아니고 청무 조사께서 탐냈던 양의심공 아닌가? 시작부터 아주 광오한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무릇 모든 이들이 수련하는 토납법은 이러한 하단, 중단, 상단을 활용하기 위해 임맥과 독맥을 통로로 삼는다.
하지만 양의는 이와 궤를 달리하여 중맥(中脈)을 기준으로 둘을 반으로 갈라 임맥에 음을 쌓고 독맥에 양을 쌓으니, 이것이 곧 양의의 본질이다.
먼저 단전의 기운을 양의를 익힐 수 있는 상태로 만들자면 단전을 태극의 이치에 따라 둘로 나누어야 한다.
뜨거움은 흐르고 차가움은 멈추어 있으니 이를 양동음정이라 하며, 나누어진 기운 중 흐르는 것은 가벼우니 위로 보내어 임맥으로 가게 하고 멈추어 있는 것은 무거우니 낮게 가라앉게 하여 독맥으로 보내면 이것이 곧 양의요, 태극이라.
단전에서 백회까지 오른 기운은…….
“…….”
내용은 아쉽지만, 거기에서 끝이 났다.
청성에서 얻은 태극요결 중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무극이태극이요, 양동하면 음정하라.
무슨 소릴까?
가벼움과 무거움. 뜨거움과 차가움.
의문이 생긴 진무는 탁자 앞에 좌정하고, 양의심공의 내용을 되새기며 눈을 감고 단전의 기운에 모든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단전의 기운을 둘로 나눈다.
뜨거운 것과 차가운 것.
뜨거운 것은 위로 보내고 차가운 것은 아래로 보낸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말이지만 일반적인 토납법과는 다르다.
모든 내공 심법의 기본은 수승화강(水昇火降)의 원칙을 따른다.
물이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오르고, 뜨거운 태양이 지면에 닿아 열기를 만들어 놓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서 생긴 기운은 단전에서 회음으로 흘러 백회에 이를 때까지 냉기를 유지하니 이를 수승이라 하고.
백회에서 다시 내려와 단전에 이르니 이를 화강이라 한다.
뜨거움은 그 부피를 더해 커지고 폭발적인 힘을 가지게 되니 사람이 내공을 익힐수록 더욱 강한 무위를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찬 것을 아래인 회음으로 보내는 것은 결과적으로 보아 순행(順行)이지만, 뜨거운 기운을 곧장 위로 보낸다는 것은 역행(逆行)이다.
정파는 대개 순행을 따르고 중원 무공과 궤를 달리한다는 마교의 무공은 오롯이 역행을 따른다. 그것이 이치이기 때문이다.
순과 역을 동시에 사용한다는 것은 듣도 보도 못한 원리였다.
하지만 이미 절반의 주해본에 심취한 진무는 자신도 모르게 단전의 기운을 뜨거움과 차가움으로 구분 짓기 시작했고, 생각이 깊어짐에 따라 도달해 보지 못한 영역에 조금씩 빠져들어 갔다.
물아일체(物我一體).
사물과 자신을 동화하며 공간에 스며들고.
무아(無我).
존재의 실체마저 잊어 가는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후우…….”
어느 순간 길게 내뱉어진 숨을 끝으로 호흡이 조금씩 가라앉고, 들숨과 날숨의 경계조차 사라져 가는 순간.
진무의 단전에 선명한 경계가 만들어지고, 구속하지 않은 기운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뜨거움은 위로 흘러 백회를 향해 거슬러 오르고, 차가움은 회음을 지나 자연스럽게 흐른다.
역행은 고통스럽고 순행은 편안했다.
편안함이 고통을 상쇄하니 감각이 무뎌져 진무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반쪽짜리 구결의 주해.
양의심공을 완전히 몸 안에 담는 것은 시기상조였다.
양측이 비등하게 조화를 이루어야만 하는 것인데 진무가 가진 것은 음양의 기운이 아닌 양의 기운인 육양진기뿐이었고, 또한 그것을 반으로 나누었으나 어느 곳에서 모아야 하는지가 적혀 있지 않았다.
전체를 알지 못한 채 성급히 기운을 돌린 터라 통제되지 않은 기운이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정신이 말짱했다면 기운을 흩어 버릴 수 있었겠지만, 무아에 빠져들어 버린 것이 오히려 진무에게 독이 되었다.
‘윽!’
역이 순보다 빨랐다.
백회에 오른 양의 기운이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갑자기 언덕을 넘어 아래로 곤두박질치자 역과 순의 균형이 단번에 깨어지고.
‘윽!’
진무가 고통스러움에 미간을 깊이 찡그리며 무아에서 깨어났다.
하지만 시간이 별로 없었다.
백회를 넘어선 양기가 자철석에 당겨진 듯이 회음을 향해 보낸 순행의 음기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다급하게 두 개의 기운을 통제하려 했지만, 고삐 풀린 망아지인 양 말을 듣지 않았다.
“제길!”
통제를 따르지 않으니 멈출 수 없다. 부딪히는 것이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면, 충돌의 위력이라도 줄여야만 했다.
진무는 사력을 다해 기운을 흩어 놓기 시작했다.
구 할…… 칠 할…… 삼 할…….
콰아앙!
원하지 않았던 결과.
완전히 흩어 놓는 것에 실패한 두 기운이 몸속에서 충돌했다.
혈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 온몸이 바람 맞은 사시나무처럼 떨려 왔다.
“쿨럭!”
고통스러운 기침과 함께 진무는 검은 핏물을 한가득 토해 내었다.
“헉, 헉, 씨……발……. 엿 될 뻔했네.”
진무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서둘러 다시 좌정했다.
생각지도 못한 내상을 입어 버렸다.
고작 삼 할. 그것만으로도 기혈이 뒤틀린 듯한 고통을 맛보아야만 했다.
만약 제때 깨어나지 못해 그대로 충돌했다면?
“뒈질 뻔했네. 복마동이 무덤이 될 뻔했어.”
진무는 내상을 치료하기 위해 운공을 시작했다.
양기와 음기가 충돌했던 대추혈(大推穴)의 부위에 얼굴이 찡그려질 정도로 진한 고통이 느껴졌다.
아마 부딪힐 때 혈 자리에 이상이 생긴 듯했다.
“후우…….”
열 번도 넘게 소주천을 이루고 나서야 겨우 호흡이 제자리를 찾았다.
한 번에 이각 이상은 소요되니 아마도 두 시진 반은 족히 지났을 시간이었다.
겨우 기혈이 안정되고 본래의 기운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등 어림의 대추혈에 뻐근함이 느껴져 왔다.
그래도 양의심공의 후반부 한 조각을 더 얻게 되니 가슴이 뿌듯했다.
그리고 역시나 남겨 둘 필요는 없었다.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며 내용은 대충이나마 외우고 이해했으니.
화르륵!
진무는 서신과 함께 양의심공의 조각을 태워 버렸다.
이것 또한 진무의 머릿속에만 존재하게 된 것이다.
아직까지 잔잔하게 느껴지는 고통에도 진무가 만족스럽게 몸을 돌리려는데, 무언가 그를 따갑게 쏘아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흑색의 검집에 금박이 둘러진 검.
서신의 끝자락에 그에 관해 뭔가 적혀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읽다 말아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잉.
진무의 손길이 한곳을 스치는 순간 검이 묘한 울음을 토했다.
마치 자신을 거부하겠다는 양.
요 새끼.
호승심이 생긴 진무가 본격적으로 검을 움켜쥐자 놈의 반항이 거세진다.
지이-잉!
마치 당장 놓으라 외치는 것처럼, 검명은 더욱 커지며 공간을 가득히 채워 울렸다.
“흥! 검 따위에 질 줄 아냐?”
진무가 내공을 더해 선기를 주입했으나 요지부동이다. 허락지 않는 것이다.
기물이다.
명장이 만든 검은 모두가 그러하듯 자아(自我)라는 것을 가지는 법이다.
말을 걸어오거나 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주인을 택한다고 했다.
지금의 반항을 보면 녀석이 자신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듯했다.
오기가 생긴 진무는 세차게 뛰어노는 야생의 말을 길들이듯이 미친 듯이 펄떡거리는 검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오냐! 어디 한번 끝까지 해보자 이놈!”
내가 살아온 세월이 팔십 하고도 이 년이다!
스르릉.
검의 손잡이를 잡아당기자 눈부신 검신이 눈을 홀릴 듯이 아름다운 백색 자태를 드러내었다.
검병과 검집이 흑색인 것과는 반대로 새하얗기까지 한 은빛 검날은 당장이라도 피를 머금을 듯이 날카로운 예기를 담고 있었다.
“요사스러운 놈!”
진무가 말 허벅지를 양발로 죄어 숨을 못 쉬게 하듯, 양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잡고 자신의 모든 기운을 쏟아 넣었다.
지이이-잉!
끝까지 반항을 해 오던 녀석이 한계점에 이르렀는지 맹렬하게 울음을 토하다가 멈추었다.
쑤우욱!
그 순간 굳세게 닫혔던 문이 열린 것처럼 검날을 타고 피어오르는 푸른 선기.
그리고…….
파사삭.
검날의 중앙부가 깨어지듯이 떨어져 나가며 감추어졌던 음각의 글귀를 드러내었다.
“……이건?”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
한번 휘둘러 쓸어 버리니 산과 강이 피로 물들다. 누가 각인한 것인지 모르지만 제법 멋들어진다.
순수함과 잔혹함을 동시에 머금고 있는 검의 분위기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글귀였다.
고사에 어떤 유명한 무인이 말하길, 검은 함부로 뽑히지 않아야 하지만, 뽑혔을 때는 그 누구도 대적하지 못하여야 한다고 했다.
“좋은 녀석이네.”
진무는 원래 검공을 익히는 무인이 아니었다.
무당파의 제자가 되었기 때문에 검공을 익히기는 하였으나 원래 그는 권장에 익숙한 무인이었다.
그럼에도 이 검이 주는 느낌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특히나 반항적인 것이.
원래 주인이 누구였는지 모르지만 상관없다.
진무가 먼저 발견했고,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얻지 못했을 검이다.
무인에게 최고의 장식품은 자고로 그럴듯한 검이 아니던가?
검을 어깨에 걸친 진무는 기분 좋게 복마동을 떠났다.
그런데.
슈슈슛! 땅! 파파팍!
“……!”
이런 젠장!
돌아갈 때도 작동하는 거였냐?
아니, 시험하기 위해 만든 거면 나갈 때는 작동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환영진은 파훼된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발동하지 않았지만, 비수가 난무하던 일 관은 지난 패배를 설욕하겠다는 듯 한층 더 무시무시하게 작동했다.
* * *
오경(五更: 새벽 3시) 초엽.
복마동 앞은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진무가 들어간 지 이레를 훌쩍 넘긴 시점이었다.
나흘 전 공동에 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당세령이 부른 인물들이다.
진무가 들어간 날,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사태에 대비해 그녀는 곧바로 전서구를 보내 당가에 도움을 청했다.
그 결과 당가의 주력인 독혈각주이자 당세령의 오라비인 당태진이 직접 기관 전문가들과 함께 온 것이다.
당장이라도 복마동의 기관을 해제해야 한다 주장했지만, 장문인과 장로들이 강한 반대에 부딪혀 있었는데.
진무가 나와야 할 시일이 자꾸 흘러가자 정심도 더이상 버티지 못했다.
결국 날이 밝는 대로 진무를 구출하기로 결정되었고, 공동의 수뇌부와 당가의 기관 전문가들에 의해 계획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매일을 찾아와 기다리던 당세령과 공동의 수뇌들이 광성전으로 돌아간 뒤였다.
잠시간 긴장이 풀어진 터라 이대제자들과 함께 복마동 앞을 지키던 종오는 몰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누가 그랬던가?
세상의 어떤 힘센 사람도 이기지 못하는 것이 눈꺼풀이라고.
종오뿐 아니라 복마동 앞을 지키던 이대제자들도 매한가지였다.
버티다 버티다 모두의 고개가 바닥을 향해 꺾인 참이었다.
끼이익.
얼마쯤 지났을까?
코 고는 소리가 미세하게 울려 퍼질 무렵, 복마동의 철문이 조금씩 열렸다.
“푸하, 지긋지긋하다, 이놈의 기관.”
진무, 복마동으로 들어갔던 그가 다시 한번 미친 듯이 작동하는 기관을 뚫고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병든 닭처럼 꾸벅거리며 졸고 있는 공동의 제자들이 아닌가?
딱 봐도 진무가 나오기를 기다린 것이 분명한데.
자냐? 자?
진무가 눈살을 찌푸리며 주먹을 쥐었다가 이내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래, 놔두자. 니들도 얼마나 피곤하겠냐.
도 닦으랴, 광산 일 하랴.
더욱이 윗전의 명령에 복마동 앞을 지켰으니 무공을 수십 년 닦았다고 해도 피곤할 법했다.
양의심공의 세 번째 조각도 얻고, 모처럼 좋은 검까지 하나 얻은 진무는 이해심이 무척이나 넓어져 있는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