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
진무는 장문인은 물론 종남의 제자들에게 커다란 환대를 받았다.
종남의 노인네들은 뭐든 챙겨 주고 싶어서 난리였고, 제자들은 마치 자신들의 우상이 나타나기라도 한 듯 똥개 새끼처럼 온종일 진무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비무를 청해 오는 놈이 한 시진에 십수 명도 넘는다.
“화산의 매화검진을 홀로 상대하셨다면서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곤륜의 진룡 어른과 겨루어 동수를 이루셨다는 것이 진짜입니까?”
“천웅방을 상대로 공동의 제자들을 구하셨다면서요?”
“비결이 뭡니까?”
“어떻게 하면 강해질 수 있습니까?”
“깨달음을 내려 주십시오.”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진무를 우러러보지만, 이놈들…….
당최 옷을 안 벗는다.
수련할 때는 당연하고, 밥을 먹거나 쉴 때는 물론 잠을 잘 때도 처입고 잔다.
벌써 며칠째 입고 있는 건지.
진무가 본 것만 해도 벌써 사흘째다.
말로는 비상령이 내려져서 언제든지 전투에 돌입할 수 있게 대비한 것이란다.
망할 비상령이 내려진 게…… 어?
설마 니들?
“저어, 그러면 그 옷은…… 언제부터?”
“대군사께서 일제 소탕령을 내리신 뒤부터니…….”
“…….”
서안에서 만났던 설명에 미친 화산의 현종에 의하면 백마사를 공격한 것이 대략 한 달 전이라고 했…… 한 달? 한 달이라고?
한 달이나 옷을 안 갈아입고 있었다고……?
이런 미친 더러운 자식들을 봤나.
수련을 하면 응당 땀이 날 것이고, 혹시나 손에 오물이 묻으면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옷에 닦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진무가 슬쩍 옆에서 히죽거리며 웃고 있는 종남파의 제자를 쳐다보았다.
종남 장문인 유진산이 불편함이 없도록 시중을 들라고 붙여 준 제자 유정안이다.
말이 좋아 시중이지, 이름하며 얼굴 닮은 꼬락서니로 보아 분명 아들이다.
따라다니며 친분도 쌓고 이것저것 배우라는 의도가 깔려 있겠지.
장문인 놈이 제 아들을 아끼는 마음은 알겠다만, 너무 편애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자세히 보니 옷 여기저기에 음식 먹다 흘러 말라 버린 흔적이, 좔좔 흐르는 땟국물 냄새가…….
“진무 도장?”
“가까이 오지 마!”
유정안이 의아해하며 다가오는 순간 진무가 호종보를 운용해서 훌쩍 뛰어 물러났다. 무려 삼 장이나 되는 거리를…… 단숨에.
“오오! 대단하십니다! 단번에 삼 장을 물러나시다니. 그것도 퇴보(退步)로! 과연 무당지검!”
“…….”
외침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주변에 있었던 종남의 제자들이 눈을 크게 뜨고 또 우러러보며 다가온다.
이런 젠장!
망할 더러운 놈들이 떼거지로.
진무는 일단 작전상 후퇴를 위해 다가오는 놈들을 피해 빠르게 도망쳤다.
똥은…… 정말로 더러워서 피하는 거다.
* * *
종남에서 나흘째.
진무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종남 제자들의 소매를 들출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한 놈씩 기절을 시켜서 확인할 수도 없고, 잠깐만 옷 좀 벗어 보세요, 라고 할 수도 없고.
팔 좀 걷어 보라 했다가 사람들에게 소문이라도 나면 숨어 있다는 세작 놈이 눈치를 채고 몰래 도망칠지도 모를 일이다.
아 정말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도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심지어 한 달이나 옷을 안 벗었다면 분명 목욕을 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으…… 더러운 놈들.
“어찌한다.”
골머리가 아파져 온 진무가 종남파의 제자들을 피해 정문 밖에 나와 있는데.
“…….”
멀리 익숙한 모습을 한 인간이 보인다.
누구더라.
한걸음에 삼 장씩 휙휙 날아오는 게.
“대단한 경공술…… 거지새끼?”
진무의 눈썹이 희한하게 일그러졌다.
아니, 저 인간이 종남에는 왜 왔지?
더구나 저 반가워서 죽겠다는 표정은 또 뭐야?
“하하핫! 진무 도장!”
“……”
어느새 다가와 함박웃음을 짓는 거지 노인의 모습에 진무가 어쩔 수 없이 일어나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무풍개 어른을 뵙습니다.”
“하핫! 오랜만일세, 정말 오랜만이야. 사천 이후로는 처음이지?”
“……예에, 그러네요.”
진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했지만 양소방은 그저 반가운 표정일 뿐이었다.
“한데 종남에는 어찌?”
“자네가 있다는 소식에 대군사가 서둘러 가 보라 했네.”
“…….”
그게 무슨 소리지?
종남을 방문한 이유가 나 때문이라고?
“응? 이 사람.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겐가?”
이 거지새끼가 뭘 모르는 척을 해.
뭔 소리를 지껄이는지 전후좌우로다가 설명을 해 줘야 알 것 아니야.
진무가 계속해서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자 양소방이 헛기침을 하고는 주변을 힐끗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소곤거렸다.
“뭔가 있겠지?”
“…….”
“자네가 종남에 온 이유 말이야.”
……그러니까 지금 내가 양소방이다, 무풍개라는 별호를 투전판에서 따먹은 게 아니다, 뭐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근데 와중에 또 어떻게 알았지?
하여간에 대단한 노인네.
제갈협진이 그저 진무의 운빨(?)을 믿고 양소방을 보낸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진무는 그저 그들의 정보력이 대단하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하긴, 다른 이도 아니고 제갈협진과 양소방이다.
‘궁’의 세력을 소탕하던 중에 무언가를 알아낸 것이 틀림없다.
사로잡은 포로도 제법 될 테니 아마 심문 중에 누군가 종남을 거론한 것이 틀림없었다.
하여간에 귀찮게 되었다.
만만한 영은당 놈을 찾아서 내공이나 빨아 보려 했는데 쓸데없는 방해꾼이 끼어든 셈이다.
아오, 하필이면 양소방이 나타나서는…….
“역시 어르신께서도 알아내신 모양이군요.”
“…….”
진무가 주변을 슬쩍 살피며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데.
“뭘?”
“……예?”
양소방이 갑자기 멀뚱한 표정을 지었다.
응? 왜 그런 표정이지?
뭔가 이상함을 느낀 진무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좁히는데.
“아이구! 무풍개 어르신이 아닙니까!”
양소방이 방문했다는 소식에 종남파의 장문인 유진산이 버선도 신지 않고 날 듯이 달려왔다.
“아, 오랜만이오, 장문인.”
“무당지검에, 어르신까지. 이게 웬일이랍니까? 우리 종남에 귀인이 두 분이나 찾아오시다니요.”
“귀인은 무슨. 일이 바빠 자주 찾아오지 못하였네. 미안허이.”
“무슨 그런 말씀을요. 자, 어서 들어가시지요. 제가 뫼시겠습니다. 무당지검도 들어가세나.”
“…….”
유진산의 청에 양소방이 껄껄 웃으며 따르고, 진무가 그 뒷모습을 째려보았다.
자신의 말에 양소방이 지었던 표정.
종남에 무언가 있음을 알고 찾아온 게 아닌가?
구질구질하게 남의 사생활이나 캐는 양소방은 몰라도 제갈협진 그 얌생이가 확실한 증좌도 없이 그냥 보냈을 리는 없는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양소방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표정이었다.
젠장, 이거 왠지 내 무덤을 판 것 같은데…….
* * *
장문인 유진산과의 환담은 꽤 오랜 시간 동안 이어졌다.
뭘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쓸데없는 이야기로 이야기를 하며 차를 몇 잔이나 마셨는지 모를 정도였다.
자리는 해가 어둑해지고 밤이 찾아오고 나서야 파했고, 노인네들의 끝 모를 환담에 완전히 지쳐 버린 진무가 터벅거리는 발걸음으로 숙소로 향했다.
“이보게.”
“왜요?”
“이 사람, 모처럼 만났는데 그냥 쉬려는가?”
“……?”
진무가 눈을 찡그리며 돌아보자 양소방이 아무것도 잡지 않은 손을 꼬아 입에 들이키는 시늉을 하며.
“오랜만에 만났는데, 한잔……?”
말을 하다 말고 엄지로 콧잔등을 쓱 훑는가 하면, 혀를 입천장에 붙였다가 뗐다 하며 깍깍대는데.
난데없이 이 야밤에 취권을 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한잔하자는 의사 표시를 꼭 저렇게 유난을 떨면서까지 해야 하는 걸까?
“어떤가? 장문인에게 말해서 몸보신할 구육(狗肉)도 구해 놓았는데?”
“…….”
구육, 개고기란 말이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개방 거지들은 개고기를 참으로 좋아한다.
오죽하면 개방의 대표적인 무공이 개 때려잡는 타구봉법(打狗棒法)이겠는가?
더욱이 마지막 초식의 이름이 천하무구(天下無狗), 하늘 아래 개가 없을 정도로 때려잡는다니 알 만하다.
중원 천지에 개라는 개는 아주 씨를 말려 놓을 거지새끼들.
사람과 가장 가까운 짐승이자 충성의 표상과도 같은 그 순박하고 귀여운 것을 먹으려 하다니.
하지만 몸이 원래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꿀꺽…….
진무의 울대가 노골적으로 상하 운동을 하자 양소방의 얼굴이 진한 미소가 지어졌다.
“가세!”
“…….”
딱히 개고기를 먹으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무림의 어른이신 양소방의 권유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그…… 요새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녔더니 몸이 좀 허해서…….
진무는 말없이 양소방의 뒤를 따랐다. 빠른 걸음으로.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산의 중턱에 포도송이처럼 달라붙은 모양새로 지어진 종남파.
산 정상으로 가는 종남파의 뒷문을 나서서 한참을 가다 보면 누군가의 수련장으로 보이는 공터가 있었다.
“오 벌써 준비가 한창이구먼.”
“…….”
양소방의 말대로 그곳에는 진무를 이틀째 따라다니던 장문인의 아들 유정안과 숙수로 보이는 인물이 숯불에 구운 고기를 손질하고 있었다.
“장문인께서 제대로 대접하라 하여 본파의 대숙수를 불렀습니다.”
유정안의 소개에 중년의 숙수, 목춘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를 바라보는 진무의 눈빛이 게슴츠레했다.
대숙수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의 정체.
그리 대단할 것 없는 기운이지만 분명히 사기(邪氣)다.
어째서?
종남은 정무맹 예하 구파의 하나인데, 어찌 사기가 선명한 인물을 숙수로 쓴단 말인가?
설마 이놈이 세작?
진무가 목춘을 노려보고 있자 유정안이 눈치 빠르게 말했다.
“의아하시지요?”
“……?”
“원래 저희 종남파는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습니다.”
유정안의 말에 양소방이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진무 도장은 종남이 처음이니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할 만하지. 사실 종남파는 말일세…….”
“…….”
양소방이 유정안을 대신하여 종남파의 역사에 대해서 진무에게 설명했다.
정사에 관계없이 사람을 등용한다라?
참 희한한 놈들이다 싶지만 마음에는 들었다.
사파라 하여 대놓고 손가락질하는 것이 아니라 뜻이 맞고 옳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받아들인다 하니, 어찌 보면 종남파의 그런 생각은 자신과도 비슷하지 않은가?
대숙수 목춘은 과거에 낭인 생활을 오래 했다고 했다.
낭인치고는 느껴지는 기운이 상당한데.
뭐, 숙수가 무공을 모르라는 법도 없다. 푸줏간에서 고기나 썰던 백표도 있었는데…….
어쩌면 백표만큼 고기를 잘 썰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괜스레 입 안에 침까지 고인다.
그리고 더불어 이제껏 풀리지 않았던 의문 하나가 더 해소되었다.
괜히 종남에 세작이 숨어든 것이 아니다. 애초에 종남의 분위기가 그러하다면 세작질하기엔 실로 최적인 것이다.
의문이 풀린 진무가 일단의 경계를 풀고 양소방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러 순배가 돌고, 구육에 배가 불러 올 때가 되었을 때.
“둘이 긴히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자네들은 자리를 좀 피해 주겠는가?”
“알겠습니다.”
양소방의 청에 구육을 담은 접시 하나를 더 내어놓은 유정안이 목춘을 데리고 물러났다.
그리고 그들의 기세가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 양소방이 기운을 일으켜 주변에 얇은 기막을 만들었다.
주변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음에도 소리를 차단했다.
지금부터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그만큼 비밀스럽다는 뜻이었다.
술잔을 내려놓은 양소방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진짜 이유를 말해 보게. 종남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
진무가 양소방을 가만히 쳐다보며 웃었다.
어쩐지 술 먹자고 할 때부터 이상하더라니.
양소방은 지금 진무가 알고 있는 단서가 필요한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이놈의 거지새끼가 거래의 기본을 모르네.
일단 서로가 가진 패를 슬쩍 보여 줘야지. 대놓고 내놓으라니?
“무슨 말씀이신지?”
“…….”
진무는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니 패부터 까라, 영감탱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