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27
227화
슥, 슥.
소도가 움직일 때마다 나뭇가지의 모양이 변하는 광경을 보며 진무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와!”
“오오!”
“히야……!”
황신이라는 놈, 원래는 뭘 하던 놈이었을까?
아름드리나무 기둥을 잘라서 식탁이며 의자를 뚝딱뚝딱 만드는 것을 보면 실력 좋은 목수였나 하는 생각도 들고.
파학!
갑자기 움직여 토끼 한 마리를 잡아 와서, 나뭇가지를 주워 모닥불을 피운다.
쭈욱, 그의 손길을 따라 단번에 벗겨지는 토끼 가죽.
대단하다.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짐승 중에 토끼 가죽 벗기기가 제일 어렵다.
아무리 잘 벗긴다고 해도 털이 남기 마련이고, 그건 곧 고기 맛의 하락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놈은 그런 게 없다. 아니, 순식간에 벗겨 낸 토끼 속살이 뭐 저리도 미끈하단 말인가.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토끼 요리.
조각낸 살점으로는 탕을 만들고, 그 와중에 두툼한 뒷다리는 불에 노릇하게 구워 낸다.
그 모습을 보면 또 목수가 아니라 잘나가던 객점의 숙수인가 싶기도 하고 말이지.
스윽.
“…….”
눈 깜짝할 새에 식사 준비를 마친 황신은 진무를 향해 토끼다리구이와 탕을 내밀었다.
“먹으라고?”
끄덕끄덕.
한 손에 뒷다리, 한 손에 탕 그릇을 받아들자 순식간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간다.
딱 하루.
진회루를 떠난 지 하루 만에 황신이라는 놈이 실로 데리고 다닐 만한 녀석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단지.
“…….”
진무가 황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가 똑바로 진무를 바라보면서 눈을 끔벅이곤 턱짓을 한다.
“왜 보냐고?”
끄덕끄덕.
아무리 외모가 비슷한 또래라지만, 어른 말씀하시는데 어린놈의 자식이 싸가지 없이 대가리만 까딱거리다니.
야, 내가 니 천주야. 너도 들어서 알지 않냐?
진무가 한쪽 눈을 무섭게 부라리자 황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히 잘못한 게 없으니 팰 수도 없고. 사람이 뭐 저리 과묵하단 말인가?
같이 있는 하루 동안 말을 한마디도 안 했다. 그쯤 되면 입이 텁텁할 만도 한데, 심지어 ‘아’ 하는 감탄사 한번 내지 않는 게…….
“혹시 너, 말을 못…….”
혹시나 선천적인 문제일지도 모른다 생각한 진무가 기분이 상할까 조심스럽게 묻는데 갑자기 황신이 눈을 크게 뜨고 귀를 쫑긋거린다.
“…….”
고양이냐? 개야?
뭘 듣긴 들은 모양인데, 아무리 청각을 집중해 봐도 들리는 거라곤 모닥불 타는 소리랑 바람 소리…….
파악!
진무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황신이 곁에 있던 나무를 밟고 차 오르더니 순식간에 그 끝에 닿는다.
와중에 빠르다. 무슨 날다람쥐도 아니고.
나뭇가지 사이로 휙 모습을 감추었던 황신이 손에 들고 온 것은 전서구였다.
아니, 날갯짓하는 소리 못 들었는데?
대단하다. 뭔 놈의 청각이. 저 정도면 초감각 아닌가?
하긴 냄새 잘 맡는 애는 하나 알고 있다. 당세령이라고…….
진무가 약간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황신이 이를 환하게 드러내며 웃고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저기?”
끄덕끄덕.
“그러니까 하늘에 날고 있는 걸 잡아 왔다고?”
끄덕끄덕.
“그러니까 그 날갯짓 소리가 들렸어?”
끄덕끄덕.
“…….”
아, 독심술이라도 배워야 하나.
그리고, 이제 고개 그만 좀 끄덕여라. 나도 자꾸 따라 하게 되잖아. 이 자식아. 말을 하라니까, 말을.
강의 경지가 완숙에 이른 나보다도 뛰어난 청각을 지닌 것을 보면 농아(聾啞)는 아닌 것 같다.
그들은 대체로 청력도 함께 잃은 경우가 많으니까.
그럼 왜 말을 안 하는 거지?
망할 허삼수 자식. 딸려 보내려면 제대로 된 놈을 보낼 일이지.
그러거나 말거나 황신은 전서구의 발에 달린 작은 통에서 쪽지를 꺼내 읽고는 진무에게 내밀었다.
하아, 말을 말자.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쪽지의 내용을 읽었다.
‘천주님께.’로 시작하는 장문의 서신에는 하오문의 수뇌부에 진무의 이야기를 전했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세찬이 녀석, 깜짝 놀라겠군.”
아마도 그럴 것이다.
묵룡의 전인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쉽게 흘려 넘길 만한 것이 아닐 테니까.
진무는 계속해서 그 아래의 내용을 읽었다.
서안부에서 세작이 잡히고, 정무맹의 감찰단이 움직이자 각 파에서 행동을 시작했다라.
그러거나 말거나 딱히 상관은 없었지만, 자신이 세운 계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는 것은 무척이나 흐뭇했다.
그런데 마지막 내용이 눈에 거슬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놈들이 천웅방으로 향하고 있다고?”
이게 무슨 소리지? 어떤 자식들이 천웅방을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인가? 겁도 없이?
진무의 눈이 잔뜩 찌푸려졌다.
하지만 내용은 그게 전부였다.
자세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는 건 아직 조사가 미진하다는 뜻.
“황신.”
“……?”
“전서구를 보낼 수 있겠지?”
진무의 물음에 황신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천웅방으로 접근하는 녀석들에 대해 알아보라고 해.”
“…….”
진무의 명령에 황신이 품에서 작은 서책과 휴대용 붓을 꺼내서 무언가를 빠르게 적었다.
언제든지 전서구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니, 역시 하오문도답게 준비성이 투철하다.
슥.
“…….”
자신이 적은 내용을 확인시켜 주는 황신.
아, 이 새끼 그냥 말 좀 했으면.
줘 패서 비명이라도 듣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웃는 게 너무 해맑아서 도저히 주먹이 안 나간다.
나이가 스물이라는데, 어째 생긴 것이 계집아이 같단 말인가.
넌 운이 좋았다. 내가 웬만해서는 여자랑 애는 안 건드리니까.
물론 당세령은…… 생긴 것 딱 하나만 여자니까 제외하고.
진무가 고개를 끄덕여 주자 황신이 쪽지를 말아 전서구의 다리에 꽂아 넣고 허공으로 던졌다.
푸드득.
멀리 날아가는 전서구를 바라보던 진무는 천웅방으로 가는 행로에 속도를 더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우명과 원공후라는 걸출한 놈들이 지키는 곳이지만 어딘가 불안감이 드는 것을 감출 수가 없었다.
“천천히 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서둘러 천웅방으로 가야겠다.”
진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신이 지금까지 그들이 머물던 흔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역시도 정말 빠르다.
파고, 묻고, 덮고.
순식간에 흔적이 지워져 간다.
거, 말만 좀 하면 참 데리고 다니기 편한 녀석인데.
어찌해서 자신을 따라다니는 녀석들은 죄다 저렇게 어디 하나가 결여된 놈들뿐이란 말인가?
멍청한 청우와 천우명, 모양은 도산데 산적과 수적만 보면 눈이 돌아가는 청상, 사람 기 빨아먹는 백표, 말도 안 되는 현장형 군사 적생, 흥분하면 옹알이하는 운암.
그리고 당세령은…… 그냥 또라이.
진무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흔드는데, 갑자기 황신의 표정이 이전의 해맑음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싸늘하게 변한다.
놀라울 정도로 차가운 표정.
휙휙.
고개를 돌리고 손가락으로 뭔가를 쓰는데…… 어지간하면 말로 하지.
진무가 뭔 뜻인지는 모르고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이자 황신이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 쏘아져 나갔다.
아, 어딜 갔다 오겠다는 말이었구나. 그래, 갔다 와라. 갔다 와.
그래도 경공이 제법인 걸 보면 역시 허삼수가 괜히 추천해 준 것은 아니었나 보다.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황신이 서 있던 곳을 멍하니 바라보던 진무의 시선이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은 자리를 향한다.
“정리…… 젠장, 내가 해야겠네.”
삶이 이리 변하든 저리 변하든 팔자는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기억의 형태로 그의 정신을 제약하던 도동의 존재. 영원히 허드렛일을 해야 할 것만 같았던 그 망할 놈의 팔자에서 기껏 벗어났나 했더니만……. 다 황이네, 황이야. 뒈지기 전엔 글렀어, 아주.
쉼 없이 투덜거리며 파고 묻고 덮고를 반복하는데.
챙!
“……?”
미세하게 귓가를 파고드는 쇳소리에 진무가 움직임을 멈췄다.
채앵!
기운으로 청력을 돋우자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소리가 점점 더 선명해진다.
황신이 뛰어간 방향인데, 설마 적인가?
뭐, 죽든 말든 알 바냐. 어차피 딸려 보내 준 놈인데…… 자꾸 걱정이 되는지 묻은 걸 도로 파내고 있네, 내가. 하하, 쌍.
“에이 씨! 진짜!”
진무가 손에 쥐고 있던 것을 거칠게 팽개치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적인지 뭔지는 몰라도 다 그놈 탓이다. 그 새끼만 나타나지 않았다면 내가 지금 뒷정리 따윌 할 이유도 없는 거잖어. 이미 황신이 다 하고, 우리는 천웅방 쪽으로 가고 있었을 거야.
파앙!
지면이 파헤쳐지며 흙더미가 튀어 오르고, 공기가 찢겨 나간 그 자리에 진무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 * *
까강!
들리는 것은 분명 쇳소리다.
그리고 소리에 이어 허공에 튀는 것은 날붙이 간의 부딪힘이 만들어 낸 불꽃.
까가강!
또다시 쇳소리가 울렸지만 정작 날붙이를 잡은 당사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날카로운 날이 머금은 예기가 스쳐 지나간 곳에는 어김없이 흔적이 남았다.
걷어차인 돌부리가 튀고, 모습을 드러내었던 은신자는 노려 오는 공격을 피해 순식간에 사라진다.
파사삭!
서로의 틈을 찾기 위해 빠르게 이동하며 공격을 날려 대는 그들의 무기에는 한 올의 기운도 실려 있지 않았다.
숨기고 떨치고 다시 숨긴다.
일반 무인이 아닌 은신자들 간에 벌어지는 생사의 싸움. 그들의 싸움에 숲이 오랫동안 유지해 온 원형을 잃어 갔지만, 싸움은 좀처럼 끝이 나지 않았다.
타닥!
어느 순간, 그들의 사이를 끼어든 소리가 모든 것을 정지시킨다.
쇳소리를 쫓아 온 진무.
막 도착한 그가 아름드리나무의 가지에 서서 아래를 쓸어 보았다.
아무것도 없다.
숨소리는커녕 사람이라면 숨길 수가 없는 심장 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적막감.
눈에 보이는 것은 상처 난 숲뿐이다.
하지만 진무는 그 안에 존재하는 둘의 기운을 확연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한 놈은 멀찍이 떨어진 바위 근처에, 또 한 놈은 진무가 밟고 선 아름드리나무의 밑동에.
익숙한 기운 쪽이 황신일 터였다.
제법이다. 그저 과묵하고 청각만 뛰어난 놈인 줄 알았는데, 은신술은 그보다 더 뛰어났다. 적어도 서안부에서 만났던 허삼수보다 훨씬 더.
진무조차도 가까이 접근해 기감을 집중하고 나서야 둘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근데, 황신은 어떻게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 은신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
참 신기한 일이었다.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을 것인데.
함께 오며 대충 느낀 바로 황신의 경지는 탄기 언저리다. 나이를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일이었다.
자신의 기척을 감추는 데 능한 은신자의 수준을 고려했을 때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경지일 수도 있었다.
아니, 요즘 무림엔 뭐 이리도 뛰어난 놈들이 많아?
탄기가 무슨 개 이름도 아니고, 이놈이나 저놈이나 만나는 놈들마다 기본이 탄기다.
하지만 무공의 고하는 경지만으로 나누어지지는 않는다. 누가 더 능숙한가, 자신이 가진 무공이나 기예를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가 승패를 결정짓는다.
서로의 목숨을 노리는 생사투라면 그것은 더욱 큰 차이를 가진다.
진무는 문득 황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런데…… 뭘 움직여야 확인을 할 것이 아닌가?
두 놈 다 기회 노린답시고 저렇게 숨어서 기다리기만 하면.
“얘들아. 해 진다.”
진무가 정중하게(?) 충고까지 해 주었건만 움찔거리면서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지. 싸움을 붙여 주는 수밖에.
피윳!
날카롭게 공기를 찢어 낸 지풍이 멀리 떨어진 바위를 향해 날아갔다.
퍼석!
바위가 부서질 정도, 딱 그만큼.
은신자를 노린 것이 아니다.
위기를 느끼고 피할 수 있을 정도의 속도와 위력.
파핫!
진무가 의도한 대로 바위에 숨었던 은신자가 움직였고, 황신이 재빠르게 쏘아져 나간다.
까아앙!
거친 쇳소리와 함께 또다시 싸움이 시작되었다.
원래 제일 재미있는 게 강 건너 불구경과 남들 싸우는 모습이 아니던가?
그저 지켜보기만 할 작정이다. 느긋하게 감상하며.
아, 응원이라도 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