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1
21화
방가후를 놓아 버린 진무가 손을 어지럽게 휘젓자 호쾌함이 가득한 선기가 뿜어져 나왔다.
무당의 태청산수(太淸散手).
파팍! 파팍!
빠르게 교차하는 손놀림에 두 사람의 소맷자락이 엉켜들며 공기 터지는 소리를 만들었다.
제갈근은 잡아채려 하고 진무는 흩어 놓는다.
‘이, 이놈이!’
제갈근은 자신이 가진 내공의 전부를 끌어 올렸음에도 진무의 손목을 잡아채지 못했다.
더욱이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과는 달리 진무의 표정은 얄미울 정도로 여유로웠다.
“하압!”
급기야 더 참지 못한 제갈근이 응혈신조를 거두고 일장을 뻗어 내었다.
쿠르릉!
강맹한 기운을 머금어 담은 기운이 우레성을 내며 쏘아졌다.
“흥!”
그리고 비웃음을 머금은 진무의 일장이 똑같이 뻗어졌다.
쩌어엉!
맞부딪친 손바닥에서 일어난 소음이 객점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타다다닥!
그리고.
반탄력을 이기지 못한 제갈근이 뒤로 넘어가는 몸을 바로잡기 위해 재빨리 뒷걸음질 쳤다.
다섯 걸음.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제갈근이 서둘러 고개를 쳐들었다.
“……!”
원래의 자리에서 한 치의 거리도 움직이지 않은 진무.
그리고 여전히 입가에 맺힌 비웃음.
약간의 차이 정도가 아니었다.
호북성에 퍼져 있는 제갈분가의 후계를 모두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자신이 밀린 정도가 아니라 처참하게 패했다.
“제법이네. 피 한 사발 정도는 쏟을 정도로 힘을 줬는데.”
“…….”
진무의 이죽거림에 제갈근이 와락 일그러진 얼굴로 진무를 노려보았다.
이 새끼나 저 새끼나. 진짜 눈깔들을 죄다 뽑아 버려야 되나.
고수에게 한 수 배웠으면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해야지.
근래에 눈 제대로 뜰 줄 모르는 놈이 왜 이리도 많은지.
진무가 눈썹을 역팔자로 만들고 입술을 있는 대로 비틀며 위협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이공자님.”
그의 호위들이 부축하려 하자 제갈근이 매섭게 뿌리치고 진무를 노려보았다.
“너, 이름이…… 뭐냐?”
“응?”
“네놈의 이름. 일대라면 진자 배를 쓸 터.”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하여간 정파 놈들은 가정 교육부터가 틀려먹었다. 어른 앞에서는 제 이름부터 밝혀야지.
마음 같아서는 모가지를 뽑아 들고 제갈가를 찾아가고 싶었지만, 지금이 딱 적당한 수준이었다.
살기를 품은 호위 정도야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제갈가 자손의 명줄에 문제가 생기면 제갈세가가 직접 나선다.
그리되면 그저 작은 소란으로 끝날 것이 무당과 제갈의 전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지금까지는 명분이 무당에 있다.
저들은 다수이고 무당은 고작 셋.
진무가 스스로 시비라 했으나 누가 보아도 제갈세가가 먼저 건 시비였다.
그들은 고기와 술을 먹은 죄뿐.
그걸 알기에 제갈근도 살수를 펼치지 않은 것이다.
하여간 정파 녀석들. 재는 것 많아서 좋겠어.
“이름이 뭐냐고 물었다!”
싸가지하고는.
어째 내뱉는 족족 반말인지.
뭐, 그리 궁금하다면 알려 주지. 귓구멍 파고 새겨들어라.
앞으로 정무맹의 정점에 설 이 몸의 이름을.
“진무.”
“진……무…….”
제갈근이 곱씹듯이 되뇌며 일어났다.
“……또 보게 될 게다.”
“지랄하네. 내가 너 같은 싸가지를 왜 또 보냐?”
피식 웃는 진무를 매섭게 노려본 제갈근이 턱 언저리에 근육이 잡히도록 어금니를 깨물었다.
“어이. 이 콧수염 안 데려가냐?”
“…….”
진무가 가리킨 것은 피떡이 되어 쓰러진 방가후였다.
“패배한 놈은…… 쓸모없다.”
햐, 막연히 싸가지만 없는 줄 알았는데 아주 구체적으로 쌍놈 새끼였구만.
아주 나보다 더하네, 더해.
지도 진 건 마찬가지면서.
그리고 막 객점을 나가려는 제갈근을 진무가 다시 불렀다.
“야!”
“뭐지?”
“뭐긴. 눈 없냐? 주변 좀 봐라.”
“…….”
객점 안은 난장판이나 다름없었다.
방가후가 뿌린 검기로 인해 탁자들은 모조리 부서졌고 바닥이며 벽이 성한 곳이 없었다.
“대제갈세가의 자제분께서 힘없는 민가에 피해를 입히고 그냥 가시면 되겠냐? 주인이 관에다 고발을 할지도 모르고 말이야.”
“…….”
제갈근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관에 고발?
해 봐야 그 누구도 단강에서 제갈가에 책임을 묻진 못한다.
하지만.
진무와 더 이상 드잡이를 하고 싶지 않았다.
“네놈이 걱정할 일이 아니다. 객점에 대한 피해는 제갈가에서 직접 보상할 테니.”
다시 걸음을 내디디려는데 진무가 또다시 불렀다.
“뭐 그건 그렇고.”
“…….”
“얌전히 밥 먹다 니들하고 시비 붙은 우리는 생각 안 하냐? 고깃값, 술값, 그리고 친히 싸워 주신 수고료 정돈 괜찮잖아? 돈도 많을 텐데.”
이 자식이…….
누가 봐도 약 올리는 것이 분명했다.
툭.
제갈근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을 하고 품에서 묵직한 전낭을 꺼내 바닥에 던졌다.
“어이구. 묵직하네, 묵직해.”
진무는 도사라고 하기엔 너무도 속된 모습으로 재빨리 전낭을 챙겨 열었다.
“뭐야, 죄다 은둥이네. 누렁이는 없냐?”
“……이!”
화가 더없이 치밀었지만 제갈근은 차마 움켜쥔 주먹을 뻗지 못했다.
“돌아간다!”
제갈근은 찬바람이 풀풀 날릴 듯한 표정으로 학사들과 함께 객점을 빠져나갔다.
“거, 새끼 성질하고는.”
어쨌든 공돈이 생겼다. 흐흐흐.
“사숙! 대단하십니다!”
덤으로 청상과 청우의 충성도까지 소폭 상승한다.
“청우야.”
진무가 청우를 불렀다.
“예. 사숙!”
“저 아저씨 주워서 의원에 데려다줘라.”
아직은 살생을 함부로 하지 않는 도사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진무였다.
제갈근은 성난 걸음으로 객점에서 한참을 떨어지고 나서야 걸음을 멈췄다.
비틀.
그를 호위하던 학사들이 부축할 틈도 없이 무릎을 꿇은 제갈근.
“이, 이공자님!”
“우웩!”
제갈근이 검붉은 울혈을 토해 내었다.
내상.
진무와 장력을 부딪치는 순간 내상을 입었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나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것은 그러한 이유도 있었다.
자신에게 패배를 안긴 자 앞에서 피까지 토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스윽.
제갈근은 소매로 입가의 피를 닦으며 일어났다.
그리고 객점을 매서운 눈초리로 쏘아보았다.
“길평!”
“예. 이공자.”
호위 무사 추길평이 곧바로 대답했다.
“은밀하게 꼬리를 붙여라.”
“…….”
“저 정도나 되는 놈들이 무당산을 내려왔다면 필시 목적이 있을 터다.”
“예!”
“어디에서 묵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샅샅이 확인해 보고하라.”
“알겠습니다.”
추길평이 공손하게 대답하고 물러났다.
그저 늑대 새끼인줄 알았던 놈이 제대로 범 새끼였다.
그것도 발톱을 날카롭게 세운.
단강구.
과거 그곳의 이권은 무당과 제갈세가에서 양분하고 있었다.
아니, 무당이 좀 더 많은 이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익을 추구하는 세가와 달리 도문이었던 무당에 큰돈은 필요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많은 돈을 아낄 수 있었던 상단들이 그곳에 줄을 대고 있었다.
하지만 십여 년 전 사패천에 의해 참변이 일어나고 난 뒤 세가 약해진 무당이었다.
제갈분가는 그 틈을 노려 단강구에 있는 대부분의 상권을 집어삼켰다.
그간 무당이 가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모두가 단강 제갈분가에서 그리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뒷골목의 일부 이권을 사파와 끈이 닿은 무뢰배 집단이 차지하고는 있었으나.
만약 무당이 다시 움직이고 상권이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제갈분가가 받는 타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 틀림없었다.
‘무당…… 이제 와서 단강구에 파란을 일으키고자 함이더냐? 하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제갈근은 다시 한번 입의 핏물을 닦아 내었다.
“순찰은 끝이다. 분가로 돌아가야겠다.”
“예! 이공자.”
* * *
다음 날 아침.
진무 일행은 방천을 떠나 청양상단이 있는 단강구 도심으로 향했다.
모처럼 보는 도사들의 등장 탓인지 관도를 거니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조리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을 더욱 끌어 대는 것은.
“우와!”
갓 상경한 촌놈처럼 입을 떡 벌리고 두리번대는 청우.
두 벌밖에 없는 도포를 모조리 피로 물들인 청상과 진무.
물론 진무의 도포에 물든 피는 방가후의 것이었지만.
하아, 일단 옷부터 어떻게 좀 해야겠다.
진무는 사람들에게 물어 포목점 거리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이팔룡이 포목 거리에서 보호비를 받는다고 했는데.
잘됐다.
님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이팔룡이 잡고 현상금도 챙기고.
품속에 있는 은 스무 냥을 더해 제갈근에게 수고료(?)로 받은 전낭의 묵직함에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다.
이거 전장에 거래라도 한 구좌 터야 하나. 앞으로 돈을 많이 벌 텐데 말이지.
문득 진무의 시선이 청우에게 닿았다. 그러고 보니 청상은 둘째 치고 청우의 옷도 많이 낡았다.
불쌍한 녀석들. 문파를 잘못 만나서 어찌 저리도 가난한 신세들인지.
근래에 충성도가 많이 오른 듯한 눈빛이었으니 상을 주어 충성도의 극점을 찍어야겠다.
“얘들아.”
“예, 사숙.”
“내 너희에게 새 도포를 사 줄 것이다! 가즈아!”
“우오오오!”
도사고 나발이고, 역시 세상에 공짜 싫어하는 놈은 없다.
* * *
포목점 중 제법 쓸 만해 보이는 곳에 도착한 진무는 주인을 불렀다.
“이보시오! 주인장!”
“아이구, 어서 오십……쇼.”
손님 들어오는 소리에 포목점 주인, 왕척이 반색하며 뛰어나오다가 얼굴을 구긴다.
더욱이 청우와 청상이 벽면에 걸어 둔 비단을 손으로 만지며 꿈꾸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
“아, 거기 만지지 말고! 때 타요! 때 타! 쯧, 하필이면 돈도 없는 도사 놈들이.”
뒷말을 혼잣말처럼 중얼거려도 다 들린다, 이 양반아.
이럴 땐 역시.
쩔거럭.
“……!”
역시 장사치들의 눈치란.
소리만 듣고도 귀인이 강림했음을 깨달은 왕척이 당장이라도 간 쓸개를 두 손 모아 바칠 듯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 전의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던 것처럼.
“아이구, 도사님! 이 누추한 곳에 왕림을 해 주시다니 삼생의 영광입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흐음, 혹 도포를 지을 비단이 있소?”
“그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저희 포목점으로 말씀드리자면 이곳 단강구에서 제일가는 비단만을 취급하며 중원 곳곳에 주문을 받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호오, 그렇소?”
“암요, 암요.”
“그럼, 내 믿고 맡기리다.”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도사 나리!”
왕척은 양손을 모아 비비적대며 최대한 공손하게 웃었다.
“그럼 이쪽 분의 옷을…….”
왕척이 찢어진 옷을 입은 청상을 바라보자 청우가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어허!”
“예?”
갑작스러운 호통에 의아해진 왕척의 눈앞에 진무가 손가락 세 개를 펴 힘차게 내밀었다.
“셋, 모두!”
“어헉!”
“두 벌씩!”
“허어억! 귀이이인!”
진무의 말에 왕척은 물론, 청상과 청우마저 당장에 절이라도 올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조질 땐 제대로 조지고, 쏠 때는 확실히 쏜다!
무릇 윗자리에 앉은 사람이 잊지 말아야 할 자세였다.
돈이 곧 권력이고, 돈이 곧 충성을 끌어올리는 법이다.
“박촌 거지 노인이 오늘 서쪽에서 귀인이 올 것이라 하더니 그 말이 맞았구만. 허헛.”
왕척이 감격해 중얼거리며 다음에 거지 노인이 오면 반드시 푸짐하게 음식을 내어 주리라 다짐했다.
“참, 혹시 이팔룡이라는 자를 아시오?”
“팔룡파의 그 이팔룡이요?”
청우와 청상의 옷 품을 재던 왕척이 순간 굳은 표정으로 멈칫했다.
“그놈이 하도 나쁜 짓을 하고 있다길래. 내 얼굴이나 볼까 하고.”
“아!”
그러곤.
“그 개놈 자식을 찾는 분이 많군요.”
“응?”
“어제는 우가장의 무사님들이 찾던데…… 하긴 다양하게 나쁜 짓을 하고 다니는 놈이니.”
“우가장?”
“예. 그런데 어디에 숨었는지 코빼기도 안 보인답니다. 우가장 무사들이 어제저녁부터 포목 거리를 몇 번이나 들락거렸습죠.”
“흐음.”
진무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이팔룡에게는 물어볼 것도 있었거니와.
‘이 새끼들이 내가 찍은 먹잇감에 손을 대려고 해? 내 귀한 스무 냥짜리를?’
진무는 우가장이라는 곳보다 반드시 먼저 이팔룡을 잡아야겠다 다짐했다.
“다 되었습니다. 옷을 다 지으면 어디로 보내 드리면 될까요?”
“청양상단이라고 아시오?”
“암요. 알다 뿐입니까? 그곳이랑 거래도 하는데요.”
“흠, 잘 됐구만. 그럼 그리로 보내 주시오.”
“알겠습니다. 완성되는 대로 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고맙소. 그럼 그때 봅시다.”
“예, 귀인! 살펴 가시고 하시는 일 족족 잘되시길 빌며, 이팔룡 그놈도 꼭 잡으시길 바랍니다.”
“하하핫!”
진무는 덕분에 새 옷을 얻게 되어 충성 어린 눈빛을 빛내는 청우, 청상과 함께 청양상단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