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그럼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하고, 이만 회의를 마칩시다.”
오랜 회의 끝에 진무 구출 계획이 완성되자, 정심이 자리를 파했다.
그는 지쳐 있었다.
처음 진무가 복마동에 들어갈 때만 해도 끝내 그의 결정을 존중했고, 그저 시험일 뿐이라며 애써 의연할 수 있었다.
오로지 그 생각으로 사흘이 지나고, 나흘째 되는 날 당가의 인물들이 도착했을 때도 완강히 버텼다.
하지만 엿새째, 불안감이 점점 더 커져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고.
여드렛날에 이르러서는, 결국 기관 해제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허락한 것인가?
그의 무공을 너무 믿은 탓인가?
아직 앞길 창창한 어린 제자이거늘. 무당을 다시 반석에 세울 잠룡이거늘.
하물며 공동의 제자를 구한 은인에게 자신이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근자의 정심은 웃음을 완전히 잃었다. 그 짧은 사이에 십 년은 더 늙어 버린 듯한 모습이었다.
“장문인께서도 눈을 좀 붙이시지요. 많이 피로해 보이십니다.”
당태진이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정심을 측은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나는 괜찮소.”
정심이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
그 거절이 도리어 안타까움을 더했지만, 당태진은 더 권하지 않았다.
며칠 되지 않았으나 내내 노심초사했던 그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하면 저희는 이만 돌아가 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오.”
인사를 나눈 당태진이 당가의 기관 전문가들과 함께 물러나고, 당세령이 힘 빠진 얼굴로 그 뒤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그들이 막 문을 열려는데.
끼이익.
“……?”
문이 열린다.
저절로? 손도 안 댔는데?
광성전 안에 있던 공동의 장문인, 장로들, 당가인들의 시선이 단번에 집중되었다.
“어?”
들어온 인물, 진무 또한 놀란 표정이었다.
“다들 모여 계시…… 어라? 독혈각주께선 웬일로?”
당위의 둘째 아들인 당태진과 안면이 있었던 진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의아해했다.
“너? 이, 이, 이…….”
당세령이 눈을 화등잔만 하게 뜨고 말을 더듬으며 한 발짝씩 힘겹게 다가온다.
어린것이 손까지 떨어 대고, 설마 그새 풍이라도 맞은 건가? 왜 저러지?
당최 영문을 알지 못하는 진무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는데.
“진무 도자앙!”
운암이 당세령을 제치며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를 단숨에 날아와…….
꽈악!
“…….”
도대체가 이해를 못 하겠네. 아니 왜 끌어안는 거냐고, 왜.
이 자식도 설마?
도사들이 남자들을 끌어안는 것을 유달리(?) 좋아한다는 것을 무당에서부터 경험해 온 진무가 얼굴을 찡그렸다.
“으흐흐흑. 진무 도장.”
“…….”
“내가, 막, 어? 흑흑, 도장 죽은 줄, 으흑흑.”
운암이 눈물까지 흘리며 옹알이를 한다.
뭐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자식이 제대로 말도 못 잇고 눈물에 콧물까지 흘려 가며 날 끌어안고 있을 만한 상황이 뭐가 있지?
설마 걱정이라도 한 건가?
그런 거냐, 부하 삼 호 녀석아?
그렇다면 기특하기는 하다만, 더럽게 얻다 대고…….
아씨, 내가 이럴 줄 알았어. 하필 옷이 찢어져서 드러난 살갗에 운암의 콧물이 묻어 버렸다.
“진무 도장.”
이 촌극을 한쪽에서 지켜보던 장문인 정심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네. 무사해서.”
그럼 죽을 줄 알았냐?
“살았구나. 살았어……. 다행이다.”
당세령까지 어울리지 않게 굵은 눈물방울을 하염없이 흘리는 모습 뒤로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뱉는다.
근데 누가 상황 설명부터 좀 해 주면 안 될까?
니들 왜 죄다 여기 모여 있는 거냐? 당태진까지?
* * *
“아, 그렇게 된 거구나.”
넝마가 된 옷을 갈아입고 온 진무는 모두가 모인 가운데 앉아 운암의 설명에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 큰 어른들이 뭘 그딴 걸 걱정하고 있단 말인가?
그리고 죽은 줄 알았다니?
이런 아둔한 것들 같으니.
물론 내부에서 기운이 충돌했을 때는 죽을 뻔하기도 했으나, 이 몸이 누구던가?
불로초를 먹고 새로운 삶을 얻은 역사에 없는 인물이자, 장차 정사마의 정점에 설 인물이다.
어쨌든 다들 안도의 숨을 내쉬며 웃는 모습을 보니 진정된 듯하다.
“그래, 찾고자 하는 물건은 얻었는가?”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는 정심의 물음에 진무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굳이 태워 버린 걸 얻었다 알려줄 필요는 없다.
원래 풍진강호에서 살아가자면 삼 푼은 감춰야 하는 법이다.
“없더군요. 너무 오래된 물건에 기대를 걸었던 모양입니다.”
“그랬는가? 아쉽게 되었군.”
“하지만 이런 게 있더군요.”
진무가 복마동에서 가져온 검을 정심의 앞에 꺼내 내밀었다.
“이건?”
정심은 물론 그 자리에 모여 있던 모두가 흑색 검에 집중했다.
스릉.
검을 받아든 정심이 검을 빼내 살피다가 글귀를 읽는 순간 눈을 크게 떴다.
“이, 이것은!”
뭐지, 이 반응은?
“이것이 그곳에 있었단 말인가?”
“……예, 뭐.”
“허! 무언가를 남겨 놓으셨다 하더니 이것이었단 말인가?”
놀란 표정을 짓는 것은 정심뿐만이 아니었다.
공동의 장로들마저 죄다 검날을 보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시는 물건입니까?”
“허허, 허허허. 이 검이 말일세, 허허.”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이 자식아.
정심이 사람 궁금하게 자꾸 웃기만 하고 답을 주지 않았다. 내 이 자식 질질 끄는 건 진작 알았지만.
한참이나 웃던 정심이 검을 집어넣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모습이 너무도 공손해 진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엄청 대단한 물건이었나?
하긴 보통 물건은 아닌 듯싶었다. 설마 공동의 신물, 뭐 이런 건가?
제길, 그런 줄 알았으면 감춰 놨다가 나중에 찾아가는 건데.
이렇게까지 반응이 격하니 괜히 꺼내 보였다 싶었다.
“이것은 일휘(一揮)라는 검일세.”
“일휘…….”
검날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
“이것은 본문의 사 대 전 장문인이셨던 무령자, 그분의 신물이었네.”
그나마 다행이네. 문파의 신물까지는 아니어서.
“이 검이 어디로 갔는가 했더니 복마동을 만드시고 그 안에 넣어 두셨던 모양이구먼.”
“…….”
“혹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뭘요?”
“삼척서천산하동색, 일휘소탕혈염산하.”
없다. 뒤의 구절은 칼날에 새겨져 있어서 봤지만.
그런데 앞의 구절은?
“백 년 전 가장 뛰어났다는 두 사람의 무인에 대한 이야기일세.”
백 년 전 가장 뛰어났다고?
이상하다. 운공 노인의 말로는 청무 조사님이 천하제일인이었다고 했는데?
그런 대단한 분의 이름에 비견되는 놈들이 둘이나 있다고?
더구나 대충 분위기를 봐서는 그중에 한 명이 공동의 장문인이었던 무령자라고 하는 듯했다.
이 자식들 설마 지들 조사라고 실력을 뻥튀기하는 건가?
얻다 대고 청무 조사님의 위명에 얻어 탄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진무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아, 그러고 보니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갑자기 퍼뜩 생각난 듯이 운암이 끼어들었다.
어쭈, 이 자식은 또 뭐야. 어린놈이 뭘 안다고.
무당지검의 아류인 곤륜의 수호자 따위가 같은 오대도문이라고 편을 드는 건가?
“스승님께서 도문의 역사에 대해 말씀하시길, 정파 도문이 가장 강성했던 시기가 백 년 전이라 했었습니다.”
풍환이 말했다고?
또 그렇게 말하니 솔깃하다.
절로 귀가 기울여진다.
“백 년 전 정파를 이끌었던 분이 바로 무령자 그 어르신이라지요?”
아니, 그러니까 청무 조사님 얘기 아니었냐고, 그거.
운공 노인이 분명히 청무 조사님이 최강이라고 했다니까?
“맞네. 정파가 가장 강성했던 시기였지. 무령자께서 천하를 호령하실 때만 해도 마교는 함부로 청해를 넘어오지 못하였다 했었네.”
“…….”
듣자 듣자 하니 이놈의 도문, 하여간 부풀려진 거짓이 너무 많다.
물론 정파가 강성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무림의 역사에 대해서 무관심한 진무라고 해도 아주 모르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진무가 본격적으로 무림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서른 초반,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오십 년 전쯤.
당시의 정파는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서 마교는 물론 사파에도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다.
사실 그 때문에 사패천이 천중산에 자리 잡기 수월하기도 했고.
정무맹이 마교를 견제하느라 사패천에 오롯이 힘을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 년 전에 그만한 인물이 있었다면 어찌하여 후학을 길러 미래를 도모하지 않았단 말인가?
풍환만 해도 운암이라는 걸출한 제자를 두었지 않았는가?
“당시의 무령 조사께선 어떤 이유에서인지 복마동을 만든 뒤 장문인 직을 후대에 넘기시고 공동을 떠나셨네. 일휘검은 그때 사라졌다고 알고 있었는데.”
응? 백 년 전에 떠났어?
아, 그러고 보니 공동에서는 일선에서 물러나면 속세로 내려간다고 했던가?
이럴 줄 알았으면 복마동에 있던 서신을 끝까지 읽어 보는 건데.
어쨌든 대충 이해는 되었지만, 여전히 가시지 않는 고까움에 진무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한데 뒤의 구절이 무령 조사님에 대한 것이라면 앞의 구절은 어떤 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나도 모르네. 그저 당시의 무령 조사님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고 하네.”
“예?”
“우거진 푸른 숲의 주인에 비하면 자신은 그저 보름달 앞의 반딧불 같은 존재일 뿐이라고.”
우거진 푸른 숲? 어디선가 들은 말인데…….
아, 청성!
분명 청성에서 무혈에 대한 파자로 우거진 숲에 대해서 말했다.
우거진 푸른 숲의 주인, 푸를 청(靑)에 우거질 무(橆).
감이 온다.
청무. 확실하다.
본래는 청무(靑武)였으나 노인네들이 다른 글자로 비유한 것이 틀림없다.
여하튼 보름달 앞의 반딧불이라.
역시 청무 조사님이 최강이었어!
흠흠, 어쨌든 뭐 그런 이야기가 있다 치자. 그런데 어째서 검을 보는 정심과 공동 장문인 놈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단 말인가?
그런 눈빛은 진무에게는 매우 익숙했다.
탐욕.
일휘라 불리는 조사의 애병을 가지고 싶은 것이 틀림없다.
거짓이라고 해도 그것은 선대의 유품이며, 공동파 역사의 산물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망할 놈들.
죽을 고비를 다해 가져온 사람이 누군데 감히 침을 흘리다니.
공동에서 자신의 조사(祖師)에 대한 기록을 거짓으로 도배를 했건 말건 어쨌든 좋은 검이라지 않는가?
더욱이 구야자와 절친했던 진무다. 검을 즐겨 다루지는 않았지만, 좋고 나쁨은 구별할 줄 안다.
일휘검은 최소한으로 봐 줘도 명검은 넘는 기물이었다.
자, 이제 어찌해야 할까.
절대로 못 준다면서 우길까? 확 힘으로 빼앗아 버려?
하아, 아니다. 아무리 공동의 은인인! 내가 죽을 고생을 해서! 가져왔다지만 여기서 추잡하게 보일 수는 없지.
일단 돌려주자. 조금 아깝기야 하지만 공동에서는 나중에 받을 것도 많고.
삼 광구라든지, 사 광구라든지.
그게 돈이 얼만데.
일단 좋은 인식을 심어 주는 것이 좋다.
“공동의 물건이니 돌려드리겠습니다.”
“…….”
진무가 짙은 아쉬움을 삼키고 나지막하게 말하자 정심이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다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으핫핫핫! 자네, 핫핫핫!”
“…….”
씨발, 놀라라. 이 새낀 왜 또 새삼 처웃고 지랄이야.
남은 지금 아까워 죽겠구만.
“진무 도장, 자넨 정말 대단한 사람일세.”
“…….”
“무릇 아무리 선도에 몸담은 도인이라 하나 본질은 무인인 것인데, 이만한 보검을 보고도 초연하니 내 잠시 선대의 애병을 탐낸 것이 부끄러워지려 하는구먼.”
“……예?”
“일휘는 공동의 것이었으나 이미 오래전 사라진 물건일세. 예부터 기물은 주인이 따로 있다 하지 않던가? 자네가 복마동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우리가 다시 볼 수도 없었을 게야.”
“…….”
“이 모두가 인연인 게지. 자네가 공동의 제자를 구한 것도, 복마동에 들어간 것도, 그곳에서 일휘를 발견한 것도.”
너 이 자식, 지금 그 말은?
진무의 가슴속에 한 줄기 희망이 피어오른다.
“자네가 가지게. 이제 그 검은 자네의 것이라네.”
“…….”
정심의 제안은 무척이나 파격적이다. 원래 무림인이라는 놈들은 그렇다. 제 놈들 잘못으로 잃어버렸다고 해도 남이 가지고 있으면 목숨을 걸고 빼앗으려 하는 법이 아니던가?
그런데 조금 탐욕스러워하긴 했어도 주겠단다.
역시 부자라 그런가?
마음 씀씀이가 참 여유로운 놈이었다.
“장문인.”
진무가 감격스러워하며 검을 쥐자.
“어허, 이런 무욕한 사람 같으니. 내 이제 마음을 정했으니 거절하지 말게.”
“…….”
응, 아니야. 거절 아니야.
니가 다른 말이라도 할까 봐서 서둘러 챙기려고 잡은 거야.
나는 분명히 돌려주려고 했다.
일휘는 이제 내 거야.
한 입으로 절대로 두말하지 마라.
나이 먹을 대로 먹어서 꼬추 떨어진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