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36
236화
둘 사이의 비밀스러운 대화를 끝내고 운기조식까지 마친 진무와 명세찬이 일행에게 돌아온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식사를 준비한 황신이 재빨리 국그릇을 진무의 앞에 공손하게 바쳤다.
그런데 둘의 관계가 묘하다.
무당지검이 자리에 앉을 때까지 명세찬이 꼿꼿하게 시립해 있다.
마치 주인이 식사 마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너도 먹어. 국 식는다.”
“예!”
충직하기 그지없는 단답.
은위단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런 모습은 예전 천주한테만 보였던 건데.
의아함과 함께 간단한 식사가 끝난 뒤.
“흠흠.”
모두의 반응에 헛기침을 한 명세찬이 서늘하게 수하들을 쓸어 보며 말했다.
“인사드려라. 묵룡의 전인이시자 새로운 사패천의 천주가 되실 분이다.”
“……예?”
아니 잠깐. 전인으로 인정했다고 해도 이렇게 뜬금없어서야 납득할 수가 없다.
“저, 문주님. 아무리 그래도 갑자기 그리 말씀하시는 건. 설명을 좀……. 아무리 묵룡기를 사용했다곤 해도 무당지검인데…….”
부단주 외목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데.
“와! 토를 다네.”
진무가 황신이 내온 차를 호로록거리며 지나가듯 한 말에 명세찬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다.
왜? 무슨 잘못을 했기에?
외목이 의아해하는 순간 명세찬의 발이 그의 안면을 강타했다.
퍼억!
“꾸엑!”
투박한 타격음과 함께 외목이 땅바닥에 처박히고.
“이런 미친 새끼가!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천주님 앞에서 어디 토를 달아 지금! 어!”
퍽! 퍽! 퍽! 퍽!
아니, 그냥 물어본 것뿐인데…….
외목은 명세찬에게 정말 무자비하게 짓밟혔다.
“니들이 아주, 요새 안 맞아서 편하지, 어? 이것들이 빠져 가지고! 돌았어? 미쳤냐?”
“……!”
쌍심지를 세우고 눈에 핏발이 돋아 악귀처럼 변한 명세찬의 얼굴.
오랜만이다.
거의 삼 년? 아니면 사 년?
정보 조직의 특성상 명령에 대한 복종은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명목하에 은위단은 항상 그렇게 구타를 당해 왔다.
물론 명세찬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걸 누구에게 배웠겠는가?
전부 전대 천주인 혁련무강에게 배운 거다.
지도 맞아 가면서…….
일명 내림 구타…… 부조리…… 적폐…….
빌어먹을. 녹봉을 많이 주지만 않았어도…….
* * *
잠시 후, 젖은 몸에서도 먼지가 날 만큼 두들겨 맞은 은위단의 조장들은 시퍼레진 얼굴로 황신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신임 천주님을 뵙습니다!”
물론 그들이 머리를 조아린 대상은 당연히 진무였다.
무당지검에게 하오문의 정예가 예를 갖추는 상황이 전혀 이해는 안 가지만, 어쩌겠는가? 명세찬이 서릿발 같은 눈빛으로 그들을 노려보고 있는데.
더 맞고 싶지는 않았다.
까라면 까야지 별수 있겠는가?
수하들이 진무에게 인사를 마치자, 명세찬이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 황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오랜만이구나. 천주님을 수행했다고 들었다.”
황신은 답 없이 고개만 숙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그동안 궁금했던 게 생각난 진무가 입을 열었다.
“참, 저놈 원래 말을 못 하냐?”
“예? 아, 아닙니다. 못 하게 한 겁니다.”
“못 하게 했다고?”
“예. 저 녀석이 익히고 있는 무공 때문이기도 하고, 웬만하면 말을 안 하는 게 좋을 듯싶어서 제가 못 하게 했습니다.”
“……?”
의아하다.
무공은 또 뭐고 못 하게 한 것은 또 뭐란 말인가?
“함께 오셨으니 아시겠지만, 이 녀석의 청력이 초감각에 가깝습니다.”
“아, 그럼 그 능력을 극대화하려고?”
“예. 아무래도 제 놈보다 강한 자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익히게 하는 것보다 청각 쪽에 집중하는 것이 나을 듯하여.”
뭐, 듣고 보니 이해는 되는데.
“그냥 말하게 둬라. 답답하더라.”
“……안 하는 것이……. 아마 듣기 불편하실 텐데…….”
“응?”
“…….”
뭔지 모르게 꺼리는 듯한 표정이다. 왠지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린다는 듯한 위화감이랄까?
“……그, 그래? 그럼 나중에라도.”
진무가 미심쩍음을 감추지 못하고 황신을 쳐다보는데 명세찬이 냉큼 화제를 돌렸다.
“천주님, 이제 어디로 가십니까?”
사근사근한 말투로 손까지 비비며 묻는 명세찬의 모습은 수하들을 대할 때와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글쎄, 일단은 천웅방으로 가 볼까 싶은데.”
“안 그래도 총사와 천 단주가 철검단을 이끌고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적생을 서슴없이 총사라 칭한다. 진무가 곧 혁련무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적생이?”
“예. 듣자니 그곳에도 습격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적의 수괴가 꽤나 강했다던데 원 방주와 천 단주가 합공을 해서 빠르게 죽인 모양이고요. 이곳에서 싸우고 있다는 천주님을 걱정한 총사가 그리 결정했다고 하더군요.”
그 내용은 진무도 알고 있었다.
천웅방으로 의문의 세력이 움직이고 있다고 했었다.
아마 그들과 부딪힌 것이리라.
그런데 적생, 이런 기특한 녀석을 보았나.
자신이 위험할까 봐 걱정한 모양이다. 잘 키운 군사 하나 열 무인 안 부럽다고 하더니. 실로 흐뭇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럼 기다렸다 같이 갈까?”
“그러시지요. 그쪽에 미리 전서구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명세찬의 말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명을 받은 외목이 전서구를 작성하는 동안, 명세찬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 왔다.
“참,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뭐가?”
“정무맹이 무인들을 대거 움직이고 있다고 하더군요.”
“정무맹이?”
“예.”
“흐흠.”
진무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턱을 쓸었다.
양소방이 뭘 찾았나?
하긴 종남에서 떠나온 지 좀 되었으니 세작 놈들을 많이도 때려잡았을 것이다.
제갈협진, 그 얌생이 놈이라면 필시 그들을 통해 뭔가 찾아냈겠지.
새끼들,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것인데.
세작도 잡아 주고 말이야.
“그들이 쫓고 있던 삼궁의 근거지를 찾은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그러니까 그렇게 대규모로 움직이겠…… 잠깐!
순간 진무의 머릿속에 무언가 번뜩 떠오른다. 궁의 근거지라면…… 혹시 그 안에 돈이 있지 않을까?
운영비나 뭐 이딴……. 그러고 보니 그 자식들 전장도 장악하고 있었잖아?
분명 그럴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 한다.
이게 원래 뒷간 들어갈 때랑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
거기서 얌전히 잠자고 있을 돈에 생각이 미치자 종려군의 목숨값으로 퉁 치려 했던 본전 생각이 나는 것이다.
미현의 사람들을 피신시키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사용했던 금원보 서른 개.
땅을 백날 파도 안 나오는 소중한 금원보.
그래, 어디 그 돼먹지도 않은 것의 목숨하고 귀한 금원보가 비교나 되겠어?
점점 더 아깝다는 생각이 들다 못해 심장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내 금원보…….
갑자기 아리따운 금원보가 둥실 떠올라 춤을 추듯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환상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래, 금원보야. 내가 너한테 이렇게나 환장을…….
“그 뭐냐, 새로 만든 용봉관의 무인들이 선두라고 하더군요.”
“……뭐? 금원보가?”
“예? 웬?”
“…….”
“…….”
“응? 아니다. 뭐라고 했지?”
“용봉관이요. 그 있지 않습니까? 정무맹 소속 문파들의 이대 제자들로 구성되었다던.”
명세찬의 말에 진무가 심드렁한 표정을 했다. 뭐, 싸우라고 만든 무인대인데 그럴 수도 있지.
잠깐, 아니지.
만약에 그놈들이 먼저 궁의 근거지를 습격해 버리면?
금원보는커녕 철전 하나도 못 건진다.
이런 씨팔, 그러고 보니 종려군하고 싸우는 바람에 무리하게 자소단까지 날렸는데. 야명주도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더럭 화가 치민 진무의 귓가로 명세찬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뭐, 그들뿐이 아닙니다. 화산에, 제갈세가에…… 소림, 당가…… 정예들…… 모두 일천에 달할 정도로…… 그런 걸 보면 놈들이 쫓고 있는 삼궁의 근거지가…….”
“…….”
젠장, 그렇게나 많이 온다고?
그럼 내 돈은 어떻게 되는 건데!
“뭐, 신경 쓸 필요 있겠습니까? 정무맹 쪽 일인데.”
그래. 정무맹 쪽 일이지.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지.
하지만 돈은 상관이 있다. 아주, 매우, 엄청나게.
에잇, 안 되겠다.
무조건 정무맹 놈들보다 먼저 가야 한다. 가서 일단 금원보 서른 개라도 챙겨야만 했다.
“세찬.”
“예?”
“그 새끼 데려와.”
“누구요?”
“그 망할 습격자 새끼.”
“…….”
진무의 표정이 어째서 싸늘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명이 내려졌으니.
명세찬의 명령에 외목이 정신을 차린 지 한참 지난 무영을 끌고 와 진무의 앞에 앉혔다.
“이 새끼 이빨 사이에 독단 같은 거 없었냐?”
“없었는데요?”
“잘 살펴봤어?”
“다 뒤져 봤는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세찬에게 두들겨 맞은 것 때문인지 외목이 부동자세로 한없이 공손하게 대답한다.
“그래?”
그럼 이 새낀 그냥 고독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진무가 무영의 손목을 잡고 묵룡혼원공의 기운을 불어넣었다.
……어? 고독도 없네?
혹시라도 꼭꼭 숨어 있을까 싶어서 혈이란 혈은 다 살피고 세맥까지 뒤졌는데 찾을 수가 없었다.
너…… 이 새끼 설마, 아예 없는 거냐?
자결용 독단이나 고독 자체가 없어?
수하들에게는 고독을 먹이고, 자결하라고 독단까지 물려 놓은 주제에 제 놈은 살겠다고?
뭐, 이런 버러지 같은…….
이런 새끼를 대장으로 따르는 수하들이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화가 치밀다 못해 마음 같아서는 모가지를 확 뽑아 버리고 싶었지만, 일단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야,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대답 잘해라. 그래야 덜 아프게 죽는다.”
“…….”
진무의 말에 무영이 독기를 풀풀 날리며 그를 쏘아본다.
“재갈 풀어 줘.”
“예!”
스륵!
“이런 개…….”
턱!
입을 떼자마자 욕설이 나오려는 것을 명세찬이 손으로 턱을 잡아 멈췄다.
“딱, 거기까지.”
명세찬은 무영의 입에서 터져 나올 말을 대충 예상하고 있었고, 그것이 매우 불손한 언사일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천주님.”
진무를 부르는 호칭에 무영이 눈을 부릅뜬다.
천주? 무당지검이?
사실이라면 실로 엄청난 정보지만……. 너무 늦게 알았다.
“직접 하시겠습니까?”
“……뭐, 니가 해. 오랜만에 실력 좀 보자.”
“그럴까요?”
“응, 대신 딱 하나만 알아내라. 삼궁의 위치가 어딘지.”
진무와 명세찬의 대화.
삼궁의 위치? 흥, 얼마든지 알려 주마. 제 발로 지옥에 걸어 들어가겠다는데야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지.
그런데 뭘 직접 한단 말인가?
무영의 머릿속에 의문과 함께 진한 불안함이 스치는 와중에 명세찬의 손이 빠르게 그의 마혈을 점했다.
“야, 묶어라.”
“……?”
그리고.
무영은.
정말.
뒈지도록 맞았다.
진무의 어깨너머로 배운 명세찬의 잔학한 구타에.
원래 선무당이 사람 잡는 법. 진무의 구타가 예술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면 명세찬의 구타는 어딘가 조금씩 어긋나 있었고, 때로는 그래서 더 심한 고통을 유발했다.
“어허,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니까.”
안 그래도 고통에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데 진무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명세찬을 밀어 낸다.
“잘 보고 배워. 이게 쉬운 게 아니란 말이야. 조금만 잘못 때려도 홀랑 죽는다고.”
“……제가 아직 미숙해서.”
미숙? 미숙?? 웃기지 마, 이미 죽을 만큼 아프다고!
무영이 식겁한 표정으로 고개를 미친 듯이 저어 대었다.
“자, 여긴 이렇게.”
퍼억!
정확히 사혈을 파고드는 그 짜릿한 고통에 무영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진다.
신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죽여 달라고 빌고 싶을 만큼…… 아프다.
“아……. 반 치를 비꼈군요.”
“역시 눈썰미가 있군. 사람마다 조금씩 혈의 위치가 다르다 이 말이야. 그래서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거야.”
“감사합니다.”
뭘 가르치고, 뭘 감사…….
“자, 해 봐.”
“예!”
뭘 해 보라고?
의문은 명세찬의 행동으로 금세 해소되었다.
아니, 이제는 스승까지 끼어들어 제자 놈과 돌아가면서 구타를 하기 시작했다. 맞을수록 정신이 또렷해지고, 숨이 멎을 듯한 고통이 쉬지도 않고 파고든다.
“삼도평! 삼도평이다!”
“…….”
무영이 처절하게 무명촌의 위치를 외치자 진무가 물끄러미 바라본다.
“대장이라는 새끼가…… 너무 쉬운데? 이 새끼, 너 거짓말이지?”
“……뭐?”
“세찬아 다시 해.”
“……!”
아, 이 망할 새끼들 차라리…… 끄아아아악!
무영은 마지막까지 삼도평 염불을 외다가 죽었다. 마지막에 뭐라고 다른 말을 한 것 같긴 한데, 잘못 들은 것 같기도 하고.
“진짜 삼도평이었나.”
진무가 고개를 턱 언저리를 쓸며 중얼거리다 명세찬을 불렀다.
“세찬아.”
“예?”
“삼도평이 어디냐?”
“글쎄요. 알아볼까요?”
“그래. 그리고 정무맹의 무인들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도 알아봐. 최대한 빨리.”
꼴에 대장이라고, 놈이 거짓말을 했을지도 모르니까.
그리고 만약 진짜로 그곳이 궁의 근거지라면, 절대로 정무맹이 먼저 도착해서는 안 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