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3
23화
진무가 청양상단에서 시간을 보내던 때.
우가장주 우문흠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조방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청양상단에서 연락이 왔는가?”
“예.”
“준비는?”
“저녁에 금적산이 단강구 야시장을 구경시켜 준다며 데리고 나온다 하였습니다.”
“그때 습격을 한다?”
“예. 금적산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틈을 타 습격할 생각입니다.”
“음.”
조방의 계획에 우문흠이 잠시 고민을 했다.
야시장이라면 보는 눈이 많다.
소란이 일어나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자칫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우리의 정체가 드러나서는 안 될 일인데?”
“해서 강변의 무월루에 자리를 마련하라 하였고, 입이 무거운 낭인들로 준비해 두었습니다.”
무월루(無月樓).
도심에서 떨어진 한적한 주루였다. 일을 벌이기에 꽤 적격인 곳이었다.
“무월루라. 좋군. 낭인은 어떤 자들인가? 듣자 하니 십언이흉도 당했다 하던데?”
“걱정 마십시오. 이번에는 제법 이름난 이들로 준비하였습니다. 또한 이번에는 공사척이 직접 나선다 하였습니다.”
“공사척이?”
“예. 이팔룡은 그의 사촌이 아닙니까. 우리가 이팔룡을 찾는다는 소문에 직접 연락을 해 왔습니다.”
“쯧, 또 얼마나 요구하려고.”
“어쩌겠습니까? 대공자께서 무당을 손에 넣는 일입니다.”
“음.”
우문흠이 고개를 끄덕였다.
“낭인들이 실패하면 그들이 직접 나설 것입니다.”
공사척은 단강구 일대에서 꽤나 알아주는 무뢰배 집단인 사척파의 두목이었다.
뒷골목 무뢰배임에도 검기를 사용할 수 있는 현기(顯氣)의 고수로, 우문흠 자신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실력이었다.
또한 이팔룡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수하를 거느리고 있었고, 사파의 거대 문파인 흑사방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어쨌든 공사척이라면 충분하겠군.”
“암요. 일대제자라 해도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들입니다. 이번엔 반드시 죽을 것입니다.”
“그렇군. 좋아.”
우문흠이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당의 일대제자, 진무.
그는 반드시 죽여야 했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만 했다.
우문흠은 자신들의 미래를 걸고 있었다.
무당의 제자를 죽인다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이었다.
잘못하면 다른 일대제자는 물론 장로들까지 검을 뽑아 들고 나타날 수 있는 일이었다.
사건의 연관성이 밝혀지면 공사척 패거리는 물론 우가장까지 모조리 털려 나가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험 부담이 큰 만큼 이득은 상상을 초월한다.
무너져 가는 무당이었다.
폐인이 되어 허름한 암자에서 세월을 보내는 명진 도장.
진무는 그의 도동이었던 자였고, 화적에게 가족을 모두 잃은 천애 고아였다.
더욱이 근래 무당 십계를 어기며 분란을 자초하고 있다고 한다.
그저 무공이 조금 뛰어난 일대제자는 무당의 수치에 불과할 것이다.
죽어도 슬퍼할 사람조차 없는.
‘그래. 긴장할 필요 없다. 그의 죽음에 우가장은 아무런 연관도 없는 것이다.’
우문흠은 진무가 죽는 즉시 공사척 패거리를 쓸어 버릴 생각이었다.
죽은 그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우면 된다.
그저 사파의 떨거지가 겁 없이 무당의 제자를 죽인 것으로 결론 나리라.
그들은 무당 제자의 복수를 한 우방이 될 것이고, 진혜는 점점 더 승승장구하여 무당의 꼭대기에 오를 것이다.
“반드시 성공한다. 우가장의 미래를 걸고!”
우문흠은 자신에게 다짐하듯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 * *
밤이 된 단강구.
중원의 이름 높은 강어귀가 그러하듯 단강구 강변은 밤이 깊어 갈수록 휘황찬란한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낮 동안 닫혔던 문이 열리고, 집집마다 홍등이 내걸리면 입은 듯 만 듯한 나의(羅衣)의 여인들이 지나가는 행인을 유혹한다.
“상공, 아잉, 잘해 줄게요.”
속이 훤히 비치는 나의에 속살을 드러낸 홍등가의 기녀들이 화장기 짙은 얼굴로 섬섬옥수를 감아 왔다.
“허억!”
“어흠!”
진무와는 달리 금적산의 뒤를 따라 홍등가를 지나는 청우와 청상이 시뻘게진 눈을 어디로 둘지 몰라 했다.
아무리 도포를 차려입은 도사라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이대제자, 아직 여인의 분 냄새를 견딜 만큼 수양이 깊지 않았다.
한창 피가 끓는 나이가 아니던가.
“어머, 도사네?”
“도사는 처음인데?”
기녀들이 금적산을 따라 홍등가로 들어온 진무 일행에게 관심을 집중했다.
“어린 도사니임~!”
살포시 다가와 팔짱을 끼고 가슴을 비벼 오는 여인에 청우가 콧구멍을 벌렁이며 세찬 숨을 쏟아 내었다.
“이, 이거 놓으시오. 왜, 왜 이러시오.”
“어머, 팔뚝 포동포동한 것 좀 봐. 이리 와, 응? 누나가 잘해 줄게.”
팔을 빼려 할수록 기녀는 청우를 뱀처럼 휘감아 당겼다.
“아, 아니.”
이것 봐라.
청우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진무는 보았다. 난감하다는 듯 거부하는 한편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작은 눈을 슬슬 음흉하게 빛내기 시작하는 청우를.
이 새끼, 즐기고 있구만.
진무가 가늘게 뜬 눈으로 청우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사, 사숙, 그게 아니라.”
아니긴, 이 새끼야. 네 완력을 내가 모르냐?
“진무 도장께서는 수양이 무척이나 깊으신 모양입니다.”
청우나 청상과는 달리 당황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진무의 얼굴에 금적산이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산중의 도인이 여인의 분 냄새를 쫓아서야 되겠습니까?”
언뜻 선기마저 느껴지는 진무의 모습에 청우와 마찬가지로 달려드는 여인들을 떼어 놓던 청상의 눈동자에 존경심이 어렸다.
‘사숙께선 정녕 대단하시구나. 말투와 행동은 거침이 없으신데 이런 상황에서는 또 저리 초연하시다니. 역시 저분을 따르기로 마음먹은 것은 잘한 것이다.’
청상의 생각과는 달리 진무는 그저 익숙할 따름이었다.
사파의 지존으로 경국지색이라 해도 좋을 미녀들 틈에서 살아온 그에게 이 정도의 분 냄새가 뭐 그리 대수일까?
한때는 주지육림(酒池肉林) 속에서 살았던 그였고.
대낮에 버젓이 나체로 돌아다니는 사패천 예하 환희궁의 여걸들과도 시간을 보냈던 진무였다.
“청상아.”
“예, 사숙.”
“팔 빼라.”
“…….”
청상 역시 청우와 다르지 않았다.
발갛게 달아오른 볼에 찢어질 듯이 솟구친 입꼬리.
이 새끼도…… 즐기고 있네.
“……예에.”
청상이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기녀들을 천천히(?) 떼어 놓았다.
“청우야! 이 녀석, 도사가 어찌!”
그 와중에 청우에게 핀잔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니가 더해, 이 자식아.
“하핫, 이런, 이런. 길을 잘못 잡은 모양입니다. 저희에게는 하도 익숙한 지름길이라.”
금적산이 한껏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럴 리가.
일부러 홍등가를 관통하는 길을 택한 것이 틀림없었다.
금적산의 좌우를 따르는 호위들만 해도 다섯이었다.
만약 정말로 배려할 생각이었다면 길은 둘째 치고 기녀들이 다가서지 못하도록 막게 했을 것이다.
혼을 빼놓으려는 게지.
그리고 혹여 약점이라도 하나 잡으면 다루기 편할 테니까.
진무 일행은 금적산을 따라 홍등가의 중심을 지나 강과 맞닿아 있는 한적한 주루에 도착했다.
무월, 달이 없는 곳.
좋은 데도 많은데 어째서?
의심이라는 것은 한번 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이어지는 법이다.
비록 티는 내지 않았으나 진무는 금적산의 손가락을 움직이는 작은 행동조차도 놓치지 않았다.
“단강구에 도장들께서 드실 만한 곡주를 취급하는 곳이 이곳뿐인지라 먼 길을 모셨습니다.”
그래, 그래. 왜 아니겠냐.
뭔가를 꾸민다고 해도 너무 눈에 보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도사들이 먹을 만한 곡주야 더 말할 가치도 없는 헛소리고.
일단 주루의 위치부터가 그 이름처럼 안에서 누가 하나 죽어도 모를 만큼 외진 곳인 것이다.
수작질의 수준에도 엄연히 고저가 존재하는 법이거늘.
만약 금적산이 무언가를 꾸몄다면 누구나 눈치를 챌 만큼 저급하고 싼 티가 물씬 나는 장소였다.
물론 청상과 청우는 전혀 의심하지 않고 있는 것 같지만.
“상단주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자, 들어가시지요.”
주루 입구의 주렴을 걷어 내자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고, 나이가 들어 귀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늙은 주인이 일행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청양상단에서 왔네. 내 미리 별실을 예약해 두었네만.”
“아, 상단주님이십니까?”
귀를 기울인 노인의 물음에 금적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노인이 허리를 굽히며 방향을 안내했다.
“사람들의 눈에 띄면 좋지 않을 듯하여…….”
금적산이 웃으며 자신의 행동을 쓸데없을 만큼 일일이 설명했다.
주루 안에는 파리가 날아다닐 만큼 한산했다. 딱히 사람들 눈에 띌 만한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방 안으로 안내한다는 것은 은밀히 나누어야 할 이야기가 있다거나.
뭔가를 꾸미는 것이 확실하다는 말이다.
“다시 한번 상단주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진무는 마음에도 없는 인사를 하고 금적산을 따라 별실이 있다는 주루의 이 층으로 올라갔다.
이 층에는 손님을 안내하기 위한 왜소한 사내가 기다리고 있었다.
“뫼시겠습니다.”
공손히 인사하는 사내의 모습을 바라보는 진무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어쭈? 이것 봐라?’
배꼽 언저리에 공손히 모인 사내의 손. 주루에서 손님 시중이나 들 만한 손이 아니다.
긴 소매로 감추고 있었지만 언뜻 드러난 손마디 관절의 돌출된 부분에 자리 잡은 선명한 굳은살.
싸움 좀 해 본 놈이라 이건데.
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아직 무얼 꾸미는지 모르니 굳이 의심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진무는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열린 문을 통해 별실로 들어섰다.
“우와!”
청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목소리를 냈다.
별실 안에는 산해진미가 가득한 술상이 미리 차려져 있었다.
술을 따르기 위한 기녀가 넷.
그리고 흥취를 돋울 목적으로 부른 피리와 비파를 든 악공이 둘.
진무 일행이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은은하게 연주를 시작한다.
“자, 앉으시지요.”
“예.”
상석에 금적산이 앉고 그 주위로 진무와 청상, 청우가 각기 자리를 잡고 앉자 기녀들이 다가와 술잔을 채웠다.
‘아, 정말 수준 못 맞춰 주겠네.’
안 보고 싶어도 보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방금 기녀가 따른 두 종류의 술.
금적산의 잔에 채워진 술과 진무 일행의 잔에 채워진 술의 빛깔이 미묘하게 다르다.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그리고 막 식사가 시작되려는 순간, 청양상단의 총관 이치성이 어딜 봐도 기다렸다는 듯이 다급한 표정으로 들어섰다.
참, 시기적절하다.
예상했던 순서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금적산의 의도 또한 얼추 확실해져 가고 있었다.
“상주님.”
“어허, 이 총관. 손님을 모신 자리에 어찌 호들갑인가?”
“죄송합니다. 급한 일인지라.”
“이 사람, 뭐가 그리.”
“지현(知縣) 대인께서 단주님을 찾으신다 합니다.”
“뭐라? 지현 대인이?”
지현은 단강구를 다스리는 가장 높은 관리의 직함이었다.
“예. 지난번에 관에 납품한 물목에 무슨 문제가 있는 듯합니다.”
“뭐라? 이런!”
금적산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진무를 바라보았다.
“이거 죄송해서…….”
“괜찮습니다. 급한 일이신 것 같은데.”
“이해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금방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마음 쓰지 마십시오.”
“그럼.”
금적산이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보니 급히 주루를 빠져나간 것 같았다.
대충 노림수는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극단적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손님을 두고 자리를 빠져나간 금적산.
비워지다시피 한 외곽의 객점.
그 안에 자신들을 맞이하던 싸움 좀 하는 사내.
이야. 아주 가지가지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