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제갈협진의 공전계에 의해 정무맹의 세력권에 막 피바람이 시작되었을 무렵.
화산의 금룡협에서는 무림사에 큰 획을 그어 놓을 또 하나의 사건이 시작되고 있었다.
청무 이후로 누구도 익히지 못했던 무당의 양의심공.
그것이 진무에 의해 다시 세상으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 * *
식탁 삼아 평평하게 만들어 놓은 바위에 좌정하고 앉은 진무는 눈을 감은 채 현실과 무아의 경계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양의의 구결에 빠져 참오한 시간이 얼마나 흐른 것인지 헤아릴 수조차 없어졌을 무렵.
오랜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진무의 눈꺼풀이 조금씩 떨려 왔다.
뭐지?
분명히 양의심공을 읽고 있었던 것 같은데.
눈을 떴음에도 사물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눈을 끔벅거려 보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혹시나 해서 눈을 한쪽씩 번갈아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
한쪽은 어둡고 한쪽은 밝다.
뭔가 이상이 생긴 건가?
진무는 자신의 시야에 보이는 모든 것들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그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들을 만약 다른 이가 보았다면 깜짝 놀랐을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색깔로 변해 버린 눈동자.
한쪽은 흰자위만 남은 백색으로, 또 한쪽은 흑요석을 닮은 흑색으로.
꿈인가?
진무는 다시 눈을 감았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질까?
차분히 호흡을 고르며 양의의 구결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진무의 몸에도 이전과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붉게 달아올랐다가 차가운 한기를 내뿜으며 푸르게 변한다.
‘크윽!’
색이 변할 때마다 불로 지지는 듯한 뜨거움과 살을 에는 통증이 반복되었다.
원하지 않았던 과정이 통제 범위를 벗어나 저절로 진행되어 간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거듭하던 진무의 몸은 어느샌가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나뉘어 물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나갔을까?
어느 순간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졌을 무렵.
호흡이 편안하게 가라앉자 진무는 자신의 몸 안을 관조할 수 있게 되었다.
뭔 이런 일이 다 있단 말인가?
꿈이라면 정말 이상한 꿈이다.
그저 서책에서 읽은 대로 했을 뿐이다.
육양진기를 구분하여 양기는 역행으로, 음기는 순행으로 독맥과 임맥에 나누어 흐르게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백회혈이 닫혔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데 임맥은 임맥대로, 독맥은 독맥대로 서로 다른 기운을 머금고 있으니,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희한한 것은 단전에 채워졌던 육양진기를 음양의 이치에 따라 나누었음인데 종내에는 모두가 인중에서 단전에 이르는 임맥에 합일되었고, 회음에서 시작하여 백회로 가는 독맥은 허허롭게 비어 버렸다.
“후우…….”
진무가 긴 숨을 내쉬며 눈을 떴다.
하얀 빛무리가 눈동자에 서렸다가 서서히 옅어지며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콰콰콰콰!
이제까지 들리지 않았던 장쾌한 폭포 소리가 귀청 찢어지게 들려왔다.
그리고 그 옆으로 모두 타 버리고 회색빛 재만 남긴 모닥불과 새카맣게 타 버려 멧돼지였다는 것조차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보였다.
“된 건가?”
진무는 펼쳐진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상하다.
딱히 무언가 변한 것 같지 않다.
태청신단을 얻었을 때는 분명 단전의 몸집이 커진 것 같았고, 삼양보명단을 얻었을 때는 뱀 새끼가 몸속을 돌아다니는 적사투관을 경험했었다.
영단이 아니라 그저 무공이라서 그런가?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는 느낌이 조금도 없는데…….
이게 양의심공?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범했다.
진무는 단전이 둘로 나누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혹시 이거 가짠가?
단박에 도지는 의심병.
진무가 눈을 슬쩍 찌푸리고 양의심공의 비급을 째려보았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싶다가도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확인 욕구를 참기가 힘들다.
그래, 이럴 땐 역시 확인이지.
진무는 다시 눈을 감고 묵룡혼원공의 기초심공을 운용했다.
채기법 이전의 단계.
원래 채기법이란 게 무턱대고 기운을 빨 수 있는 게 아니다.
사기를 쌓아 놓을 기본적인 터를 닦아 두어야만 했다.
안 그러면 백표처럼 채기법으로 흡수한 내공을 몇 시진도 못 가서 날려 버리게 되니까.
다시 정신 집중을 시작한 진무가 호흡을 통해 대기의 기운을 몸 안으로 흐르게 했다.
어?
그런데 심공을 운용하자 가득하게 쌓여 있던 선기가 갑자기 솟구친다.
단전을 채웠던 육양진기가 임맥으로 도망치고, 비워진 단전에 사기가 겨우내 소복이 내리는 눈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이, 이럴 수가! 됐다. 정말 됐어!
비록 소량이기는 하지만…… 이전처럼 흩어지지 않는다.
쌓인다.
그리고 쌓임과 동시에 사기를 피해 달아났던 선기가 임맥에 머무른 채 흘렀다.
“햐! 이것 봐라? 이런 거였어?”
단전에 쌓인 사기가 선기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고 독맥 안을 흘러 단전에 되돌아온다.
“어디…….”
호기심이 생긴 진무가 이번에는 육양진기를 운용했다.
임맥이 활성화되자 반대로 사기가 독맥으로 도망쳐 머물고 선기가 단전을 채운다.
마치 쫓고 쫓기는 관계를 영원히 반복하듯이.
이런 거였구나.
양의심공, 그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었다.
서로 다른 인격을 가질 수 있다든지. 한 손에 검, 한 손에 도를 들고 서로 다른 무공을 펼칠 수 있다든지 하는 것들이었으나 대성한 이가 없었으니 사실로 확인된 바는 없었다.
하지만 진무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두 가지 서로 다른 ‘무공’을 담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내공’을 몸 안에 담는 방법이라는 것임을.
그리고 지금의 몸 상태.
두 개의 내공을 몸 안에 담을 순 있게 되었으나 임독이맥이 막혀 버린 것과 같다.
무릇 무인이란 임독이맥을 타통하여 기운을 흐르게 함으로써 바야흐로 제대로 된 소주천을 이루어 내공을 쌓을 수 있게 되는 것인데.
그것을 되레 막음으로써 두 개의 내공을 사용할 수 있게 하다니.
어떤 놈이 창안했는지 정말 엄청난 발상의 전환이 아닐 수 없었다.
진무는 청성과 곤륜에서 얻었던 태극요결을 떠올렸다.
‘무극은 태극이요, 태극이 무극이라. 양이 움직여 정이 되고 정이 멈춤으로 음이 된다. 오행이 서로 보하고 상하며, 천양하고 곤음하라. 천은 백회니 뜨겁고 곤은 곧 회음이니 차가우라. 고저는 그저 구분이며 마음에 음양이 닿아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니 이는 곧 태극이라.’
아직은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나중에 막혀 버린 백회를 뚫고 임독이맥을 연결하면 이루어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그냥 지금 뚫을까? 화산에서 얻은 자소단도 있는 마당에?
음, 하지만 아깝다.
자소단에 응축된 영기를 흡수하면 단숨에 내공을 확보할 수야 있을 터다.
하지만 밖에 나가기만 하면 내공을 빨아먹을 인간들이 사방에 천지인데 뭐 하러 귀한 자소단을 벌써 소비한단 말인가?
아끼자.
원래 아껴야 잘 산다.
이전의 생에도 아끼고 아껴서 비고를 가득 채워 놓지 않았던가?
또한, 아직 태극요결의 정확한 의미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다.
괜한 모험을 할 필요는 없다.
제일 중요한 것은 균형이라 했다.
태극을 이루기 위해 양의심공을 익혔던 청무 조사도 이러한 음양의 균형을 맞추지 못해 마성에 빠졌다 하지 않았던가?
태극을 이루자면 사기를 모아 균형을 이루어야 했다.
태극요결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두 기운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난 뒤에야 시도해 볼 일이다.
공동에서 무리하게 양의심공을 익히려다가 골로 갈 뻔한 적도 있지 않은가?
지금은 묵룡혼원공을 다시 익힐 수 있게 된 것만으로 충분하다.
다시 한번 호흡을 고르고 난 뒤 자리에서 일어난 진무는 주변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뭐 얼마든 무슨 상관이랴! 기다려라! 무림이여!
나, 혁련무강의 부활이다.
먼 길을 돌아온 사황이 다시 무림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크핫핫핫!”
진무는 아무도 없는 금룡협의 바닥에서 한참이나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꼬르르르…….
웃었더니 배가 고프다.
얼마나 굶은 거지?
일단 뭐라도 좀 먹고, 사기를 좀 더 쌓아야겠다.
진무는 절벽 면을 훌쩍 뛰어올라 금룡협을 벗어났고, 일전에 아비를 잃고 동생을 잃었던 멧돼지 가족은…… 그날 엄마를 잃었다.
* * *
다시 며칠 후, 포말로 가득 찬 금룡협에 폭포 소리를 뚫고 바위가 긁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슷, 스슷!
가가가각!
진무의 검 일휘가 휘둘러진 손을 따라 춤을 추고, 절벽 면에 용사비등한 글자가 새겨진다.
묵룡동(墨龍洞)
묵룡이 머물다 간 협곡.
이름이 너무 티 나긴 해도 진무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글자를 바라보았다.
분명 나중에 누군가 발견하면 감탄할 만큼 단순하면서도 멋진 이름이 아닌가.
이쯤 하면 되었다.
양의심공을 익힌 이후에 묵룡혼원공의 기본공으로 채기법을 시전할 기본적인 터전을 만들었다.
고작해야 십 년 정도의 내공인지라 검기를 펼치는 것도 어렵지만 상관없다.
이제부터는 채기법이다. 그걸 쓰면 내공을 쌓는 것은 순식간이다.
도가의 연단법과 달리 묵룡혼원공과 채기법은 진무가 이미 한 번 가 보았던 길이다.
적당한 먹잇감(?)만 있으면 금방 강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태극을 이룬다면?
“흐흐흐.”
기분 좋은 상상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북리도천? 풉!
새끼, 이제 정사의 힘으로 골고루 패 주마.
나는 무당지검이며 동시에 사패천의 제왕이니까!
흐뭇하게 잠시나마 머물렀던 자신의 거처를 바라보던 진무가 드디어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몸을 돌렸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흠…….”
그냥 가자니 뭔가 좀 아쉽다.
나중에 이곳을 발견한 놈이 놀랄 만한 무언가를 남겨 줘야 하는데.
무당의 무공이야 허접하고, 양의심공은 아무에게도 주고 싶지 않고, 자소단은…… 너무 아깝다.
고민이 된다.
그래, 이왕지사 묵룡동이라고 새겨 놨는데 그에 걸맞은 걸 줘야지.
묵룡혼원공을 남긴다.
화산의 비처에 사파 최강의 무공을 남겨 놓는 것이다.
어차피 체질이 맞지 않으면 익힐 수도 없는 무공이다.
천우명이나 백표는 수많은 이들 중 드물게 묵룡혼원공의 기본인 채기법을 익힐 수 있는 체질이었다.
맞지 않는 자가 익혔다가 채기법을 쓰게 되면 반드시 죽는다.
그러니 남겨 둔다 해도 그것은 발견한 놈이 운이 좋은 것이고, 익혔다고 해도 채기법을 쓰다가 죽을 수도 있는 문제다. 실로 천운이 따라야 하는 것이지.
그래, 그쯤은 되어야 인연이다.
진무는 피식 웃으며 일휘를 움켜쥐고 한쪽 벽면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연자에게…….
캬, 노인네들 이 맛에 쓰는구나. 이 말을…….
* * *
먼 미래에 누군가 발견할지도 모를 기연을 제조(?)하고 난 뒤, 화산의 금룡협을 떠난 진무는 서안에 도착했다.
그까짓 협곡?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허공답보를 산보 가듯 쓸 수 있는 진무에게는 우스운 일이었다.
어쨌든 이제 서안이다.
이제부터는 무림을 마음대로 떠돌아도 된다는 스승의 허락도 떨어졌으니 무당은 신경 안 써도 되고.
이대로 말 한 마리를 사서 여유롭게 천웅방으로 가 볼까?
가는 길에 채기법으로 기운 넘치는 산적 놈들 찾아다 내력도 좀 빨면서.
묵룡혼원공을 익히며 사패천의 예하를 하나씩 차근차근 집어삼킬 생각이다.
그리고 사패천의 본성으로 돌아갈 때는 그저 고수 정도로는 안 된다.
모조리 짓밟아 버릴 수 있을 만큼 강해져야만 했다.
그래야 입도 뻥긋 못 할 테니까.
묵룡을 불러낼 수 있게 되면 사황 혁련무강의 진전을 이어받은, 말하자면 전인으로 행세할 생각이었다.
이 몸이 스승이고 곧 제자다.
사황 혁련무강의 전인이 돌아와 사패천을 손에 넣고 중원 무림의 주인이 된다. 이 얼마나 완벽하고 멋진 서사인가?
“흐흐흐.”
기분 좋은 생각을 하고 있어서인지 관도를 걸어가는 진무의 입가에서는 좀처럼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길 가는 사람들이 면전에서 대놓고 손가락을 귓가로 가져가 빙글빙글 돌리며 고개를 저어도 마찬가지였다.
“엄마. 이 아저씨 미친 거 같아. 자꾸 웃어.”
당과를 물고 있는 꼬맹이가 옆을 지나가며 제 어미에게 소곤거렸다.
진무가 고개를 휙 돌렸다.
귀여운 녀석, 그런 이야기를 사람 듣는데 대놓고 하다니. 확 기운을 빨아먹어 버릴까 보다.
“흐흐흐.”
진무가 음흉하게 웃으면서 아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아이가 소스라치듯이 놀라 제 어미의 등 뒤로 숨어 버린다.
“흐흐흐.”
그 모습을 마음껏 흡족하게 감상하던 진무가 다시 몸을 돌려 길을 걸었다.
일단 옷부터 좀 갈아입고, 모처럼 음식 같은 음식 좀 먹어야겠다. 술도 한잔하고.
금룡협 아래서 매일 멧돼지만 먹는 바람에 입이 텁텁하다.
그러고 보니 거긴 뭔 멧돼지만 그렇게 많이 사는지 몰라.
포목점에 들러 흑의 무복을 사서 입은 진무는 곧바로 마방으로 향하며 머릿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차근히 세우고 있었다.
“어?”
계획 구상에 골몰하던 진무의 걸음이 어느 순간 뚝 멈췄다.
관도의 중심부 사방에 진을 친 관인들 때문이었다.
어째서?
아! 치부책 때문인가?
방만평이라는 도지휘첨사가 조사를 시작한 모양이다.
처음 볼 때부터 청렴결백해 보이더라니.
태양명 그 자식, 지금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까?
아마 비리 조사가 들어오는 순간 진심을 담아 나에게 쌍욕을 날렸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속이 시원하다.
원래 사파라는 족속들은 정파와 달리 관과는 견원지간이다. 대부분에게 현상 수배가 내려져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관인들 틈에 무림인들이 섞여 있었다.
왜? 어째서?
아무리 사이가 좋다고 해도 관무불침이 명확한데 어째서 서로 돕는 듯한 모양새지?
그리고 무림인이 입고 있는 옷차림이 무척이나 익숙하다. 자색 옷자락 소매에 매화 문양이 선명한 것이…….
화산의 이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