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무영의 명령으로 서안부를 떠난 진무를 멀찍이서 감시하고 있었던 월영.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진무의 기감이 원체 뛰어나서 함부로 접근할 수가 없었다.
특히, 놈의 옆에 있는 놈.
가끔씩 자신의 위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곤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찾았지?
월영은 더욱 거리를 벌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것은 천웅방으로 향했던 종려군이 분봉대의 일부와 함께 말머리를 돌렸다는 것이었다.
진무를 잡기 위해 서안부로 돌아오고 있다는 의미.
무영의 계획대로 되어 가고 있다.
이제 자신이 할 일은 없었다. 그저 지켜보다가 진무의 위치를 제때 알려 종려군과 무당지검이 맞붙는 일에 일조하며, 무영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고기를 처먹으면서 쉬고 있던 놈들이 전서구를 날렸다.
그렇다면 그 내용을 반드시 알아야 했다. 무영의 계획에 작은 변화라도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암기를 날려 전서구를 잡았을 뿐인데, 함께 다니는 놈이 귀신같이 자신을 찾아왔다.
* * *
진무가 날린 지풍을 피하느라 움직인 월영을 향해 비수가 날아든다.
스걱!
소리조차 내지 않고 스친 비수에 옷자락이 예리하게 잘려 나갔다.
‘이, 이토록 빠른!’
아니, 점점 더 빨라진다. 월영은 구겨진 얼굴로 재빨리 근처의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며 칼을 휘둘렀다.
스슷!
공기를 가르며 다가오는 소리에 황신이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비수를 짧게 잡아 휘두른다.
슈슈슛!
셋으로 나누어진 예기가 허공을 날카롭게 찢어 내었다.
하지만 걸리는 게 없다. 물러나는 틈에 놈의 기척이 사라져 버렸다.
뛰어난 놈이다.
황신은 은위단의 무인들을 제외하고 이 정도로 뛰어난 은신자를 만나 본 적이 없었다.
모처럼 만에 찾아온 긴장감으로 소름이 돋아 오르자 황신은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황신은 원래 살수로 키워졌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만이 삶의 전부인 줄 알았던 그는 모종의 이유로 조직에서 버림을 받고 쫓기다 이 년 전 명세찬을 만나 구명지은을 입었다.
황신의 초감각에 가까운 청력을 인정해 그를 은위단의 막내로 받아들여 준 것이다.
사람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차 있던 황신이었으나, 은위단과 생활하며 조금씩 성격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짧은 시간에 마음을 터놓고 다가와 준 형제들의 진심에 감사했고,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얻게 해 준 명세찬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운명은 언제나 혹독했다. 사패천주가 죽은 이후, 하오문을 마치 돈벌이로 생각하는 유월청에 분개하는 명세찬을 보았다.
자신이 받은 은혜를 갚는 길은 유월청을 죽이는 것이라 믿었다.
어렸고, 혈기가 넘쳤다.
그러나 자신의 암살 계획을 알게 된 명세찬이 그에게 근신을 명했다.
그 이후로 서안지부장 허삼수가 운영하는 도박장에서 허송세월이나 보내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도 은위단으로 복귀하라는 명은 떨어지지 않았고 무료하던 삶에 찾아온 임무.
허삼수는 진무를 따라다니며 그의 동향을 면밀하게 감시하라고 했다. 만약 명령이 떨어지면 죽이라는 임무도 함께.
명세찬이 다시 은위단으로 불러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귀찮기만 한 임무를 내리다니.
천주고 뭐고 믿기지도, 내키지도 않았다. 그에게 주인은 오직 명세찬뿐이었고, 그가 직접 내린 명이 아닌 이상 어떤 것도 달갑지 않았다.
무엇 하나 제 의사와는 관계없이 시작된 여정.
그러나 황신은 모처럼만의 상대를 만난 것에 흥분해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자신의 모든 것을 토해 낼 수 있는 상대와의 만남. 그것이 그에게 끝없는 희열을 느끼게 한 것이다.
슛!
일부러 슬쩍 움직여 기감을 흩트리자마자 날아든 공격이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황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내었다.
소름 끼치는 흥분이 전신으로 퍼져 나간다. 생과 사의 경계에 놓여 있는 기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그 순간의 짜릿함을 알 수 없다.
은신이라는 것은 원래 사람들에게 박대받는 무공이었다.
하지만 모르는 소리다. 은신은 무공이 아니라 기예였다.
상대의 오감에서 완벽하게 벗어나는 것. 적의 사각에 숨어 시각에서 벗어나고, 바람을 마주함으로써 후각에서 벗어난다.
그런 뒤 귀식을 익혀 코와 입을 닫고, 피부 호흡을 극대화함으로써 숨소리를 죽이며, 맥이 뛰는 소리마저 감춰 청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다 종내 기를 죽이고 생기마저 흩어야만 은신의 완성이라 할 수 있었다.
수준 높은 은신자들 대부분이 그 과정을 거쳐 바람에 숨고, 물결에 녹아들고, 그림자에 스며든다.
황신은 거기에 더해 한 가지를 더 타고 태어났다. 바로 초감각의 영역에 있는 청각이었다.
남들보다 다섯 배 이상 발달한 청각은 굳이 기운으로 증폭시키지 않아도 그가 듣고자 하는 모든 것을 듣게 했다. 예외는 없었다. 기운을 집중하면 자신이 듣지 못할 소리는 없었다.
눈앞의 은신자는 강하다. 은신술로만 따진다면 자신과 거의 동급, 아니 그 이상에 달하는 능력을 가진 자다.
다행히 진무는 끼어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치 어디 한번 해 보라는 듯 팔짱까지 끼고 여유롭게 구경하고 있지 않은가?
얼핏 비웃는 것 같은 그의 표정은 마치 자신을 시험하는 느낌이라, 묘한 투쟁 본능마저 일어나게 했다.
하지만 진무가 나타남과 동시에 놈이 완전히 기척을 지워 버렸다.
적절한 판단이다. 놈도 자신을 쉽게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와중인데 진무까지 끼어들면 적잖이 곤란할 테니.
그림자 속에 모습을 숨긴 황신은 한동안 기다렸다.
새는 일찍 일어나야 벌레를 잡지만 은신자는 먼저 움직일수록 불리하다.
오래 버티는 놈이 이기는 싸움. 최후의 최후까지 기다려야 함을 안다.
하지만 마냥 기다려 줄 생각은 없었다. 쓰라고 하늘이 내려 준 재능을 뭐 하러 방치한단 말인가? 아깝게.
놈은 그저 자신의 먹잇감에 불과하다. 진무라는 자에게 보란 듯이 내가 이 정도라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윙, 위잉.
청각에 자신의 기운을 오롯이 집중하자 갑자기 그 영역이 확대되어 고막의 내부가 동굴처럼 울려 온다.
위잉, 위이이…….
메아리처럼 들리던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세상의 모든 소리가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황신의 머릿속을 울린다.
확대된 청력이 닿은 모든 곳은 이제 자신의 영역이나 다름없었다.
그 안에서 놈의 소리를 찾는다. 아무리 잘 숨었다고 해도 절대로 자신의 청각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찌르르 우는 풀벌레와 바람에 스치는 낙엽 소리.
스, 스…….
그리고 그 안에 자연스럽게 섞여 미세하게 들려오는, 낮고 고른 호흡 소리.
찾았다.
황신의 눈동자가 한곳에 집중된다.
풍경 속에 어우러져 있으나 미묘하게 그 경계가 다른 물체.
그것은 마치 숨은그림찾기와 같았다. 찾으려면 보이지 않으나 위치를 알고 나면 너무도 확연하게 보이는 것처럼.
점차 주위의 환경과 구분되어지는 상대의 모습이 점점 더 선명하게 그려진다.
놈은 아직 자신을 발견하지 못했다. 또한 진무의 존재가 그의 집중을 분산시켜 놓고 있었다.
스스스스.
황신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
진무는 단번에 변화를 눈치챘다.
이전보다 훨씬 더 은밀해진 황신의 움직임. 마치 먹잇감을 앞에 둔 범이 결정적인 기회가 올 때까지 소리 죽여 다가서듯 천천히 움직이고 있고, 적은 아직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끝났네.”
굳이 끝을 보지 않아도 결과를 알 것 같았다.
황신, 말을 안 하는 게 흠이지만 탐나는 인재.
그렇지 않아도 이제 사패천주가 되면 쓸 만한 부하들을 조금씩 늘려 갈 필요가 있었다.
은신? 그딴 거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인간보다 한 오십 배쯤 발달했을지도 모를 그 개(?) 같은 청력이다.
이 얼마나 축복받은 재능인가. 옆에 끼고 다니면 어지간한 위협쯤은 사전에 모조리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세상 그 무엇보다 뛰어난 경보 장치. 더욱이 하오문과 연결되어 있으니 전령으로 써먹기도 좋다.
그래, 결정했다.
“넌, 앞으로 부하 오 호다.”
파앗!
나지막한 말과 함께 송곳니를 비죽 드러낸 진무의 음흉한 미소와 동시에 황신이 움직였다.
일 장의 거리. 절대로 피할 수 없다.
푸푹!
지면을 박참과 동시에 모습을 드러낸 황신이 곧게 쏘아 낸 비수가 허공을 꿰뚫고 은신자의 목젖에 틀어박혔다.
“컥.”
숨골이 뚫린 탓에 비명은 크지 않았다.
은신이 풀려 버린 적은 핏물이 울컥거리며 흐르는 목을 움켜쥐고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그의 부릅뜬 눈동자에 가득 담긴 불신.
새끼, 제법이네.
일 장의 거리를 단번에 좁혀 버린 폭발적인 보법. 머뭇거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결정적인 한 수가 승부를 갈랐다.
누가 가르쳤는지 참 잘 가르쳐 놓았다.
황신은 사냥에 매우 능한 범이다. 범이 먹잇감의 목덜미를 물어 부러뜨리듯, 단 한 수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털썩.
기운이 흩어져 버린 은신자가 비틀거리다 균형을 잃고 주저앉고, 황신이 피 묻은 비수를 들고 진무를 바라보며 웃는다.
해맑게 잔인한 새끼. 그래도 미안한 척은 좀 해 주지.
나무에서 훌쩍 뛰어내린 진무가 은신자를 향해 다가갔다.
손을 휘저어 저항을 해 오지만 무의미하다. 이미 눈동자가 초점을 잃어 가고 있지 않은가.
부욱!
진무의 손아귀에 의해 찢어진 팔오금에 미세하게 새겨져 있는 푸른 문양.
“영은당의 졸개로구만. 아마도 나를 감시한 것이겠지?”
숨골이 뚫린 월영은 그저 바라만 볼 뿐, 대답하지 못했다.
뭐, 딱히 뭔가를 자세히 물어볼 생각도 없다. 어차피 이 새끼들은 지금껏 진무를 방해해 왔으니까.
아니, 잠깐만. 있다, 물어볼 거.
“야, 혹시 천웅방을 노린다는 놈들도 니들이냐?”
진무가 월영의 멱살을 잡고 눈을 부라렸지만, 이미 그의 생명은 꺼져 가고 있었다.
그들이 늘 해 왔던 자결도, 품속의 폭약으로 동귀어진도 하지 못한 채 월영은 천천히 고개를 떨궜다.
“염병, 몇 마디만 해 주고 가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별 미련 없이 손을 털고 일어난 진무가 턱 아래에 손을 대고 생각을 정리했다.
자신을 뒤쫓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종남의 세작을 기점으로 하여 정무맹에 잡입해 있는 세작들이 모조리 털려 나가게 생겼으니 화가 날 만도 할 터다. 아니, 아마 찢어 죽이고 싶겠지.
감시하고 있는 놈이 있다면 필시 뒤쫓아 오는 놈들도 있다는 뜻일 테고.
그런데 한 가지, 천웅방을 노린다는 의문의 세력. 그들도 ‘궁’이라는 놈들일까?
생각이 복잡해진 진무가 주변을 뒤져 은신자 놈이 죽여 버린 전서구를 찾아 안고 있는 황신을 슬쩍 째려봤다.
새끼, 뭣 좀 물어볼 수 있게 제압만 할 일이지.
답답한 마음에 노려보거나 말거나 황신이 놈은 자신이 이겼다는 것을 자랑이라도 하듯 어깨를 으쓱거린다.
……저놈에게 입은 그냥 장식일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중요한 건 어떤 개자식이 겁도 없이 자신의 뒤를 쫓고 있다는 사실이고, 앞으로 새로운 사패천의 초석이 될 천웅방을 노린다는 것이다.
“궁이건 뭐건, 내 걸 노린단 말이지? 간이 아주 부었구만?”
못된 생각을 할 때마다 생기는 그 미소가 진무의 입가에 떠오른다.
“황신!”
“……?”
“근처에서 하오문에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제일 가까운 곳이 어디냐?”
휙, 휘휘휙, 휙.
미(眉)……현(縣)…….
황신이 손가락으로 허공에 그린 글씨는 분명 그것이었다.
근데 이 새끼 끝까지 말 안 하네.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일어났다.
어쨌든 미현이라면 멀지 않다. 진무는 일부러 죽은 월영의 시신을 뒤집어 놓고는 놈의 손가락으로 바닥에 미현 두 글자를 적었다.
마치 죽어 가는 순간에 사력을 다해 남겨 놓은 것처럼.
의심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의구심을 가지더라도 놈들은 분명히 그곳으로 올 것이다. 일부러 그쪽으로 행적도 남길 생각이니까.
전서구가 죽어 버렸으니 미현으로 가서 천웅방을 노리고 있는 놈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자신을 뒤쫓는 놈들을 기다린다.
“가자.”
진무가 짧게 외치며 미현이 있는 방향으로 신형을 날리고, 황신이 재빨리 그 뒤를 따른다.
어서 와라, 이 새끼들아.
남의 것을 노리면 어찌 되는지 보여 주마.
그 지옥 같은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