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41
241화
삼도평에서 제법 떨어진 한적한 숲.
새벽부터 토끼가 잊지 않고 찾아와 물을 마실 듯한 옹달샘이 있는 곳.
멍하니 앉은 진무를 두고 제갈산산이 구해 온 마른 나뭇가지를 잘 모은 청상이 능숙하게 모닥불을 피운다.
“사숙!”
사냥하러 갔던 청우가 양손 가득히 잡아 온 꿩이며 멧돼지 새끼가 청상의 손질을 거쳐 모닥불 위에 가지런히 걸리고, 제갈산산이 품에서 작은 병들을 꺼내 탁탁 떨듯 뿌린다.
소금이며 후추며, 풍미를 더해 줄 향신료가 담겨 있는 게 분명하다.
제갈산산이 뿌리면 청우가 뒤집고, 청상이 칼집을 내면 다시 제갈산산이 뿌리고.
이 새끼들, 분업화가 제법이다.
익기만 하면 좋다고 처먹더니 이제는 조미료 맛도 좀 알았나 보지?
그러거나 말거나 턱을 괴고 앉은 진무의 머릿속은 무당이 받아 챙긴 보상금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썩을 것들.
받았으면 받았다고 말 한마디 해 주는 게 어려운가?
네 덕에 무당의 재정이 늘었다고 진즉에 서신이라도 하나 보낼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
이 망할 놈들이 처먹고 입을 싹 닦다니. 그동안 저 혼자 불쌍한 무당 가여운 무당 해 가며 걱정했던 것이 몹시 허무해진 진무였다.
화산에서 몰래 야명주 하나를 두고 온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된다. 그걸 어떻게 얻은 건데. 그게 얼마짜린데.
아쉬움을 담아 한숨을 푹푹 내쉬는 사이 청우가 걷어 낸 고기를 청상이 먹기 좋게 썰어 내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기를 가득 담은 접시를 공손히 들고 와 앞에 놓는 청상.
“사숙, 식기 전에 드십시오.”
“…….”
이런 호랑말코 도사 놈.
이젠 거리낌조차 없구나. 정말로 호랑말코가 다 되었어.
돈 문제로 언짢은 와중에도 조금 흐뭇하다. 저리 예쁘게 타락해 주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전부 교육의 힘이다.
그리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미래에 든든한 부하가 될 녀석들을 위해 투자했다고 생각하자. 무당은 정무맹에 만들어 놓은 자신의 우호 세력이다. 그걸로 만족하자.
그까짓 돈. 그까짓…… 크흐흑.
망할, 쉽게 잊히지는 않을 모양이다.
진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청상이 고기 접시 앞에 앉아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사숙, 혹시 이곳이 함정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럴 리가. 오니까 함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감히 나를 함정으로 안내해? 빌어먹을 무영 자식. 진무가 묵묵히 있자 청상이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어 간다.
“……민초들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게지요?”
응? 무슨 소리냐?
진무도 이곳이 삼궁의 본거지인 줄 알았다. 그래서 금원보나 좀 챙겨 볼까 해서.
“그럴 줄 알았습니다. 화가 나셨던 게지요. 이놈들의 만행을 참을 수가 없어서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신 게지요.”
“…….”
이 미친 도사 놈이 의식의 흐름을 따라서 뭔가 또 겹겹이 오해를 쌓고 있는 모양이다.
“하긴, 사숙께서는 항상 그런 분이었지요.”
“…….”
“저희를 데리고 처음 외유를 시작하셨을 때도 민초들의 어려움 때문에 단강구의 무뢰배들을 처리하셨어요.”
그게 아니다. 청상아.
알잖느냐? 그때 진허 놈이 마음껏 쓰라면서 꼴랑 철전 열 개를 줬어.
그걸론 청우가 처먹는 고깃값도 못 대. 너도 봤잖아. 저 녀석이 얼마나 처먹는지. 그래서 현상금이라도 벌려고 했던 거야.
당시에 내가 도사로 사는 게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겸사겸사 분풀이도 좀 한 거라고.
“그들을 악독하게 갱생시키는 사숙을 보며 생각을 했었지요.”
“…….”
“아, 저분께서는 스스로 가시밭길을 택해 세상에 의로움을 가져오시는 분이구나, 하고요. 그래서 전 결정했습니다. 사숙을 끝까지 믿고 따르겠다고.”
줄줄이 별 미친 소리가 이어졌지만, 진무는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아, 그때가 오해의 시작이었구나. 하지만 존경한다는데 굳이 해명할 이유는 없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에 청우가 조심스럽게 고기 한 점을 주워 진무의 입가로 가져온다.
허, 이놈 보게. 실로 장족의 발전을 했다.
이 고기 좋아하는 놈이 제 놈 먼저 안 처먹고 사숙 먼저 먹으라고 주다니.
내심 기특한 마음으로 고기를 오물거리는 와중에도 청상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
“운암 도장께도 들었습니다.”
부하 삼 호. 그러고 보니 안 보이던데 잘 지내고 있으려나.
“과거 사숙으로 인해 큰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하더군요.”
깨달음?
진무가 의아하게 청상을 쳐다보자.
“마교의 칠동천이 준동하였을 때, 운암 도장께서는 가짜 구야자에만 몰두하며 그들을 뒤쫓았다더군요. 그사이 사숙께서는 홀로 민초를 구하셨다지요.”
딱히 머리에 담아 둘 만한 일은 아니었기에 금세 잊었으나 그런 기억이 있다.
“그때 운암 도장께서는 도포를 입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사숙의 얼굴을 차마 뵐 낯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
“허울에 가려 가장 먼저 했어야 할 행동을 잊고 있었다 말하더군요.”
아, 그때 꾸짖었던 걸 말하는 건가?
그거 그냥 화나서 한 말인데.
“운암 도장께선 평생 사숙을 존경하며 사시겠다더군요. 진룡 어르신 다음으로 참 스승을 만난 듯하다고.”
“그, 그래?”
“예. 일전에 무당산에 들러 사숙께서 살아오신 자취도 한번 훑고 간 모양입니다.”
뭘 훑었다고?
“칠 주야 동안 명진 사조님께 사숙께서 어찌 살아오셨는지 들으며 전부 꼼꼼히 서책으로 적어 소중히 품고 무당을 떠나셨다더군요.”
커억. 칠 주야 동안이나 대화를 했다고? 기록까지 해 가면서?
미친놈이 뭔 위인전을 쓰나. 역사적인 인물이 살아온 발자취 답습하는 거야?
옹알이 빼고는 정상인 줄 알았더니…… 그 새끼도 또라이였구나.
진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런데 사숙.”
“……응?”
청상이 자세를 바로 하고 표정을 굳히자, 새 새끼처럼 청우에게서 고기를 받아 오물거리고 있던 진무가 의아하게 쳐다본다.
“지원을 요청하셨어야 합니다.”
“…….”
“만약 이곳이 함정이 아니라 정말로 적의 근거지였다면, 아무리 사숙이라 하여도 큰 화를 당할 뻔하신 겁니다.”
청상이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진무를 바라본다.
이 새끼가 지금 어디서 사숙을 노려보고. 손가락으로 눈을 확 찔러 버릴…… 응? 너 설마 날 걱정하는 거냐?
청상의 눈동자에 담긴 걱정, 그리고 미안함, 자괴감.
진무는 날카롭게 세워 들었던 손가락 두 개를 슬며시 내렸다.
이 새끼 뭐 그딴 눈빛으로 쳐다보냐. 괜히 심장 아리게시리.
물론 모든 게 제 놈 머릿속에 그려진 진무의 모습에 기인한 오해였기는 하지만 괜히 미안했다.
말해 주고 싶었다.
청상아, 나 니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 아니야. 진짜 완전 아니거든.
하지만 옆을 보니 청우도, 제갈산산도 청상과 같은 눈빛이라 도저히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 앞으론 조심하지, 뭐.”
진무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하신 겁니다.”
“알았다니까.”
청상의 잔소리는 그 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때려서 저 입을 막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던 와중에, 이번에는 제갈산산이 볼을 빵빵하게 불리고 불평을 쏟아 내었다.
“진무 도장께서는 이리 불철주야 뛰어다니시는데. 정무맹의 기둥이라는 문파와 어른들은 어찌 그리 다들 제 이득만 챙기시는지.”
그녀의 투덜거림에 청상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게 말입니다. 마치 사파의 족속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습니까?”
“…….”
진무는 불평하는 둘을 가만히 응시했다. 혹시나 싶어서 청우에게도 힐끗 시선을 주었지만.
우걱, 우걱, 우걱.
잘도 처먹는구나. 우리 청우.
그래, 니가 제일 속이 편하겠다.
“사숙.”
“왜?”
“저는 가끔씩 혼란을 느낍니다.”
나도 혼란스럽다. 부하로 삼은 너한테 지금까지 잔소리를 들어서.
“용봉관에 소속된 이후 참 많은 모습을 보았습니다.”
“…….”
“모두가 사숙 같지는 않더군요.”
물론 나같이 위대한 사람은 없지.
근데 이놈이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설마 또 잔소리를 하려는 건가?
“제가 본 이들은 사숙과 달랐습니다. 모두가 제 이득만을 생각하더군요. 그들에게 의(義)는 몸담은 가문의, 세력의 이득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곳에 진정한 정파의 무인은 없었습니다.”
어딘가 회의가 느껴지는 듯한 청상의 말에 청우와 제갈산산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린다.
진무는 그들이 느끼고 있는 괴리감을 대충 알 것 같았다.
정파에서 내세우는 ‘의(義)’, 사파에서 내세우는 ‘이(利)’.
하긴, 정파의 초짜 무인들이 종종 그걸 혼동해서 혈기 방장한 짓을 저지르고 다니곤 하지. 의가 전부인 줄 알 테니까.
둘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진무의 몸속에 자리 잡고 있는 노인네의 고집스러움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이 세상 덜 산 어린놈들에게 인생의 진리를 가르치고 싶은 충동이 마구 끓어오른다.
그래, 해야지. 응당 일깨워 줘야지. 그게 노인의 역할이다.
“쯧쯧, 멍청한 녀석들 같으니.”
진무가 혀를 차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청상과 청우, 제갈산산이 그를 향해 똑바로 시선을 마주쳐 온다.
“청상아, 청우야.”
“예.”
“정파는 항상 옳은 일만 해야 한다 생각하냐?”
“그야.”
“그건 그냥 이상(理想)이야.”
“……예?”
“정파라고 무턱대고 손해를 보면서 사람들을 도울 순 없어. 의(義)가 앞설 수는 있지만 이(利)를 배제할 수는 없는 거야. 그들도 먹고, 마시고, 즐기는 기본 생활을 영위해야 하니까.”
“…….”
“그리고 그건 정과 사, 그리고 마. 모두가 서로 다르지 않지.”
“예? 그게 무슨?”
듣고 있던 셋 모두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자 진무가 피식 웃는다.
“그냥 무림인이야. 그저 강호에 소속된 이들끼리 구분 짓는 거지. 무림인에게 있어서 의와 이는 크게 다르지 않아.”
“…….”
“그냥 포장이야. 자고로 선물을 줄 때는 말이지, 무엇으로 포장하는가에 따라서 받는 쪽에서 느끼는 감정이 달라지는 거거든.”
심각한 표정으로 진무의 말을 경청하는 청상과 청우와는 달리, 제갈산산의 눈동자는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 진무의 저 말은…….
“정파는 그저 깨끗하게 포장한 거고, 사파는 그냥 아무렇게나 싸맨 거야. 누가 봐도 정파가 좋아 보이지. 그게 남들이 느끼는 의와 이의 차이고.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뜻이거든.”
제갈산산은 눈을 부릅떴다. 위험한 생각이다. 진무는 정파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지, 진무 도장. 말씀이…….”
“심하다고?”
“…….”
“뭐가 심하지? 제갈가는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을 돕나?”
“그, 그건…….”
“반박하지 못하겠다면 말주변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옳기 때문이다.”
“…….”
진무의 말에 제갈산산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청상, 청우. 니들은 알지? 무당의 쇠퇴.”
“…….”
“그게 사황 혁련무강의 공격 때문이었을까?”
“그렇지 않나요?”
“물론, 원인이 될 수 있지. 하지만 전적인 이유는 될 수 없어. 지금의 무당을 봐라.”
“…….”
“돈, 즉 이에 충실한 이후부터 어찌 됐느냐? 재건되고 있지 않아? 나날이 힘이 강성해지고 있지.”
“…….”
“그 돈은 어디서 올까?”
“상단…….”
……이 일부일 테고, 이 사숙이 잘해서지, 이 새끼야.
“힘에서 오는 거야. 궁이니 마교니, 그딴 놈들과 싸워서 이겼기 때문에 다들 돈을 가져다 바치는 것이지. 일종의 투자라고 해야 할까.”
진무는 차근차근 말을 이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 볼까? 단강구의 무뢰배, 그들을 처리하지 않았으면 무당이 그쪽 상인들의 자발적인 도움을 받았을까? 그리고 단강구 제갈분가와의 싸움에서 이기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을까?”
“음…….”
청상의 미간이 더욱 깊이 파이고, 청우가 번뜩 깨달은 듯이 외친다.
“모두가 사숙께서 행하신 일이군요!”
청우 이 새낀 단순해서 가끔 듣기 좋은 말을 한다.
하지만 체면이 있는데 대놓고 좋아할 수는 없으니 일단 무시.
“무당이 진심으로 의를 추구한다면 어째서 모두 거절하지 않았을까?”
“…….”
“정무맹은? 그들이 여기저기 지원금이라고 뿌리는 돈은 어디서 났을까? 무인들의 녹봉은? 이를 배제하고 의를 행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나의 세력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이득을 고려해야 하지. 때로는 비정해지고, 때로는 모른 척도 하고, 때로는 불의와 손도 잡아 가면서.”
진무의 말에 셋은 모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물론 딱히 답을 구한 것은 아니다.
“물론 정파 쪽이 사파나 마교보다 나쁜 놈들이 훨씬 적긴 하지. 스스로 세뇌하니까. 자기만의 규율을 정하고 흐트러지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니까.”
“…….”
“하지만, 그 모든 구분과 상관없이 무인들이 이를 추구한다는 것이 핵심이야.”
“하지만 사숙께선 그런 이해관계마저 초월해 사람들을 돕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건 나니까 가능한 거거든?
그리고 매번 보상을 얻고자 했지만 실패를 한 것뿐이야.
청상의 반박에 진무가 새삼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말을 이었다.
“청상아, 이상적이라는 표현은 그릇된 것에 붙여 쓰지 않아. 완전무결할 정도로 옳기에 그리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저는…….”
청상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는 모습에 진무가 피식 웃었다.
“청상아.”
“……?”
“결국 무림인은 그놈이 그놈이다.”
“…….”
“하지만 정히 바꾸고 싶으면 방법이 있지.”
“그게 무엇입니까?”
“힘을 길러.”
“예?”
“힘. 적어도 이 무림에서는 그게 정의다.”
“힘이 있어야만…… 그건 너무 마교나 사파스럽지 않습니까?”
“멍청아, 지금이라도 가서 정무칠성을 모아 놓고 말해 봐라. 네 말을 들어 주는지.”
“…….”
“힘이 없는 정의는 무능이다.”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지요.”
퉁명스러운 반박에 진무가 이걸 확 때려 버릴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한동안 안 때렸더니 사숙 말씀하시는데 기어오르네, 싸가지 없게.
“그래. 니 말이 맞아. 하지만 정의든 폭력이든 공통의 관심사는 똑같아. 힘이지.”
“…….”
“불평불만을 하기 전에 힘부터 길러. 설득이든, 강제력이든, 정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든. 네 말에 모두가 귀를 기울이게 될 수 있게 되면 그때 해. 그전엔 지금의 고민이나 너의 생각은 공허한 외침 이상이 될 수 없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힘을 가지기 전에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던, 그저 착취당하고 핍박만 받았던 과거처럼.
적어도 무림에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
협이니 의니, 결국엔 문답무용. 강한 자가 이기고, 이기는 자가 정의다. 그리고 모든 변화는 승자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고, 진무는 단 한 번도 그것이 틀렸다 생각한 적이 없었다.
정사마? 그딴 구분 따위 그저 지들 편한 대로 만들어 놓은 거지.
단, 무림인은 무림 속에서 살아야 한다. 민초들에게 패악 떨지 말고.
청상이 고민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자 진무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덧붙였다.
“뭐, 꼭 내 말을 들으라는 건 아니야. 결론은 니가 내려. 화두를 던진 건 나지만 답을 이끌어 내는 것은 니 몫이니까.”
“예. 좀 더 찬찬히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사숙의 말씀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까지 힘을 기르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무럭무럭 자라서 정무맹의 핵심으로 다가가야지.
그런데 말이다. 의를 행하든 이를 쫓든, 반드시 변하지 말아야 할 건 이 사숙에 대한 존경심이란다.
그래야 나중에 이 사숙이 정사를 통일할 때 부하로서 역할을 다하지. 운암이랑 제갈산산까지 힘을 합쳐서. 청우는…….
진무가 슬쩍 쳐다보자 화들짝 놀란 청우가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았는지 급히 입을 열었다.
“하긴, 그러고 보면 우리가 짐승을 잡는 것도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지요. 살생을 금해야 함이 도사의 의이나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이를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요?”
“…….”
청우가 제 생각을 말해 놓고 슬쩍 눈치를 보자 진무가 피식 웃는다.
고기에 미친 도사 놈, 예를 들어도 그딴 걸 드는구나.
뭐, 어쨌든 속뜻은 비슷하다.
하긴, 미사여구를 어떻게 붙이는가 하는 것도 포장일 뿐이지. 먹고 살기 위해 짐승을 죽여야 하는 것은 정사마가 동일할 테니까.
“청우야.”
“예? 헤헤.”
칭찬이라도 내려줄 듯이 웃는 진무를 향해 청우가 실같이 얇은 눈을 한껏 휘어 웃으며 기대한다.
“다 먹었다. 고기 더 잘라 와.”
“……네.”
“그리고 저기 탄다. 좀 뒤집어.”
“……네.”
멍청한 청우가 제법 성장했다는 생각이…… 잠깐만.
그러고 보니 모처럼 화목하고 즐거운 사숙과 사질 간의 대화 중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생각났다.
“근데 청상아.”
“예.”
진무의 대답에 조금은 머리가 맑아진 청상이 웃으며 대답을 한다.
“내가 저번에 말하지 않았니?”
“뭘요?”
“청우.”
“…….”
“탄기에 올려놓지 못하면 뒈진다고 했던 것 같은데?”
“…….”
진무의 미소에 청상의 얼굴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는다.
덥지도 않은데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하고, 시선이 어디로 두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쟤 아직 현기 아니냐?”
“그, 그건…… 아직 시간이…….”
“내가 분명히…… 다음에 만났을 때 발전이 없으면…… 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바, 발전은…… 아주 조금은…….”
기어이 사색이 되는 청상의 얼굴.
“오호? 그래? 발전이 아주 조금은 있었단 말이지?”
“…….”
청상은 지금 순간 정사마가 뭐든 간에 아무런 상관없이 그냥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진무의 미소. 저 망할 송곳니.
아, 씨발, 정말이지. 사숙, 쟤는 청우란 말입니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