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2
22화
“무당이라고?”
“예.”
“흠.”
한 사람이 쓰기에는 과도하게 큰 집무실.
서류 더미를 쌓아 놓고 있던 중년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고고한 학사의 차림에 고집스러움이 잔뜩 묻어나는 인상을 가진 이는 단강 제갈분가를 이끌고 있는 제갈무린이었다.
이른 아침 막 업무를 시작하려는데, 시찰을 나갔던 둘째 아들 제갈근이 면담을 청해 왔다.
그런데.
“무당의 일대제자인 진무라는 자가 이대제자 두 명과 함께 방천현에 나타났습니다.”
“진무?”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일대제자라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무당이라는 이름이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산에 처박혀서 나오지 않던 이들이 갑자기 어찌 모습을 드러낸단 말인가?
“어떤 인물이더냐?”
“무척이나 특이한 인물이었으나, 적어도 범 새끼는 되는 듯하였습니다.”
“확인해 보았다는 이야기로구나?”
“…….”
제갈근은 아비에게 차마 자신이 패했다는 사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방가후를 보내 시험해 보았으나…….”
제갈근이 뒷말을 흐렸으나 범 새끼라 했으니 졌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쯧쯧, 직접 나서지 않고……. 무당의 일대제자에게 창피를 당했단 말이냐?”
“죄송합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들의 뒤를 밟아 보았습니다.”
제갈근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뒤를 밟아 보았다?”
“예. 아버님께서 신경 쓰실 듯하여.”
“흐음. 그건 잘한 일이로구나.”
방가후가 패배했다는 말에 언짢아졌음일까. 제갈무린의 눈동자에 탐탁지 않음이 느껴졌다.
“그래. 그들이 어디로 향하더냐?”
“지금 청양상단에 들었습니다.”
“청양?”
익숙하지 않은 이름인지 제갈무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강구에 있는 상단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제갈무린이었으나 청양상단의 이름에 대해서는 기억나는 바가 없었다.
그러다 문득.
“청양, 청양이라. 설마 외하구에 있는 그 청양상단을 말함이냐?”
“예. 아마도 무당과 연을 맺은 듯합니다. 한데 어찌?”
되묻는 연유를 알지 못한 제갈근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제갈무린은 되레 웃음을 터트렸다.
“뭐라? 하하하, 이거 참 놀랄 일이구나. 무당이 궁핍하게 살더니 제대로 미쳐 가는 게로구나. 청양상단과 연을 맺어?”
청양상단은 제갈가와 손잡지 않은 곳이라 제갈근은 잘 알지 못했다.
“청양상단이 어떤 곳인지 아느냐?”
“죄송합니다. 소자가 부족하여 미처 그것까지는.”
“내 기억이 맞다면, 번듯이 상단 행세는 한다만 실상은 밀수나 하는 쓰레기들이지.”
“예? 설마 무당이 밀수에 손을 댄단 말입니까?”
“그럴 리가 있겠느냐? 아마도 모르고 그랬겠지. 속세를 떠나 있던 도사 놈들이 어찌 그 사실을 알겠느냐.”
“한데 어찌 무당이 그런 자들과…….”
“그건 모르겠다만 무당과 청양상단이 연을 맺다니. 듣던 중 반가운 소리가 아닌가. 크하핫!”
제갈무린이 고개가 젖혀지도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니 청양상단을 찾은 도사가 좀 이상하기는 했습니다.”
“이상하다?”
“예. 육식에 음주까지 하더군요. 돈도 좀 밝히는 것 같고.”
“뭐라? 일대제자가 말이냐?”
“예.”
“이런, 이런. 무당이 절로 망해 갈 모양이다. 내심 그들이 다시 활동을 재개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거늘.”
제갈무린은 앓던 이가 저절로 빠진 듯이 기뻐했다.
“한데 신경 쓰이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방천현에서 우가장의 조방을 보았습니다.”
“조방?”
“예. 우가장의 무사부입니다. 당시에는 생각지 못하였으나 그가 무당의 도사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호오? 우가장이 무당을?”
제갈무린이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빙긋 웃었다.
“그러고 보니 우가장의 아들이 무당에 있다 하지 않았더냐?”
“예. 진혜라고 합니다.”
“그래, 진혜. 그리고 청양상단에 온 도사는 진무라 했지?”
“예.”
“흐음, 진혜와 우가장, 청양상단이라.”
제갈무린은 가늘어진 눈을 하고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그렇군. 과연 그래. 크하하핫!”
한참을 생각하던 제갈무린이 다시금 파안대소를 했다.
“어찌?”
“소 피나 빨아야 할 쇠파리 따위가 아예 소를 잡아먹으려고 하는구나.”
쇠파리는 소나 양, 말과 같은 숙주의 등에 붙어 피를 빨아 기생하는 곤충이었다.
하지만 어찌?
제갈근은 아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고개만 갸웃거렸다.
“잘되었다. 뒤가 구린 것들이 뭉쳤으니 냄새가 아주 진동을 하겠어. 흠, 어떻게 한다? 멍청한 놈이 무당의 주인이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가늘게 뜬 제갈무린의 눈이 음흉하게 빛났다.
“설마 그들이 무당을 집어삼킨단 말입니까?”
“집어삼켜? 당치도 않는 소리. 제 아가리나 찢어지지 않으면 다행이지.”
제갈무린이 기가 차다는 듯이 웃었다.
“어찌 되었든 좋은 기회다. 적어도 망해 가는 무당의 이름에 제대로 똥칠을 해 줄 수도 있겠어. 다시는 이 단강구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말이야.”
“예?”
“근아.”
“예.”
“지금부터 네가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
“말씀하십시오.”
“지금부터 그 무당 도사 놈들이 하는 일을 소상하게 알아보거라.”
“혹, 그들이 청양상단과 함께 불법적인 일에 관여하는가를 확인하시기 위함입니까?”
제갈근의 추측에 제갈무린이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되면 훨씬 더 좋을 테지. 어쨌든 내 너에게 청화대(靑花隊)의 무인 스물을 내어 주마.”
“처, 청화대를요?”
제갈근이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청화대는 가주 직속으로 편성된 무인대 중 하나로 단강 제갈분가의 주 전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직 한 번도 후계들에게 청화대를 내어 준 적이 없었다.
그만큼 기대를 건다는 뜻.
“오냐. 무당의 도사들을 주시하거라. 운이 좋아서 그들이 눈먼 칼을 맞고 죽어도 좋고, 혹여 무당의 도사들이 불법적인 일에 연루되면 네가 직접 잡아 오너라.”
“알겠습니다.”
제갈근이 힘차게 대답했다.
제갈분가의 소가주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제갈무린의 성격상 적자 승계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누가 더 세가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
그것이 소가주를 선택하는 조건이었다.
제갈무린이 저리 기뻐하고 있으니 눈에 들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더구나 청화대다.
한차례 싸워 본 진무라는 도사의 무공은 자신보다 훨씬 더 강했다.
감히 그 수위를 추측할 수가 없었다.
다시 싸운다 해도 이길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청화대의 무인 스물이라면? 무당의 장로급조차 쉽게 승부를 자신하지 못할 전력이었다.
‘놈, 원한을 톡톡히 갚아 주겠다.’
제갈근은 다시금 힘차게 대답했다.
“반드시 명을 수행하겠습니다.”
“오냐. 너를 믿겠다.”
제갈무린이 일어나 제갈근의 어깨를 두들기며 격려했다.
* * *
“진무 도장 계십니까?”
진무 일행은 청양상단에 도착한 이후 작은 전각 하나를 통째로 배정받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말이 작은 전각이지 후원에 정자까지 있어 셋이 쓰기에는 무척이나 큰 곳이었다.
저녁이 가까워 오는 시간, 일을 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던 금적산이 총관과 함께 후원으로 찾아왔다.
딱히 할 일이 없어 청우와 청상의 대련을 보며 수련을 도와주고 있던 진무가 반갑게 일어났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대인.”
의외로 진무는 공손했다.
“허허, 내 무당을 찾았을 때 도장께 큰 관심이 있었는데, 오신다는 말씀을 듣고 어찌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금적산이 과할 정도로 예를 갖추며 웃었다.
“그런데 옷차림이…….”
“아, 오는 길에 작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저런, 어떤 쳐 죽일 놈들이 무당의 도인분들에게!”
금적산이 눈을 부릅뜨며 당장이라도 찾아내겠다는 듯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괜찮습니다. 이미 끝난 일인 것을요.”
“이거 안 되겠습니다. 제가 호위라도 붙여 드려야 마음이 편하겠습니다.”
“하핫, 대인의 마음 씀씀이에 감사드립니다.”
“감사라니요. 이제 무당과 저희는 이제 한 식구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수십 년을 알아 온 이들에게 짓는 듯한 웃음이었으나 진무는 속으로 음흉하게 웃었다.
과도한 친절.
이유 없는 친절의 이면에는 항상 무언가가 감추어져 있는 법이다.
그리고 진무는 이미 금적산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훤히 알고 있지 않던가.
하지만 마음을 드러내는 것은 하수나 하는 짓이다.
“하하, 상단주님께서 그리 생각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안 그래도 장문인께서도 각별히 신경을 써 도우라 말씀하셨습니다.”
진무가 순수하게 말을 받으며 웃었다.
“아 그래요? 이런 감사할 데가…… 허나 저희 같은 작은 상단에 무슨 일이 있겠습니까? 옷을 갈아입고 올 테니 저와 함께 단강구 구경이라도 나가시지요. 저녁 식사도 할 겸.”
“아, 그래도 되겠습니까? 안 그래도 저나 사질들이나 속세는 처음인지라.”
진무가 어울리지 않게 부끄러워하며 뒷머리를 긁자 금적산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이해합니다. 아, 그리고 계시는 동안 혹여 단강구에서 돈 쓸 일이 생기면 청양상단의 이름으로 사용하십시오.”
“엇, 정말입니까?”
“암요. 한 식구나 다름없다 하지 않았습니까.”
금적산이 넉넉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무는 그의 말이 너무도 반가웠다.
금적산의 시커먼 꿍꿍이속을 모르지 않았기에 어떻게 뽑아 먹을까를 고민하고 있던 진무였다.
대놓고 돈을 대 주겠다고 하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상단에 대한 파악만 끝나면 닥치는 대로 빨아먹어 망하게 할 생각이었는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이다. 비열함으로 따지면 중원 대표급을 자부하는 진무였다.
“저어, 하면 혹시 포목점에…….”
“아! 옷을 주문하셨습니까?”
금적산이 세 사람의 허름하고 찢어지고 피까지 묻은 옷을 다시 한번 힐끗거렸다.
“예. 천가 포목이라는 곳에.”
“그곳이라면 잘 알고 있습니다. 총관에게 일러 값을 치르라 하지요.”
“감사합니다. 대인!”
“하핫, 수행에 매진하시는 도사님들께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부담스러워 말고 말씀만 하십시오.”
“부끄럽습니다.”
진무가 얼굴을 붉히곤 뒷머리를 긁적이며 음흉하게 웃었다.
“허허, 그럼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제가 속히 환복을 하고 오겠습니다.”
“예.”
진무 일행의 숙소를 나온 금적산의 표정은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 싸늘했다.
“총관!”
“예, 단주님.”
금적산의 부름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총관 이치성이 대답했다.
“지금 즉시 우가장에 연락을 보내라. 무당의 도사들이 도착했다고.”
“알겠습니다.”
이치성은 두말하지 않고 대답했다.
우가장과 금적산의 밀약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가장은 무당의 일대제자 진혜의 본가였다. 청양상단이 무당과 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우가장과 진혜가 힘을 써 준 덕분이었다.
무당에서 제자들을 청양상단으로 보내겠다는 소식이 왔을 때 약간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혜가 아닌 진무.
당연히 진혜가 올 것이라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금적산은 무당을 찾아갔을 때 보았던 진무를 기억하고 있었다.
진혜의 사부인 명공에게마저 인정을 받고 있는 무당의 제자.
어쩌면 그가 대제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곧바로 우가장에서 연락이 왔다. 우가장은 손님으로 오는 도사들을 노리고 있었다.
청상이라는 제자의 옷차림을 보았을 때 벌써 우가장으로 인해 한차례 습격을 받은 것이 틀림없었다.
‘걸림돌이라고 생각을 했겠지.’
딱히 상관은 없었다.
진혜를 도와 대제자로 만들고 장문인에 오르게 한 뒤 무당의 이름을 이용하기만 하면 된다.
아니, 오히려 진무보다는 진혜가 되는 것이 훨씬 더 낫다.
은밀한 밀약을 나누는 것은 깨끗한 놈보다는 뒤가 구린 놈이 훨씬 더 나을 테니까.
“저, 그런데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뭐가?”
“무당의 제자입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상단에 피해가.”
“총관.”
“예.”
“우린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자신들은 관계없다.
진무 일행의 문제는 우가장에 맡겨 두면 될 일이었다.
자신들은 그저 한발 빠져 있으면 될 일이고 모든 책임은 우가장이 진다.
이로써 그들의 약점 하나를 더 잡게 되었으니 나쁠 것이 없었다.
그보다 급한 것은.
“총관.”
“예.”
“그 화약 밀수 건은 어찌 되고 있나?”
“아, 안 그래도 오 일 뒤 거래하기로 했습니다.”
“오 일? 준비할 시간은 넉넉하겠군. 관에서도 예의 주시하고 있으니 조심들 하고.”
“예. 철저히 준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