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13
213화
섬서성(陝西省) 남부에 위치한 종남산(終南山)에는 오래전 하나의 도문이 있었다.
과거에는 도가의 전성기를 이끌었으나 현재는 망도(亡道)라 불리는 곳.
바로 전진파(全眞派)다.
하지만 금욕과 절제를 내세우며 성세를 구가했던 그들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고,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했다.
속세와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동안 그들의 세는 점점 더 약해져 갔고, 제자들의 수가 줄며 모두가 제 삶을 찾아 떠나갔다.
전진이 그렇게 망해 비어 버린 뒤, 종남산에 다시 문파 하나가 세워졌다.
종남파(終南派).
스스로를 전진의 마지막 속가제자라 칭한 사내는 자신의 수하들과 함께 종남산에 터를 잡고 제자들을 끌어모았다.
종남에 적(籍)을 두려 하는 자는 마도를 걷지만 않는다면 출신을 따지지 않고 받아들였고, 그로 인해 순식간에 세를 불리며 섬서성 남부의 패권을 장악해 나갔다.
그 후 몇 대를 걸쳐 역사를 이어 온 종남은 무수히 많은 제자를 배출해 내며 구파의 한 자락으로 성장했다.
전진의 속가제자가 전진의 이름을 앞세워 만든 문파.
그러나 이제는 누구도 종남을 가리켜 전진의 후예라고 말하지 않았다. 금욕과 절제보다는 철저한 세속주의를 추구하며, 개인의 수양보다는 이익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또한 개파 초기부터 문도들의 출신을 가리지 않았기에 시간이 흐를수록 정사의 무공이 모여드니, 지금의 종남에는 전진의 원형을 제외하고도 각양각색의 무공이 즐비하였다.
* * *
종남파의 초입.
평소보다 많은 무인들이 흉흉한 기세를 뿌리며 산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근래에 ‘궁’의 무리가 도처에서 출몰하여 정무맹 예하 전역에 비상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장안을 떠난 진무는 곧장 남쪽으로 내려와 종남산에 이르렀다.
“멈추시오! 이곳은 종남의 영역이외다.”
진무가 산문으로 다가서자 몸을 숨기고 있던 종남의 무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 언제든지 칼을 뽑을 수 있음을 알리듯이 검의 손잡이를 잡고 있다.
스윽.
이미 그들이 은신해 있음을 느끼고 있었던 진무가 미리 준비했던 태극패를 꺼내 보였다.
“무당의 진무라고 하오.”
“진…… 무당지검?”
이제는 유명하다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로 알려져 있기 때문일까?
이름을 말하자마자 종남의 무인이 깜짝 놀란 표정을 하며 다가와 태극패를 확인했고, 산문 주변에서 열 명 정도의 무인들이 진무의 얼굴을 보기 위해 추가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런! 무당지검께서 이곳을 방문하시다니. 영광입니다. 저는 종남의 제자 강혁태입니다.”
“…….”
진무는 그의 공손한 인사에 답하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혁태와 종남파 무인들의 옷차림을 살폈다.
오경은 분명 제 윗선이 종남파에 숨어 있다고 했다.
이 내공 충만할 새끼.
수하를 헌신짝처럼 생각하는 나쁜 놈의 새끼.
네놈은 특별히 잡아서 내공을 쪽쪽 빨아먹고 난 뒤에 단전은 물론 사지를 부러뜨려 놓을 것이다.
딱히 그놈을 잡아서 정무맹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여태까지 본의 아니게 가져다 바친 꼴이 된 것만도 아니꼬워 죽겠구만 돕긴 뭘 도와.
마음에 안 드는 거다, 그냥.
자, 어서 표식을 보여라.
정소와 오경의 팔오금에 남아 있었던 푸른 문양……이 있어야 하는데…….
“…….”
날카로운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던 진무가 순간적인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눈을 끔벅거렸다.
“복장이…….”
“……예?”
“그러니까…….”
진무의 표정에 강혁태가 제 동문들과 함께 고개를 갸웃거린다.
파, 팔을 봐야 하는데.
“진무 도장?”
“……예?”
“무슨 문제라도?”
“…….”
대부분 정파의 무인들은 소매가 넓든 좁든 장삼을 걸치고 있었기에 소매 안으로 팔이 드러나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놈들처럼 토수(吐手: 토시)에 행전(行纏: 각반)을 차고 있는 경우는 드물…….
아니 젠장 왜?
왜 팔다리를 꽁꽁 싸매? 뭘 한다고?
“아, 의복이 독특하여.”
“아!”
강혁태가 제 팔과 다리를 번갈아 보이며 웃는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군요. 본파의 검공 때문입니다.”
“…….”
“아실는지 모르겠지만 본파의 검은 쾌검식 위주이고 경공은 잠영보(潛影步)가 기본인지라.”
쾌검식에 잠영보.
아, 그렇구나. 그렇지.
점창의 검은 사일(射日)이요, 종남의 검은 섬전(閃電)이라고 하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니까.
즉, 둘 다 쾌검이란 뜻이다.
주가 쾌검이요, 또한 보법이 그림자 속에 감춰질 만큼 은밀하다면 공기 저항을 최대한으로 줄일수록 그 속도가 빨라질 테니 나풀거리는 소매와 바짓단을 묶은 것은 탁월한 선택이다.
하지만 탁월이고 나발이고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다.
확인해야 하는데…… 푸른 문양…….
“혹시 종남의 무인들이 전부?”
“당연한 일입니다. 오랫동안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지요. 무릇 검은 쾌에서 출발한다 하지 않습니까?”
강혁태가 제 사문의 검공에 자부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자랑할수록 진무의 표정에는 허망함이 차올랐다.
“자, 올라가시지요. 위명이 쟁쟁하신 무당지검께서 오셨다는 것을 아시면 장문인께서 크게 기뻐하실 겁니다.”
“……그런가요.”
“암요. 이번에 그 ‘궁’이라는 놈들과의 전투에서 세우신 혁혁한 전공이 이미 전 무림에 퍼졌습니다. 본파의 제자 모두가 대협을 흠모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흠모한다니 좋긴 한데.
진무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앞서는 강혁태를 뒤따랐다.
그래. 일단 올라가자.
설마하니 계속 입고 있기야 하겠는가?
분명 쉴 때는 편한 복장을 하겠지. 목욕을 하자면 필시 옷을 벗을 테고.
제길, 자칫하다간 팔자에도 없는 사내놈들이랑 사이좋게 목욕까지 하게 생겼잖아.
아니, 그런데 그럼 여제자들은 어떻게 하지?
아, 몰라. 일단 올라가서 생각하자. 올라가서…….
어지러워진 머리를 휘휘 저으며, 진무는 종남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정무맹 전위대의 전각.
제갈협진은 중원 전도를 놓고 지금까지 궁의 세력들과 전투가 벌어졌던 곳들을 보며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정무맹 예하 전역에서 일어난 한 달간의 전투. ‘궁’의 인물들과 결탁했던 세력은 지리멸렬했고, 각 지역의 문파들이 의심스러운 인물들을 뒤쫓고 있었다.
양소방과 개방의 정보력이 큰 빛을 발휘한 것이다.
‘궁’에 대한 조사는 정무맹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단강구에서의 화약 밀거래와 형주 인근에서의 인신매매.
그 모두가 관에서 엄히 통제하는 사항인 데다가, 이번에 서안부 관리의 비리까지 밝혀지는 바람에 황명으로 대대적인 감찰 조사에 돌입한 상황이다.
또한, 그 안에 무림 세력이 관여되어 있음을 알림으로써 제갈협진은 특별 조사권까지 얻어 내었다.
관리들에 대한 직접적인 조사를 할 수는 없었지만, 뒤늦게나마 원화정이나 중원 오대전장 같은 곳도 관리들과 공조한다는 조건하에 조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허사였다.
이미 그들은 모든 흔적을 지우고 증발한 것처럼 사라져 버린 뒤였다.
특히 사천에서 잡은 청랑대의 포로들과 곤륜에서 당세령의 심문으로 밝혀진 삼궁의 존재.
이미 양양에서 한번 놓쳐 버린 뒤, 삼궁주 상관평이라는 인물의 행적이 묘연했다.
개방도들이 중원 전역을 뒤지고 있고 관에 협조까지 부탁했으나 좀처럼 흔적이 드러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교와 사패천에 암약하고 있다는 일궁과 이궁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협조 서신을 보냈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해 버렸다.
그들로서는 당연한 거절이다. 누가 적대 세력과 연합하려 하겠는가? 자체적으로 조사하고 말지.
어쨌든 각지에서 ‘궁’의 세력들이 소탕되고 있는 동안 제갈협진이 찾으려 하는 것은 이미 지워지고 없는 삼궁의 흔적이다.
“백마사라…….”
공전계의 시발점이 되었던 백마사 전투.
양소방의 조사에 따르면 그곳에 분명 궁의 흔적이 남아 있었으나, 전투가 끝난 이후 잡은 것은 백마사의 중들뿐이었다.
와중에 직접적인 관여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를 백마사 주지 화청의 자결은 꼬리가 잘려 더 이상 쫓을 수 없는 단서가 되었다. 또다시 미궁에 빠진 것이다.
제갈협진은 사건의 진행 방향을 조금 더 거슬러 보았다.
그 끝점에 있는 인물.
진무. 참으로 희한한 인물이다.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검성에 필적할 만큼 뛰어난 잠재력을 지닌 무인 정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보인 행적은 가공할 정도였다.
은밀히 알아본 결과 그가 찾고 있는 것은 무당이 봉인해 버린 양의심공의 단초였다.
그 과정에서 이상하리만큼 궁의 세력들과 충돌했고, 그때마다 커다란 단서를 제공했다.
마치 자진해서 궁을 잡으러 다닌 것처럼.
“무슨 인간 자철석도 아니고…….”
제갈협진은 피식 웃고는 다시 생각을 정리했다.
“진무 도장은 동림전장과 원화정에 대해서는 어찌 알게 되었을까?”
꼬리를 무는 의문.
운이라면 천운이다.
공교롭게도 그 운이 그에게만 작용하는 것만 같았다.
때로 그런 팔자가 있다.
앞으로 넘어진 곳에는 돈이 떨어져 있고, 어쩌다 뒤로 넘어져도 대가리가 깨지기는커녕 푹신한 방석에 머리가 닿는.
결코 의도한 바가 아닐 것이다. 진무의 행보는 아무리 파고들어도 우연의 중첩 이상이 아니었다.
마치 저자에 이야기를 팔고 사는 매화자들의 말 속 주인공처럼.
어쨌거나 그 덕분에 제갈협진이 준비하고 있었던 공전계는 불 속에 기름을 부어 넣은 것처럼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대로 좀 더 우연을 발휘해 주었으면 했는데…….
그런데 이쪽에서 몇 년을 노력해도 쉽게 잡을 수 없었던 궁의 흔적을 귀신같이 족족 찾아내던 진무의 행적이 화산을 끝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찌나 아쉬운지.
그곳에서 만났다는 명진에게 서신을 보내 물어보았으나 모른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좀 물어보면 얼마나 좋은가?
아니, 제자가 중원을 떠돌고 있는데 속도 좋은 위인들이다.
걱정도 안 되는 것인가?
답답하기 짝이 없다.
어쨌든 개방을 비롯한 모든 문파에 무당지검의 행적이 드러나면 곧바로 전서구를 보내라는 명령까지 내려 두었으니 기다려 볼 일이었다.
“하아…….”
뭔가 풀릴 듯하다가 도로 머릿속이 안개로 가득 차 버린 듯한 느낌에 제갈협진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래서야 매달리는 꼴 아닌가. 내가 사람에게 이렇게 기대게 될 줄이야.”
평소 모든 전략과 전술, 진리가 책 속에 있다 믿어 온 그였기에 더욱 진무라는 커다란 변수 앞에서는 헛웃음만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아니지. 필시 단서는 있을 것이다. 놈들이 나타났던 곳, 놈들에게 포섭되었던 세력. 그리고 그동안 비흔께서 조사해 왔던 모든 단서를 종합해 보면 필시 놈들의 근거지에 닿을 수 있을 게야.”
제갈협진이 고민을 털고 중원 전도에 집중하는데.
딸깍.
문이 열렸다.
“대군사님.”
정무맹 내 전령을 전달하고 전투 지원을 담당하는 전위대의 무인, 양청이었다.
“자네가 어쩐 일인가?”
“종남에서 전서구가 왔습니다.”
“종남에서?”
제갈협진이 눈을 찡그리며 양청의 손에 들린 전서구를 받아 든다.
“엇!”
펼치자마자 그의 눈에 들어온 이름에 제갈협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당지검 진무.
그가 종남에 나타났다고?
듣기로는 명진이 이미 양의심공을 전했다고 했는데?
어째서 다시 구파의 한 곳에 나타났단 말인가?
제갈협진은 뜬금없는 그의 행적에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 회전이 급속도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양천!”
“예!”
“지금 즉시 이 사실을 비흔께 전해라!”
“……종남에 무당지검이 있다구요?”
“아니!”
양천의 질문에 제갈협진이 입꼬리가 찢어질 듯이 올라간 채로 말했다.
“종남에서 무언가 일어난다고.”
“…….”
“비흔께서 직접 종남파로 가야 한다고 전해라. 또한 종남 인근 문파들은 지금 즉시 종남산에 은밀히 집결하라고 해! 이는 정무맹 대군사의, 아니 맹주님의 명령으로 시행한다.”
“종남에도 전할까요?”
“…….”
그를 잡아먹을 듯이 째려보는 눈길에 양천은 흠칫 떨었다.
늘 냉정하고 침착하기만 하던 대군사의 저런 살기등등한 표정이라니.
“자네 미쳤나? 은밀 몰라?”
“…….”
“종남은 빼. 알겠나?”
“예!”
양천이 기겁한 표정으로 대답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흐흐흐.”
제갈협진이 평소에 품어 왔던 생각.
진리는 책…….
진리…….
그게 뭔데?
인생은 운이다, 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