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
2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언젠가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신경이 거슬려 왔다.
세월의 흐름이 잔뜩 스며 있는 늙은이‘들’의 목소리.
이상했다.
저승차사는 간 것 같은데…….
힘겹게 눈을 뜨자 한눈에도 짜증 나는 느낌을 주는 옷차림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오! 깨어나는가 봅니다.”
“…….”
끔벅, 끔벅.
흐릿해진 시야가 선명하게 밝아졌을 때.
“정신이 좀 드느냐?”
선명한 태극 무늬.
어디서 많이 본 문양이었다.
저런 후져 빠진 문양이 새겨진 관을 쓰는 것은…… 그래, 무당…….
뭐, 무당?!
“허허, 천운이 닿은 게야!”
“천존께서 보우하심입니다.”
다 늙은 도사 놈들이 입 냄새를 펄펄 풍기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분명히 저승차사 놈의 술수를 피해 잠시 버틴 것뿐인데…… 설마?
이놈이 내가 불로초를 먹어 끌고 가지 못하니 강제로 등선을 시켜 버린 것인가?
……개소리지. 그럴 리가 없지. 그런데……. 어찌 된 것이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아니, 그것보다 지독하게 아프다.
온몸의 뼈마디가 부서지고 근육이 모조리 끊어진 것처럼 아팠다.
“괜찮다. 무리하지 말거라.”
이 양반아, 지금 무리가 아니라.
“쯧쯧, 어찌 이리 기특할꼬. 제 스승을 위해 약초를 구하다 절벽에서 떨어지다니…….”
갑자기? 언제? 누가 누굴?
주위를 둘러싼 도사들이 저마다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낯선 기억들이 머릿속에 한 폭의 그림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또 뭐…….
부모에게 버려진 고아.
비루하기 짝이 없던 삶 속에서 만난 온화한 성품의 도사.
포근…… 아니, 그딴 걸 느낄 때가 아니잖아!
그리고 망할 사패천주(?)에 의해 깊은 상처를 입고 폐공(廢功: 무공이 폐해짐)까지 당해 버린 도사.
소년의 나이는 열일곱.
도사를 살리기 위해 무당산 험지를 헤매며 약초를 구하다가.
아, 아니 잠깐만. 그래서 대체 이 기억이 다 뭔데?
크윽! 머리가 빠개질 듯이 아파 왔다. 막대한 양의 기억들이 강제로 쑤셔 박듯이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이런!”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지자 늙은 도사들이 다급하게 주위를 둘러쌌다.
“기맥이 불안정합니다.”
맥문을 짚은 한 도사의 다급한 음성을 또 다른 도사가 받았다.
“자, 모두 서두르세!”
미리 의논한 것이라도 있는지 늙은 도사들이 각기 다른 혈도에 손을 올렸다.
지금, 뭐 하는…….
순간 오색영롱한 선기(仙氣)가 도사들의 몸에서 일어나 방 안을 휘돌다 도사들의 손을 따라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우우웅!
강렬한 기운이 전신의 혈도를 두들기고 기경팔맥을 아울렀다.
으으으.
청량감을 머금은 선기가 고통스럽게 몸을 헤집는다.
미친놈들아, 뭐 하는 짓이냐!
사패천주 혁련무강의 몸에 선기를 주입하다니!
죽일 셈이구나!
네놈들이 저승차사 놈의 사주를 받고 날 죽일 셈이야!
고통은 무려 두 시진을 넘게 계속되었고, 방 안의 선기가 옅어지다 이윽고 완전히 사그라들었을 때.
한판 고문(?)을 마친 도사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됐습니다. 됐어요!”
“다행이네. 이만하면 혈맥들은 온전히 자리를 찾았으니 뼈마디만 붙으면 될 것이네.”
더 늙은 도사의 말에 덜 늙은 도사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단전에도 육양신공(六陽神功)의 선기가 안전하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단전에 뭐? 육양이 어째?
“감사합니다.”
“장문인과 사형제들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은혜? 감사를 드려? 이런 악독한 도사 놈들 같으니! 네놈들의 그 망할 선기에 고통받은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 것이냐!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반항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무량수불, 어찌 자네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아이의 생명을 외면하겠는가? 모두가 인연(因緣)인 게야.”
장문인이라 불린 늙은 도사, 명현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한데 장문인. 이 아이의 몸에 본문의 비기인 육양신공의 힘이 자리를 잡았으니 이참에 명진의 제자로 삼음이 어떠하신지요?”
“명진의?”
“예. 진즉에 염두에 두고 있었던 일이 아닙니까.”
“흐음. 그렇기는 하네만, 전례에 없던 일이 아닌가? 명진의 제자라면 이대가 아니라 일대인데…….”
“이 또한 저 아이의 복이고 무당과의 인연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비록 폐공되었다 하나 명진도 마땅히 후사를 길러야 하고요.”
한참을 고민하던 명현이 명진을 돌아보았다.
“자네의 뜻은 어떠한가?”
“한참 전부터 생각하였으나 제 몸이 이러해 말씀을 드리지 못했던 일입니다. 허락해 주신다면 성심을 다해 가르쳐 보겠습니다.”
“음…….”
명현이 명진과 다른 장로들을 둘러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파격적이기는 하나 모두의 뜻이 그러하다면. 이 아이가 명진의 제자가 됨을 허락하네.”
“높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장문인.”
명진이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명현을 향해 절을 올렸다.
“허허, 그래. 생각해 둔 도명은 있는가?”
명현의 말에 명진이 잠시 고심하다 밝은 얼굴로 말했다.
“일대는 진자 배이니 무(武)로 하겠습니다.”
“진무라. 좋은 이름일세.”
명현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장로들이 밝은 미소로 화답했다.
진무(眞武).
참 도가적으로 상스러운 이름 아닌가.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도대체 왜 도가 놈들은 쓸데없는 항렬을 만들고 비슷한 돌림자를 가져다 쓰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이 쓸모없고 개성도 없는 새끼들.
“자, 그럼 다 같이 모여 ‘진무’의 쾌유를 위해…….”
명현의 말에 도사들이 강강수월래라도 하듯이 서로의 손을 잡고 주위에 자리를 잡았다.
이 새끼들이 또 뭔 짓을 하려고?
몸 안에 자리 잡은 선기로 인해 기진맥진한 혁련무강, 아니 진무의 흐릿한 눈동자에 강렬한 불안감이 어렸다.
“구축병마(驅逐病魔), 급급여율령(急急如律令).”
“급급여율령.”
끄아아! 그만! 그만! 이놈들아! 도사님들! 제발!
“조일강복(早日康復), 급급여율령.”
“급급여율령.”
명현의 선창을 따라 명진과 장로들이 근엄하고 엄숙하게 법주를 외기 시작했다.
구축병마, 몸에 스민 잡귀와 마귀를 몰아내고.
조일강복, 다친 몸이 빠르게 회복되기를 기원…….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이 새끼들아!
사람이 다쳤으면 응당 침을 꽂고 부목을 대어 고쳐야지. 주문이라니, 날 대체 어디까지 잡을 셈이냐!
입 밖에 내어 외치지 못하는 공허한 발악과 함께 진무는 눈을 까뒤집으며 혼절해 버렸다.
* * *
“…….”
한 달.
눈에 띄게 수척해진 진무가 퀭한 눈동자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천하에 다시없을 비열함과 사악함으로 중원을 휩쓸던 사패천주 혁련무강.
일월마교의 교주, 정무맹의 맹주와 함께 천하를 삼분하여 다스리던 무림의 절대자.
는 개뿔이…….
다 망해 가는 무당의 일대제자 진무가 되어 버렸다.
망할 놈의 저승차사 놈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눈을 감았다 뜨니 난데없이 무당의 죽어 가던 도동(道童)의 몸에 빙의되었고, 그 기억까지 온전히 머릿속에 담아 버렸다.
노력? 해 봤다.
아는 방법을 총동원해 보았다.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자랑하던 묵룡혼원공(墨龍混元功)을 익혀 이 무간지옥 같은 도량에서 벗어나려 병상에 누운 한 달간 무던히도 노력을 했다.
그런데.
‘망할 놈의 육양신공…….’
단전에 강제로 자리 잡은 이놈의 선기가 공력이 모이는 족족 흩어 놓았다.
마음 같아서는 단전을 비우고 다시 채우고 싶었지만, 지금의 공력으로는 씨알도 안 먹히는 일이었다.
“하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찌해야 하는가?
도대체 어찌해야 이 거지 같은 곳을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진무야.”
“예! 스승님!”
무조건적인 반사 작용.
의사도 묻지 않고 스승이 된 명진의 부름에 본능적으로 공손하게 대답해 버린다.
망할, 이 쓰잘머리 없는 도동 놈의 기억.
마치 손오공에게 씌워진 금고아처럼 머릿속에 자리 잡은 기억이 행동을 멋대로 휘두른다.
그의 스승인 명진(明眞).
어제 일처럼 기억이 난다.
해검지를 뒤집어 놓고 팔궁 중 셋을 불태우며 무당을 쓸어 버리던 그때.
진무, 아니 혁련무강의 앞을 막아서서 끝까지 대항하며 자소궁을 지키던 도사 놈.
당시 일대제자였던 명진의 기개가 기특해서 목숨은 취하지 않았던 것이 크나큰 실수였다.
그냥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아예 무당산에서 도관이라는 도관은 전부 파내 버렸어야 했는데.
하지만.
“점심을 먹자꾸나.”
“예. 속히 준비하겠습니다. 스승님.”
젠장, 마음과는 다르게 또 공손하게 대답해 버린다. 얼굴 가득 미소까지 머금고.
진무의 몸에 빙의된 당금 무림의 절대자 중 한 명이었던 사패천주 혁련무강은.
탁탁탁.
채소를 썰고.
슥슥.
능숙하게 우려낸 국물을 맛보며.
“캬, 좋다.”
최선을 다해 스승의 점심상을 준비했다.
이런 씨발…….
차라리 도망이라도 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 도망친 적도 있었다. 병상에서 일어난 뒤로 여러 번.
그런데 이 망할 기억 새끼가.
무당산을 벗어나기도 전에 돌아오게 만들지 않는가! 도무지 병석의 스승이 걱정되어 버리고 떠날 수가 없어서!
부인하고 싶은데, 그냥 죽여 버리고 싶은데…….
행동으로 옮길 수가 없다.
스승만 보면 포근하고 혼자 두기 걱정스럽고 삼시 세끼 밥을 꼭 챙겨야 한다는 막중한 사명감이 절로 우러난다.
“오오, 국물 맛이 좋구나!”
“감사합니다. 스승님.”
환장하겠네.
스승이 흐뭇해하자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져 저녁에 무얼 해 드릴까를 고민하는 흐름까지, 아주 가지가지로 염병 아닌가 말이다.
망할 저승차사 새끼.
하필이면…… 무당이란 말이냐.
그것도 불필요한 측은지심으로 똘똘 뭉친 도동 놈의 몸에.
“진무야.”
“예. 스승님.”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끝낸 진무와 명진이 마주 앉았다.
“너의 몸이 회복된 지도 꽤 지났으니 오늘부터는 내 너에게 무공을 가르치려 한다.”
진무의 눈썹이 움찔 떨렸다.
무공을? 무당의? 이 자식이 기어이 미친 게 아닌가? 어디 되지도 않는 게 당금 무림의 절대자 중 한 명에게 도가 따위의 무공을 배우라고?
나는 사파의 지존 혁련무강이다!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예. 스승님.”
껍데기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스승의 은혜에 깊은 감사의 절을 올렸다.
“허헛, 녀석. 허나 몸이 이러해 구전(口傳)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으니 안타깝구나.”
명진의 얼굴에 아쉬움이 어리자 마음이 슬퍼지고 먹먹해진다.
작작 해라, 마음아. 제발.
“괜찮습니다. 스승님.”
진무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자, 그럼 오늘부터 네 단전에 깃든 육양신공에 대해서 전수를 해 주도록 하마.”
고작 육양신공 따위를?
절대로 듣고 싶지 않았지만, 저절로 귀가 열려 스승이 읊어 주는 구결이 때려 박히듯이 들려왔다.
“무당의 진결은 태극(太極)에서 시작한다. 태극은 음양(陰陽)이며 그중 육양은 음에서 기인해 극양의 기운을 이끌어 내는…….”
“…….”
망할, 듣기만 해도 장문인과 장로들이 진무를 살리기 위해 심어 놓은 단전의 기운이 혈도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짜 익히고 싶지 않은데, 육양신공 따위…….
하지만 의사와는 달리 망할 기억이 본능을 지배해 명진의 말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무당의 팔궁과 가장 멀리 떨어진 오로봉(五老峰) 기슭에 자리한 충허암.
때때로 식료품을 가져다주는 싸가지 없는 이대제자 외에는 아무도 찾지 않는 그곳.
반쯤 강제적으로 지옥 같은(?) 도가 무공 수련이 시작되었고, 진무의 내공은 날이 갈수록 쌓여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