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45
245화
“…….”
대답이 너무도 깔끔하다.
그런데 산적?
경쟁자……는 아닌 것 같은데. 설마, 지금 자신들을 놀리는 것인가?
그리고 설사 산적이라고 해도 고작 둘이서 스무 명이 넘는 산적 패를 공격해? 뭐 이딴 생각 없이 미친놈들이 다 있단 말인가?
구일식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는데.
“거참 더럽게 못생긴 놈이네. 일부러 그렇게 분장이라도 하고 다니는 거냐?”
“뭐야?!”
구일식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이 날아와 그의 귓구멍에 푹 꽂혔다.
“정말 끝내주게 못생겼어.”
숫제 머리까지 설레설레 흔들며 이어진 진무의 한마디가 구일식의 이성을 완전히 날려 버렸다.
“이런 개 후레자식이!”
만산채 채주, 구일식.
그의 괴력(?)은 일찍이 산적 패거리들 사이에서도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런 그의 못생긴(?) 분노가 철퇴에 담겨 거칠게 포물선을 그렸다.
“거, 새끼. 딱히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화내기는.”
씩 웃는 진무의 입술 사이로 가지런한 치열이 환히 드러났다.
“어쩌냐? 맞으면 더 못생겨질 텐데.”
“…….”
* * *
콰득! 뻑! 쩌적!
“…….”
다채로운 타격음에 양설예를 비롯해 포로로 잡혔던 사람들이 멍한 표정을 짓는다.
아, 사람 몸에서 저런 소리가 날 수도 있구나.
박자가 하도 경쾌해 듣기만 하면 어깨춤이 절로 날 듯한데, 보고 있으면 너무 살벌해서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다.
진무가 구일식을 쓰러뜨린 것은 정말로 한순간이었다.
백 근의 거력을 담고 날아오는 철퇴를 무슨 파리 쫓듯이 손 몇 번 휘저어 쳐 내더니, 당황한 구일식의 얼굴에 다짜고짜 주먹을 틀어박은 것이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정말 산적들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듣기로 산적 토벌을 자주 하는 명문 정파의 제자들은 ‘하압! 내 칼을 받아라!’라든지, ‘무슨 무슨 초식!’이라고 외치며 멋들어지게 검을 휘두른다고 했는데.
딱히 손에 뭘 든 것도 아니었고 간신히 이름이나 주워들은 고강한 무공을 쓰며 훌훌 날아다닌 것도 아니었다. 무기라고는 움켜쥔 주먹뿐이었고, 그냥 뚜벅뚜벅 걸어가서 가까운 것부터 족족 때려눕혔다.
주먹이 움직일 때마다 부러진 이빨이 사방에 튀어 오르고 몸뚱이가 허공으로 날아가 나뭇가지에 물 먹은 빨래처럼 축 늘어진다. 뼈를 강제로 부러뜨리고 짓밟아 으깨는 소리가 온 사방에 소름 끼치도록 메아리를 만든다.
기세 좋게 공격했던 산적들이건만, 이제는 아연실색하며 도망치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도망조차 그들의 바람에 불과했다.
갑자기 움직임이 빨라진 진무의 신형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가 되자 줄행랑을 치던 이들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뒷덜미가 잡혀 원래 있던 자리로 던져졌다.
콰득, 푹!
진무는 바닥에 처박힌 이들의 머리를 발로 지르밟아 아예 땅속에 파묻어 버렸다.
그 순간 양설예와 포로들은 깨달았다.
아, 구해졌구나. 지나가던 은인이 자신들의 처지를 불쌍하게 여겨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가지고 뛰어들었구나.
하지만 왜일까. 산적들을 혼내 주고 죽을 뻔했던 자신들을 구했으니 분명히 은인(恩人)인데. 은인이라는 말이 다른 의미는 아닐 것인데.
어찌하여 그가 산적보다 더 무서운지 모르겠다.
더욱이 은인과 함께 온 곱상하게 생긴 소년은 산적과 싸우는 그를 도울 생각 따윈 하지 않는 것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은원보나 줍고 있었다.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혹시나 멀리 굴러간 은원보가 없는지 세세하게 살피면서.
은혜를 입는다는 것이 원래 이렇게 무서운 것일까?
양설예를 비롯한 사람들은 쉴 새 없이 귓가에 날아와 꽂히는 각종 구타음에 소름이 돋아 오한이 느껴지는 자신의 팔을 감싸 안았다.
* * *
빠가가각!
어딘가 한 군데 부러지는 듯한 소리를 끝으로 산적들이 정리되었다.
딱히 힘을 과하게 쓸 일도 없었다. 고작 섬서 외곽지에서 화산의 눈을 피해 산채나 운영하는 놈들이다. 이 정도면 아침나절 준비 운동에도 미치지 못한다.
“야.”
“……!”
진무의 부름에 얼굴이 심하게 부어 버린 구일식이 고개를 번쩍 쳐든다.
바위에 대충 걸터앉아 검지를 까딱거리는 것이.
“안 와?”
아, 오라는 뜻이 맞구나.
근데 오려면 지가 오지.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겠구만.
아무리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박살이 났다고 해도 녹림의 긍지와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었다.
더욱이 구일식은 한 산채의 주인이 아니던가?
매섭게 눈을 치뜨고 노려보자 진무가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쉰다.
다른 산적들은 전부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줘 패 놓았지만 구일식은 딱 두 방만 때렸다. 코뼈가 부러지고 시퍼렇게 부어올라 이전보다 좀 더 못생겨 보이긴 했지만, 어쨌든 정신이야 말짱할 게 분명하다.
“하아, 채주 놈이라 일부러 봐준 건 모르고. 이게 똥오줌을 못 가리네.”
“…….”
진무가 다가온다. 그리고 발을 높이 들어서…….
콰직, 콰직, 콰직, 콰직!
정말 마구잡이로 짓밟는 통에 뼈에 사무치는 고통이 몸 어디랄 것 없이 전신에 고루 작렬했다.
“꾸에에엑!”
산돼지처럼 비명을 질러 대었지만 아프기만 하고 정신을 잃을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욱 또렷해져서 고통이 더욱 심하게 느껴졌다.
한참을 숨도 안 쉬고 구일식을 짓밟은 진무가 그의 앞에 쪼그려 앉자, 황신이 은원보를 다 주워 담은 궤짝을 들고 와 의자처럼 받쳐 주고 옆에 섰다.
“야.”
“…….”
“어쭈, 이게 덜 처맞았나?”
진무의 이죽거림에 구일식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원래 사람이 살다 보면 눈치라는 게 생기고, 보다 탁월한 눈치를 위해서는 수많은 교류를 통해 상대방의 성격이나 말투, 기분 상태 등에 익숙해져야 한다.
하지만 대번에 알겠다.
파팍, 팍! 척!
구일식은 튕기듯이 일어나 진무의 앞에 무릎을 꿇고 양손을 곱게 포개어 얹었다. 간이고 쓸개고 모두 빼 드리겠다는 아부성 미소와 함께.
거, 안면 근육 좀 안 움직일 수 없냐. 개박살 난 얼굴로 웃기까지 하니까 진짜 심각하게 못생겼는데.
“예! 만산채주, 구일식!”
“이제야 대화가 좀 되네.”
진무가 만족스럽게 웃자 구일식은 더 이상 맞지 않아도 될 듯한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니네 산채 위치가 어디냐?”
“예? 그건 왜?”
“왜긴, 말했잖아. 산적이라고.”
“……예?”
아니, 정말로 경쟁자였단 말인가?
소화산에 산적패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거니와, 이런 고강한 괴물이 있다는 소문은 더더욱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정말로 산적이셨습니까?”
“어.”
진무가 당연하게 대답하니 더욱 억울하다.
“아니 왜 진작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말했잖아. 처음에.”
“…….”
아, 그렇지. 너무 처맞아서 잠시 잊었다. 분명 처음 물어봤을 때 산적이라고 하긴 했는데.
“그럼 소화산이 영업장이신?”
“아닌데?”
진무의 대답에 구일식이 멍하니 쳐다보다가 환장하겠다는 표정으로 따지고 들었다.
“아니! 그런데 어째서 저희의 영업을 방해하신 겁니까?”
이놈 봐라, 목에 핏대를 세워?
“방해? 내가? 그런 적 없는데?”
“뭐, 뭐요?”
어이가 없다.
부채주인 호걸을 죽이는 걸 직접 봤는데, 엄연히 영업 중인 자신들을 이 모양 이 꼴로 구타를 해 놓고.
그리고 진짜 산적이라면 같은 식구가 아닌가?
“아니, 소화산이 영업장도 아니라면서, 산중의 도(道)가 지엄한데 어찌 녹림의 불문율을 어긴단 말입니까!”
녹림의 불문율?
아, 언뜻 기억이 나기도 한다.
녹림. 사패천에는 소속되지 못했던 산적 놈의 자식들.
이놈들은 제 놈들의 우두머리를 일컬어 총표파자(總瓢把子)라 부르며 자랑스러워한다.
이게 뭔 뜻이냐.
거느릴 총(總), 바가지 표(瓢), 잡을 파(把). 즉, 바가지를 잡은 놈이 거느린다는 건데.
거지새끼도 아니고 왜 하필 바가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바가지 따위를 들고 영차영차 하는 놈 중에 ‘지화자’ 하는 놈이 대장이고, ‘좋구나’ 하는 놈이 수하가 된다는 아주 명쾌한 의미다.
부모의 동의도 받지 않고 멋대로 한 식구가 된 천하에 불한당 같은 놈들이었으나 나름대로 규칙도 있었다.
첫째, 남의 산에 가지 않는다. 둘째, 남의 영업을 방해하지 않는다.
눈앞에 있는 구일식이라는 놈이 말한 산중의 도는 모르겠지만, 불문율이라는 것은 아마 그것일 터다.
같은 산적이면서 왜 자신의 영업을 방해했느냐? 그 말이다.
“너 뭔가 잘못 이해했구나?”
“뭐요?”
“산적이라고 했지 녹림이라고 한 적은 없는데?”
“그게 무슨?”
진무의 말에 구일식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한다.
“산적이 뭐 하는 직업이냐?”
“그야, 산에 들어온 사람의 물건을 뺏는 직업이죠.”
“정답!”
진무가 친히 고개를 끄덕여 주자 구일식이 멍하니 쳐다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눈을 점점 더 크게 뜬다.
“설마?”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고 옆에 있던 황신이 환하게 웃는다.
“이제야 이해가 좀 빠르네. 계속 말했지만 나, 산적이다. 그리고 아까 영업장 어쩌구 했지?”
“…….”
“이 중원의 모든 산이 이제부턴 전부 내 영역이야. 이해했어?”
구일식의 동공이 쉴 새 없이 떨렸다.
그의 머릿속엔 오로지 하나의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건…… 듣도 보도 못한 미친놈이다. 중원의 모든 산이 제 영역이라고? 그래서 지금 내 산채를 털겠다고?
산적이라 주장하는 이놈이 녹림 전체와 정면 승부를 하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구일식은 어이가 없음을 넘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자, 다시 물을게. 산채가 어디냐?”
“…….”
뭐라 답할 말이 없다. 미친놈을 상대로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런 구일식의 행동에 무척이나 심기가 거슬린 진무가 천천히 일어났다.
“물어볼 때 즉각 즉각 대답하면 참 좋을 텐데.”
“……!”
진무의 주먹이 지화자! 춤을 추고 구일식이 끄아악! 화답한다.
한참이나 이어진 강렬한 춤사위와 온 산을 메아리치도록 울리는 처절한 추임새가 오간 끝에 구일식은 자신의 산채가 온암산의 어느 골짜기, 어느 길을 통해 어느 바위를 끼고 돌면 있다는 사실을 구구절절, 아주 상세하게 토해 내었다.
* * *
구일식 등을 거의 작살내다시피 해 놓은 뒤 옷자락에 묻지도 않은 듯한 먼지를 털어 내며 일어나는 진무를 양설예와 포로들이 멍하니 바라본다.
그냥 간다고?
더욱이 황신이 하나도 빠짐없이 주워 담은 혼인 지참금 궤짝은 손도 대지 않았다.
아니, 그냥 가면 좋긴 하겠지만 양설예는 그냥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구한 것도 모자라 혹여 자신들이 감사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몰라 할까 봐 일부러 산적입네 하는 것을 들은 뒤였다.
어찌하여 목숨을 구해 준 의인에게 감사조차 전하지 않는단 말인가?
“으, 으, 은……고옹.”
하지만 쉽게 잘되지 않는다.
너무…… 너무 무서워서.
하긴 그럴 수밖에 없다. 사람 멱을 따서 죽이고 해맑게 웃는 놈과 스물이 넘는 산적을 개 패듯이 패고 나서 또 패는 놈이니 안 무서우면 사람이 아니다.
“뭐? 할 말 있어?”
진무가 슬쩍 힐끗 쳐다보자 양설예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사람 눈빛이 뭐가 저리도 무섭단 말인가? 악귀가 있다면 저런 눈빛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 느낄 만도 한 것이, 무명촌을 떠난 이후로 진무가 운용하고 있는 것은 육양진기가 아니었다.
자소단을 까먹고 단번에 경지를 올려 버린 순도 높은 묵룡혼원공이었다.
지난 한 달간의 여정 동안 그 수련이 깊어져 이제는 사기가 눈동자에 스며 평소에도 흑요석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황신조차도 정면으로 마주하면 눈을 깔 판에 일반인은 말도 못 할 정도다.
하지만 눈빛에 질쏘냐!
정말이지 치가 떨리도록 무섭기는 했으나 양설예는 이름 높은 부운장에서 자란 규수였다.
“구,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얘는 또 뭔 개소릴까?
“구해 줘? 누가?”
“……예?”
진무의 대답에 당황스럽게 고개를 들었던 양설예가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 시선을 내리깔았다.
“못 들었냐? 나 산적이야.”
아, 듣긴 했는데 그건…….
“쫑알대지 말고 짐 챙겨서 꺼져.”
“……!”
진무의 사나운 말에 오금이 저린 양설예가 풀썩 주저앉는다.
웃기는 여자다. 누가 누굴 도와줘, 대체.
지금 그는 적생의 부탁으로 사패천의 자금줄을 뒤흔드는 중이다.
일단은 녹림, 수채, 흑사방, 야금당.
중원 사방에 깔린 놈들이니 일일이 찾아다니기도 힘들다. 그냥 길 가다 발에 채는 대로 조질 생각이었다.
그럼 분명히 소문이 날 것이다. ‘중원 산지를 제 것이라 주장하는 놈이 나타났다!’든가 ‘산적만 골라서 털고 다니는 산적이다!’ 따위의.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말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다.
구일식.
녀석을 살려 두었으니 이제 알아서 소문이 날 터였다.
처음에는 치기 어린 무인의 공적 쌓기로 치부하겠지만, 점점 더 피해가 커지면 직접 찾아올 것이 틀림없다.
“황신!”
“…….”
“온암산의 만산채를 턴다. 돈 챙겨 갈 놈들 보내라고 해.”
진무의 명령에 황신이 고개를 끄덕이고 재빨리 휴대용 지필묵을 꺼내 하오문에 보낼 전서를 작성했다.
푸드득.
“…….”
전서구가 금세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몇 번을 봐도 신기하다.
저 새는 도대체 어디에 넣고 다닌 거지? 그리고 새 새끼가 냄새라도 맡고 찾아오는 건가?
전서구가 죄다 영물일 리도 없는데.
세상은 역시 의문투성이다.
뭐, 쓸데없는 고민하지 말자. 개보다 냄새를 잘 맡는 년도 있고, 더 잘 듣는 놈도 있는 판에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진무가 막 발을 떼려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여전히 오들오들 떨고 있는 양설예 일행을 쳐다보았다.
잊은 게 있다.
진무가 다가가 손을 쑥 내밀자 양설예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옷깃을 여민다.
야, 사람을 지금 뭘로 보고.
“돈.”
“……예?”
“최소한의 통행세는 받아야지. 산적이니까.”
아까 보니 궤짝에 은둥이가 제법이더구만.
그중에 몇 개만 내놔라. 니 말대로 목숨까지 구해 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