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이보시오!”
화산의 무인에게 다가간 진무가 부르자.
“……?”
힐끗 고개를 돌렸던 화산의 무인이 땟국물이 좔좔 흐르고 있는 진무를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 새끼가 싸가지 없이.
그냥 확 빨아 버려?
채기법을 다시 익혀서 그런지, 아니면 서둘러 묵룡을 불러내고 싶은 마음에 조급해진 것인지 무인들이 죄다 먹잇감으로만 보인다.
그사이 진무의 모습을 훑던 화산 무인의 시선이 의아함을 품었다가, 어깨에 걸치고 있는 검에 이르러 놀람으로 바뀌었다.
“지, 진무 도장?”
자식이 놀라기는.
놀란 눈빛에 단번에 존경심이 담기는 것을 보니 매화검진과의 대결을 본 녀석인 모양이다.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자 화산 무인이 공손한 자세로 포권을 했다.
“화산의 이대제자 현종이 무당지검을 뵙습니다.”
그의 공손한 인사와 ‘무당지검’이라는 발언에 주변의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만끽한 진무가 흐뭇하게 말을 받았다.
“무슨 일입니까?”
“아, 모르셨습니까?”
“예. 화산을 떠났다가 잠시 일이 있어서 들른 터라.”
“그러셨군요.”
“……?”
“정무맹의 명령서가 하달된 이후에 각지에 암약한 궁의 세력들과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암약 중인 세력들과 전투 중이라고?
“듣기로 모두가 무당지검께서 표주 중에 밝혀내신 일이라 들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
내가? 뭘?
그냥 원화정만 알려 준 건데?
진무가 눈을 끔벅거리든 말든 화산의 제자 현종이 마치 관군들에게 자랑하듯이 말했다.
“단강구에서는 관에서도 못하는 화약 밀거래를 잡아내시고, 사천에서 궁의 포로들을 대거 잡으셨다면서요?”
그래서 황금 열 관을 획득했지.
그리고 사천의 일은 성질 더러운 당위랑 그의 졸개들이…….
“곤륜에서 민초들을 보호하면서 구야자로 위장한 이들을 잡으시고.”
그건 맞는데, 걔들 심문은 당세령이 했는데?
그러고 보니 당가가 다 했네.
“동림전장에선 또 어찌 아시고 관리들의 비리를 밝히고 원화정에 대해 알아내셨다면서요?”
그건 돈 찾으러 갔는데 그 새끼가 사기를 치길래.
“정말 대단하십니다. 무당지검과 같은 ‘도문!’의 제자로서 감격스럽습니다. 도문의 제자가 중원 무림을 위해 이처럼 많은 일을 하시다니요. 존경합니다.”
그래. 이 몸이 그런 인물이긴 하지만 사람들 다 듣는데 부끄럽다. 그만해라.
잠깐만, 근데 같은 도문?
왜 강조해?
얻다 대고 화산 따위가 무당에 얻어 타고 있어?
슬며시 째려보는 진무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고 한껏 기세가 오른 현종이 관군들을 힐끗거리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지가 한 것도 아니면서.
그래도 의문이 남는다.
원화정에 대한 사실을 알기까지 정무맹이 한 일이라고는 개방과 갑무반의 무인들을 혹사한 것뿐이다.
그런데 어찌 알고?
진무의 의아해하는 가운데 나불거리길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 현종이 그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지 설명을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화산…….
쓸데없이 말 많은 설명쟁이들. 장문인이나 제자나 똑같구나.
“그때 잡았던 포로들과 당세령 소저가 알아낸 사실들을 정무맹의 대군사께서 종합해서 은밀히 쫓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그 와중에 무당지검께서 원화정에 대해 알아내시는 바람에 본격적인 소탕 작업에 착수하게 된 거고요.”
대충 이해했다.
제갈협진, 먹물쟁이 녀석. 역시 대단한 놈이다.
과거 사패천주일 때도 그 망할 자식의 계략에 몇 번이나 당한 적이 있지 않던가?
이 새끼, 어째 조용하더라니 공전계가 무르익기를 기다린 것이구나.
적을 완벽하게 알게 될 때까지 저의를 드러내지 않고 상황을 지켜본 것이다.
모두가 제갈협진의 대가리에서 나온 계략이 분명하다. 양소방이 자신의 행적을 개방에게까지 감추어 가며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닌 것도 아마 그 때문일 터다.
그 과정에서 나까지 염두에 두진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조차 충실한 말로 움직여 역할을 다해 준 꼴이고…….
이거 좀 열 받네.
그 망할 자식을 아주 열과 성을 다해 도와준 게 됐잖아?
뭐, 하지만 상관없다.
진무에게는 적생이 있다.
이제 양의심공을 얻었으니 원래의 무력을 찾게 되면 북리도천과 자웅을 겨뤄 볼 자신도 있었다.
먹물의 한계는 분명하다.
지략만으로는 무력을 이길 수 없다. 거기에 적생이라는 희대의 현장형 군사까지 더해졌으니 새로운 사패천은 호랑이 등에 날개가 달린 격이다.
그래, 니들끼리 열심히 싸워라.
어차피 내 발아래 다 들어올 놈들이니.
진무가 그간의 상황을 이해한 것으로 만족하고 그 자리를 뜨려다가, 문득 든 의문에 현종을 불렀다.
“저, 현종 도장.”
“예!”
“혹, 제가 화산을 떠난 지 얼마나 지났는지 아십니까?”
금룡협에서 보낸 날짜가 얼마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명진 사숙께서 떠나신 것을 기준으로 하면 한 달 가까이 되었지요?”
“…….”
이 화산 도사 놈아 우리 사부님이 왜 니네 사숙이냐!
그런데 한 달이라고? 그렇게나 오래 지났어?
“그……렇군요. 한데 현종 도장께서는 어찌해 관군들과?”
“아! 도찰원에서 비리를 밝히는 과정에서 놈들이 관에 뇌물을 바친 것뿐만 아니라 꽤 깊은 관계를 유지했던 정황이 밝혀졌습니다. 해서 서안부의 경우에는 제가 연락책을 맡고 있습니다.”
아, 설명…… 좀 짧게…….
어쨌든 상세하니 쉽게 이해되긴 했다.
“그렇군요. 하면 고생하십시오. 전 이만.”
“벌써 가십니까? 옷차림을 보아하니 좀 쉬셔야 할 것 같은데.”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그럴 작정인데.
너랑 같이 있기 싫어서 그래.
진무가 속마음과는 달리 미소를 만면에 머금고 인사를 하는데.
“거기 서라!”
어디선가 들려오는 외침.
고개를 돌리자 하나의 인형이 빠르게 지붕 위로 도망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경공이 제법이다.
그리고 그 뒤를 뒤쫓는 검은 도복과 자색 도복을 입은 화산 무인들.
“저자는?”
“근래 종종 있는 일입니다. 아마 궁이 심어 놓은 세작 놈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전투가 끝나 가고 있지만 이곳저곳에 숨은 놈들이 많아서요.”
“아…… 그럼?”
“예. 쫓아가서 포획하든지, 아니면 죽일 겁니다.”
“…….”
“적이니까요. 한데 저 정도 수로 될지 모르겠군요. 뭘 처먹고 사는지 세작 놈들의 무공이 제법 강하던데……. 지난번에도 세작을 쫓다가 다섯이나 부상을 입고 놓쳤지 뭡니까.”
그건 니들이 약해서 그런 거야. 저놈들이 강한 게 아니라.
뭐 어쨌든, 이제 진짜로 상관없다.
지들끼리 다치든가 말든…… 잠깐만.
오호? 이것 봐라?
기똥찬 생각이 떠오른 진무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떠오른다.
지금 진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내공을 축적할 수 있는 먹잇감.
안 그래도 어떤 놈들을 잡아다가 내공을 빨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산짐승? 너무 오래 걸린다.
그렇다고 명색이 무당 도사가 정파의 무인들에게 내공을 뺏는 것은 조금 껄끄럽고, 사패천 예하의 무인들은…… 한 식구끼리 그러면 안 되지.
산채를 턴다고 해도 녹림 놈들이야 원체 약하니 마교라도 습격해야 하나 생각했는데 이게 웬 당과고 적옥춘이냐.
궁의 무인들.
적이시고, 죽여 드려야 하고, 생각보다 강하기까지 하시단다.
이 정도면 거의 기연이다.
이보다 좋은 먹잇감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더욱이 운이 좋으면 대랑이라는 노인네와 비슷한 실력의 무인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럼 정말 대박이다.
원래 센 놈이 뽑아 먹을 것도 많으니까.
흐뭇함을 주체할 수 없었던 진무는 현종과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헤어져 사람들이 뜸한 골목으로 들어가자마자 담벼락을 밟고 솟구쳤다.
남들이 알아보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까.
파팟!
지붕을 밟고 쾌속하게 달리던 진무가 민가의 마당을 스치며 널어놓은 옷 하나를 훔쳤다.
부욱!
소매를 찢어 낸 진무가 눈 아래를 가려 질끈 묶었다.
가만, 검은 어떻게 하지?
감지, 뭐.
어차피 약한 것들을 상대로 쓸 일도 없으니.
일휘를 둘둘 감아 허리춤에 비스듬하게 끼운 진무가 속도를 높였다.
파앙!
강하게 밟은 담벼락이 터져 나가며 무당의 제운종이 극성으로 펼쳐졌다.
흐흐흐.
궁이 이기든, 정무맹이 이기든 내 알 바는 아니다만.
이 새끼들아, 기다려라.
너희들의 내공을 모조리 빨아먹어 주마!
* * *
정소, 그는 관도 외곽에서 작은 잡화상을 운영하는 상인으로 위장해있던 영은당 서안지부 소속의 무인이었다.
정무맹 예하에 암약하던 ‘궁’의 세력이 일제히 붕괴함과 동시에 당주 무영으로부터 명령이 떨어졌다.
교토삼굴(狡兔三窟)
교활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파 놓는다.
교묘히 숨어 재난을 피하라.
명령을 받은 정소는 곧바로 모든 행적을 지우고 잡화점마저 처분했다.
그런데 이 망할 화산 놈들이 귀신같이 알고 자신을 찾아왔다.
서안 동림전장이 털렸을 때 전서구를 보내는 모습을 누군가 보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취리릿!
“……!”
뒤에서 날아오는 검기에 정소가 대경해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등 어림에 화끈함이 느껴진다.
망할 매화검.
변화가 너무 많다.
더욱이 쫓기는 입장이라 검격의 변화를 제대로 예측할 수가 없다.
그저 열심히 달리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뒤쫓는 화산파의 제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소는 경공을 전문적으로 수련한 영은당의 무인.
점점 더 거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법항! 놈이 너무 빠르다. 우회하겠다. 놈을 몰아라!”
매화검수 법진의 말에 법항이 고개를 끄덕인다.
법진이 이대제자 다섯을 데리고 방향을 꺾는 순간, 법항이 용천혈에 가공할 기운을 밀어 넣는다.
파앙!
순간적으로 터져 나온 폭발적인 기운으로 운용된 오행매화보(五行梅花步).
짧은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는 데는 경공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
단숨에 정소와의 거리를 좁힌 법항은 있는 힘껏 검을 뽑아 휘둘렀다.
슈아아악!
변화를 생략한 뇌전검(雷電劍).
운이 좋아 죽어도 좋고, 피한다 해도 원하는 곳으로 몰아넣는 것으로 족했다.
스거걱!
섬전과도 같은 속도로 그어진 검이 정소를 수직으로 갈라놓으려는 찰나.
피윳!
정소가 나무를 밟아 방향을 꺾는다.
콰드드득! 쩌억!
정소를 대신해 반 아름의 나무가 수직으로 갈라졌다.
아쉽지만 그걸로 되었다.
정소가 향한 방향은 법진이 이대제자들과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놈이 더 도망칠 곳은 없었다.
“거기 서라!”
그들이 예상했던 것처럼 앞길이 막혀 버린 정소가 급히 몸을 멈춘다.
사방에서 매화검기가 난무하니 멈추어 방비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깡! 까가강!
조금 전까지 도망치던 놈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현란하게 펼쳐진 검격이 매화를 허공에서 산화시켰다.
하지만 순식간에 그를 둘러싸는 화산의 제자들.
오갈 데 없어진 정소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놈들……. 오냐, 내 순순히 당해 줄 성싶으냐? 적어도 두세 놈은 저승길 동무로 삼아 주마!”
죽음을 각오하고 살기를 뿌리기 시작하는 정소.
“쳐라!”
그를 포위한 화산의 검수들이 일제히 검을 날렸다.
허공을 수놓으며 하늘을 가득 채운 매화검기가 정소를 뒤덮으려는 순간.
슈아아악!
깡! 까가가강!
어디선가 날아온 검기가 매화를 산산이 부숴 버렸다.
“…….”
그리고 바람처럼 나타난 흑의 복면인.
정소도 화산의 제자들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을 금치 못했다.
턱!
복면인은 머뭇거림 없이 마혈을 점해 혼절시켜 버린 정소를 옆구리에 끼었다.
“젠장! 놈을 잡…….”
파앙!
법진의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가는 흑의 복면인.
“뭐…… 저런?”
순식간에 일어난 일. 쫓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너무…… 빨랐다.
사람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있는데도 순식간에 점처럼 변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화산의 제자들은 그저 닭 쫓던 개가 되어 멍하니 그가 사라진 곳을 바라만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