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37
237화
명세찬의 전서구가 조림정에 도착했다.
삼도평의 위치, 그리고 정무맹이 쫓고 있는 삼궁의 위치.
꽤 오랫동안 칩거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문주가 직접 내린 명령이었다.
중원 최대의 정보 조직 중 하나인 하오문이 긴 잠에서 깨어났고, 중원 북부 지역 전체를 향해 수백 마리의 전서구가 쉴 새 없이 날아올랐다.
전서를 받은 종도들은 매꾼들로 하여금 묵혀 둔 돈을 풀어 마구잡이로 정보를 사들이기 시작했고, 쉴 틈 없이 몰려드는 정보를 정신없이 취합해 정연하게 엮었다.
그로부터 하루.
동일한 내용의 전서구가 이번에는 북부 각지에서 조림정으로 날아들었다.
* * *
“천주님!”
명세찬이 막 날아온 따끈따끈한 전서구를 들고 진무를 향해 날 듯이 달려왔다.
산공을 해결한 이후 남아 있던 자소단의 마지막 영기까지 알차게 흡수한 진무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와 동시에 짙은 흑빛 기운이 순간적으로 폭사되었다가 사라지자, 명세찬이 들뜬 얼굴로 외쳤다.
“삼도평(三道平)의 위치를 찾았습니다. 거리는 천 리, 여기서부터 이틀 정도입니다. 또한, 정무맹의 무인들도 같은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
명세찬의 말에 진무가 예의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삼도평이 맞단 말인지?”
진무의 눈동자에 탐욕이 가득한 시퍼런 불길이 솟구친다.
삼도평, 삼궁의 근거지라면 방비가 어지간히 단단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진무는 싸울 생각이 전혀 없다. 어디까지나 그가 노리는 것은 금원보 서른 개와 자소단의 값어치에 필적, 혹은 상회하는 보물 정도였다.
자신은 필요한 것만 챙기고 싸움은 정무맹에게 맡긴다.
“세찬! 삼도평으로 간다!”
“예!”
반문은 없다.
명령은 내려졌고, 명세찬은 언제든지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미현을 떠난 진무 일행은 정말 쉬지도 않고 달렸다.
자신을 돕기 위해 오고 있다는 적생에게는 전서구를 보내 미현에 들렀다가 천웅방으로 돌아가라고 일렀다. 그곳에 그들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주민들 중 사상자는 없다고 해도, 마을 하나가 통째로 날아가 버렸으니 분명 소문이 날 것이다.
명세찬은 이쪽을 감추기 위해 천웅방을 드러내자고 했고, 진무는 알아서 하라 허락했다.
하오문의 특성상 관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주민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는 소문이야 순식간에 잠재울 수 있을 터였다.
천웅방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진무의 흔적은 완전히 지우는 것.
그런 정보 조작이야말로 명세찬의 진정한 특기다.
마음만 먹으면 한 번에 수천도 속여 넘길 수 있는 타고난 사기꾼. 사기의 극에 달한 자. 그것이 바로 그를 사패오왕의 일인으로 불리게 한 주된 이유인 것이다.
명세찬이 진무에게 구타를 배웠다면, 진무의 사기술과 연기술은 다 명세찬에게서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어쨌든.
더욱이, 미현도 미현이지만 천웅방이 삼도평으로 오는 건 어쨌든 안 될 일이었다.
정무맹의 무인들과 마주쳐서 칼부림이라도 나면 괜한 전력 낭비였다. 정무맹은 삼궁의 본거지에 있는 놈들과 싸워야 하니까.
진무는 명세찬과 은위단의 조장들만 대동했다. 그야 원체 신분 확실한 무당지검이고, 은위단은 숨는 게 특기인 놈들이니 정무맹이 나타나면 알아서 도망치면 될 일이다.
미현에서 꼬박 이틀을 내달린 끝에 진무 일행은 겨우 삼도평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아, 하아…….”
어찌나 열심히 달렸는지 진무조차 호흡이 거칠어질 정도였다.
“괜찮으십니까?”
“…….”
걱정스럽게 묻는 명세찬의 말짱한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다.
어째 니들은 땀 한 방울도 안 흘리냐?
은신술과 경공만 죽어라 수련한 놈들이라 그런지 뛰기도 잘 뛴다.
이제 막 다시 은위단으로 복귀하게 된 황신마저도 멀쩡한 기색으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데, 혼자 헥헥대는 듯해서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젠장, 경공에 좀 더 신경을 썼어야 했나.
아무리 은위단이 경공을 죽어라 익힌 놈들이라지만, 명색이 강의 무인인 내가 명세찬은 둘째 치고 이런 허접한 놈들이랑 똑같은 속도로 도착하다니.
“천주님. 잠시 휴식을 취할까요?”
“아니? 나 아무렇지도 않은데? 겨우 요 정도 가지고 뭘.”
아랫것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야 있겠는가.
천주가 되어서 체면이 있지.
진무는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며 눈앞의 산하를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그가 선 산 아래 펼쳐진 거대한 분지. 삼도평(三道平).
세 곳의 성이 한 점에 뭉치는 곳.
지역의 구분이 모호하니 딱히 경계가 나누어져 있는 것은 아니었고, 표지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세찬의 말에 따르면 산악이 둘러싼 평지는 맞지만 오가는 길 따위는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도 이곳에 분지가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했다.
그저 지도에만 대충 표기된 곳.
어째서 이름을 삼도(三道)라 지은 것인지 알 순 없지만 뭐, 깊이 생각할 일은 아니다.
휘이잉.
첩첩산중의 산과 산 사이를 흐르는 바람이 진무의 열기를 한껏 식히며 지나간다.
“세찬.”
“예.”
“정무맹 쪽의 동향은?”
“가장 가까운 것이 검혜 벽운영이 이끄는 용봉관입니다. 삼도평에서 반나절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반나절.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래, 본전만 찾고 얼른 튀자. 시간은 차고도 넘친다.
“희한하군요. 이런 곳에 궁의 근거지가 있다는 것이.”
“…….”
명세찬의 말에 진무가 고개를 끄덕인다.
무영이라는 놈의 말에 의하면 삼도평에는 무명촌이라는 마을이 존재해야 하는데, 그들이 바라보는 삼도평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정보가 잘못된 것일까요?”
그럴 리가.
무영이란 놈이 말한 곳과 하오문에서 알아낸 정무맹 무인들의 목적지가 일치한다. 종남에서의 일이야 요행을 바랐다고 해도, 그 제갈협진 놈이 허투루 그 많은 무인들을 움직였을 리가 없다.
위치는 정확할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면?
“세찬.”
“예?”
“돌 하나 던져 봐.”
“돌……요?”
“그래.”
“어디까지?”
“분지의 중심.”
진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명세찬이 작은 돌멩이 하나를 손에 주워 든다.
“야!”
“예?”
“큰 거, 인마. 아주 큰 거.”
그래야 멀리 던져도 보일 거 아냐.
명세찬은 주위를 휘휘 살피다가 제 머리통만 한 돌을 두 손으로 주워 들었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돌덩이가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힘차게 날아갔다.
쐐애애액- 픽.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던 돌덩이가 분지의 중심 어느 곳에 닿는가 싶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사라진 것이다.
“황신!”
“……?”
“돌 떨어진 소리 들었어?”
진무의 말에 황신이 급히 귀를 쫑긋거리다가 고개를 젓는다.
“천주님, 혹시?”
명세찬의 말에 진무가 입가에 싸늘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역시, 추측이 맞았다.
삼도평의 분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다. 거대한 환영진에 의해 가려져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세찬.”
진무가 부르자 명세찬이 눈치 빠르게 은위단의 조장들에게 각자의 영역을 배분했다.
작은 돌들을 양쪽 손에 가득하게 쥔 조장들이 분지의 외곽을 크게 돌며 하나씩 쏘아 내었다.
그리고 돌이 모습을 감추는 곳에 위치한 나무에 생채기를 내어 표식을 새기는 작업을 했다.
진의 규모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신중해야 했다. 놈들이 그 외에 어떤 준비를 해 두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함부로 진입했다가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천주님.”
거대한 분지의 주변을 확인해 진의 대략적인 크기를 파악한 명세찬이 돌아왔다.
“둘레가 대략 삼십 리쯤 됩니다.”
생각보다 거대하다.
삼십 리면 천중산에 세웠던 사패천에서 외부 성곽을 제외한 본성과 맞먹는 규모였다.
“대충 읊어 봐.”
“마을이라면 대략 천여 호 이상의 가옥이 존재할 것입니다. 기거하는 인구는 대략 삼천에서 사천 명 정도 될 것이고요.”
“적의 근거지라고 한다면?”
“비슷한 크기를 기준으로 봤을 때 마교는 대략 칠백 명의 무인, 정무맹이면 천오백, 사패천이면 이천 명쯤 될 것입니다.”
진무의 물음에 명세찬이 예시를 들어 가며 대답했다.
하긴 사패천 본성을 기준으로 하면 대략 그 정도 인원이 상주했었으니까.
“그럼 대충 최대 이천 명 정도의 궁 새끼들이 있을 수 있단 말이군.”
“최소 이천 명은 된다는 뜻이죠.”
“…….”
요 새끼가.
진무가 명세찬을 슬쩍 째려본다.
예전엔 안 그러더니 어째 말꼬리를 잡네, 이게. 혹시 나이 어린 몸으로 태어나서 그런가?
뭐, 좋다.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진무가 턱 언저리를 쓸었다.
명세찬의 분석은 수많은 세력의 정보를 취합해 평균적인 수치를 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를 꾸미고 있는 조직이라면 인원수 대비 무인의 질과 양은 거의 맞아떨어진다.
그래야만 조직이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추측은 적들의 수준까지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다.
강의 경지의 무인이 몇 명이나 더 있는지, 의기, 탄기, 현기에 이른 무인들이 몇이나 되는지.
조직별로 구성되는 특색이 다르니만큼 일반적인 수치로 구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뭐, 좌우지간 놈들이 어찌 경계를 하고 있는지만 파악하면 그만이지. 싸우려는 것도 아니고.
“세찬.”
“예.”
“천여 명의 무인들이 삼십 리나 되는 근거지의 외곽을 경계하자면 편성을 어찌 해야 될 것 같으냐?”
“음, 과거 정무맹에 둘러싸여 있었던 천중산 본성을 기준으로 잡아 보죠.”
적절하다.
당시에는 원체 적이 많아서 본성의 경계가 엄청나게 강화되어 있던 시기니까.
내부를 볼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추측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수뇌부, 주력 무인대가 있다는 가정하에 이천의 무인 중 외부를 감시할 수 있는 수는 대략 절반일 것입니다.”
“절반이 삼십 리를 감시한다?”
“예.”
“흐음.”
천 명을 삼십 리의 거리에 펼치면 대충 사 장 간격으로 한 놈씩이다.
하지만 경계의 진형을 그따위로 구성하는 미친놈은 없겠지. 최대한 조밀하게 경계조를 구성했다면 경계와 경계 간의 거리는 대략 오 장에서 십 장 정도.
진무는 가만히 턱을 쓸다가 입을 열었다.
“대궁.”
“예. 천주님.”
“몇 발이나 있나?”
은위단 조장 중 유일하게 철궁(鐵弓)을 사용하는 대궁.
그가 궁을 사용하는 이유는 도주하는 적을 제압하기 위함이었다.
진무의 물음에 대궁이 등 어림에 멘 화살통을 힐끗거리곤 대답했다.
“스물두 발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일단은 환영진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적의 외곽 경계부터 확인해야 했다.
“오 장 간격으로 주위를 돌면서 쏴 봐. 어떻게 나오나 보게.”
“예!”
명이 떨어지자마자 대궁이 쇠막대를 휘어 시위를 걸고, 미리 표시된 진법의 주변을 돌아다니며 내공을 담은 철시를 날렸다.
철시를 다 날린 후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황신에게도 물었지만 그 역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 듯했다.
무언가 이상하다.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설마 경계가 없는 건가?
아니면 환영진 자체가 저들의 경보망일수도 있다.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저들 역시 정무맹이 세작 색출 작업을 시작했음을 알고 있을 것이고, 그들이 보유한 고수들이 천웅방, 그리고 진무와 일전을 벌였음을 알고 있을 테니까.
분명 실패를 대비해 자신들의 근거지가 탄로 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다.
젠장, 고민을 했더니 머리만 복잡해졌다.
어쩔 수 없지.
작전은 치밀할수록 좋지만 지금도 정무맹이 계속해서 접근하고 있을 것이다.
내 돈이 저 안에 있는데 마냥 기다릴 수는 없지.
진무는 혹시나 모를 상황을 대비해 철시를 날리지 않은 곳으로 이동해 자리를 잡았다.
만약 환영진 자체가 경보망이라면, 철시가 날아간 곳의 경계가 강화되었을 테니까.
스르릉.
진무가 일휘를 뽑았다.
“모두 잘 들어. 예상되는 적의 수는 대략 이천. 돌입하면 몇 놈이 공격해 올지 모른다. 괜히 최선을 다해 싸운답시고 목숨 걸지 마라. 들어가자마자 산개하고, 필요하면 곧바로 도망치고 모습을 숨겨.”
왠지 자신들을 걱정하는 듯한 말투에 은위단의 조장들이 결연한 표정으로 각자의 무기를 잡는다.
“우리의 목적은 단 한 가지다.”
“……?”
“놈들의 금고, 혹은 귀중품. 최소한 금원보 서른 개 값어치는 할 만한 물건. 각자 한 개씩만 확보하면 무조건 도망친다.”
“……예?”
“응?”
내가 말 안 했냐?
그럼 지금 새겨듣거라.
생각지도 못한 명령에 조장들뿐 아니라 명세찬까지도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진무는 개의치 않고 마저 명을 내렸다.
“적과 싸울 필요 없다. 싸움은 정무맹에게 맡겨. 우리는 그저 돈만 챙기는 거야! 알겠어?”
“……그냥 돈만요?”
외목이 벙찐 표정으로 물었다.
이런 망할 놈을 봤나. 그냥 돈이라니. 내 돈이다. 내 귀한 돈. 금원보, 서른 개!
갑자기 맥이 탁 풀린 표정을 짓는 은위단의 조장들을 향해 진무가 신경질적으로 눈을 부라렸다.
“이것들이 처맞고 시작할래? 대답 안 해?”
“옙!”
새끼들, 맞기는 싫어 가지고.
“세찬!”
“환영진을 힘으로 부순다.”
진무의 말에 명세찬이 고개를 끄덕이면 진무의 옆에 선다.
진법에도 수많은 종류가 존재하기에 죄다 알 수는 없지만, 어떤 진법이든 파훼하는 방법은 단 두 가지다.
진법가가 파훼법을 찾아 도해를 만들든가, 아니면 막대한 위력의 힘으로 박살을 내든가.
그리고, 고민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진무는 주로 후자를 택하는 쪽이었다.
우우웅!
발검하듯이 자세를 잡은 진무의 허리춤에서 일휘가 모처럼의 선기에 진한 검명을 토해 내고, 그 옆에 선 명세찬의 한철 서책에 막대한 사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간다!”
슈아아악!
진무의 검이 뽑혀 횡으로 그어짐과 동시에 명세찬의 손이 곧게 뻗어지니, 두 사람이 만들어 낸 강기가 환영진을 거칠게 찢어발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