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ing Warrior of Wudang RAW novel - Chapter 25
25화
그런데 누굴까?
저만한 고수라면 모를 리가 없는데.
일월마교, 사패천, 정무맹.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이름난 고수 중에서 노인 같은 자는 없었다.
“제법이구나, 아이야. 아마도 네 또래에서는 중원 최고가 아닐까 싶구나. 무당에 너만 한 제자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거늘.”
노인이 이가 없어 움푹 패인 볼을 움직이며 웃었다.
“늙어서 귀가 처막혔나 보지.”
“홀홀, 고놈 참. 입심 한번 대단하구나.”
“닥치고. 한패냐?”
“한패? 흠, 글쎄다. 지금은 이 아이들을 이용하고 있으니 한패라고 해도 될 듯하다만.”
젠장! 금적산 이 개새끼. 돈을 얼마나 쓴 거야?
하필이면 이 정도의 고수라니.
그 정도 실력이면 어디 처박혀서 몸 편하게 장로 놀음이나 할 것이지 어디서 청부질이야, 청부질이. 다 늙은 합죽이 노인네 주제에.
짜증이 확 치밀었다.
과거라면 몰라도 지금의 실력으로는 꼼수를 부린다 해도 필패(必敗)였다.
청상, 청우와 함께 합공을 한다 해도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런 노인네가 있는 줄 알았다면 절대로 여유를 부리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 정도 되는 자가 고작 나를 죽이는 청부를 받다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응? 한패라 했지 청부를 받았다 한 적은 없다만.”
“뭐?”
이놈의 노인네가 지금 누굴 놀리나?
진무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노인을 노려보았다. 그런데 노인이 무언가를 느낀 듯이.
“홀홀, 사이한 기운을 가진 놈들에 제갈가의 놈들까지? 이런, 이런. 무당의 어린 도사가 뭔 죄를 지었길래 벌써부터 이리 노리는 놈들이 많누?”
“뭐라고?”
사악한 놈? 제갈세가?
이 노인네가 지금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지?
“어찌 되었든 나는 저놈만 필요하다. 어떠냐? 무당의 아이야.”
“…….”
노인은 청우의 손에 쓰러져 기절해 버린 왜소한 사내를 가리켰다.
“반드시 살려 데려가야 하니 방해하지 않는다면 나도 너희를 못 본 걸로 해 주마.”
“못 본 걸로 해 준다고?”
진무가 되물었지만 노인은 합죽이처럼 볼을 움푹 집어넣은 채 웃기만 했다.
하지만 다행이다.
눈앞의 무시무시한 노인과 굳이 싸울 필요가 없어진다는 것 아닌가.
“좋아.”
손해가 분명한 장사에 투자를 하는 미친 상인은 없다.
자신의 목숨을 노린 놈을 내주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그런 사소한(?) 고집으로 목숨을 내어놓는 우를 범하느니 그냥 고개 한 번 숙이고 무릎 한 번 꿇는 것이 낫다.
적어도 진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럼 되었구나. 홀홀.”
노인이 뒷짐을 지고 천천히 다가왔고, 진무는 조심스럽게 비켜났다.
쓰러져 있는 사내의 맥을 짚어 본 노인은 마치 마른 솜을 들듯 어깨에 들쳐 메었다.
그러곤.
천천히 진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
순간적으로 노인의 눈동자에 스치는 섬뜩함.
이런 X 같은 노인네가!
파앙!
미처 방비할 새도 없이 노인의 손이 빠르게 뻗어져 나왔고.
“피해!”
진무가 재빨리 외침과 동시에 뒤로 물러나 어지럽게 손을 휘저었다.
휘리리링!
단숨에 차고 오른 내공이 바람을 일으키며 손바닥으로 뿜어져 나왔다.
파아악!
부딪힘과 동시에 진무의 일장이 노인의 장력을 비틀어 버렸다.
콰아앙!
길게 이어진 복도의 벽이 거센 폭발음과 함께 부서져 내렸다.
“호오?”
노인의 눈동자에 묘한 표정이 어렸다.
장력이 부딪히는 순간 진무의 적절한 대처가 꽤나 놀라웠다.
노인이 거래를 제안한 것은 자신의 어깨에 둘러멘 왜소한 사내, 고월을 반드시 살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 목적을 이룬 즉시 진무를 죽이기 위해 장력을 뿜어낸 것이다.
그런데 부딪히는 순간.
“무당의 회풍장(廻風掌)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다니.”
회풍장은 그 기세가 회오리치는 바람처럼 뿜어지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진무는 장력의 힘이 아닌, 그 여파로 일어난 바람을 이용했다.
상대가 되지 않음을 깨달은 진무는 회풍장에서 일어난 바람을 응축시켜 공기의 층을 만든 뒤 노인이 뿜어낸 장력을 빗겨 흘렸다.
말로는 가능할지 몰라도 실제로 행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무공에 대한 이해가 극에 달하지 않으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시도한다 해도 시기를 맞추기 힘든 방법이었다.
엄청난 경험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허, 어린것의 초식 운용이 수십 년을 산 노괴보다 뛰어나구나.”
노인이 진무를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이런 놈이 나왔단 말인가?
“당신 뭐야?”
진무는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노인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글쎄. 죽어야 할 놈에게 가르쳐 줄 이름은 아니니라.”
노인의 표정이 음산하게 변했다.
그 순간 싸늘한 살기가 매서운 바람처럼 휙 하고 몰아쳐 왔다.
진무는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 오르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검을 뽑아 좌우로 휘둘렀다.
땅! 까강!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음에도 휘둘러진 검에서 강한 마찰음이 일었다.
“호오? 그것도 느꼈느냐? 이거 점점, 반드시 죽여야겠다는 확신이 들게 하는구나.”
“…….”
청상과 청우를 노렸다.
무형의 경기.
노인은 기운의 모습을 자신의 마음대로 감출 수 있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손에서 피어오르는 선명한 핏빛 기운.
씨발.
언제나 불안감은 현실이 된다.
노인의 경지는 의기 정도가 아니라 ‘강’의 경지였다.
[청상! 청우! 도망쳐! 무조건! 명령이다!]“……!”
진무는 외침과 동시에 노인을 향해 뛰어들었다.
“사, 사숙!”
청상의 외침이 들려왔다.
하지만 상대는 강기의 고수.
노인이 제 실력을 보이는 순간 모조리 죽는다.
고작 탄기의 수준밖에 되지 않는 진무의 경지로는 절대로 그를 막을 수가 없었다.
경고를 했으니 도망치는 것은 청상과 청우의 몫이었다.
진무는 아주 작은 시간만 벌어 줄 생각이었다.
둘의 보호자로서.
취리릭!
벽면을 밟고 노인을 향해 쇄도한 진무의 검이 화려한 변화를 만들자 주루의 내부가 수많은 검기로 채워졌다.
진무가 좋아하는 방법은 아니었다.
검은 언제나 실전적이어야 했다.
불필요한 움직임에 들어가는 힘을 생략하고 오로지 적을 상하게 할 수 있는 힘에 집중한다.
짧고 간결하게.
하지만 그러기에는 상대가 너무 강했다.
진무의 목적은 시간 벌기.
최대한 많은 허초와 변초를 사용해 화려함을 만들고 그것으로 시선을 빼앗아 시간을 번다.
그리고 그가 현혹되는 틈을 타 은밀한 공격을 준비한다.
‘제발 먹혀라!’
사방을 가득 채우며 펼쳐진 검기가 한 점에 몰렸다.
“흥!”
막 검기가 노인의 전신을 난자할 듯 쏟아지는 순간.
쿵!
가볍게 밟은 일 보.
휘릭!
그리고 작은 원을 그리는 손짓.
무릇 절대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에게 검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았다.
검은 그저 손의 연장.
강기는 어디로든 뿜어낼 수 있었다.
노인의 손가락이 펼쳐지자 핏빛 강기가 거미줄처럼 그의 전방으로 펼쳐졌다.
까아아앙!
진무가 뿜어낸 푸른 검기가 아스라지고.
찌잉!
곧게 뻗어진 검극이 허공에 멈춰 매미 날개처럼 떨려 댔다.
막힌 것이다.
검기로 시선을 뺏고 그 중심을 향해 찔러 넣은 검이 노인의 손바닥에 닿지도 못한 채.
“놈, 제법 머리를 썼…….”
모든 공격을 무로 돌려 버린 노인이 진무의 표정에 의아해했다.
진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비웃음이다.
어째서?
하지만 그의 의아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섬뜩함이 느껴졌다.
노인은 재빨리 고개를 세차게 꺾었다.
핏!
“……!”
한 줄기 실낱같은 기운이 그의 귓불을 스치며 지나갔다.
주룩.
피가 흘러나왔다.
“이, 이놈이…….”
흘러내리는 핏물과 함께 쓰라림이 느껴지자 노인의 얼굴이 순간 끓어오르는 분노로 검붉게 물들었다.
화려한 변화에 감춘 비수가 변화의 중심을 노린 검격 하나인 줄 알았더니.
그것마저 세 번째 공격을 감추기 위한 허초였다.
진무는 검격을 뻗기 전 느릿하게 실낱같은 기운을 날렸다.
시간 차를 둔 공격.
팡!
어느새 뒤로 물러난 진무가 노인을 향해 이죽거렸다.
“어때? 마음에 들어? 머리 좀 써 봤다. 망할 노인네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너무 아쉬웠다.
만약 고개를 꺾지 않았다면 눈알 정도는 꿰뚫어 버렸을 텐데.
“네놈…….”
가늘어진 노인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노인에게 있어 진무는 개미에 지나지 않는다.
손가락 하나로 짓눌러 터트릴 정도로 하찮은 벌레.
하지만 가끔 개중에 용맹한 녀석이 제 분수도 모르고 사람의 피부를 무는 경우가 있었다.
노인은 지금 그런 꼴을 당한 것이다.
그것도 독 기운을 잔뜩 머금은 개미, 진무에게.
그리고 진무에게 시선을 빼앗긴 사이 그의 곁에 있었던 청상과 청우라는 놈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어린놈이 감히 나를 상대로.”
“지랄하네. 감히는 무슨. 누군지도 밝히지 않은 주제에.”
진무는 검을 사선으로 비틀어 들며 노인에게 대꾸했다.
무공으로 따지면 하수였지만 절대로 말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뭐라도 하나 이겨야 했기에.
하지만 속이 타들어 가고 입술이 바짝바짝 말라 왔다.
싸늘하게 깔려 사방을 짓누르기 시작하는 노인의 기운. 그 엄청난 압박감에 숨이 턱턱 막혀 왔다.
젠장, 괜히 건드렸다.
그냥 벌도 아니고 말벌집을 건드린 것이다.
“오냐! 네놈이 명줄을 재촉하는구나!”
팍!
미세한 소음.
어?
찰나의 순간에 공간을 뛰어넘어 버린 것처럼 노인의 손이 진무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이, 이건 또 뭐야?!’
장력이다.
당겨서 모으고 밀어야 하는 준비 동작 자체가 없는 일장.
내뻗어진 손에서 곧바로 느껴지는 막대한 기운에 진무가 다급하게 바닥을 찼다.
하지만 물러나는 속도보다 터지는 장력의 속도가 더 빨랐다.
‘제기랄!’
진무는 재빨리 발을 차올려 노인의 손목을 노리며 양팔을 교차했다.
쩌어엉!
엄청난 충격과 함께 진무의 몸이 건물 벽을 뚫고 튕겨 나갔다.
“…….”
하지만 노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비틀었다.
그 짧은 순간에.
노인의 장력이 교차한 팔의 중심을 때리는 순간 진무가 몸을 팽이처럼 비틀어 충격을 흘렸다.
아직 어리다.
그러나 그 나이와 무공의 경지를 보았을 때, 지닌 잠재력이 상상도 못 할 지경이었다.
더욱이 무공을 운용하는 것이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
노인은 부서진 건물 벽을 향해 가까이 다가섰다.
확실하게 죽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노인은 밖으로 몸을 내밀지 못했다.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기감에 느껴지는 것만도 수십 명 이상.
그의 실력이라면 당장에라도 그곳에 있는 모두를 죽이고 사라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임무는 고월을 데려가는 것이었다.
또한 함부로 몸을 드러낼 수 없는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노인은 떨어지는 진무를 향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쐐애액!
강맹한 지풍이 진무를 향해 날아갔다.
따아아앙!
노인의 미간이 또 한 번 일그러졌다.
망할 애송이가 그 와중에도 허공에서 몸을 틀어 검으로 막아 내었다.
막은 충격에 땅바닥에 처박혔고, 피까지 토했으나 죽지는 않았다.
무려 두 번.
그만한 실력이 되지 못함이 확실한데 장력에 이어 지풍까지 막아 내다니.
“실로 굉장한 놈이로다. 안타깝구나. 직접 죽여야 후환이 없겠으나 거지 놈에게 흔적을 남길 수도 있는 일이니.”
싸늘하게 웃은 노인이 발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거대한 기운을 뿜으며 바닥을 힘껏 찍어 밟았다.
콰아아앙!