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91
191화
대기가 뒤틀리며 괴성을 질러 대는 와중에도 진무의 기세는 점점 더 넓은 지역을 잠식하며 퍼져 나갔다.
“크으…….”
다가오던 군병들이 사위를 짓눌러 오는 강대한 존재감에 얼굴을 고통스럽게 일그러뜨리며 주저앉기 시작했다.
강기의 고수가 주는 위압감은 군문의 장수들조차 함부로 받아 내기 힘들진대, 군졸 따위가 어찌 버틴단 말인가?
저벅, 저벅. 지이익.
진무는 운암을 밀쳐 내고 황각수의 멱살을 쥔 그대로 관병들의 틈새를 걸었다.
황각수의 몸이 땅바닥에 끌리며 만들어 낸 긴 흔적이 더욱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진무 도장?”
의아한 운암이었지만, 진무의 표정이 너무도 분노에 차 있었기에 제지할 수가 없었다.
진무와 눈이 마주친 태양명은 마치 뱀의 눈을 마주한 개구리처럼 몸이 마비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고작 서안부 수장 정도인 그가 진무 정도의 고수가 뿜어내는 기세를 마주해 본 적이 있을 리 없었다.
애초에 무림인들 쪽에서 먼저 관부와의 마찰을 꺼렸기에 어지간하면 군말 없이 양보를 했었으니까.
분명히 방금 나타난 놈이 ‘도장’이라 불렀는데?
어찌 사파의 인물처럼 아랑곳하지 않고 관에 대항하려 한단 말인가?
“이, 이놈이…….”
잔뜩 위축된 태양명이 억눌린 소리로 중얼거리는데 진무가 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야.”
주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귓가에 속삭이는 작은 목소리.
그런데 야? 야라니?
일개 무림인 따위가, 대가리에 들어찬 것도 없어 보이는 어린놈이 정사품 관리이자 나이도 한참이나 윗줄인 자신에게.
하지만 귓가에 속삭이는 진무의 목소리는 사신의 그것처럼 그의 전신에 빈틈없이 소름을 돋게 했다.
“더는 지껄이지 마라. 입꼬리가 귀에 걸리고 싶지 않으면.”
“…….”
노골적인 위협.
이놈이 지금 설마 날 웃게 해 주려고 이럴 리는 없고, 그렇다면 문자 그대로 입꼬리가 귀에 걸리도록 찢어 놓겠다는 말이 아닌가?
태양명은 왕방울처럼 커진 눈으로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내 일이 끝나고 난 뒤에 이 사기꾼 새끼를 데리고 찾아갈 테니까.”
“네놈은 지금 국법을…….”
“국법? 뇌물이나 처받는 탐관오리 새끼가? 그리고 분명히 말했지. 아가리를 찢어 놓는다고.”
그저 목소리일 뿐인데 모가지가 날아가는 듯한 느낌은 뭐란 말인가?
그리고 뇌물?
이놈이 어찌 알았지?
설마 황각수가 뭔가 말한 것인가?
“그래도 괜찮으면 한번 해 봐. 일단 네놈부터 찢어 놓고, 여기 있는 관병 나부랭이들도 죄다 죽여 버릴 테니까.”
“그럼 당장에 수배가…….”
“수배? 내가 신경이나 쓸 것 같아? 난 다 죽이고 숨어 버리면 그만이야.”
“…….”
속삭임에 깃들어 있는 압박감에 태양명은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어때? 나랑 제대로 해볼 거야?”
차디찬 목소리와 함께 주저앉은 군졸들이 숨이 막힌 듯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헐떡거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손에 무기라도 쥔 군병이 저러할진대 아무것도 없는 자신이 무슨 수로 진무의 말을 거역한단 말인가?
아가리를 있는 대로 벌린 채 노려보는 모양새가 범이 따로 없다.
“그, 그대의 뜻에…… 따르겠네.”
결국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화가 난 눈 앞의 악당 놈은 너무 무서웠고, 왠지 그 이상의 선을 넘어 버린다면 정말로 흉사가 일어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허억, 허억…….”
태양명의 허락이 떨어지자 진무의 기세가 씻은 듯이 사라졌고, 주저앉았던 군졸들이 억눌린 숨을 토해 내었다.
그 순간 언제 화를 냈냐는 듯이 물러난 진무가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지부 대인의 배려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하면 병력을 물려 주시겠습니까?”
“…….”
어찌 이리 예의 바른가?
사람이 한순간에 분위기를 바꾸기란 어려운 것인데.
이리 말하면 체면상…….
‘허억!’
바뀌지 않았다.
그는 머리는 여전히 범의 아가리에 들어가 있었다.
태양명은 자신을 올려다보는 진무의 눈동자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흉포함에 심장이 옥죄이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무슨 놈의 눈빛이.
“……모, 모두 물러나거라.”
태양명이 꿀꺽 소리가 천둥처럼 귀를 울리도록 침을 삼키며 군졸들에게 길을 트게 했다.
“감사합니다. 하면…….”
진무가 인사를 하고 난 다음 황각수를 끌고 걷자 운암이 급히 따라붙는다.
“진무 도장. 도대체 이게 무슨?”
“아, 별일 아냐. 사기꾼 새끼 하나 잡느라고.”
손에 들린 황각수를 내보이는 진무의 모습에 운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사이 진무는 슬쩍 진회루 근처를 바라보았다.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유장과 상단 호위로 위장하고 있는 천웅방의 무인들이 구경꾼들의 틈바구니에 위치를 잡고 언제든지 나설 준비를 하고 숨어 있었다.
관군을 제압하고 진무를 보호하기 용이한 위치.
진무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경우 빠른 대처를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나서지 않았다.
적절한 판단이다.
그들이 움직였다면 문제는 조금 더 심각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또한, 자신을 믿고 있는 운암의 마음 한구석에 또다시 의심이 생겼을지 모를 일.
아직은 조금 더 신뢰를 쌓고 충성도를 끌어 올릴 필요가 있다.
“유장!”
“예!”
진무의 부름에 유장이 겁을 집어먹은 듯한 표정으로 뛰어왔다. 박수라도 쳐 주고 싶을 만큼 뛰어난 연기력이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관군들이 나서는 바람에 돕지 못해서…….”
운암을 의식한 듯 거짓말을 쏟아 내는 유장의 모습에 진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적생에게 단단히 교육을 받은 모양이다.
절대로 신분을 노출해서는 안 된다고.
“식사는 나중에 해야겠다. 일단 동림전장 본점으로 가자.”
“예.”
지시를 내린 진무는 뒤따르려는 운암을 슬쩍 쳐다봤다.
“운암, 넌 지부 대인을 좀 따라가라.”
“지부 대인을요?”
“그래. 나중에 오해를 풀어 드리기로 했으니까. 믿을 구석 하나는 만들어 줘야지.”
“음. 알겠습니다. 그리하죠.”
관과의 마찰이 일어났다.
이대로 벗어나면 오해를 풀 여지조차 잃게 될 것이다. 볼모로 가 있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었지만, 어쨌든 옳은 판단이라 생각한 운암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설명을 해 주지 않아도 상관없다. 진무가 틀린 적은 보지 못했으니까.
“그럼, 전장의 일이 끝나고 보자.”
“예.”
관리들에게 운암을 던져 준 것은 더 이상 귀찮게 하지 못하게 함이었다.
진무가 그만한 위압감을 보여 주었으니 그들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경계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은밀하게 사람을 보내 진무를 감시하려 들지 모른다.
괜한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운암을 보냄으로써 그들의 감시를 끊고자 한 것이다.
“가자!”
운암을 딸려 보낸 진무는 유장과 함께 곧장 동림전장의 본점으로 향했다.
황각수를 질질 끌고, 바닥에 기다란 흔적을 남기면서.
* * *
진무가 안으로 들어서자 전장 직원들이 무슨 괴물 보듯이 하며 덜덜 떤다.
하긴 호위 무인 서른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피떡이 된 황각수를 질질 끌고 들어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천주님, 주변에 무인들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한데 개방의 거지들이 몇 보인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어찌할까요?”
동림전장 앞, 유장이 주변에 은밀하게 무인들을 배치한 뒤 주변을 돌아보고 와서 속삭였다.
개방 거지?
그들이 어째서 동림전장을 살피고 있는 거지?
조금 의아했지만, 지금은 그따위 걸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수고했다. 거지들은 접근하지 못하게만 하고 일단 그대로 둬라.”
“예.”
“전장 내에 무림인이 아닌 직원들이 있으면 모두 집으로 돌려보내라. 쓸데없는 피해가 발생하면 안 되니까.”
그 말에 유장이 빙긋이 웃었다.
그 역시 언질을 받은 바 있었다.
원공후가 아니라 천우명에게.
천주께서 민가에 피해를 입히는 것은 극도로 싫어하신다고.
특히나 여인과 아이를 건드린 수하는 그 자리에서 목을 베어 버렸다고도 했다.
오래전, 천우명이 여비를 마련한다며 사람들에게 생짜를 부려 돈을 빼앗다가 정말 죽도록 맞았다던가?
아무리 사파라 해도 힘없는 사람을 괴롭힌다면 무림인이 아니라 뒷골목 무뢰배와 다름이 없다고.
수십 년이 지난 일이라 말하는 것이 무색하게 천우명이 제 팔에 돋은 소름을 보여 주었다.
근데 수십 년이라니?
천주님이 이렇게 젊은데.
하지만 천우명이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었다.
그래서 유장은 진무를 처음 봤을 때 반로환동(返老還童)을 한 괴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천주의 앞에서는 절대로 일반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서 안 된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참 희한한 인간이다, 천주라는 사람은.
사파의 사람이, 그것도 새로운 사패천의 주인이 되려는 자가 민가의 피해를 신경 쓰다니.
“알겠습니다.”
빙긋이 웃은 유장은 밖을 지키고 있는 무인들 몇을 불러서 지시를 내렸다.
그사이 진무는 황각수를 벽면에 기대어 놓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았다.
짝!
“으음…….”
진무가 선기를 담아 따귀를 때리자 황각수가 진한 신음과 함께 깨어났다.
“크으…….”
정신을 차리자마자 고통이 느껴지는지 얼굴을 찡그린다.
“야!”
“……헉! 괴물!”
“……은 아니고, 아까 약속했던 거 있지?”
“…….”
황각수는 진무의 싸늘한 눈빛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있냐? 내 돈. 수고료 포함 황금 열두 관.”
“그, 그것이…….”
“뭐? 왜?”
“전장에 그만한 돈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 황각수의 말에 진무의 눈가가 파르르 떨린다.
이 사기꾼 새끼가 겁대가리를 다른 전장에 맡겨 두고 아직 찾지를 않은 건가?
아직도 거짓말을 하려 한다.
전장이다.
그것도 중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동림전장의 본점.
그런데 그만한 돈이 없다고?
진무가 차갑게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펼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래 일단 좀 더 맞자.
니가 좋아하는 복리 아주 알차게 채워서 때렸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착해서 동정심을 가졌던 모양이다.
하지만 손이 오르자 황각수가 사색이 되어 외쳤다.
“저, 정말입니다. 지금 본점에 그만한 돈이 없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이미 돈 대부분이 빠져나가고 없습니다.”
“…….”
빠져나가?
돈에 발 달렸냐 이 새끼야?
아, 도사가 된 이후로 사람 죽이는 건 웬만하면 금하리라 다짐을 했는데…….
함부로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무당 십계를 니가 어기게 하는구나.
“사실입니다. 괴…… 아니 대협! 정말입니다. 동림전장의 본점뿐 아니라 모든 지부가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그걸 믿으라고 하는 소리냐고, 내 말은.
대관절 돈이 어디로 빠져나간단 말이냐?
지금 너와 내가 함께 있는 이곳이 본점인데.
지부에서 빠져나와도 본점으로 모여야 하는 게 정상인데.
“확인해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동림전장의 주인이 바뀐 뒤로 모든 돈은 하남성 낙양으로 보내지고 있습니다.”
“…….”
이것 봐라?
거짓말이 제법 구체적이다.
“이 자식이…….”
진무가 믿지 않자 황각수가 외침에 점점 더 사력을 다한다.
“확인해 보시면 되지 않습니까? 장부! 장부가 있습니다.”
“…….”
그래, 그렇다면 믿을 수 있겠지.
원래 뒤 구린 놈들은 서로를 잘 믿지 못하기 때문에 치부책(置簿冊)으로 장부를 남긴다.
열과 성을 다해서 거짓말을 하는 듯하니.
“……좋아. 딱 한 번만 더 믿어 주지. 이번에도 거짓말이면 숨 쉬는 게 오늘로 마지막이 될 거야.”
살기 어린 진무의 눈빛에 황각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장!”
“예.”
“가서 모조리 긁어 와.”
“예!”
유장이 치부책과 다른 거래 장부를 가지러 간 사이에 진무가 황각수를 살폈다.
눈알을 좌우로 열심히 굴려 대고 있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자신이 비밀스러운 무언가를 발설한 것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말인가?
동림전장의 주인이 바뀌고, 그 돈이 모두 사라졌다는 게?
그리고 사라진 돈에 진무의 재산이 포함되어 있다는 게?
어떤 놈들이…… 감히 없이 사는 무당 도사의 돈을.
새로운 사패천을 위한 발전 자금이 될 돈을.
아, 생각하니까 또 더럽게 열 받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