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40
240화
“핫핫핫, 거, 검혜. 그게 무슨 소리요? 사, 사기라니? 나, 나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소만.”
양소방이 누가 봐도 당황한 얼굴로 말까지 더듬으며 웃는다.
저걸 연기라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저런 걸 정무맹 정보 조직의 수장 자리에 앉혀 놓다니.
“그런가요? 이상하군요. 제게는 분명히 느껴지는데.”
“어, 어디? 혹, 궁의 놈들이 풀어 놓은 그 독인가 뭔가 하는 것 때문에 사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살기를 착각한 것이 아닐까?”
“…….”
진무를 대신해 변명을 줄줄 늘어놓는 양소방의 모습에 벽운영의 눈매가 더욱 가늘어진다.
당연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 망할 거지 영감탱이.
저놈을 믿은 게 실수지, 실수야.
양의심공을 익혔고, 그 때문에 사파의 무공을 익혔다. 그렇게 설명하면 간단하지만, 딱히 그럴 이유가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고.
“무풍개 어르신.”
“응? 뭐? 왜?”
제발, 그렇게 허둥지둥 대답하지 말래?
“이곳의 상황도 대충 해결되었으니 저는 그만 가 볼까 합니다.”
“가, 간다고? 그럴 텐가?”
“예.”
“아니, 무당의 제자들도 있는데 인사나 하고 가지.”
“이미 얼굴을 봤으니 되었습니다.”
“그, 그래? 그럼 어서 가게. 서둘러 가게.”
“알겠습니다.”
진무가 인사를 하고 나서려는데 벽운영이 앞을 막아섰다.
“내 말에 대한 대답을 아직 하지 않았네.”
“…….”
진무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 한숨을 푹 쉬었다.
보자 보자 하니까 나이를 헛먹었나.
칠십이나 되도록 살고서 어찌 그딴 것을 묻는단 말인가?
“검혜 어르신.”
“……?”
“제게 무슨 말을 듣고 싶으신 겁니까?”
“뭐라?”
“그리고 묻는다 하여 제가 대답을 하지 않으면 어쩌실 요량입니까?”
진무의 말에 벽운영의 눈매가 가늘어진다.
“정무칠성의 이름을 내세워 압박이라도 하실 생각입니까? 고신이라도 해서 답을 들으시겠습니까?”
“아니, 내 말은.”
“그리고 제가 설사 사공을 익혔다 하여 무슨 문제입니까?”
“뭐, 뭣이? 그야 당연히.”
순간 벽운영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무당지검이 사공을 익혔다.
사실상 그렇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무공은 그저 구분입니다. 사공과 정공을 누가 정해 놓았습니까? 그저 처음의 선택이 달랐고 가는 길이 다를 뿐입니다. 사공을 익히면 당연히 죄를 받아야 합니까? 정공을 익히고 있으면 나쁜 짓을 한다 해도 용서를 받습니까?”
“…….”
답할 수가 없었다.
칠십 년 가까이를 살아온 검혜다. 어찌 진무의 말뜻을 모르겠는가?
그의 말대로 구분일 뿐이다. 정파의 그늘 아래 있는 자들 중에도 인면수심에 파렴치한 짓을 일삼는 자들이 얼마나 많던가?
더욱이 사파의 그늘 아래 있다 하여 의롭고 곧은 자들이 왜 없었겠는가?
너무도 간단한 답을 내릴 수 있는 것인데 정파로 살아온 세월이 그녀의 머릿속을 어지럽힌다.
만약 사파인이 그리 말했다면 궤변이라 치부하였겠으나 무당지검이 말을 하니 묵직한 화두로 남는다.
아니, 그리 생각하는 것조차 자신의 편견일 뿐이었다.
누가 말하든 똑같은 화두이거늘, 어찌 차별하여 구분한단 말인가?
“정파든 사파든 그저 무림인입니다. 무림인이 아닌 자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
“더 물으실 것이 없으시면 이만 가 보겠습니다.”
진무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지나쳤으나, 벽운영은 더 이상 그를 막을 수가 없었다.
그저 묵묵히 진무의 말을 되새길 뿐이었다.
“이보시오, 검혜.”
“…….”
“어떻소? 답이 되었던 게요?”
양소방이 벽운영을 보며 싱긋 웃자,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벽운영이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더없이 좋은 답을 듣고 말았네요. 생각해 보면 지극히 간단한 답인데, 나이를 먹고 고집만 는 모양입니다.”
“헛헛, 암, 그렇고말고. 실로 지켜보고 싶은 아이가 아닌가?”
양소방의 말에 벽운영이 미소를 머금은 채 진무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네, 어떤 길을 걸을지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군요.”
“헛헛, 옳은 길을 걸을 게야.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지 말일세.”
“예.”
* * *
양소방 등과 헤어진 진무가 천천히 삼도평 분지의 마을 안을 거닐자, 이곳저곳에서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는 화산과 공동의 도사들이 진무를 향해 인사를 해 왔다.
많은 이들이 죽었다.
부상당한 이들은 더 많았다.
정신을 차린 이들은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닫고 울부짖는다.
자해를 하려는 자도 있었고, 미친 듯이 웃거나 우는 이도, 초점 잃은 눈으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기만 하는 자도 있었다.
무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자들이다. 힘이 없다는 이유로 이용만 당한 자들이다.
이런 것부터 살펴야지, 멍청한 정무맹 수좌 놈들.
제 놈들 주장 앞세울 시간에 죄 없이 휘말린 사람들부터 위로하고 어루만져야 할 거 아니야.
“하아…….”
진무가 복잡해진 머리를 떨쳐 버리듯이 고개를 세차게 흔든다.
신경 쓰지 말자.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진무가 모든 것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나마 눈앞에 있는 자들이라도 구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 아닌가?
죽은 이들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 넋을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것이 그들에게 정말로 위안이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젠장, 뭐가 어찌 되건 간에, 그래서 내 금원보 서른 개는 누구한테 받는단 말인가?
양소방한테 좀 내놓으라고 할까? 아니면 제갈협진 그 얌생이 놈에게?
그 정돈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삼궁 놈들의 음모를 분쇄하고, 혹시 모를 참사까지 막아 줬는데 말이야.
그래, 좋은 생각이다.
양소방에게 빼앗은 내공 값은 세작으로 퉁 치지 않았던가. 이젠 돈으로 받을 때도 됐다.
진무가 결심을 굳히고 발길을 되돌리려는데.
“사수욱!”
멀리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대충 목소리만 들어도, 쿵쿵거리며 땅을 짓밟는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알겠다.
야, 청우야. 뛰지 마라. 땅이 얼마나 아프겠니.
양팔을 쫙 벌리고 뛰어오는 것을 보니 무슨 짓을 할지도 예상되었다.
이젠 싫다 이놈아.
휙!
“……어?”
피, 피해?
반응을 예상한 것인지 청우가 돌연 나려타곤을 시전해 진무의 주먹을 피했다.
그러곤, 곧바로 측면에서 진무를 끌어안기 위해 다시금 팔을 벌리고 솟구쳐 오른다.
따악!
“아극!”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고 주저앉아 울상이 된 청우.
“아파요.”
“…….”
당연한 소릴, 아프라고 때렸는데. 그래도 많이 발전했구나. 이 사숙의 주먹을 피할 줄도 알고.
“사숙!”
청우의 뒤로 얼굴 가득히 웃음을 머금은 청상과 제갈산산이 다가왔다.
“니들은 어쩐 일이냐? 남들 다 저렇게 일하는데 놀아도 되냐?”
“하하, 사숙께서는 우리 무당의 자랑이 아닙니까. 훌륭하신 사숙님 덕 좀 봤습니다.”
“…….”
그걸 농이라고 치는 거냐?
명색이 갑무반을 먹고 정무맹의 핵심으로 무럭무럭 자라나 앞으로 이 사숙 가는 길에 큰 보탬이 되어야 할 놈이 놀아? 넌 일하지 않는 자 밥도 처먹지 말라는 말도 모르냐?
진무가 샐쭉하게 째려보자 청상이 갑자기 눈을 끔벅이며 식은땀을 흘린다.
“그, 그게 아니라. 비흔께서 사숙과 회포를 풀라고…… 휴가를…….”
“양소방 어른이? 휴가를 줘?”
“예.”
“사람이 남아도는 모양이군. 힘 좋은 놈들 둘이나 빼 주고. 하여간 물러 터졌어. 아랫놈들 부릴 줄을 몰라. 쯧쯧.”
진무가 투덜거리자 청상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거리며 뒤따르고 청우와 제갈산산이 그 뒤를 줄줄이 쫓는다.
“그나저나 녹봉은 좀 받냐?”
“예. 한 달에 은 한 냥 정도.”
“…….”
이런 망할 놈들이, 이 귀한 인재를 고작 은 한 냥에 부려 먹는다고?
내가 어떻게 가르쳐 놓은 애들인데, 이것들이 수고료에도 못 미치는 돈을 녹봉으로 주고 있어?
어째 이 바쁜 시국에 휴가를 줬다고 했더니, 잘 구슬려서 싸게 오래 부려 먹으려고 그런 거였구나.
거지새끼. 자린고비가 따로 없다.
“너무 적지 않냐?”
“적긴요. 제갈 소저는 겨우 반 냥 받는걸요.”
불쌍한 내 새끼들. 고작 그거 받고도 저렇게 행복해하는 표정이라니.
니들은 제갈산산이랑 달라. 쟤네 집은 어마어마한 부자라니까? 쟤는 반 냥만 받아도 돼. 아마 돈으로도 생각 안 할걸?
아, 가난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구나. 무당에서 그 가난뱅이 도사로 살다가 정무맹에 와서는 제대로 녹봉도 못 받고.
얘들아. 내가 돌아다녀 봐서 아는데 딴 데는 돈 많더라.
진무가 측은하게 바라보는데.
“그래도 정무맹에서 꽤 배려를 해 주고 있습니다. 무당으로 지원금도 많이 보내 주고 있구요.”
“……응? 뭐?”
“아, 모르셨습니까? 얼마 전에 사조님과 진허 사숙을 만나 뵈셨다 들었는데.”
아무 말 안 하던데?
진무가 멀뚱히 쳐다보자 청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말하자면 특별 위로금입니다.”
특별 위로금? 그런 것도 있나?
“듣기로는 사숙께서 정무맹 산하에 있는 문파들에게 도움을 줄 때마다 지급되었다고 하던데요?”
“…….”
순간 진무가 걸음을 멈춘다.
“……그, 그게 뭔 소리냐?”
“그 왜, 사천에서 궁의 인물들과 싸웠을 때랑, 마교와 곤륜의 마찰에서 가짜 구야자를 밝혀내었을 때랑, 동림전장의 일, 이번에 종남에서 세작도 찾아내셨잖아요.”
그러니까 그게 왜?
“그때마다 맹주님의 지시로 무당에 꽤 많은 지원금을 하사하셨다던데요? 그 덕분에 지금 본산이 제법 풍요로워졌습니다.”
“…….”
해맑은 청상의 말에 진무의 얼굴과 전신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아마 이번 건에 관련해서도 엄청난 포상이 무당으로 하사되지 않을까요?”
“…….”
무당으로, 무당으로, 무당으로…….
“장문인께서 매우 흡족해하십니다. 이젠 상단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셔도 된다고 하셨다던데요? 진궁 사숙께서도 일이 수월해졌다면서.”
이, 이런 씨바알!
그걸 왜 무당에 준단 말인가? 무당이 뭔 한 일이 있다고!
나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심지어 뒈질 뻔해 가면서 오만 쌩 지랄을 다 하고 돌아다닌 보상을 왜 무당에 주냐고? 내가 아니라??
“호, 혹시 얼만지…… 들었니?”
“글쎄요. 정확한 것은 모르지만 한 번에 금 한 관씩은 무조건…….”
그, 금 한 관!
금원보도 아니고 황금 한 관!
어쩐지 화산에서 만났던 스승 명진도 모자라 진허, 이 망할 놈까지 때깔 좋은 비단 도포를 처입고 다닌다 했더니.
살림살이가 나아진 정도가 아니었구나. 금을 관으로 처받아먹고 있었구나.
스승이 자신을 자랑스럽게 쳐다본 게 그 때문이었구나. 전부 진무가 세운 공인데, 고작 제자라는 이유로 낼름 채어 갔구나.
도사 놈들 정말 싫다.
무당, 이전에도 지금도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새끼들.
내가 속았다. 도동 놈의 기억에 잠식되어 내가 속았어.
진무가 갑자기 털썩 주저앉자 청상과 청우가 급히 부축을 하고, 제갈산산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저런, 저희 생각이 짧았습니다. 자고로 큰 싸움 뒤에는 한동안 정양을 하시는 것이 좋은데.”
“아! 이런……. 죄송합니다, 사숙. 너무 건재해 보이셔서.”
청상이 자신의 실수를 책망하며 사죄한다.
얘들아, 그거 때문이 아니란다.
내가 지금 양소방한테 금원보 서른 개쯤 내놓으라고 할랬거든. 근데 그걸 무당이 벌써 다 받아 처먹었잖아.
진무의 눈동자에 지독한 실망감과 허무함이 떠오르자.
“이런 눈빛이라니……. 위험합니다. 지금 제가 가진 건 요상단뿐인데.”
제갈산산이 어쩔 줄을 몰라 하며 호들갑을 떤다.
“비흔 어르신께 모실까요? 검혜 어르신도 계시지 않습니까?”
청상이 부축해 일으키는데 진무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야. 아파서 그런 거 아니라고. 돈 때문에. 내 귀한 금원보 때문에. 무당 때문에.
그리고, 양소방, 벽운영, 걔들 보기 싫어. 또 사공이 어쩌고 할 거야.
“홀로 감내하시려는 겁니까?”
“…….”
아, 말할 힘도 없다. 그냥 니들도 다 꺼져 주면 안 되겠냐, 망할 무당 도사 놈들아.
그때 갑자기 청우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의견을 낸다.
“사형, 자고로 보약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사숙께서 그동안 제가 구워 드리는 고기를 좋아하셨으니.”
“…….”
이건 또 무슨 병신 같은 소리란 말인가?
“옳다! 사조님께서도 오랫동안 병석에 계시다가 고기를 먹고 쾌차하시지 않았느냐!”
넌 진짜 왜 그래, 청상아.
저 미친 소리를 왜 믿고 있어, 니가.
그건 스승님 체력을 보충시켜 드리려고 그런 거야. 나랑은 다르다니까?
제갈 계집아, 니가 얘들 미친 소리 하는 것 좀 막아 줄래? 내가 그래도 넌 좀 믿고 싶은데.
진무가 물끄러미 제갈산산을 쳐다보자.
“흠, 그렇군요. 뭔가 이해는 안 되지만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
청우의 멍청함이 너한테도 묻었구나.
“자, 가시지요. 사숙을 어서 숲속으로 모셔 주십시오. 제가 가서 꿩이랑 멧돼지를 잡아 오겠습니다!”
돼지 주제에 개소리를 종알거리며 청우가 쾌속하게 숲으로 굴러(?)갔다.
“자, 사숙. 제게 기대세요. 제가 모시겠습니다.”
진무의 뒤통수를 거하게 때린 청상이 진무의 팔을 어깨에 척 올려 부축하고, 이미 모든 의욕을 상실해 버린 진무는 청상에게 기대 힘없이 숲속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 뒤를 따르는 제갈산산.
맘대로 해라, 맘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