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다가가각.
진무의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들썩이던 나무 탁자가 바닥과 부딪혀 괴기스러운 소리를 만들어 내었다.
그 모습에 갑무반의 무인들이 숨소리를 죽이고 놀란 눈으로 진무를 바라봤다.
이미 그에 대한 소문으로 중원 전체가 진동하고 있었다.
물론 소문이라는 것이 으레 그렇듯 과장되거나 왜곡된 내용도 없지는 않았으나, 오히려 그런 만큼 진무라는 인물에 대한 막연한 기대치 또한 한껏 높아진 상태였던 것이다.
하지만 직접 마주한 진무는 그들의 상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갑무반의 누구보다 앳된 외모는 물론이거니와, 제 사질들과 시시덕거리는 모습은 한없이 가볍게 느껴지기까지 하지 않는가?
어디로 보나 소문이 의아할 정도로 평범한 그 나이 또래의 모습.
되레 청상이나 청우가 윗 배분이라는 이유 하나로 지나치게 깍듯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처음에는 마냥 선망과 동경의 눈빛으로 지켜보던 갑무반 무인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일부는 역시 소문이 다 그렇다며 고개를 내젓던 참이었는데.
쿠우우우.
진무가 본신의 기운을 드러내자 그들은 그간 들어 왔던 소문이 오히려 축소되었음을 깨달았다.
아지랑이처럼 대기를 일그러뜨리며 진회루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투기와 위압감.
갑무반의 무인들 모두 제각기 내력을 끌어 올려 대항했음에도 무릎이 꿇려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얼마나 거셌던지 온몸이 진하게 떨려 올 정도였다.
특히나 바로 면전에서 마주하고 있는 남궁창위는 숨조차 못 쉬고 있었다.
진무의 압박감에 짓눌려 버린 그의 눈은 찢어질 듯이 부릅떠져 있었고, 관자놀이에는 지렁이 같은 힘줄마저 돋아나 있었다.
꽈악.
진무가 남궁창위의 상투관을 움켜쥐고 자신의 얼굴 가까이로 당긴다.
“야. 니가 날 잘 모르나 본데. 계속 그따위로 꼬나보면 정말 죽는 수가 있어.”
“……으으으.”
흉포한 기세를 머금은 진무의 눈빛을 마주한 남궁창위는 억눌린 신음을 내며 이빨을 다다닥 소리가 나도록 떨었다.
자신의 아비에게도 느껴 보지 못했던 공포가 심장을 옥죄고 있었다.
“진무 도장.”
남궁창위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말리려 했던 운암도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자 진무를 막는다.
“남궁 공자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는 하지만, 이만 기운을 거두십시오.”
“…….”
운암의 만류에 고개를 돌리니 갑무반의 무인들이 바닥에 무릎을 반쯤 꿇고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사력을 다해 진무의 기운에 대항하고 있었다.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은 운암뿐.
젠장, 너무 과했다.
화아악!
진무가 기운을 풀어 버리자.
“허억, 허억, 허억…….”
모두가 억눌려 있던 숨을 토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직접적으로 기운을 받아 버린 남궁창위는 아예 양손을 바닥에 대고 네발짐승처럼 헐떡거렸다.
“…….”
가만히 내려다보던 진무가 남궁창위의 옆에 쪼그리고 앉아 속삭였다.
“너, 나 다음에 볼 때 눈 제대로 안 깔면 진짜 뒈진다.”
“…….”
실눈을 휘어 웃으며 말하는 그 모습에 남궁창위는 하마터면 숨이 완전히 멎을 뻔했다.
그래, 딱 이 정도면 족하다.
이런 어린것은 굳이 팰 필요도 없다.
사람이 격이라는 것이 있지.
너 정말 운암이랑 당세령에게 감사해야 한다.
운암이 시기적절하게 막지 않았다면, 당세령의 싸가지에 익숙해져 있지 않았다면 일단 눈깔 뽑아 놓고 시작했어. 그냥 하는 말 아니야.
남궁창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들겨 주고 일어난 진무가 청상과 청우를 향해 말했다.
“니들, 내 말 잊지 마라. 다음에 봤을 때도 저깟 놈 밑에 있으면 여기가 이승인지 지옥인지 아주 헷갈리게 해 줄 테니까.”
“예! 사숙!”
웃으면서 조곤조곤 위협을 하는 진무의 모습에 청상과 청우가 부동자세로 빳빳하게 몸을 세워 대답했다.
[청상.]“…….”
[모았으니 이제는 버리는 것에 익숙해져라. 집착을 하는 순간 정체될 것이다.]“……!”
전음을 듣고 있던 청상의 눈이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또 하나의 가르침.
언제나 진무의 한마디는 그의 가슴에 커다란 파문을 만든다.
현기로 올라설 때 그랬고, 탄기로 올라설 때 그러했다.
이번이 세 번째.
진무는 청상이 의기로 오르는 단초를 알려 주려 하는 것이다.
청상은 청각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형을 버리는 대신 뜻을 담고, 기교를 줄이는 대신 무거움을 담아라. 움직임이 가진 뜻을 이해하여 버리고 나누다 보면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억지로 따라오게 하지 말고 기(氣)가 스스로 이끌리도록 해. 그러면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진무가 청상을 향해 미소 지었다.
아, 사숙…….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또 얼마나 은혜로운 일이란 말인가?
각고의 노력을 통해 피를 토하고 살을 깎으며 얻은 깨달음일진대, 어찌 이리도 쉽게 전한단 말인가?
무당에서 진무의 가르침을 받은 것은 청상과 청우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들에게 사승의 관계 따위는 맺지 않을 것이라 했다.
그때만 해도 진무는 다른 사숙들과 똑같다고 생각했었다.
그저 남들과 달리 파격적인 행동을 일삼는 진무의 옆에 붙어서 콩고물이라도 받아먹어 보려 청우를 따라 해검지로 갔던 청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진무의 도움으로, 가르침으로 인해 계속해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그의 도움으로 둔하기 짝이 없어 따돌림이나 당하던 원화관의 제자 청우와 비루한 출신 때문에 정동궁의 제자로 살았어야 할 자신이 무당의 검이라는 오룡궁의 제자가 되고.
이제는 용봉관에서 가장 뛰어난 이들만 뽑히는 갑무반에 들게 되었으며.
검성 철지량에게 가르침을 받는 위치까지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사숙의 가르침,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습막이 가득히 차오른 청상은 자신도 모르게 진무를 향해 천천히, 그리고 공손하게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둘 사이에 무언가 전음이 있는 것이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걸 감안해도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을 모두가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
이 새끼가 갑자기 왜 이래? 낯간지럽게.
청상의 행동에 진무가 얼굴을 찡그렸다.
익숙지 않다, 이딴 상황은.
그가 누군가를 가르쳐 본 것은 자신의 제자인 유월청과 천우명뿐이었다.
그리고 가르침이라는 것은 자고로 몸으로 부딪치게 해 가면서, 그러고도 못 알아먹으면 줘 패도 가면서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것이다.
그게 진무가 생각하는 진정한 사승 관계였다.
진무 역시 괴팍한 어느 노인네에게 채기법과 묵룡혼원공을 그렇게 배워 익혔다.
그 외에는 그저 필요할 때 한마디씩 해 준 것뿐이다.
이해력이 매우 떨어지는 청우에게는 어쩔 수 없었지만, 청상에게는 적어도 그러했다.
근데 왜 이 자식이 눈물까지 흘리면서 절을 올린단 말인가?
보는 사람도 많은데 쪽팔리게시리.
진무가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동안 청상은 남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은 채로 구배를 올렸다.
그가 원하지 않더라도 청상은 그래야 한다 생각했다.
나이가 어리면 어떠한가?
좀 괴팍하면 어떠한가?
때로는 괴팍하고, 때로는 악당 같고, 때로는 도사답지 않게 잔인한 진무였으나 청상에게는 언제나 따스함이었고, 스승이었으며, 아비나 다름없게 느껴졌다.
청상이 구배를 끝냈을 때.
떠나려던 진무가 무언가 생각난 듯이 한마디를 더 남겼다.
[아, 청상.] [말씀하십시오.] [보니까 청우가 실력이 많이 떨어지던데.] […….] [청우도 탄기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니?] [……?] [청우는 너한테 맡길게. 알지? 다음에 만났을 때 발전이 없으면…….] […….]진무의 말에 청상이 자신도 모르게 청우를 향해 고개를 홱 돌렸다.
아, 아니 잠깐만요, 사숙.
청운데요?
청우라니까요, 사숙?
청상이 언제 눈물을 흘렸냐는 듯이 진무를 망연히 쳐다봤다.
웃고 있다.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소리 없이 말하고 있다.
청상은 그 입 모양을 정확하게 읽어 낼 수 있었다. 아니, 이쯤 되면 목소리로 들리는 것과 진배없었다.
뒈……진……다.
“…….”
망했다.
아, 사숙……. 어찌 제게 이런 시련을…….
사람의 마음이 참으로 간사하다.
은혜는 은혜고 청우는…… 제기랄.
조금 전까지 감사하던 마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듯하다.
영혼이 홀랑 빠져나가 버린 듯이 멍한 표정이 되어 청우와 진무를 번갈아 쳐다보는 청상을 뒤로하고 진무가 제갈산산을 향해 인사했다.
“그럼, 저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옥중에 고초가 있으셨을 터이니 몸 잘 추스르십시오. 이만.”
고개를 살짝 숙이고 떠나는 진무의 뒤로 운암이 뒤따른다.
진회루를 나가는 그의 뒷모습은 누군가에게는 경외로 다가왔고, 누군가에게는 공포로 다가왔으며,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높은 산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개자식……. 내게 이런 수모를 주다니. 반드시 네놈과 네놈의 사질들을…….’
상투관이 깨져 단정했던 머리가 산발이 되어 버린 남궁창위가 가서는 안 될 길을 향해 다짐하고 있었다.
“운암.”
“예?”
“먼저 화산에 가 있어라.”
“진무 도장께서는?”
“나? 할 일이 있어서.”
“……알겠습니다. 하면 화산에서 뵙죠.”
“그래. 내일 아침이면 아마 다시 보게 될 거야. 푹 쉬고 있으라고.”
“예.”
운암이 언제나처럼 반문 없이 진무와 인사를 하고 관도를 벗어나 화산으로 향했다.
그리고 홀로 남겨진 진무의 입가에 그의 전매특허인 음흉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만들어지는 수많은 관청이 있다.
당금의 황제는 중원을 다스리기 위해서 크게 두 가지로 나누었다.
행정 기관과 군정 기관.
먼저 행정 기관은 성(省)급에 승선포정사사를 두고 그 아래 지역을 부, 주, 현으로 세분화하여 관리를 두는 체제였는데, 서안부와 같은 곳이 바로 대표적인 행정 관청이었다.
그리고 권력이 집중되지 않기 위해 성급 군정 기관으로 도지휘사사를 두고 그 아래에 둔 것이 위소(衛所)였다.
위소는 각 요충지에 설치되어 군사를 총괄하는 역할을 했으며, 위소당 약 오천 이상의 병력이 주둔했다.
그들 모두가 전시를 대비한 정예병인지라 행정 관청에 소속된 군병들과는 그 무력 자체가 달랐다.
“그래서 돌아왔다고?”
서안부와 함께 주둔 중인 위소에서 돌아온 도지휘첨사(指揮僉事) 방만평이 지휘봉을 짜증스럽게 탁자에 내려놓으며 눈 앞의 무장을 향해 물었다.
“예.”
대답을 한 자는 천호장 중의 한 사람인 정천호 갈천벽이었다.
이름 높은 장군가의 자손으로 그 무위와 용맹함이 널리 알려진 자였다.
퇴청한 시간이라 방만평이 술이나 한잔할까 하여 갈천벽을 자신의 집으로 부른 것이다.
“도대체 도지휘사께서는 어찌하여 태양명 같은 자를 돕기 위해 군병을 보내셨단 말인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쯧쯧, 대쪽 같은 자네가 고생이 많았구만.”
“아닙니다. 저는 그저 명에 따를 뿐입니다.”
“고지식한 사람 같으니. 거부할 수도 있었지 않던가? 그럴싸한 핑계도 많을 것인데.”
“군인의 신분으로 어찌 핑계를 대어 명을 거역하겠습니까?”
“사람하고는. 자네는 그놈의 꼿꼿한 성격이 문제일세.”
방만평의 말에 갈천벽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래, 그놈이 이번엔 뭣 때문에 불렀다던가?”
“사악한 악도가 관에 대항한다 하여.”
“악도?”
“예. 한데 무당의 도사라더군요.”
“……뭐라고?”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악도랬다가 무당의 도사랬다가.
“한데, 대단한 자였습니다.”
“…….”
“그 야수 같은 기세에 손가락 끝이 떨릴 정도더군요.”
“허, 이 사람. 도사라더니 그런 비유는 또 뭔가? 야수라니…….”
“그리 느꼈습니다.”
갈천벽이 술병을 들어 방만평의 잔을 채웠다.
“뭐, 자네가 그리 느꼈다면 그런 것이겠지.”
두어 번의 순배가 돌아가고.
“태양명에 대해 조사를 하신다던 일은 진척이 좀 있으십니까?”
“진척은 무슨. 조사하겠다 보고를 올리면 지휘사께서 증좌부터 가져오라며 반려하시니.”
“심증은 있되 물증이 없다는 말씀이군요.”
“그렇네. 필시 이곳저곳에서 돈을 받아 처먹는 것 같은데……. 어쩌면 지휘사께도…….”
“첨사대인, 지금 그 말씀은 받잡기 어렵습니다.”
“아, 미안하네. 하도 답답하니 그렇지. 어쨌든 증좌 하나만 잡으면 태양명은 물론 그놈에게 붙어먹은 놈까지 싹 털어 낼 수 있을 터인데 말이야.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어. 후우…….”
방만평이 한숨을 내쉬고는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첨사대인께서 노력을 하시니 곧 성과…….”
말을 받던 갈천벽이 무엇을 느낀 것인지 갑자기 매서운 기세를 품고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려 했는데.
파삭!
문을 뚫고 들어온 무언가가 그의 몸을 때렸다.
털썩.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갈천벽이 검을 잡으려는 자세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이, 이보게!”
방만평이 깜짝 놀라 일어나는데.
“군문의 장수치고는 감이 좋은 놈이었네. 처음 봤을 때부터 기도가 예사롭지 않더라니.”
“누구냐!”
갈천벽의 몸을 살피던 방만평이 날카로운 기세로 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목소리와 함께 활짝 열린 방문으로 복면인 하나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역시 군문에서는 가진 무력으로 서열이 결정되진 않는군. 아서라. 니 실력으로는 턱도 없어.”
“네놈은?”
방만평이 날카로운 기세를 품고 복면인을 노려보았다.
“나? 흥정하러 온 사람.”
“뭣이? 이놈이 감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참 한심하다.
이제야 저런 소리를 외치다니.
차라리 검을 먼저 휘두를 것이지.
복면인이 혀를 차며 방문에서 슬쩍 비켜난다.
“어이, 믿고 있는 게 쟤들이라면 참 안된 일인데 말이야.”
“……!”
복면인의 뒤편.
열린 방문 너머로 보이는 것은 수십이나 되는 수하들이 수면제라도 먹은 것처럼 줄줄이 뻗어 있는 모습이었다.
군영이 아니라 자신의 거처였다.
정예병이라면 몰라도 집을 지키는 자들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갈천벽이 힘조차 써 보지 못하고 쓰러진 이상 복면인은 자신이 어찌해 볼 상대가 아니었다.
“네놈은 대체?”
“물건 팔러 온 사람이라니까.”
“…….”
“안 사도 그만이고, 사겠다면 얌전히 팔기만 할 거야.”
“…….”
복면인이 얼굴 중 유일하게 드러난 눈을 한껏 휘어 웃었다.
안 사도 그만?
얌전히 팔기만 해?
그게 이 시간에 남의 집에 복면 뒤집어쓰고 와서 우리 애들 줄줄이 조지고 난 다음에 할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