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49
249화
쾅!
거칠게 때린 주먹에 철로 된 의자의 팔걸이가 찌그러졌다.
분을 참지 못하고 푸들거리며 몸을 떠는 야금당주 정목립의 시선에 보고를 올렸던 대총관 여회가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린다.
“그래서 뭐라고? 섬서의 부현, 감천에 있는 사업장 다섯 곳이 전부 개박살이 났다고?”
“예.”
“애들은 다 죽었고? 한 놈도 빠짐없이?”
“……예. 그렇다고 보고가.”
여회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정목립의 눈치를 살핀다.
“허!”
정목립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어떤 개새끼야?”
“그것이…….”
“또, 그 망할 도사 새끼냐?”
“그게…….”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묻는 정목립의 말에 여회가 대답을 흐린다.
“이런 병신 같은 놈이!”
우물쭈물하는 여회의 모습에 급기야 정목립이 호통을 쳤다.
“그 도사 놈 짓이라고 하기에는 피해 규모도 너무 크고…….”
“그래서 뭐?”
“예?”
“그래서 뭐? 이런 미친 새끼야? 그게 말이야 똥이야? 똑바로 보고 안 해?”
“그…… 실은 세 곳 사업장에서 발견된 시신들에게서 흉수를 단정 지을 수 있는 증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
“일전에 노예 시장을 습격하고 다니던 말코 도사 놈과는 다릅니다. 당시엔 놈에게 당한 이들을 살펴보았을 때 다치게 하지 않으려 주저한 흔적이 역력했고, 현장에서 사망한 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생존자가 없습니다. 시신에 남은 흔적이 제각기입니다. 그저 하나같이 잔인하다는 것밖에는.”
“잔인해?”
“예. 전부 목구멍이 꿰뚫리거나 대가리가 터져서…….”
“…….”
“그리고, 지나간 곳마다 돈을 죄 털어 갔습니다.”
“도, 돈을?”
여회의 보고에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긴 정목립이 탁자 한쪽에 놓여 있는 용모파기 하나를 들었다.
그곳엔 남화건(南華巾)을 단정하게 쓰고 있는, 서른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도사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잔혹한 도사, 수검(銹劍).
이름을 모르기에 그리 부른다. 진짜 도사인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남화건을 쓰고 다닌다는 것이고, 습격한 주제에 생명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일 년 전부터 섬서 북쪽 일대를 돌며 자신들의 사업을 사사건건 방해하고 있는 놈. 정목립은 놈을 잡기 위해 부상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용모파기를 만든 바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 모습을 감춘 게 벌써 두 달도 전이었고, 습격했던 곳은 주로 노예 시장이었다.
놈은 언제나 노예로 잡고 있던 이들만 구해서 도망쳤다. 현장에서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 그러나 놈에게 상처를 입은 무인들 중 일부가 파상풍으로 죽어 버렸다.
잔인한 놈, 일부러 천천히 말려 죽이기 위해 녹슨 검을 쓰다니.
하지만 적어도 놈은 돈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돈까지 싸그리 털어 갔다고 하지 않는가?
“씨발, 그럼 뭐야? 그 망할 도사 놈이 아니면 또 어떤 새끼야? 세력이란 이야기야?”
“아니, 그건 아닌 듯싶습니다. 정무맹의 움직임은 조용하고, 사패천에 반기를 든 천웅방 쪽도 그렇고……. 확실하지 않은 이상 사패천 본성에 도움을 청하기도 힘들 것 같습니다.”
“이런 씨발!”
와그작.
정목립이 용모파기를 구겨 쥐며 욕설을 내뱉었다.
쥐새끼 놈 하나 설치는 것도 짜증 나는데 이번엔 웬 살인마 새끼가 나타나서는.
하지만 여회의 말이 옳다.
흉수의 정체도 확실하지 않은데 사패천의 본성에 무인대를 파견해 달랄 수도 없는 일이다.
“하아, 피해가 얼마냐?”
“그게…….”
여회가 또 우물쭈물하자 짜증이 잔뜩 서린 정목립의 관자놀이에 힘줄이 돋아 올랐다.
“얼마냐고!”
“손해액이 금 네 관에 달합니다.”
“네, 네 관! 허, 이런 쌍!”
절로 욕설이 터져 나온다.
부현과 감천의 도박장에 생각보다 많은 돈이 있었던 모양이다.
제 놈들 몫을 떼고 본당에 바칠 수수료가 삼 할이니, 적어도 한 관이 넘는 돈이 날아가 버렸다. 와중에 금 네 관에 달하는 돈을 끌어모으는 능력 좋은 놈들까지 죄다 죽어 버리다니.
“그리고…….”
“……?”
있는 대로 열이 받은 정목립의 모습에 여회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뭐?”
“노예는 둘째 치더라도 본성으로 보낼 아이들 열다섯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뭐?”
정목립의 얼굴이 더없이 흉악하게 일그러진다.
언젠가부터 본성에서 요구하기 시작한 열 살 전후의 아이. 사패천 예하의 세력들에게 내려진 명령 중 가장 중요한 명령으로, 애들 숫자가 덜 채워지면 상납금보다 더 심한 문책을 당해야 했다.
해서 산적 놈도 수적 놈도 요새는 통행세보다 애들을 납치하는 데 집중했다.
근래 상행이나 수로 이용객들이 아이들을 대동하지 않게 되는 바람에 수급이 어려워졌고, 천주로부터 직접 심하게 문책을 받았다고 들었다.
다행히 야금당은 도박 빚이나 고리를 이용해서 좀 더 수월하게 아이들을 수급할 수 있었고, 거기에 막대한 상납금까지 더해지니 자연히 사패천에서 좀 더 높은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그런데 열다섯이라니?
야금당에서 이번에 본성으로 보내야 할 할당량이 서른이었다.
절반이 모자란다.
“어떤 개새끼인지, 내 반드시 잡고 만다.”
정목립이 이를 부득부득 갈아 대며 볼을 씰룩거렸다.
“애들 풀어서 관에서 신경 쓰지 않을 만한 곳 좀 뒤져 봐. 본성으로 보낼 애새끼들 수는 맞춰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우담이 불러.”
“……귀살대(鬼殺隊)를 보내실 요량입니까?”
귀살. 귀신 잡는 무인대.
야금당의 최정예 무인대인 그들의 임무는 수금이다.
고작 수금이나 하는 집단에 무슨 그런 거창한 이름을 붙였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나, 그건 모르는 소리다.
야금당의 예하 세력들은 도박장, 야시장, 노예 시장, 고리대 등과 같은 사업장을 운영했고, 일반 민초들 외에도 신분을 감추고 활동하는 큰손들이 있었다.
이름 높은 상인, 고관대작, 든든히 세력을 구축한 무림 세가의 인물들.
문제는 그런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하다 보면 때때로 돈을 떼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민초에게 하듯 추심하자니 상대의 신분이나 세력의 규모가 거대해서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때 귀살대가 나선다. 그리고 그들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야금당주 정목립이 거금을 들여 가며 하나씩 모집한 이들이다. 소문에 불과하긴 하지만, 야금당 귀살대의 무위가 독하기로 소문난 당가의 독혈각에 비견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우리 사업장을 털어 간 놈들이야. 한 놈일 리가 없어. 최소 오십여 명 이상은 되겠지.”
“…….”
“부현 쪽이 당한 게 닷새 전, 감천 쪽이 당한 게 이틀 전, 그럼 다음이 어디겠냐?”
“……연안(延安)?”
“그렇지. 감천에서 연안까지 닷새. 연안 쪽에 있는 우리 사업장이 당하면 놈의 경로는 뻔하지. 북상하고 있는 거야.”
옳은 말이다.
“연안으로 가기엔 시간이 맞지 않아. 연안을 포기하더라도 귀살대를 자장(子長)으로 보내. 가서 내 돈 훔쳐 간 새끼 껍데기를 벗겨서 데려오라고 해. 돈도 되찾아 오고.”
“…….”
정목립의 말에 여회가 오한 들린 듯이 몸을 떨었다.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여 대는 그 잔인한 들개들을 섬서 북부에 풀어놓는다면 피바람이 불 것은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 * *
섬서의 북단의 마을 자장현.
중심 관도에서 벗어난 뒷골목에 위치한 정안객점의 이 층.
열린 창 안쪽의 방에 한 사람이 앉아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무뎌진 날을 세우기 위한 숫돌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슥, 슥, 슥.
숫돌이 물기를 머금은 채 녹이 발갛게 서린 날 위를 오간다.
“…….”
이곳저곳을 기워 놓아 형체마저 불분명해진 도포에 남화건을 쓴 사내가 예리한 눈빛으로 녹슨 칼날을 세워 바라본다.
찌이잉.
튕겨진 손가락에 검날이 첫날밤 새색시처럼 엷게 떨었다.
스으윽.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사내는 도포 자락 끝으로 검날의 물기를 닦아 내었다.
녹슨 검날 사이로 시퍼런 빛이 슬며시 비쳤지만, 아주 일부일 뿐이다. 애초에 녹이 하도 심해서 숫돌로는 턱도 없었다.
착.
검을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은 사내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께로 다가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장원, 대룡방.
자장현에 위치한 야금당 소속의 장원이었다.
겉은 그저 다른 곳과 다를 바 없는 장원이었으나 이틀 내내 살펴본 결과 밤이 되면 포승에 묶인 사람들이 끌려들어 가고 있었다.
사내, 여인……. 게다가 아이들까지.
필시 노예 시장에 넘기기 전에 잠시 가두어 두는 것이 분명했다.
“못된 놈들 같으니.”
사내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그는 근래 섬서 북부에서 꽤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무인이었다.
딱히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사파인들은 그를 수검(銹劍), 즉 녹슨 검이라 부르며 두려워했다.
그가 노린 야금당의 사업장.
부현의 하도방.
야금당이 내건 현상 수배로 인해 한동안 조용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움직인 것인데, 선수를 빼앗기고 말았다. 어떤 놈이 자신이 노리던 하도방을 습격한 것이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발 늦은 뒤였다. 떼죽음을 당한 하도방을 조사하기 위해 관인들이 사방에 깔려 있었고, 정원에는 마치 일부러 보라고 남겨 놓은 듯한 시신들과 사방을 가득 채워 흐르는 혈향뿐이었다.
자신이 목도한 처참한 광경을 떠올린 수검의 눈이 찌푸려진다.
어떤 자들일까? 시신에 남겨진 잔인한 손속을 보면 절대로 정파는 아닐 것이라 생각되었다.
사패천 내부에 분란이 일어났다고 하더니 반란 세력이 습격을 한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도방뿐 아니라 도박장까지 박살이 나 버렸으니까.
하지만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문제는 민초다. 습격을 받은 야금당의 사업장에 남아 있는 민초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증발해 버린 것처럼 사라졌다.
습격한 놈들이 데려갔음이 틀림없었다. 필시 그럴 것이다. 사람을 짐승처럼 사고파는 사파인들에게 노예는 곧 돈이나 다름없을 테니까.
수검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습격자의 경로가 북쪽으로 향하고 있음을 깨닫고, 감천에서 연안을 건너뛰고 곧바로 자장으로 달려왔다.
야금당의 사업장을 습격한 놈들의 실력이나 그 숫자를 예상해 보았을 때, 자신 혼자서는 상대할 수 없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연안에 구금되어 있는 이들은 어쩔 수 없지만, 자장현 사업장에 잡혀 있는 이들은 반드시 먼저 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 놈들끼리야 싸우든지 말든지.
밤이 되기를 기다려 민초들을 구할 생각을 굳힌 수검은 칠흑같이 검은 무복으로 갈아입었다.
* * *
연안의 야금당 사업장을 개박살 내 놓고 난 뒤 자장현으로 향하던 진무와 황신.
이 노인이 챙겨 준 육포로 간단하게 식사를 해결한 뒤, 자리를 정리하던 황신을 향해 진무가 입을 열었다.
“황신.”
“……?”
“네 실력 좀 보자.”
“…….”
“앞으로 같이 다니려면 네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 아니야. 능력이 모자라면 좀 가르쳐 놓아야 나도 편하고.”
툭 던지듯 내뱉은 진무의 말에 황신은 전율을 느꼈다.
사파 역사상 최강이라 불렸고, 마교주 북리도천과 함께 천하제일인이라 칭송받았던 사황 혁련무강의 전인이다.
이미 그의 무위를 직접 확인하지 않았던가?
이런 절대 고수의 가르침이라니, 이것은 다시 만나기 힘든 기연이었다.
황신은 정말로 최선을 다했다.
처음에는 뭐, 은신 능력을 극도로 끌어 올릴 방법이라든지, 아니면 필살기로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을 가르쳐 줄 것으로 생각했다.
기쁨에 찬 황신은 자신의 모든 능력을 발휘해서 진무를 공격했고.
쩍!
“크윽!”
빠박!
“켁!”
무자비하게 구타당했다.
“쯧쯧, 은신자라는 놈이.”
바닥에 널브러진 황신을 향해 진무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고작 그따위 은신술로 뭐? 호위? 전령? 웃기고 있네. 심부름이나 제대로 하겠냐?”
“…….”
진무의 말에 눈덩이가 시퍼렇게 부어오른 황신이 입을 댓 발쯤 내밀었다.
아니, 무공 수준이면 몰라도 전령의 임무와 호위가 은신술과 무슨 연관성이 있단 말인가?
망할 천주 같으니. 분명 그냥 심심해서 패고 싶었던 게 틀림없다.
씨발, 구타에 미친 인간 같으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