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4
24화
대충 장단이나 맞춰 주고 돈만 빼먹어서 망하게 하려 했더니?
진무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날카롭게 방 안을 살폈다.
정방형의 공간.
밖으로 나가는 문은 하나밖에 없었다.
잔에는 무언가를 탄 듯한 술이 가득 채워져 있었고.
슬쩍 만져 본 기녀의 다리는 과할 정도로 탄탄하다.
그리고 문제의 악공 둘.
비파의 현을 튕기는 손가락.
손의 안쪽에 박힌 굳은살의 모양으로 봤을 때 꽤나 오랫동안 현을 다루어 온 악공이거나 암기에 능숙한 자였고.
피리를 잡은 사내의 손끝에는 옅은 멍 자국이 보인다.
피리의 구멍을 막느라 생긴 것일 수도 있겠으나 대개는 싸구려 독을 취급하는 자들에게 주로 생기는 흔적이다.
진무의 추측이 맞다면 금적산은 지금 자신을 죽이려고 하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설마 진혜가 대제자가 되는 데 자신이 위협이 된다고 생각한 건가?
그럼 진혜가 뒤에서 사주한 건가?
“도사님, 한잔 쭉 드세요.”
진무가 생각에 빠진 사이 옆에 앉은 기녀가 콧소리를 내며 젓가락으로 먹음직한 안주를 집어 들었다.
“재미있네, 아주.”
“예?”
“뭐 어찌 됐건 금적산을 잡아서 족쳐 보면 되겠지.”
“…….”
기녀를 보는 진무의 입술이 벌어져 새하얀 송곳니가 빛을 내며 드러났다.
“무당의 도사에게 술을 마시라고? 생각 없으니 너나 먹어라.”
“예? 소녀가 어찌…….”
기녀가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테지. 아암, 그래야지.
진무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먹어 봐.”
낮고 스산하게 깔리는 진무의 목소리에 이상함을 느낀 청상의 표정이 굳었다.
눈치 빠른 녀석 하나.
“와! 이거 정말 맛있는데요?”
입 안에 고기를 가득 처물고 감탄이나 내뱉는 눈치 없는 돼지 한 마리.
그리고.
“처먹어 보라니까? 네년 아가리에 직접 처넣어 줄까? 술에 뭔 짓을 해 놓았는지 확인도 할 겸?”
진무의 말에 사색이 되어 가는 기녀와 매섭게 눈빛이 변하는 악공들.
“청상!”
파악!
뻗어진 청상의 손을 피해 그 옆에 앉았던 기녀가 재빨리 물러나며 벽을 타고 도망쳤고.
퍼억!
“크윽!”
옆에 앉은 기녀에게 얼굴을 맞고 뒤로 벌렁 자빠진 청우.
완전 짐 덩어리가 따로 없다.
진무는 도망치려는 기녀를 잡아챘다.
비파를 들고 있던 악공이 어느새 품에서 꺼낸 대침을 열 손가락 가득 끼워 들고 있었다.
“죽어라!”
슈슉!
허공으로 뿌려지는 비침.
동시에 진무는 손에 잡은 기녀를 던졌고, 청상은 넘어진 청우의 옷깃을 쥔 채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퍼퍼퍽!
“케엑!”
허공에서 방패막이가 되어 버린 기녀는 온몸에 비침이 박혀 짧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떨어졌다.
“이, 이런 잔인한 놈!”
설마하니 도사가 여인을 방패로 쓸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인지 비파의 악공이 눈을 부릅떴다.
“잔인 같은 소리 하네. 죽이려고 한 주제에.”
진무가 그를 비웃으며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남은 것은 악공 둘, 기녀 셋.
그리고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놈 하나.
“쯧쯧, 그나저나 준비한 게 겨우 이거냐?”
“…….”
몸에 비침이 박혀 고슴도치처럼 변해 버린 기녀를 밟고 선 진무의 말에 피리를 들고 있던 악공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변했다.
“네놈, 어찌 알았느냐?”
“어찌 알기는. 하도 어설퍼서 하나하나 읊어 주기도 귀찮아.”
“…….”
“보아하니 금적산이 우리를 이쪽으로 유인해 죽이려 한 것 같은데. 암습치고는 너무 허술한 거 아니냐, 니들?”
“네놈…….”
“하나만 묻자. 혹시 이팔룡이라는 놈도 금적산이 사주한 거냐?”
“우리는 고객의 정보를 팔지 않는다.”
“고객? 까고 있네. 다 들켜서 암습도 실패한 주제에.”
진무의 이죽거림에 피리를 든 악공은 눈을 매섭게 빛내며 품에서 약병을 꺼냈고.
비파의 악공은 다시금 비침을 잡았다.
“니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진무가 상 위에 서서 악공들을 깔아 보며 음산하게 말했다.
“그거 쓰면…… 죽는다.”
“흥! 네놈이나 죽거라!”
약병이 뿌려지고 비침이 악공의 손을 떠나려는 순간.
콰득! 퍼억!
단 일 보에 거리를 좁혀 버린 진무의 발이 비파를 들었던 악공의 복부에 깊숙이 파고들었고.
손은 약병을 든 악공의 손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하여간에, 하지 말라면 꼭 하더라.”
우두둑!
“끄악!”
손목이 꺾어져 버린 악공이 신음을 내지르는 순간 진무가 그의 턱을 움켜쥐었다.
“죽는다고 했지?”
“……!”
약병을 진무의 손에 빼앗겼다.
그리고.
뻐억!
진무가 그의 입 안에 약병을 집어넣고 주먹으로 후려쳤다.
“크아악!”
입 안에서 약병이 깨어지고 독이 목으로 넘어가 버린 악공은 제 목을 잡고 고통스럽게 주저앉았다. 진무로 인해 독을 통째로 마셔 버린 꼴이었다.
“이, 이런 악독한 놈!”
중독되어 시커멓게 변해 죽어 가는 동료의 모습에 비파의 악공과 기녀들이 독기를 잔뜩 머금은 눈으로 진무를 공격했다.
“감히!”
물러나 있던 청상의 검이 빠르게 뽑혀 나왔고.
무당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채로 휘둘러졌다.
유운검법.
부드러운 변화와 더불어 활(活)의 묘리를 품고 있었던 그것은 청상의 손에서 간결하고 단호하게 변해 펼쳐졌다.
진무를 통해 진정한 의미(?)의 계도에 대해 깨달은 청상의 손에는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었다.
“아악!”
횡으로 그어짐에 기녀의 목 하나와 핏물이 솟구치고.
사선으로 당겨짐에 비침을 든 악공의 몸이 대각선으로 잘렸다.
그리고 이어진 검격이 다른 기녀를 향해 날아가는 순간.
쩌어엉!
문밖에서 소란을 듣고 뛰어든 왜소한 사내의 주먹이 검면을 때렸다.
청상을 물러나게 하고 방 안의 상황을 파악한 그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저런, 조금만 빨리 들어왔으면 하나 정도는 더 살렸을 텐데.”
무척이나 안타까운 어조로 내뱉는 진무의 말에 사내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졌다.
“네놈들…….”
왜소하기만 했던 사내의 몸에서 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매서운 살기가 뿜어져 근처의 벽과 바닥에 상처를 만들었다.
“호오? 제법인데.”
“감히…….”
분노를 참지 못한 그가 주먹을 움켜쥐어 들자 목숨이 구해진 기녀 둘이 돕기 위해 나란히 옆으로 섰다.
“근데 말이야. 이미 독인지 약인지 탄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부터 암습은 실패한 거 아냐?”
“닥쳐라! 네놈들을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기녀들이 쌍심지를 돋우며 소리를 질렀다.
“흐음.”
진무가 가만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왜소한 사내의 실력은 제법 강해 보였지만, 자신과 비교하면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만약 술을 마신 후였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멀쩡한 지금의 진무에게는 어림없는 실력이었다.
즉, 직접 싸우기에는 매우 격이 떨어진다.
“청우야.”
“예?”
진무의 부름에 청우가 급히 대답했다.
“맨손이라네.”
“…….”
“싸워.”
“제, 제가요?”
이런 믿음이 부족한 녀석.
“응, 니가 이겨.”
니가 이겨, 이겨, 이겨…….
주문 같은 진무의 속삭임이 청우의 귓가에 맴돌고 순식간에 전투 의지를 고양시켰다.
청우가 잔뜩 기세가 오른 얼굴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청상. 저기 기녀 둘을 맡아.”
“예, 사숙!”
진무가 슬쩍 발을 물리자 왜소한 사내가 천둥 같은 고함 소리와 함께 몸을 날려 왔다.
후웅!
강맹한 기운을 머금은 주먹이 허공에서 비틀리며 강렬한 바람을 만들어 대며 진무를 덮쳤다.
“하압!”
물러나는 진무의 몸을 피하기 위해 벽을 밟고 도약한 청우의 두툼한 주먹이 사내의 앞을 막아섰다.
쩡!
두 개의 주먹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청자 배의 막내 청우.
비록 고기에 환장하고 눈치도 없는 데다 멍청하기까지 하지만.
그의 손에서 펼쳐지는 칠성권은 오랫동안 대를 이어 전수되어 온 무당 권공 중 하나.
또한 진무에 의해 투로와 보법이 청우의 체형에 맞게 변해 그 예리함과 파괴력이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어 있었다.
쩡! 쩌정! 쩡!
역시 자신감만 있으면 어디 가서도 밀리지 않는 청우의 권격이었다.
왜소한 사내 또한 청우의 권격을 모조리 때려 내며 방어할 정도로 뛰어난 권사였다.
‘크윽!’
하지만 부딪힐 때마다 뼈가 부서지는 듯한 충격을 느끼고 있었다.
매일 한결같이 주먹을 단련해 왔지만, 살이 도톰하게 오른 청우의 푹신한 주먹에는 내기가 잔뜩 둘러져 있었다.
물론 외공과 내공에 우열을 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청우는 무당의 이대제자였고, 사내는 뒷골목 무뢰배였다.
애초에 상대가 될 리 없었거니와, 무엇보다 청우의 주먹은 빨랐다. 뚱뚱한 체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젠장, 이 정도로 밀릴 줄이야.’
사내가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청우에 대한 공략법을 생각하는데.
“아악!”
옆에서 기녀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화련아!”
사내의 눈에 비친 화련이라는 기녀의 가슴에는 청상의 검이 깊숙이 박혀 있었다.
“끄르륵…….”
화련에 이어 나머지 하나의 기녀가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뻐억!
한눈을 판 사이에 측면으로 파고든 청우의 주먹이 왜소한 사내의 옆구리에 깊숙이 틀어박혔다.
“끄으윽!”
숨이 막혀 오는 느낌과 함께 몸이 허공에 붕 떴고.
쩡!
거칠게 내려 밟는 진각과 함께 청우의 일권이 곧게 뻗어졌다.
칠성권의 창룡출두(蒼龍出頭).
비록 그 경지가 낮아 발경을 뿜어내지는 못했으나 왜소한 사내를 별실의 벽과 함께 튕겨 내기에는 충분한 위력이었다.
“우웩!”
가슴팍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문밖으로 튕겨진 왜소한 사내가 검은 핏물을 왈칵 토해 내었다.
저벅, 저벅.
청우가 마무리를 하기 위함인 듯 부서진 문밖으로 걸어 나오는데.
“청우!”
섬뜩함을 느낀 진무의 외침에 걸음을 멈췄고.
슈아악!
날카로운 예기가 아슬아슬하게 청우의 발끝으로 지나갔다.
파가각!
발의 한 치 앞.
마룻바닥이 거칠게 파헤쳐졌다.
그리고.
“홀홀, 이런 아까울 데가 있나. 그것을 알아채다니.”
복도의 끝에서 들려오는 이빨 빠진 노인의 웃음소리.
자칫 한 치만 더 나아갔어도 검기에 청우의 뚱뚱한 몸이 반토막이 날 뻔했다.
처음 주루에 들어왔을 때 일행을 맞이했던 노인이었다.
그저 변두리에서 주루나 운영하는 별 볼 일 없는 노인인 줄 알았는데.
“청우, 물러서라.”
문밖으로 나오며 청우의 앞을 가로막고 노인을 바라보는 진무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가득했다.
“사숙, 제가 맡겠습니다.”
청상이 나서려는 것을 진무가 고개를 저으며 막았다.
‘누구지?’
강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다.
고작 단강구의 약소 상단주인 금적산의 청부를 받을 만큼 수준 낮은 인물이 아니었다.
청우를 노린 기운.
적어도 자신의 기운을 쏘아 내는 탄기(彈氣)가 가능한 수준의 고수였다.
무릇 검기를 쓰는 이의 경지는 셋으로 나누어진다.
처음이 현기(顯氣), 특정 매개체를 이용해 기운을 외부로 드러내는 경지다.
대부분의 검기를 사용하는 고수들이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그 벽을 깬 자들이 도달하는 탄기의 경지. 드러낸 기운을 마음먹은 곳으로 쏘아 낼 수 있는 수준으로, 지금의 진무가 이룩한 경지였다.
현기의 고수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그 숙련도와 응용력이 더해지면 두 배 이상은 족히 차이 나리라.
탄기에 도달한 자들은 대부분이 대문파의 장로급이거나 그 바로 아래의 지위를 가진다.
그만큼 뛰어난 고수라는 뜻이다.
이전의 진무는 훨씬 높은 경지에 도달했었으나, 지금으로서는 아직 의기(意氣)에도 이르지 못했다.
“이거 눈치도 못 챘네. 대단해.”
이죽거림은 여전했으나 진무는 조금도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아니, 풀 수가 없었다.
노인은 그저 뒷짐을 지고 있을 뿐인데 피부가 따끔거려 올 정도로 강렬한 위압감을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라면 필시 의기 이상을 깨우친 자가 분명했다.
재수 없을 경우 ‘강’의 경지를 깨우쳤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