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44
244화
무명촌의 사건 이후, 한 달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 사이 정무맹은 세작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내실을 다지기 시작했다.
세작의 존재는 오대도문, 소림과 아미파와 같은 불문처럼 자파의 정체성이 확실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든 곳에 존재했다.
무가를 이끄는 다섯 세가들이 그러했고, 이합집산(離合集散)을 반복해 온 구파의 몇 곳도 그러했다.
중소 방파들은 말할 것도 없었고 상계와 표국에 이르기까지 자신도 모르게 삼궁과 연이 닿은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정무맹의 대군사 제갈협진은 정무맹에 속한 모든 곳에 서신을 보내 정식으로 감찰단의 출범을 알렸다.
이는 당연하듯이 큰 반발을 불러왔다.
구파와 무가의 주인들은 자정(自淨)의 시간을 가지겠다 목소리를 높였으나 제갈협진은 조금도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비록 감찰단의 존재는 진무의 건의로 적을 놀라게 하고자 마련된 임시방편이었으나 실상은 달랐다.
그것은 용봉관처럼 이미 제갈협진이 오랫동안 계획해 온 일 중 하나였다.
용봉관과 감찰단.
오롯이 정무맹에 소속되어 예하 세력에 대한 감시와 구속력을 가지는 단체.
그것은 맹주가 가지는 힘을 강화하는 절대적인 권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예하 세력의 반발을 우려해 계획만 세워 두었던 것이 세작의 존재와 진무의 계획으로 명분이 생긴 것이다.
계략을 위한 것이라 해도 이미 감찰단은 만들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출범을 알린 것뿐.
더욱이 검혜 벽운영이 직접 감찰단의 수장을 맡아 주겠다 했고, 진룡 풍환의 제자 운암이 그 휘하에 들어가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정무맹은 차근차근하게 권력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때마침 사패천의 반란 세력이 휴전을 요청해 왔다.
그들 입장에서는 내전 중이니 정무맹과의 마찰이 껄끄러울 것이다.
하지만 좋은 시기다. 그들이 내전을 벌이게 되면 지역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마찰을 제외하고는 사패천의 위협을 한동안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더욱이 내전을 통해 그들의 세력이 축소된다면 그 또한 반길 일이었다.
그사이 정무맹은 내실을 다질 시간을 얻게 된다.
썩은 뿌리를 잘라 내고 든든한 뿌리에 힘을 실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너무도 순조롭다.
탁.
감찰단에 관련된 계획을 세분화하여 작성하던 제갈협진이 잠시 붓을 놓고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진무…….”
그를 생각할 때면 저절로 미소가 떠오른다. 그에 대한 호감과는 다른 문제였다.
공전계, 감찰단, 용봉관까지.
제갈협진이 세워 두었던 계획이 희한하게 그와 맞물리며 물 흐르듯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안타깝군. 그가 있다면 분명 정무맹에 큰 도움이 될 것인데. 정사마를 통합해 무림에 안정을 가져오는 데 중심이 될 인물인 것인데…….”
제갈협진은 그를 정무맹의 요직에 앉히고 싶었다. 하지만 무명촌의 사건 이후로 그는 다시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하나 그는 무당에 속한 자다.
어디에 있던 그가 있는 곳은 중원이며, 그의 보금자리는 무당이요, 정무맹이란 생각이 들었다.
“뭐, 또 어디선가 나타나겠지.”
피식 웃은 제갈협진이 다시 붓을 들었다.
* * *
섬서성, 소화산(小華山)의 북쪽 산자락.
마차가 자주 오간 터인지 바퀴 자국이 선명한 산길.
붉은 천으로 외곽을 장식한 마차 한 대와 짐을 잔뜩 실은 수레 하나가 무언가에 가로막힌 듯이 멈춰 있었고, 다수의 사람이 가득히 모여 있었다.
“흐흐흐. 예쁘게 생겼네?”
짐승 털을 기워 만든 옷을 입은 털보 장한이 월도(月刀)를 들고 여인을 위협했다.
“꺄아악!”
거대하고 흉측하기 짝이 없는 얼굴이 자신의 눈앞에 들이밀어지자 여인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
왜? 뭐가? 어째서?
아직 아무 짓도 안 했는데?
털보 장한이 찡그려진 눈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의 눈에 떠오른 것은 놀람, 긴장, 더러움, 모멸감…….
송충이…… 벌레…….
쓰레……기?
“캬악! 퉤!”
영문을 몰라 하던 털보 장한이 좀 전의 상황 전개를 완벽하게 깨닫고 와락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니, 더욱 못생겨졌다.
“이런 개 같은 년이!”
털보 장한의 눈이 역팔자로 휘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의 이름은 구일식.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부랑촌을 전전하다가…… 어쨌든 산적이 된 인물이었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온암산에서 제법 이름난 산적 패의 우두머리가 된 그는 백 근의 돌을 들어 올릴 정도로 용력이 뛰어났다.
그리고 그는 못생겼다.
처음 보는 사람이 ‘헉! 아씨, 재수 없는 걸 봤네!’라고 말할 정도로, ‘이런 퉤!’ 하고 침을 뱉을 정도로!
못생겨도 정말 더럽게 못생겼다.
“야! 호걸!”
“예! 채주!”
“지금 저년이 내 얼굴 보고 놀란 거 맞지?”
“미친년입니다!”
두건으로 코 아래를 가리고 있는 호걸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흠, 하긴 내 얼굴을 보고 그리 놀랄, 흠흠, 그런 생각을 가질 이유가 없긴 하지.”
이해가 빠르다.
왜! 뭘 보고?
그냥 더럽게 못생겼다고 누가 좀 말해 줘!
라고 여인은 외치고 싶었지만, 위기에 처한 것은 자신 쪽이었다.
산 아래 부운장이라는 제법 이름난 가문의 여식인 그녀, 양설예는 혼례식을 치르기 위해 산을 넘고 있는 중이었다.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인근의 작은 표국에 호위와 짐의 수송도 부탁했다.
사실 소화산 근처에 위협이 될 만한 것이라고는 많지 않았다. 정파의 세력권이라 산적 패라고는 없는 곳이니 짐승의 습격만 조심하면 되는 일이다.
사실 그조차도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 훤한 대낮에 사람 다니는 길에 짐승이 나타날 리 만무했으니까.
혼행(婚行)은 순조로웠고, 이제 산만 넘으면 끝날 일이었는데 뜬금없이 산적 패거리가 나타났다.
“어찌하여 우리의 길을 막는 것이오! 섬서가 화산파의 영역임을 모르는 것이오!”
라며 호기롭게 외치며 나섰던 자칭 화산의 속가제자였다는 표국주는 커다란 철퇴 한 방에 기절했고, 칼을 들었던 표사들은 진즉에 한쪽 구석에 무릎이 꿇려졌다.
“수레가 제법 가득하네.”
구일식이 힐끗 고개를 돌려 수레를 바라보고.
“여자 얼굴도 반반하고.”
양설예를 보며 송충이처럼 징그럽게 웃는다.
“모처럼 대어를 낚았습니다. 채주.”
부채주 호걸이 탐욕스럽게 웃는다.
“그러게 말이야. 소화산까지 내려와 보길 잘했어.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혼행 가는 마차를 발견할 줄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안 그래도 이달에 본채로 보낼 상납금이 조금 부족했는데, 덕분에 모처럼 질펀하게 마실 수 있겠습니다.”
구일식의 말에 호걸이 기분 좋게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섬서 북쪽 온암산에 거처를 잡고 있는 만산채.
소화산은 원래 화산파의 영역권에 속해 있기에 그들이 함부로 들어오는 곳은 아니었다.
정파 무림에는 일명 ‘공적 쌓기’라는 것이 있었는데, 일대나 이대제자들을 보내 산적이나 도적, 강도, 무뢰배를 퇴치함으로써 명성을 높여 주는 것을 칭함이었다.
원체 빈번하게 시행되다 보니 피해는 고스란히 사파의 산적이나 수적들이 보는 경우가 많았다.
한데 근래 화산의 공적 쌓기가 뜸해졌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산적들로서는 대목을 맞이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치안이 약해진 틈에 한몫 단단히 챙길 기회가 온 것이다.
“이거 소화산에 분채라도 하나 내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입을 함지박만큼 벌린 호걸의 말에 구일식이 잠시 고민했다.
안 그래도 요새 본채에 보내야 할 상납급이 늘어서 곤란하던 참이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성이 있었다.
“자, 어서 정리해. 수레 안에서 값나가는 물건들과 반반한 여자들은 챙기고, 사내놈들은 죄다 죽여 버려. 괜히 뒷이야기 나오면 곤란하니까.”
“알겠습니다!”
구일식의 말에 산적들이 칼을 흉흉하게 들고 다가가자 사람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빨리빨리들 정리해. 오늘 같은 날은 어서 산채로 돌아가서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셔야 하니까!”
“예! 채주님!”
구일식의 채근에 산적들이 신바람이 난 표정으로 대답한다.
일단 물건부터 챙긴다. 사람들 멱 따는 것은 나중이다.
신이 난 산적들의 손길에 수레 안에 있던 물건이 죄다 바닥에 떨어진다.
옷가지며 이불이며 숟가락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수레를 뒤지는 사이에 신부가 탔던 붉은 마차 안으로 들어간 만산채의 부채주, 호걸이 묵직한 궤짝 하나를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털컥.
“와!”
머리통만 한 궤짝 안에 은원보와 각종 패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채주님! 찾았습니다! 찾았어요!”
호걸은 삼 찾은 심마니의 기분이 되어 궤짝을 들고 신나게 밖으로 뛰어나오며 외쳐……?
누구지? 이 꼬마는?
마차 밖에 곱상하게 생긴 꼬마가 서 있었다.
못 보던 놈이다.
산채에는 이런 놈이 없는데? 표국? 아니면 혼인 행렬에 있던 놈인가?
자식들이 아무리 물건을 뒤지는 중이라도 포로들을 잘 지켜야지. 이렇게 마음대로 돌아다니게 하다니.
하여간 조심성이 없다.
도망이라도 치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야! 누가 이 꼬마 놈…….”
슷!
호걸은 말을 끝까지 할 수가 없었다.
뭔가 번쩍했고, 자신을 향해 해맑게 웃는 눈앞의 꼬마 놈.
그리고 그의 손에 날카로운 예기를 발하는 피 묻은 비수 하나가 들려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눈을 끔벅거리던 호걸은 왠지 목에 물기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손으로 만져보니 붉은색으로 끈적거리는…… 피?
털썩.
호걸의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와그르르.
궤짝이 열리면서 은원보와 패물이 바닥에 쏟아졌다.
그걸 끝까지 해맑게 지켜보던 비수 든 소년, 황신이 얼굴을 찡그렸다.
죄다 주워 담게 생겼네, 쌍.
“웬 놈이냐!”
궤짝에 은원보를 주워 담고 있는 황신을 발견한 산적들의 표정이 흉흉해졌다.
줍다 말고 일어나 몸을 돌린 황신이 스산한 눈빛으로 비수를 들어 올린다.
할짝.
새빨간 혀로 시뻘건 비수를 핥는 그 모습에 산적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피 맛을 보며 해맑게 웃는 그 모습이 너무도 소름이 끼쳤기 때문이었다.
빠악!
“아극!”
와중에 갑자기 나타난 인물이 뒤통수를 거세게 때렸다.
“이게 진짜! 죽이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사람 죽이고 처웃지 말라고 했냐, 안 했냐! 그리고 혓바닥으로 칼 좀 작작 핥아, 이 새끼야. 쇳독 오른다고, 쇳독!”
뒤통수를 맞은 황신이 억울한 표정으로 뒤를 휙 째려봤다.
하마터면 혓바닥이 잘릴 뻔했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그의 뒤에서 나타난 사내는 다름 아닌 사패천주, 진무였다.
“이게 야려? 눈깔을 확!”
“…….”
진무가 턱을 살짝 들고 눈을 부라리자 황신이 슬며시 눈을 깔며 볼을 부풀린다.
뭐라고 계속해서 쉼 없이 궁시렁거리자 양쪽 눈을 짝짝이로 뜬 진무가 주먹을 슬쩍 들어 올렸다.
그러자 황신이 순식간에 표정을 바꿔 헤실거리며 궤짝에 은원보를 담기 시작했다.
산적들 입장에서는 웬 미친놈들인가 싶었다.
“이런 겁대가리 없는 자식들을 봤나? 뭐 하는 놈들이길래 우리 만산채의 행사에 함부로 끼어든 것이냐!”
부채주 호걸이 죽은 것에 화가 잔뜩 난 구일식이 철퇴를 어깨에 걸치고 다가왔고, 포로들을 지키는 산적을 제외한 나머지가 그 뒤를 따라왔다.
“나?”
정체를 묻는다면 대답해 주는 게 인지상정이 아니던가?
진무는 환히 웃으며 당당하게 대답했다.
“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